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오츠이치 몰라요? 오츠이치를 알았다면 당신의 여름이 조금은 서늘해졌을텐데.

 

 AM 1:24

 방에 불을 키고 그것도 모잘라 스탠드를 밝히고 컴퓨터 앞에 앉았음에도 스산함이 몸을 감싸고 내 머리카락 그림자에 흠칫 놀라고 온 몸에 돋는 소름을 쓸어내리지도 못하고 등 뒤만 의식한다. 마치 뒤에 눈이 없어 안타까운 사람처럼 등 뒤에 있을 모든 신경을 세우고 서서히 뒤를 돌아본다.

 

- 없다.

 

안심하고 숨을 내쉬는 등을 돌리는 순간. 사람의 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손이 내 어깨를 건드린다. 이런 상상만으로 또 뒤를 돌아보고 마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아무도 없어서 안심했음에도 아무도 없기에 불안해진다. 거기, 정말 아무도 없어요?

 

후우- 누군가가 없음에서 오는 안도감과 섬뜩함은 아무리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마치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면 없음에서 오는 불안에 밤을 떨지 않았을까? 커튼 밖 창문은 깜깜한 어둠이고 내 방은 환한 빛임에도 왜 커튼 사이에는 깜깜함도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는 듯할까? 아주 아주 깊은 어둠일 것 같은 심연의 색을 닮은 듯한 세계. 

 

 당신은 커튼 속, 베일 속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편? 혹은 없는 편? 당신이 내린 답에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나요? 그 이야기를 들려 줄 책이 바로 이 책이죠!

 

 오츠이치, 내 주변의 공기의 온도를 5도 낮출 수 있는 작가. 겁이 많음에도 이불로 꽁꽁 뒤집어 썼음에도 살짝 눈을 떠서 전설의 고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내게 오츠이치 소설의 서늘함을 알면서도 밤 12시에 책을 피고야 마는 것이다. 한 시간동안 한 자세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아니, 책이 나를 읽어내려간다. 내 안에 있는 공포를 찾아내고 내 안에 있는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서서히 함락시켜 나간다. 책을 덮고 내 방 창문에 쳐져 있는 커튼 속 어둠을 응시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츠이치, 이번에도 성공! 무더운 여름 날 아주 아주 차가운 얼음물로도 가질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곳까지의 서늘하게 만들고야 마는 작가, 오츠이치! 후우,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책을 덮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분명 이 정체모를 공포로 인해 잠을 잘 수 없음을 알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니, 짧은 순간만이라도 투명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투명해서 보일 것 같아 들여다 본 어둠의 공포를 책에서 본다. 설명할 수 없는 끝없는 투명함이 이어지는 공포 그러다 불현듯......!!

 

 두 가지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책의 첫번째 이야기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볼펜을 사이에 두고 주문을 외워 귀신을 불러냈던 '분신사마' 놀이를 닮은 '코쿠리 상' 놀이가 등장하면서 진행된다. 한 번쯤 볼펜을 쥐고 주문을 외워봤던 독자라면 이 이야기에 자신을 이입시켜 공포가 배로 커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츠이치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유는 소설 속 소재가 내 경험들과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학교가 배경으로 화장실 낙서가 소재가 된다. 낙서의 이어짐. 학교 화장실의 낙서들이 문득 무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오츠이치의 전작들에 비해 결말이 예상되었다는 점이 아쉽지만 오츠이치 책의 강점은 결말의 반전이 아니라 이야기 순간 순간마다 소름이 돋는 서늘한 공포에 있음을 아는 독자라면 이번에도 그에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 권의 얇은 책 속에 숨겨진 공포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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