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화해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미용실에서 읽기에는 살짝 불편했지만 적당히 햇살이 가리워진 카페에서 읽기에는 적당했다.  할 일이 많은데 하지 않고 미용실로 살짝 도망을 간 내 모습이 찔리고, 엄마와 머리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혼자서 한 것에는 더 찔려 책을 읽는 내내 가족을 사이에 두고 빙빙 도는 폴의 모습은 더욱 나를 찌릿찌릿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될대로 되라는 식이냐는 생각에 화가나 책을 덮게 했다가 진한 에스프레소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의 커피에 책장을 다시 열고 읽게 만든다.
 

 책의 초반에 폴에게 느꼈던 동정심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자신의 평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아내에게 철저히 동떨어져 있게 된 폴! 어떤 느낌일까? 분명 사랑했으며 열렬했으며 자식을 낳아 기르며 웃고 운 시간이 얼마인데 쉰을 넘긴 나이에 아내는 그 모든 시간을 우울증이란 하나의 단어로 빛을 거두어 버린다. 폴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업 UP> 이란 영화를 봤다. 아내의 죽음 후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풍선을 가득 달고 집을 통째로 하늘로 띄우는 할아버지 그 모습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내 잊혀지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었음에도 폴의 아내의 무미건조하게 들렸을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 당신이 떠난 뒤에 내가 창문으로 뛰어내리거나 약에 의존할 것 같아? 집이 무너질 것 같아? 절대로 안 그래, 폴. 인생은 당신 없이도 지속될 거야. 당신은 여기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거든. 

                                                                                            (P. 59)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지켜나가면서 그 가정이 그 사람에게 삶의 이유이자 삶의 과정이고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가정이 낯설어지고 감당할 수 없을만큼 차가워졌다면, 당신이라면 어떡할까? 나라면 어떡할까? 나 역시 폴처럼 가족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지 않을까. 아버지의 고지식한 면을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아들이었것만 아버지는 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평생을 경멸해마지 않았던 큰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이 생활하기 시작한다. 그 전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말과 함께.

 

 폴의 혼란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의 모든 것이 날 혼란스럽게 한다. 책과 함께 사계절을 다 보냈음에도 난 다른 계절에 와 있는듯하다. 이성적인 화해, 내게는 무엇이 이성저인 화해인지 아직은 난감하다. 가족에게서 멀어질수록 가족으로 향하는 끈은 더욱 견고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우리가 떠나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내게는 아직은 이해할 수 없음으로 다가오는 이 책을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40가지 위대한 실험 - 그들의 실험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김기태 지음 / 하늘아래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칠 때 (여기서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다) 실험과 함께 이론을 설명해주면 아이들이 훨씬 더 빨리 흡수함을 알게 되면서 교과서적인 실험 이외의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과학의 역사를 바꾼 실험을 알게 되면 더욱 좋지 않을까라는 내 바람은 이 책을 읽게 하였다. 문제는 이 책을 소화하기 위한 위장이 내게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알지 못했던 것.
그동안 내게 있던 과학적 지식들이 이 책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책이 어렵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까다로운 빛의 파동이나 초전도 형상 진공관의 발명 등 참으로 다양한 실험들과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이 책에는 적혀있음에도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읽어도 내게는 너무나 어렵다. 이 책의 난이도를 생각한다면 대학교에서 참고 교재로 쓸 수 있을만큼 어렵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부연 설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40가지 실험 모두 읽다보면 한 번쯤은 들어봤던 이론이나 과학자들이 나오는데 하나의 실험만으로 책 한 권을 다시 쑬 수 있을만큼 그 실험이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 속에 나온 과학자들의 실험들을 찾아보며 일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휙휙 넘겨버린 과학자들의 이름을 책 속에서 발견할 때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가. 알고자 하는 욕망이 책을 소화하지 못 할수록 커져간다. 찾아봐야지라는 굳은 다짐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텐데,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이론을 설명할 때 얼마나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실험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론에만 치우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알려주고 싶어 이런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험을 통한 이론의 정립일 것이다. 수학 시간에 이론을 증명할 때의 희열을 느껴봤다면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이론을 혹은 다른 사람의 이론을 증명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흥분되고 멋진 일인가.

 

 저자의 바람대로 우리나라에서 노벨물리학상이 나오려면 과학 실험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과학 실험 대회 역시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학교 실험 역시 컴퓨터 화면으로만 정리해서 넘어가지 말고 실험을 통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저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지 못한 독자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조금 더 과학적인 지식이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에 공부를 해야겠다. 어쩌면 저자가 쓴 < 청소년을 위한 유쾌한 물리상식 > 이 내게 더 잘 맞을지 모르니 우선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나는 좀 이상하다
오치 쓰키코 지음, 한나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하늘이 너무나 푸르른 날, 운전 부주의로 차 사고가 나  레카를 기다리는 동안 보도블럭에 걸터앉아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그만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앞에서 사고 나기 전에 산 물고기 풍경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마음 한 구석 꾹꾹 막아두었던 솜뭉치를 빼내고 만다. 눈물이 주르륵, 울음이 엉엉, 농사일 보던 아주머니 놀라서 오시는데도 펑펑 울고 마는 것이다. 무슨 설움이 많아서 보도블럭에 차를 올려놓고 우는 스물아홉 살의 여자라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꽤나 발그레 해진다.
 

 여자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이 책을 꺼내 들었다. 하필이면 이 책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불편함이 나를 감싼다. 가뜩이나 사고로 나간 카드값에 불편한 마음인데 이 책 정도가 심할만큼 나를 불편하게 하더니 결국 멀미를 선물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꾸역꾸역 읽고 마는 것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결국 그녀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치 내게도 그런 행복이 오길 바라는 것처럼.

 

나쁘지않다. 정중한 인사를 받으면 나도 셀러브리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택시에서 내려, 벨 보이의 노고를 위로하듯 미소를 보여주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려대면서 로비를 빠져나갔다. 좋은 소리다. 몸의 모든 신경에 정신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이런 기분 좋은 소리는 낼 수 없다. 젊은 여자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기술이다.

                                                                                                          -p.11, 취급주의

 

 하이힐, 여자아이들에게 엄마 구두는 얼마나 예뻐 보였던가. 20대 초반에 하이힐은 많이 불편하지만 특별한 신으면 특별한 느낌을 주었으며 20대 후반부터는 꼭 신어야 할 것만 같은 구두가 되어버렸다. 어른이란 하이힐로 또각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라 여긴 마음은 왜 일까? 여자 나이 40 앞에서 사유리는 하이힐을 신고 전에 사귄 남친이 부탁한 여자친구의 일자리를 위한 면접을 보러 나간다. 또각 또각 또각,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 줄 하이힐. 그 소리의 설렘이 책을 읽어갈수록 불편해진다. 지키고자 하는 것은, 보이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친척들 사이에서도 똑똑한 장녀로 알려져 있었다. (중략) 그런데 어째서 연애는 진학이나 취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걸까?

                                                                                                         -p.27, 취급주의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사유리를 포함해 대부분 멋진 여성들이다. 자신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직장과 경력이 그녀들의 나이만큼이나 쌓여져 있다. (물론 책 속 여성 중 그런 경력이 없는 여성들도 나오지만) 다 가졌음에도 그녀들의 삶은 투명한 유리컵처럼 불안하다. 언제 깨질지 몰라서, 누군가가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책망할까봐서 가장 힘든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가장 불안해 하고 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지만 '사랑' 이라는 것은 왜이리 힘이 드는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더욱 찾게 된다. 다 가지고 사랑 하나 없는 것에,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못한 것에 주저앉게 되는 공허함을 지금도 느끼는데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녀들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고 마는 것이다. 내 나이 40살에 다녀온 듯해서,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나도 그녀들처럼 겉으로는 반짝 거리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무너지고 마는 삶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쩌지라는 생각만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불편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지 않음은, 버스에서 내려 바닷가 그늘에 앉아 책을 다 읽어내리고 만 것은 그녀들의 삶에 손을 올려주기 위해서이다. 마치 나에게 해주는 것처럼. 괜찮다고 그녀들의 등을 만져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여자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분명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음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그 시간들의 애씀을 어느 정도 알아가는 여자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오츠이치 몰라요? 오츠이치를 알았다면 당신의 여름이 조금은 서늘해졌을텐데.

 

 AM 1:24

 방에 불을 키고 그것도 모잘라 스탠드를 밝히고 컴퓨터 앞에 앉았음에도 스산함이 몸을 감싸고 내 머리카락 그림자에 흠칫 놀라고 온 몸에 돋는 소름을 쓸어내리지도 못하고 등 뒤만 의식한다. 마치 뒤에 눈이 없어 안타까운 사람처럼 등 뒤에 있을 모든 신경을 세우고 서서히 뒤를 돌아본다.

 

- 없다.

 

안심하고 숨을 내쉬는 등을 돌리는 순간. 사람의 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손이 내 어깨를 건드린다. 이런 상상만으로 또 뒤를 돌아보고 마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아무도 없어서 안심했음에도 아무도 없기에 불안해진다. 거기, 정말 아무도 없어요?

 

후우- 누군가가 없음에서 오는 안도감과 섬뜩함은 아무리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마치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면 없음에서 오는 불안에 밤을 떨지 않았을까? 커튼 밖 창문은 깜깜한 어둠이고 내 방은 환한 빛임에도 왜 커튼 사이에는 깜깜함도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는 듯할까? 아주 아주 깊은 어둠일 것 같은 심연의 색을 닮은 듯한 세계. 

 

 당신은 커튼 속, 베일 속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편? 혹은 없는 편? 당신이 내린 답에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나요? 그 이야기를 들려 줄 책이 바로 이 책이죠!

 

 오츠이치, 내 주변의 공기의 온도를 5도 낮출 수 있는 작가. 겁이 많음에도 이불로 꽁꽁 뒤집어 썼음에도 살짝 눈을 떠서 전설의 고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내게 오츠이치 소설의 서늘함을 알면서도 밤 12시에 책을 피고야 마는 것이다. 한 시간동안 한 자세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아니, 책이 나를 읽어내려간다. 내 안에 있는 공포를 찾아내고 내 안에 있는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서서히 함락시켜 나간다. 책을 덮고 내 방 창문에 쳐져 있는 커튼 속 어둠을 응시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츠이치, 이번에도 성공! 무더운 여름 날 아주 아주 차가운 얼음물로도 가질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곳까지의 서늘하게 만들고야 마는 작가, 오츠이치! 후우,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책을 덮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분명 이 정체모를 공포로 인해 잠을 잘 수 없음을 알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니, 짧은 순간만이라도 투명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투명해서 보일 것 같아 들여다 본 어둠의 공포를 책에서 본다. 설명할 수 없는 끝없는 투명함이 이어지는 공포 그러다 불현듯......!!

 

 두 가지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책의 첫번째 이야기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볼펜을 사이에 두고 주문을 외워 귀신을 불러냈던 '분신사마' 놀이를 닮은 '코쿠리 상' 놀이가 등장하면서 진행된다. 한 번쯤 볼펜을 쥐고 주문을 외워봤던 독자라면 이 이야기에 자신을 이입시켜 공포가 배로 커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츠이치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유는 소설 속 소재가 내 경험들과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학교가 배경으로 화장실 낙서가 소재가 된다. 낙서의 이어짐. 학교 화장실의 낙서들이 문득 무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오츠이치의 전작들에 비해 결말이 예상되었다는 점이 아쉽지만 오츠이치 책의 강점은 결말의 반전이 아니라 이야기 순간 순간마다 소름이 돋는 서늘한 공포에 있음을 아는 독자라면 이번에도 그에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 권의 얇은 책 속에 숨겨진 공포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이 책을 만난 시기 나는 지쳐 있었다. 일에 지쳤으며 이른 장마에 지쳤으며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도 지쳤을 것이다. 수업을 취소하고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간 이유는 아슬아슬한 내 무게 때문이었다. 바늘 하나에 허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말을 되뇌이며 달려간 서점에서 무릎을 쫙 피고 책을 읽어 내려가며 안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 이 가슴 시린 아픔도, 이 습한 공기도, 당신을 향한 열망도 다 지나 갈거야, 괜찮아.'

 

 한 가득 책을 안고 나와 차 속에 책을 내려놓자마자 울음이 터지고 만다. 대체 이 서글픔은, 이 외로 움은 어디서 오는 것이기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도 결국 터지고 마는 것일까? 대체 무얼 찾고 싶기에 무얼 갖고 싶기에 내 삶은 이렇게 바람이 통하고 구멍이 뚫린 것일까?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에 바람이 불 때 떠 오르는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이다. 그녀의 글 속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이 있으며 그 일상 속을 들여다보면  미세한 금과 정제된 감정들, 곧 터질듯 불안한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보인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나이대에 들어선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을 무언가로부터의 어긋남, 틈을 그녀보다 잘 이야기하는 작가를 아직은 만나보지 못했다.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 속에서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는 듯 보인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면 그들 스스로 살아간다, 삶을. 그저 에쿠니 가오리는 그들의 모습을 글로 적고 그들의 감정을 옮겨 적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등장인물들은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살아간다. 정지된 듯 보이지만 분명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그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고, 우박이 될 수도 있으며 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책에 빠져들면서 깨닫는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는 바람이고 등장인물들은 구름인걸지도. 바람은 아주 조용히 움직이게 한다, 구름을. 독자가 눈치채지 못 할만큼 천천히. 그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삶은 평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그렇게 하고 싶은 다양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펼쳐진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속에 이렇게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는 것에 놀라고만다. 그들 각각의 삶에 아슬아슬한 바람이 분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고 각자의 가슴에 박혀있는 투명한 얼음같은 상처에 가슴을 내려 놓고야 만다.

 

 어찌하여 인간이란 이렇게 약하고 외로운 생물인채로 자라는 것일까? 스스로의 나약함을 숨기려 하면 할수록 혼자 큰 침대에 누워 무릎을 꼭 안고 자야할 밤이 많아지고 케니지의 음악을 혼자 들으며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고독을 곱씹으며 햇살의 한 줌에 위로받는 안타까운 존재인 것일까? 누군가에게 상처 받고 아파함에도 어찌하여 인간은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몇 번의 사랑 혹은 한 번의 사랑으로 인해 가슴 속 깊이 아프고 아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약하지만 따뜻한 생물인걸까?

 

  이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안아주고 싶다. 그들은 분명 더 많이 넘어지고 더 많이 울 것이며 더 많이 소리를 지를 것이며 더 많이 주저앉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슴에 사랑을 집어넣고 가슴을 불태울 것이다, 스스로를 상처내면서도. 사람이기에. 어른이라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삶에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고 온 것이 많아서, 지난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쓰러워서, 사랑한 이를 보내는 일이 서툴러서 우리의 삶에는 분명 바람이 분다. 그 바람마저 사랑스럽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기존의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서 얻었던 소리 없는 위로는 이 책에서 받지는 못했지만 한번 더 이 책을 읽는다면 노을처럼 알싸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