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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평점 :
신비롭고 무서운 상상,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상상 속의 그곳이 문을 연다.
야시라는 제목과 빨간 표지, 그 표지 속의 독특한 일러스트가 일본호러 소설 대상이라는 책의 수상내역을 더 잘 말해주는 듯하다. 야시가 무슨 뜻인가 생각하다가 책 제목 옆에 있는 한자 '夜市'를 보고서야 '야시장'이 떠오른다.
'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내게 마을의 작은 항구에서 일년에 한번정도 서는 야시장은 어른들의 말씀처럼 별천지였다. 반짝이는 불빛들의 현란함은 1년동안 내게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불빛들이었고 신비로운 물건들과 갖고 싶은 물건들 여러가지 음식들은 어린나를 유혹했다. 그 유혹에 빠져들어가면서도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대로 할머니의 몸배바지를 놓지는 못하고 계속 뒤돌아 보기만 했다. 할머니를 놓쳐 그곳에 동떨어지는 것이 더 무서웠던 내가 딱 한번 할머니를 놓친 적이 있었다. 누웠다 일으키면 눈을 뜨는 그 인형을 보여주는 아저씨의 손길에 빠져들고 할머니의 바지를 놓고 말았던 것이다. 인형을 봐도 내게는 돈이 없으니 살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할머니를 이미 놓친 후였다.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서 어른들뿐이 세상 속에서 홀로 남겨진 그 기분의 섬뜩함과 무서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를 놓친 것을 아는 그 순간부터 그렇게 다채롭고 신비한 야시장은 공포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얼마나 할머니를 부르며 울었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말씀을 듣자면 그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커서 알았지만 십년은 늙은 것 같다라는 말을 그때 쓰는거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야시장' 그곳은 분명 유혹이 넘치는 곳이지만 내게는 두려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야시, 책을 읽기도 전에 그곳의 현란함과 반짝거림, 유혹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가 같이 떠올랐던 건 어린시절의 경험 때문이겠지라며 스스로를 진정시켰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그날의 내가 겪은 공포는 생생함으로 살아나고 그 생생함은 나를 더 신비로운,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고도의 세상으로 무섭지만 참을 수 없는 유혹, 야시의 세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일단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환상의 공간.
그 세계와 연결된 자들의 슬픈 운명이 당신을 기다린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상상, 누구나 한번쯤을 경험해보았을 두려움과 공포가 이렇게도 쓰여질 수 있다는 것에 작가의 놀라운 능력에 반하고 말았다.
어릴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잃고 낯선 공간에 홀로 서있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분탓이겠지만 그 곳의 바람, 햇빛, 공기의 움직임마저 내가 있던 곳과는 다른 것을 느끼며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신비로운 이곳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호기심을 이기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내게 익숙한 바람을 찾아 무작정 앞만 보고 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좌우를 살피게 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서운 괴물이나 마녀가 나타날거란 생각에서였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곳, 그러나 궁금했던 곳이 고도는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의 첫 이야기인 <바람의 도시>의 배경은 '고도'이다. 7살인 주인공이 처음 만난 고도, 그곳의 호기심은 두려움을 눌렀고 12살이 된 주인공은 친구 가즈키와 함께 고도로 향한다. 고도, 그곳은 바람만이 자유로이 통과할 수 있는 곳이기에 바람의 도시로 불린 것은 아닐까. 고도의 것은 나갈 수 없는 곳. 고도에서 태어난 것은 모두 고도의 곳, 고도에서 죽은 자도 고도의 것이기에 산 사람은 조심해야하는 곳이 고도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고도에서 태어나 고도의 것인 렌을 만난다. 고도와 현실 사이에는 아주 작은, 찾기 힘들지만 꼭 존재하는 작은 문이 있다. 그곳에는 고도의 것이 아닌 것들만 드나들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유리막처럼 누군가는 그런 나를,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끊임없이 보고 있다는 기분은 섬뜩했고 궁금했다. 소설임에도 분명 이런 곳이 있을거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건 아마도 렌을 둘러싼 사건들이 하나씩 맞춰지며 너무나 잘 들어맞는 퍼즐조각처럼 완성되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정말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제부터 그전과는 다른 바람이 불어온다면 고도의 바람은 아닐지 눈을 감고 고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책의 두번째 이야기는 제목이기도 한 <야시>이다. 야시를 경험한 사람은 야시가 서는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날의 바람과 공기는 보통 때와 다르다고 한다. 혹은 학교박쥐가 야시가 선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야시를 귀신들의 시장이라고 해야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인간의 삶 저 편에 있는 다른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인간과는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곳, 그곳에 야시가 선다. 야시의 세상은 야시만의 법이 있다. 한번 들어갔으면 꼭 무언가를 사고 나와야 한다는 것. 그것을 사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야시의 규율이다. 그렇지 않으면 야시 속에서 절대 나올 수 없다. 인간은 딱 세번만 야시에 올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 두번째 찾아가는 유지와 처음가는 이즈미, 그리고 정체모를 노신사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첫번째 이야기처럼 놀라운 이야기에 휙~하고 찬바람이 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소재만으로도 놀라운데 잘 짜여진 구성은 혀를 나를 정말 고도와 야시에 빠져들게 했다. 내가 산 것은 기묘함과 놀라움, 고도와 야시의 싸늘하지만 고개를 돌려지게 만드는 바람이었을테고 지불한 것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책에 빠져있는 시간을 지불한 댓가로 너무 많은 것을 얻은 것은 아닌지.
독특한 소재, 짜임새있는 구성은 빈틈이 없다. 빈틈이 있다면 그건 바람이 드나들수 있는 아주 작은 틈일 것이다. 그 틈은 고도와 야시로 통할 것이다. 그 틈을 찾는다면 나는 고도와 야시에 갈 것인가. 간다면 무엇을 사고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를 고민해본다. 고민하더라도 아마 고도와 야시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무조건 달려보게 되지 않을까란 사실이 나를 무섭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곳은 그만큼 매력적인 슬프사연이 있어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