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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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무서운 상상,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상상 속의 그곳이 문을 연다.

 

야시라는 제목과 빨간 표지, 그 표지 속의 독특한 일러스트가 일본호러 소설 대상이라는 책의 수상내역을 더 잘 말해주는 듯하다. 야시가 무슨 뜻인가 생각하다가 책 제목 옆에 있는 한자 '夜市'를 보고서야 '야시장'이 떠오른다.

 

 '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내게 마을의 작은 항구에서 일년에 한번정도 서는 야시장은 어른들의 말씀처럼 별천지였다. 반짝이는 불빛들의 현란함은 1년동안 내게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불빛들이었고 신비로운 물건들과 갖고 싶은 물건들 여러가지 음식들은 어린나를 유혹했다. 그 유혹에 빠져들어가면서도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대로  할머니의 몸배바지를 놓지는 못하고 계속 뒤돌아 보기만 했다. 할머니를 놓쳐 그곳에 동떨어지는 것이 더 무서웠던 내가 딱 한번 할머니를 놓친 적이 있었다. 누웠다 일으키면 눈을 뜨는 그 인형을 보여주는 아저씨의 손길에 빠져들고 할머니의 바지를 놓고 말았던 것이다. 인형을 봐도 내게는 돈이 없으니 살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할머니를 이미 놓친 후였다.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서 어른들뿐이 세상 속에서 홀로 남겨진 그 기분의 섬뜩함과 무서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를 놓친 것을 아는 그 순간부터 그렇게 다채롭고 신비한 야시장은 공포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얼마나 할머니를 부르며 울었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말씀을 듣자면 그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커서 알았지만 십년은 늙은 것 같다라는 말을 그때 쓰는거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야시장' 그곳은 분명 유혹이 넘치는 곳이지만 내게는 두려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야시, 책을 읽기도 전에 그곳의 현란함과 반짝거림, 유혹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가 같이 떠올랐던 건 어린시절의 경험 때문이겠지라며 스스로를 진정시켰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그날의 내가 겪은 공포는 생생함으로 살아나고 그 생생함은 나를 더 신비로운,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고도의 세상으로 무섭지만 참을 수 없는 유혹, 야시의 세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일단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환상의 공간.
그 세계와 연결된 자들의 슬픈 운명이 당신을 기다린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상상, 누구나 한번쯤을 경험해보았을 두려움과 공포가 이렇게도 쓰여질 수 있다는 것에 작가의 놀라운 능력에 반하고 말았다.

 

어릴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잃고 낯선 공간에 홀로 서있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분탓이겠지만 그 곳의 바람, 햇빛, 공기의 움직임마저 내가 있던 곳과는 다른 것을 느끼며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신비로운 이곳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호기심을 이기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내게 익숙한 바람을 찾아 무작정 앞만 보고 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좌우를 살피게 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서운 괴물이나 마녀가 나타날거란 생각에서였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곳, 그러나 궁금했던 곳이 고도는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의 첫 이야기인 <바람의 도시>의 배경은 '고도'이다. 7살인 주인공이 처음 만난 고도, 그곳의 호기심은 두려움을 눌렀고 12살이 된 주인공은 친구 가즈키와 함께 고도로 향한다. 고도, 그곳은 바람만이 자유로이 통과할 수 있는 곳이기에 바람의 도시로 불린 것은 아닐까. 고도의 것은 나갈 수 없는 곳. 고도에서 태어난 것은 모두 고도의 곳, 고도에서 죽은 자도 고도의 것이기에 산 사람은 조심해야하는 곳이 고도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고도에서 태어나 고도의 것인 렌을 만난다. 고도와 현실 사이에는 아주 작은, 찾기 힘들지만 꼭 존재하는 작은 문이 있다. 그곳에는 고도의 것이 아닌 것들만 드나들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유리막처럼 누군가는 그런 나를,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끊임없이 보고 있다는 기분은 섬뜩했고 궁금했다. 소설임에도 분명 이런 곳이 있을거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건 아마도 렌을 둘러싼 사건들이 하나씩 맞춰지며 너무나 잘 들어맞는 퍼즐조각처럼 완성되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정말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제부터 그전과는 다른 바람이 불어온다면 고도의 바람은 아닐지 눈을 감고 고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책의 두번째 이야기는 제목이기도 한 <야시>이다. 야시를 경험한 사람은 야시가 서는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날의 바람과 공기는 보통 때와 다르다고 한다. 혹은 학교박쥐가 야시가 선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야시를 귀신들의 시장이라고 해야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인간의 삶 저 편에 있는 다른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인간과는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곳, 그곳에 야시가 선다. 야시의 세상은 야시만의 법이 있다. 한번 들어갔으면 꼭 무언가를 사고 나와야 한다는 것. 그것을 사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야시의 규율이다. 그렇지 않으면 야시 속에서 절대 나올 수 없다. 인간은 딱 세번만 야시에 올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 두번째 찾아가는 유지와 처음가는 이즈미, 그리고 정체모를 노신사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첫번째 이야기처럼 놀라운 이야기에 휙~하고 찬바람이 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소재만으로도 놀라운데 잘 짜여진 구성은 혀를 나를 정말 고도와 야시에 빠져들게 했다. 내가 산 것은 기묘함과 놀라움, 고도와 야시의 싸늘하지만 고개를 돌려지게 만드는 바람이었을테고 지불한 것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책에 빠져있는 시간을 지불한 댓가로 너무 많은 것을 얻은 것은 아닌지. 

 

독특한 소재, 짜임새있는 구성은 빈틈이 없다. 빈틈이 있다면 그건 바람이 드나들수 있는 아주 작은 틈일 것이다. 그 틈은 고도와 야시로 통할 것이다. 그 틈을 찾는다면 나는 고도와 야시에 갈 것인가. 간다면 무엇을 사고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를 고민해본다.  고민하더라도 아마 고도와 야시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무조건 달려보게 되지 않을까란 사실이 나를 무섭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곳은 그만큼 매력적인 슬프사연이 있어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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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 울기
나카무라 코우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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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을 한다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없는 나이, 사랑을 정의내리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몇일밤을 고민하지만 아직은 확실한 답을 내리기가 어려운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 사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내가 하는 것이 사랑이 맞는지 아닌지를 고민하다가 불안으로 사랑을 떠나보낸 적이 있는 나이, 끝이난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아는 나이가 지금 내 나이.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몇번의 사랑을 하고, 떠나보내며 사랑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대체 사랑이 무엇인지 친구들과 대화를 해도 확실히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설명되기 어려운 사랑을 책을 읽다보면 이 둘은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다가올 때가 있다. 찾기 어렵던 사랑이, 설명되기 힘들던 사랑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가슴 떨리며, 눈시울을 적시며 그제서야 사랑이라는 것은 애써 정의내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내게 책은 슬프게 사랑을 각인시켰다.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읽기 위해 얼마간의 눈물과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작이 필요했다.

 

제목덕에 어느정도 긴장하고 읽기 시작한 나였다. 슬픈 소설을 읽기에는 제격인 계절이라 손에 들게 된 책임에도 저 제목처럼 100번이나 울게 되는 이야기라면 긴장이 필요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긴장하고 책장을 넘겼지만 주인공들의 행복한 사랑이야기에 어느새 내 얼굴에는 미소가 띄어지고 그들의 따뜻하고 평화롭고 부러운 일상이 눈에 펼쳐지면서 긴장도 사라졌다.

 

그들의 일상은 달콤상콤이라기 보다는 우유를 넣은 커피의 맛과 같았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 후지이와  우유를 마시는 요시미는 결혼연습을 하게 되어 함께 살면서 커피에 우유를 넣어 마신다. 서로 다른 맛을 내는 재료는 섞이자 더없이 맛있고 부드러운 카페오레가 되었다. 자신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맞춰나가는 그들의 사랑을 보며 내 일방적인 사랑을 떠올렸다. 상대방에게 존중하기 보다는 사랑은 같은 것을 하는 것이라는 어린 사랑을 했었던 내가 생각나 얼굴이 화끈 거리며 다음 사랑에게는 그러면 안되겠다며 낙서 같은 메모를 하던 내 손에 든 펜이 떨어졌다.

 

잊고 있었다. 다 준비했으면서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한 그들의 일상에 함께 빠져드느라 이 이야기가 슬픈 사랑이야기임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떨어뜨린 펜을 줍지도 못하고 책을 읽어가며 울고, 숨쉬고, 책장을 넘기고를 반복했다. 그제서야 책 앞에 나온 개의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앞에 나오는 개는 후지이가 도서관에서 주어와 북(book)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북이란 개가 투병중이라는 것,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 북을 위해 북이 좋아하던 오토바이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후지이와 요시마가 오토바이를 함께 수리하는 장면이 왜 나오는지를 알게 되었다. 선고된 죽음, 투병, 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등이 후지이와 요시미의 슬픈 사랑과 딱 들어맞는다. (이것이 작가의 능력이란 건가 놀랍다.) 하지만 후지이도 북을 보며 죽음에 대비하지 않았듯이, 그런 슬픈 현실이 자신의 생활에 펼쳐질거라 예상하지 않았듯이 나역시도 예감하지 못했기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랑이 시작되면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어느새 그 사람에게 빠져들고, 그 사람이 내게 녹아드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을 사람들은 종종 기적이라 부른다. 사랑은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만큼 신비하고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그런 기적같은 사랑, 끝이 난다면 어떨까? 사람은 그대로인데 사랑이 끝나버리는 것, 사랑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사라져버리는 것. 어떤 것이 더 아플까를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바보처럼 예전의 나는 전자일경우 후자를 바라기도 했다. 그것이 차라리 마음 편할거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바람이었는지 나를 혼내야했다.

 

사랑은 그대로인데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사라졌다. 분명 서로 사랑하고있는데 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현실앞에 한 사람이 남은 것이다. 그건 얼만큼의 절망일까? 내 사랑은 그대로인데 상대방의 사랑도 나를 향해 있었음을 아는데 세상은 그런 사랑은 묻어야만 한다고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니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네 사랑에 마침표를 찍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100번 울지 않고 그 이상을 울지 않고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 괜찮아를 아무리 되뇌여도, 사라진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은 이렇게 두손 놓으며 우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겨진 사람을 안아주지도 못하고, 괜찮다고 두손을  잡아주지도 못하고 나도 울었다. 방법을 알 수 없기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너무나 많이 흘린 눈물앞에 그들의 사랑시계의 태엽은 움직이지 못하고 녹이슨다. 그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지도 앞으로 가지도 못하는 시계태엽을 눈물로 그들이 사랑했던 그 추억들의 자물쇠로 만들기위해 그토록 우는 것은 아닐지. 아무것으로도 열지 못하는 상자 그 속에 카페오레 같은 사랑을 담고 눈물로 자물쇠를 채운 사랑. 그 사랑이 끝이 아니라고 그 속에 사랑은 반짝반짝 빛이 날거라고 속으로 그러나 간절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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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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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단지 제목때문이었을까?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라는 책을 고른건. 제목을 보자마자 끌렸던 것은 어쩌면 차가운 계절이 다가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실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사랑의 상실감이 제목으로 되어있는 이 책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랑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뜨겁던 사랑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가는 걸까라는 의문. 어디서 언제 생겨날지도 모르는 사랑. 오는 곳도 가는 곳도 전부 비밀인 사랑. 대상도, 장소도, 나이도 모두 비밀로 시작되는 사랑이라지만 이 책처럼 유령과의 사랑은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불러도 좋을지 지금도 고민이 된다. 너무 흔한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안타깝고 따뜻한 시작되지도 시작할수도 없는 사랑, 그러나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기에 사랑이라고 불러야한다. 사랑은 사랑이기에 그토록 많이 발음되어지고 불리어지고 단정지어진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나보다. 아무리 발음되어도 전혀 닳지 않는,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빛나는 그런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스터리 소설에 흥미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아니, 미스터리 소설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른 책을 받고 나서야 이 책이 미스터리 소설이란 독특한 장르라는 것을 알았다. 미스터리라 무엇일까. '이상한 영화같은 그런 이야기 아냐'라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 사랑이야기는 분명 좋아하는데 미스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걱정반 기대반으로 읽어내려간 책. 어차피 읽기 시작한 것을,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책인 것을 걱정도 팔자라고 참 걱정많은 나였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흡입력이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책에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가 좋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책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책 속에 내가 갇힌 기분이 드는 것도 참 좋아한다. 행간이란 좁디 좁은 폭은 책 속에 들어간 나에는 참으로 넓은 공간이 된다. 어서 앞으로 걸어가자라는 마음으로 책 속의 글자들을 하나씩 밟으며 글자를 생생하게 느끼는 나를 보는 것이 좋다.

 

나에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건 무슨 마법때문일까?

 

#진부한 소재? 읽기 전에 예측불가!!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모의 해외 장기 출장으로 고양이 두마리를 맡기로 약속하고 그 집으로 평범한 남자 와타루가 이사를 온다. 어릴때 나는 할머니한테 개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귀신을 본다는 말을 듣고 밤에 개가 짖을 때면 무서워서 할머니 품 속으로 더 파고들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는 개가 아니라 고양이가 유령을 본다. 그런 고양이로 인해 와타루는 보이지 않는 유령 치나미를 보게 된다. 영원히 24살로 남을 유령 치나미는 이 맨션에서 3년전에 죽었다. 사인은 자살을 포기하려는 계획을 포기당한 것이다. 즉, 그녀는 자살하려고 준비까지 다 해놓았지만 마음을 바꾸었을 때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던 것이다. 이미 죽으려고 했으니 삶에 미련은 없는데 그녀의 모습은 보통 유령들과 달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치나미, 자신이 왜 죽었는지 알게 되면 모습이 보여질거란 그녀. 그녀를 돕기로 한 와타루였다.

 

웃음이라도 날법한 만남인데도 이들은 진지하다. 치나미는 자신이 왜 죽어야했는지를,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를 3년동안 형체도 없이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그건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 죽었는지는 알겠는데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미움을 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을 남에게 잘하려고만 했는데 죽임을 당할만큼 미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죽은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재미로만, 무서운 유령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와타루의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내가 치나미인양 '그래,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어. 잘 맡아주세요'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싶었다. 나역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겨우 24살이었다. 그녀가 자살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녀가 죽음을 맞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러브 스토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내게 그녀와 와타루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궁금함 투성이였다. 더군다나 그녀가 와타루가 있는 맨션에 올 수 있는 것은 단지 비오는 날 뿐이다. 그 한정된 만남. 비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나. 하늘만이 관계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비오는 날이 많아지길 읽는 동안 참 많이도 바랬다. 그 마음이 책을 넘어 내가 있는 현실에도 닿았나보다. 늦은 가을비가, 이른 겨울비가 이곳에도 내렸다. 당신의 선물일까? 치나미?

 

#비야, 멈추지마! 비밀아, 밝혀지지마!

-할 수만 있다면 저 둘이 사는 곳을 비만 내리는 곳으로 이동시켜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사람으로 환생시켜주는 힘을 가진 신이 되보고 싶었다. 끝내 내 마음은 와타루의 마음과 같았다. 비밀이 밝혀질수록 그만 알아내자고, 이걸로 되지 않았냐고. 더이상 알아내면 그녀가 떠난다! 라는 사실은 와타루를 나를 아프게 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였다. 그런데 왜 한번도 마법같은 일이 둘 사이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손톱을 물어뜯게 했다. 분명 그래서 읽는 내내 빠져들었던 것도, 내 주위에서 고양이와 개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하면 나도 물어볼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치나미와 와타루에게 마법같은 일이 한번쯤은 이루어지길 바랬던  것이다. 책을 덮고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마법같은 일이 이루어졌다고. 사랑, 그것보다 더 큰 마법이 어딨겠는가. 사랑,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그들의 투명한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분명 누구도 믿지 않을 사랑이었다. 나만이 믿는.

 

#마치면서

 

빗방울처럼 투명한 감정,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 놓치고 싶지 않는 손길, 그러나 보내주어야 하는 애절함이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한다. 그들로 인해 안타까워하는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나를 보며 치나미와 와타루가 말한다. 자신들은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그래, 그러면 나도 괜찮아' 라고 하늘을 보며 말한다. 비가 오는 하늘을 향해. 사랑, 사라지고 했다고 해도 괜찮다.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으니 그러니 사라져도 너무 아파하지는 않겠다고 말해본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픈 사랑이든, 힘든 사랑이든 짊어질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치나미처럼, 와타루처럼.

 

치나미의 자살의 동기를 알아가며 가슴이 아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와타루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역시도 와타루가 있어서, 이야기를 해주는 치나미가 있어서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든지. 해볼자신이.

 

그들이 얻은 것, 경험한 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읽은 사람만이 느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치나미의 존재만큼 신비로움이 책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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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킵 -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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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혹시 그런 생각한 적 있나요? 불안한 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워낙 회피하는 것으로 문제에서 도망치고 했던 나로서는 자주 그런 소원아닌 소원을 빌고는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자고나면 10대가 지나 20대가 꿈꾸길 기도했고 불안하기만 하고 막막하기만한 20대 중반에는 자고나면 모든 것이 안정될 30대가 되어있길 꿈꾸었다. 어리석은 바램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10대의 내가, 20대인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시간이 훌쩍 지나가길 바랬다. 내 힘으로 걸어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도망칠 생각만 했다. 이 책을 읽고 그런 나를 떠올렸다. 시간의 소중함. 어떠한 시간이든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해. 열일곱 살의 나를!

-1965년에 열일곱 살이란 나이에 맞게 활발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살아가는 아이가 있다. 이름은 이치노세 마리코. 고등학교 2학년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걸까를 고민하며 친구와 까르르르 웃을줄도 아는 아이다. 비가 오는 날 잠깐 든 잠이 그녀의 생을 바꿔놓았다.

잠을 자고 난 후, 그녀를 반기는 건 4분의 1세기가 지난 25년 후이다. 그녀의 나이와 같은 딸이 있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배 나온 아저씨인 남편이 있다.

 

잠깐의 낮잠이 그녀를 25년 후로 데려다 놓았다. 그녀가 그대로 순간이동 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시간이 그대로 달아난 것이다. 40대의 아줌마의 몸에 17세의 그녀가 있는 것이다. 신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믿지 못하던 17세의 딸도 아저씨같은 남편도 믿게 되지만 정작 이치노세 마리코에서 사쿠라기 마리코라고 불리는 그녀만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것이 사실일 될것만 같아 가슴에 눈물 덩어리를 꾹꾹 눌러담는 그녀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녀의 17살, 부모님, 그녀의 잃어버린 25년이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 더군다나 추억도 기억도 없는 25년이라니 그건 어떤 느낌일까를 짐작해보지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분명, 나는 바랬었다. 힘든 시간을 뛰어넘고 싶다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다 알아서 나를 그 다음 시간으로 이동시켜 달라고. 마리코를 보며 내가 했던 그 바램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녀를 보는 내내 현재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결말이 기대되서 책을 덮고  나서야 그녀의 눈물이, 아픔이 느껴진다. 그녀는 정말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현실에 적응해야했으며 밤이면 그녀가 잃어버린 시간들을 떠올리며 홀로 속으로 울어야했을 것이다. 좋았던 구절들을 적으며 작가의 심리묘사에 감탄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느끼며 이제야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겨우 17세였던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 17세로 어른으로 살아야했던 것이다.

 

#씩씩하고 따뜻한 미나코, 당신을 응원해요.

-17세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자존심'이다. 자만한 것이 아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자존심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는 <단 한 번뿐인 내 인생. 나중에 가서 '이렇게 할걸, 그렇게 하지 말았을걸'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것>이었다. 17살의 나는 도저히 생각못했을 삶에 대한 미나코의 태도는 참 단단하고 올곧게 보였다. 그런 그녀였기에 갑자기 42살이 되어버린 삶에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따뜻한 배려였을까. 그녀의 힘든 현실에는 그녀가 42살이 되기 전에 나이와 같은 친구같은 똑똑한 딸이 있었고 차분하고 그녀를 도와주려는 남편이 있었다.

 

42살인 그녀의 몸 안에 있는 17살의 미나코는 열심히 살아간다. 처음에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시간에 대한 원망으로 울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 17살의 당찬 아이였던 것이다.42세의 그녀도 그녀라는 것을 받아들이까지 힘이 들었지만 그녀의 지금 시간역시 자신이 쌓아온, 걸어온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 삶을 망치고 싶지 않은 착한 그녀였다.

 

그녀가 삶에 적응하는 것을 보며 나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내내 미안했다. 그녀가 돌아가고 싶었던 내 17살을 나는 너무나 설렁설렁 보낸 것만 같아서, 누군가가 간절히 원한 시간을 너무 쉽게 써버린 것 같아서 미안했다. 지금의 내 시간도 그녀는 갖지 못할 시간이란 사실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를 뚫어지게 보게한다. 하지만 그녀, 더이상 시간을 탓하는 건 하지 않는다. 더 열심히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다. 열심히 사는 것, 그리고 그녀를 응원하는 것.

 

#신기하고 놀라운 책.

-신기하고 독특한 소재였다. 시간여행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다. 소재의 독특함과 500페이지가 넘도록 전혀 지루함이 없는 오히려 두근거리게 하는 구성, 여성작가가 아니라는 것에 의심을 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까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하나의 작은 캡슐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만을 위해 상영되는 영화관에서 책이 영화처럼 펼쳐져갔다. 그만큼 묘사는 글자가 아니라 영상으로 다가왔다. 글자들이 춤을 추며 등장인물들을 만들고 배경을 만들고 나는 그들의 성대묘사를 하는 성우가 되었다.

내가 이 작가를 잘못 본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과 반하게 된 작가를 만났다는 것의 행복은 책이 내게 준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소중한 시간들 꼭꼭 씹어먹으며 살기!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살고 싶게끔, 열심히 살고 싶게끔 만드는 소설을 만나면 그렇게 가슴이 뛴다. 어떤이는 소설에서 건질 것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소설이 좋다. 소설 속 주인공이 허구라고 해도 내가 그들을 읽는 순간 그들은 살아 숨쉬며 내게 이야기한다. 소설도 사람이 쓴거라는 사실은 소설 역시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고픈 희망이 담겨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소설을 읽는 이유는 희망을 갖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그 이유 중에 위로 받는 것까지 넣고 싶어진다.

 

미나코를 보며 시간을 꼭꼭 씹어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이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뒤를 돌아보며 그때 잘할걸, 혹은 현재를 살며 멋진 미래만을 상상하며 살고는 한다. 그렇기에 현재를 한탄만하거나 과거를 품지도 미래를 기대하지도 못하게 된다. 현재를 제대로 사는 것, 그것부터 먼저 해봐야겠다. 과거를 품고 현재를 꼭꼭 씹으며 살고 싶어진다. 미나코처럼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서 말이다.

 

당신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따뜻하고 투명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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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 어느 왕국에 왕이 결혼할 나이가 되어 왕비를 구하기로 했어요. 왕은 그전부터 생각이 깊은 이발사에게 왕비를 구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지혜로운 이발사는 왕비를 구하기 위해 하나의 꾀를 내었답니다. 이발사는 방방곡곡에 전단을 붙혔답니다. 그 전단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지요.

"왕국에는 신비로운 거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거울에는 사람의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 보여진답니다. 왕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춰주세요." 라고 말이죠.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마음 혹은 자신도 모르고 있는 나쁜 마음이 속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결국 이발사는 왕비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해야했어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그건 비밀이랍니다.(웃음)

 

나는 저 동화를 본 날 내게 질문했다. 너는 비춰볼 수 있어? 비춰보는 것만으로 왕비가 되게 해준다고 하는데도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알고있기 때문이다. 예쁘지만은 아닌 내 마음과 내 생각들을. 나조차도 꽁꽁 싸매서 잊고 있는 기억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봤을 때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건 거울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타인들에게도 나처럼 감추고 싶은 모습,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있다는 것은 위로였다. 그 위로에 마음을 놓으면서도 내내 거울이 맘에 걸렸다. 나는 혼자서만 보고 아무도 보지 않는 거울 앞에설 기회가 생기더라도 보지 않을거란 사실이었다. 내 모습을, 내 숨겨진 모습을 나조차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겁이 났다.

 

과연 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사람풍경>의 저자 김형경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을 찾기 위해 정신분석을 받은뒤 여행을 떠나서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자신을 비춰보며 사람의 마음, 그리고 더 깊은 곳의 내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그녀는 분명 비춰 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풍경>은 사람들의 이야기, 김형경이란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목을 늘리자면 사람의 심리풍경이라고 하면 되겠다. 저자가 심리학자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고 해야할까. 심리학자가 아님에도 자신을 이렇게 낱낱이 보여주는 글을 쓴다는 것에 놀랐다. 그래, 저렇게 자신의 트라우마나 상처받았던 기억이나 아픔을 다 드러내는 사람도 있는 거구나. 이렇게 책으로도 쓰여지고 내 손을 전해지기까지 저 작가는 얼마나 많이 아파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많이 힘들었을거라고, 많이 주저했을거라고, 그 마음에 답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용기있게 책을 읽었다.

 

정신분석을 받은 그녀가 들려주는 <사람풍경>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였다. 그녀가 자신의 방어기제를 말할 때마다 나역시도 내 방어기제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꺼내어 보았고 그녀가 하나씩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또 하나의 자신을 인정할 때마다 나역시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인정하면서 가슴이 갑자기 아파와 쥐어짜기도 했으며 연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를 알아간다는 것도 참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사실 나도 보통사람과 같구나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아파하며 슬퍼하며 그러나 웃으며 사는 구나라는 사실에 힘이 났다.

 

사람은 나이를 더해지면서 더욱 단단한 갑옷을 입게 된다. 점점 튼튼해지는 갑옷을 입으며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자랑하지만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꽁꽁 싸매였기에 화살이 날아왔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다. 분명 갑옷은 나를 상처로부터 보호해주지만 나를 밖으로 끌어내주지는 못한다. 점점 더 바깥을 단단히 쌓아서 내 속의 나를 찾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린 것이다. 내 속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합치는 일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갑옷을 벗는 일이 힘든 일임도 알고 있다. 이미 내 몸처럼 되어버린 갑옷을 잘라내는 것은 그만큼 무섭고 아픈 일이다. 그러나 해야하는 일이다. 이 책으로 조금은 갑옷이 벗겨진 느낌이다. 아직은 갑옷에 둘둘 싸여있지만 그래도 김형경이란 작가로 인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느낌이다.

 

책은 세개의 여행으로 세분화 된다. 첫째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 둘째는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자신만의 방어기제들, 셋째는 긍정적인 가치들이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알고 나면 왜우리가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왜 자신이 그 방어기제를 택했는지 알게뇐다. 두번째장이 내게는 가장 흥미로웠다. 자신이 사용하는 생존법칙들과 그것을 왜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좀 더 좋은 가치로 승화시키는 부분을 읽게 된다. 진정한 자기가 되는 길은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고자 한다면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두렵더라도 포기 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알기 두려운 사람들, 나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 심리학 서적으로 공부하기에는 나를 아는 길이 너무 딱딱하다는 사람들에게 편한 여행이 될 책이다. 나를 안다는 것. 그건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과도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라.

 

물론,

나는 지금도 거울에 나를 비출 자신은 아직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란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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