여성들에게 스스로를 변호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며, 실제로 이는 일부 여성들이 성폭행을 막거나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강간범들의 행동은 좌시하고 여성들의 음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접근을 물리칠 책임을 오직 피해자에게만 지운다면 남자들에게는 강압적인 행동을 할 특권이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또한 페미니스트 캐사 폴릿의 글처럼 몸이 굳어버렸거나, 두렵거나, 평생 동안 몸에 배어버린 조신함 때문에 ‘바로 그 한마디‘를 내뱉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훈제연어처럼 누워 있는 여성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여성의 성관계에 대한 기본적 동의라고 보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심지어 여성이 싫다는 의사를 크고 분명하게 표현하더라도 남성은 귀기울이지 않을지 모른다.

2011년에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섹스를 피자 먹는 일에 비유해 유명세를 탄 파격적인 필라델피아의 교육자 알 베르나치오의 기사를 실었다. 섹스와 피자 먹기는 둘 다 내면의 욕망, 즉 굶주림과 욕구에서 출발한다. 양쪽 모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 당장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만약 실행하기로 결정을 내릴 경우, 어느 정도 논의와 협상이 필요하며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선의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페퍼로니를 좋아하지만 함께 피자를 먹을 사람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반반씩 나뉜 피자를 주문한다든지, 이번에는 여러분이 먹고 싶은 걸 주문하고 다음번에 상대방이 먹고 싶은 걸 주문한다든지, 완전히 다른 토핑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비유에는 누가 이긴다거나 누가 우위를 점유한다거나 하는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욕구, 상호간의 합의, 대화, 협력, 과정, 즐거움의 공유를 강조할 뿐이다.

아들을 둔 부모들은 아들을 앉혀두고 다양한 형태의 압력, 강압, 합의, 그리고 여자아이들이 긋는 경계선을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로 생각하도록 촉구하는 풍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한다. 또한 남학생들은 성적 대상화된 미디어와 포르노가 자신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여성을 공격, 폄하하거나 정복하지 않고도 남성적인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바람직한 사례를 접해야 한다. 남학생들도 상대방과 공유하는 즐거움, 상호간의 존중, 배려에 대해 알아야 하며,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야구선수 같은 사고방식에서 함께 피자를 즐기려는 사람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최근에 나처럼 페미니스트이자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십대 딸을 둔 엄마인 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들에게 기계적인 생식 과정만 가르치거나 원치 않은 성적 압력을 거부하도록 독려하는 것, 또는 강간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심지어 때가 되었을 때 피임약과 콘돔을 쥐여주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나는 부모는 딸들과 함께 여성의 몸이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위와 오르가슴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바람직한 섹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주저했다. "걔네들이 우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겠어?" 친구의 대답이었다.

부모에게서 듣고 실어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듣겠는가? 아이들은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영화관 화면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왜곡되고 잘못된 메시지가 아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 발달을 부정하거나 그에 대해 무조건적인 두려움을 드러내기보다는 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아이들이 섹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이해하면서도 존중하는 마음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를 받아들이며 복잡하고 다양한 뉘앙스를 가진 섹슈얼리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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