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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좀 이상하다
오치 쓰키코 지음, 한나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하늘이 너무나 푸르른 날, 운전 부주의로 차 사고가 나 레카를 기다리는 동안 보도블럭에 걸터앉아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그만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앞에서 사고 나기 전에 산 물고기 풍경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마음 한 구석 꾹꾹 막아두었던 솜뭉치를 빼내고 만다. 눈물이 주르륵, 울음이 엉엉, 농사일 보던 아주머니 놀라서 오시는데도 펑펑 울고 마는 것이다. 무슨 설움이 많아서 보도블럭에 차를 올려놓고 우는 스물아홉 살의 여자라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꽤나 발그레 해진다.
여자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이 책을 꺼내 들었다. 하필이면 이 책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불편함이 나를 감싼다. 가뜩이나 사고로 나간 카드값에 불편한 마음인데 이 책 정도가 심할만큼 나를 불편하게 하더니 결국 멀미를 선물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꾸역꾸역 읽고 마는 것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결국 그녀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치 내게도 그런 행복이 오길 바라는 것처럼.
나쁘지않다. 정중한 인사를 받으면 나도 셀러브리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택시에서 내려, 벨 보이의 노고를 위로하듯 미소를 보여주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려대면서 로비를 빠져나갔다. 좋은 소리다. 몸의 모든 신경에 정신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이런 기분 좋은 소리는 낼 수 없다. 젊은 여자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기술이다.
-p.11, 취급주의
하이힐, 여자아이들에게 엄마 구두는 얼마나 예뻐 보였던가. 20대 초반에 하이힐은 많이 불편하지만 특별한 신으면 특별한 느낌을 주었으며 20대 후반부터는 꼭 신어야 할 것만 같은 구두가 되어버렸다. 어른이란 하이힐로 또각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라 여긴 마음은 왜 일까? 여자 나이 40 앞에서 사유리는 하이힐을 신고 전에 사귄 남친이 부탁한 여자친구의 일자리를 위한 면접을 보러 나간다. 또각 또각 또각,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 줄 하이힐. 그 소리의 설렘이 책을 읽어갈수록 불편해진다. 지키고자 하는 것은, 보이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친척들 사이에서도 똑똑한 장녀로 알려져 있었다. (중략) 그런데 어째서 연애는 진학이나 취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걸까?
-p.27, 취급주의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사유리를 포함해 대부분 멋진 여성들이다. 자신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직장과 경력이 그녀들의 나이만큼이나 쌓여져 있다. (물론 책 속 여성 중 그런 경력이 없는 여성들도 나오지만) 다 가졌음에도 그녀들의 삶은 투명한 유리컵처럼 불안하다. 언제 깨질지 몰라서, 누군가가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책망할까봐서 가장 힘든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가장 불안해 하고 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지만 '사랑' 이라는 것은 왜이리 힘이 드는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더욱 찾게 된다. 다 가지고 사랑 하나 없는 것에,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못한 것에 주저앉게 되는 공허함을 지금도 느끼는데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녀들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고 마는 것이다. 내 나이 40살에 다녀온 듯해서,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나도 그녀들처럼 겉으로는 반짝 거리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무너지고 마는 삶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쩌지라는 생각만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불편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지 않음은, 버스에서 내려 바닷가 그늘에 앉아 책을 다 읽어내리고 만 것은 그녀들의 삶에 손을 올려주기 위해서이다. 마치 나에게 해주는 것처럼. 괜찮다고 그녀들의 등을 만져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여자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분명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음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그 시간들의 애씀을 어느 정도 알아가는 여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