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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단지 제목때문이었을까?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라는 책을 고른건. 제목을 보자마자 끌렸던 것은 어쩌면 차가운 계절이 다가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실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사랑의 상실감이 제목으로 되어있는 이 책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랑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뜨겁던 사랑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가는 걸까라는 의문. 어디서 언제 생겨날지도 모르는 사랑. 오는 곳도 가는 곳도 전부 비밀인 사랑. 대상도, 장소도, 나이도 모두 비밀로 시작되는 사랑이라지만 이 책처럼 유령과의 사랑은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불러도 좋을지 지금도 고민이 된다. 너무 흔한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안타깝고 따뜻한 시작되지도 시작할수도 없는 사랑, 그러나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기에 사랑이라고 불러야한다. 사랑은 사랑이기에 그토록 많이 발음되어지고 불리어지고 단정지어진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나보다. 아무리 발음되어도 전혀 닳지 않는,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빛나는 그런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스터리 소설에 흥미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아니, 미스터리 소설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른 책을 받고 나서야 이 책이 미스터리 소설이란 독특한 장르라는 것을 알았다. 미스터리라 무엇일까. '이상한 영화같은 그런 이야기 아냐'라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 사랑이야기는 분명 좋아하는데 미스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걱정반 기대반으로 읽어내려간 책. 어차피 읽기 시작한 것을,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책인 것을 걱정도 팔자라고 참 걱정많은 나였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흡입력이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책에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가 좋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책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책 속에 내가 갇힌 기분이 드는 것도 참 좋아한다. 행간이란 좁디 좁은 폭은 책 속에 들어간 나에는 참으로 넓은 공간이 된다. 어서 앞으로 걸어가자라는 마음으로 책 속의 글자들을 하나씩 밟으며 글자를 생생하게 느끼는 나를 보는 것이 좋다.
나에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건 무슨 마법때문일까?
#진부한 소재? 읽기 전에 예측불가!!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모의 해외 장기 출장으로 고양이 두마리를 맡기로 약속하고 그 집으로 평범한 남자 와타루가 이사를 온다. 어릴때 나는 할머니한테 개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귀신을 본다는 말을 듣고 밤에 개가 짖을 때면 무서워서 할머니 품 속으로 더 파고들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는 개가 아니라 고양이가 유령을 본다. 그런 고양이로 인해 와타루는 보이지 않는 유령 치나미를 보게 된다. 영원히 24살로 남을 유령 치나미는 이 맨션에서 3년전에 죽었다. 사인은 자살을 포기하려는 계획을 포기당한 것이다. 즉, 그녀는 자살하려고 준비까지 다 해놓았지만 마음을 바꾸었을 때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던 것이다. 이미 죽으려고 했으니 삶에 미련은 없는데 그녀의 모습은 보통 유령들과 달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치나미, 자신이 왜 죽었는지 알게 되면 모습이 보여질거란 그녀. 그녀를 돕기로 한 와타루였다.
웃음이라도 날법한 만남인데도 이들은 진지하다. 치나미는 자신이 왜 죽어야했는지를,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를 3년동안 형체도 없이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그건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 죽었는지는 알겠는데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미움을 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을 남에게 잘하려고만 했는데 죽임을 당할만큼 미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죽은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재미로만, 무서운 유령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와타루의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내가 치나미인양 '그래,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어. 잘 맡아주세요'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싶었다. 나역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겨우 24살이었다. 그녀가 자살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녀가 죽음을 맞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러브 스토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내게 그녀와 와타루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궁금함 투성이였다. 더군다나 그녀가 와타루가 있는 맨션에 올 수 있는 것은 단지 비오는 날 뿐이다. 그 한정된 만남. 비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나. 하늘만이 관계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비오는 날이 많아지길 읽는 동안 참 많이도 바랬다. 그 마음이 책을 넘어 내가 있는 현실에도 닿았나보다. 늦은 가을비가, 이른 겨울비가 이곳에도 내렸다. 당신의 선물일까? 치나미?
#비야, 멈추지마! 비밀아, 밝혀지지마!
-할 수만 있다면 저 둘이 사는 곳을 비만 내리는 곳으로 이동시켜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사람으로 환생시켜주는 힘을 가진 신이 되보고 싶었다. 끝내 내 마음은 와타루의 마음과 같았다. 비밀이 밝혀질수록 그만 알아내자고, 이걸로 되지 않았냐고. 더이상 알아내면 그녀가 떠난다! 라는 사실은 와타루를 나를 아프게 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였다. 그런데 왜 한번도 마법같은 일이 둘 사이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손톱을 물어뜯게 했다. 분명 그래서 읽는 내내 빠져들었던 것도, 내 주위에서 고양이와 개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하면 나도 물어볼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치나미와 와타루에게 마법같은 일이 한번쯤은 이루어지길 바랬던 것이다. 책을 덮고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마법같은 일이 이루어졌다고. 사랑, 그것보다 더 큰 마법이 어딨겠는가. 사랑,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그들의 투명한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분명 누구도 믿지 않을 사랑이었다. 나만이 믿는.
#마치면서
빗방울처럼 투명한 감정,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 놓치고 싶지 않는 손길, 그러나 보내주어야 하는 애절함이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한다. 그들로 인해 안타까워하는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나를 보며 치나미와 와타루가 말한다. 자신들은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그래, 그러면 나도 괜찮아' 라고 하늘을 보며 말한다. 비가 오는 하늘을 향해. 사랑, 사라지고 했다고 해도 괜찮다.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으니 그러니 사라져도 너무 아파하지는 않겠다고 말해본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픈 사랑이든, 힘든 사랑이든 짊어질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치나미처럼, 와타루처럼.
치나미의 자살의 동기를 알아가며 가슴이 아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와타루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역시도 와타루가 있어서, 이야기를 해주는 치나미가 있어서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든지. 해볼자신이.
그들이 얻은 것, 경험한 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읽은 사람만이 느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치나미의 존재만큼 신비로움이 책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