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억해 줘 - 아카이브 별 이야기
고지마 사토미 그림, 이치카와 다쿠지 글, 홍성민 옮김 / 아이들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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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그림책 앞을 그저 휙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봤던 여름이 몇 년도 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룸메이트와 영화를 보고 있을 때 비가 참 많이 왔다는 것과 빗물처럼 주르륵 그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꼭 기억해 줘>라는 제목보다 친숙한 건 부제목인 <아카이브 별>이다. 영화 속에서 미오가 죽기 전 아들에게 들려주던 동화. 미오의 잔잔한 목소리로 들었던 아카이브 별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나왔다. 영화가 먼저 나오고 책이 나왔듯이 그림책도 영화가 나온 후에 나왔던 것 같다. (소설책과 그림책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니까.)

 

파스텔빛 그림과 함께 아카이브의 별에서 온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투명한 빗물을 연상시키면서도 파란 하늘빛을 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이면 그 별이 빙글빙글 도는 소리가 들린다.

꼭 기억해 줘. 아카이브 별 이야기.

 

아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그 별의 이름은 아카이브 별.추억 속의 사람들이 사는 별이지.

 

네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도 그별에서 조용히 살고 있단다.

 

아카이브 별에 한 여자가 쓸쓸하게 살고 있었어.

외로워, 너무 외로워. 도대체 왜이렇게 외롭고 슬픈지 모르겠어.>

 

여자는 궁금해서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는 문'을 찾아간다. 정말 소중한 것을 찾을 때만 사용해야 되는 문을 여자가 연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 후로는 모두 아는 이야기.

분명 영화를 위해 만든 동화책이었을 텐데도 영화보다 나를 빠져들게 했던 것은 이 동화였다. 아카이브 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이 사는 별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일까? 아이들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말해줄 때 사용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죽은 후에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저렇게 예쁜 세계면 참 좋겠다고 바랐었는데.

 

내가 그 별에 가서 아카이브 별에 있는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는 문'에 선다면 난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를 가보게 해달라고 말할까? 내가 문을 여는 순간 바다가 펼쳐지길 바라는 건 너무 한가? 하지만 그곳이 바다였으면 좋겠다. 말을 전하고픈 사람이 바다에 있으니. 바다가 아니라면 7살의 어린 나를 만나보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소중한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미래가 있다면이 아니라,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을 찾는다면 가슴에 구멍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 않아도 될텐데. 어쩌면 그 씨앗을 얻을 수도 있을텐데. 얼른 바다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와야겠다.

 

아, 여자와 아이가 심은 씨앗에서 네잎클로버가 아니라 해바라기 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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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싸게 팔아요 아이세움 그림책
임정자 지음, 김영수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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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친척 동생들이 있었음에도 집에서 막내라는 특권을 톡톡히 누린터라 동생들을 대한다는 것이 낯설다. 대학에 들어가 신입생인 1년이 지난 후에 후배들이 생기자 선배의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우리 오빠는 어떻게 오빠 노릇을 그렇게 잘하고 선배들은 어떻게 선배 역할을 그리도 어색함 없이 잘한 것인지 궁금하고 대단해보였다.

 

후배들에게 잘하는 선배들과 내게 잘 해주는 오빠 친구들이 공통점은 대부분 동생이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들이 있었기에 후배와 친구 동생이 익숙하다고. 이해와 배려가 몸에 배인 사람들은 내게 낯설다. 갖고 싶은 것을 갖으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양보하고도 마음이 태평한 사람들이 낯설어서 물어본다. 처음부터 그렇게 동생이 좋았냐고, 양보해도 아무렇지 않냐고? 그들의 대답은 절대 아니!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미운 동생, 갖다 버리고픈 동생이 딱 나 어릴 때를 닮았다. 우리 오빠는 어떻게 참은걸까? 오빠의 대답은 간단하다. 오빠니까!

 

오빠의 마음을 모르고 자란 나는 7살 주원이의 마음도 몰랐다. 동생이 생긴 후로 뭐든 양보해야 하는 주원이는 내게 말한다. 괜찮다고,형이니까! 큰 소리로 말한 후에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 그래도 엄마가 서운할 때가 있다는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주원이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어린 주호만 예뻐하고 주원이에게는 안돼라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하지는 않았을텐데.

 

 
주인공 짱짱이는 자전거를 타고 뒷자리에 동생을 태우고 동생을 팔러 다닌다. 장난감 가게 언니에게 인형 하나에 동생을 판다고 말하며 덧붙인다.
 
"내 동생은요, 얼마나 얄미운데요. 나한테 대들고 나쁜 말도 하면서 엄마 아빠 앞에선 이쁜 척 해요."
 
당연히 살리가 없는 가게 언니를 뒤로 하고 짱짱이는 이번에 꽃집 할아버지에게  꽃 한다발에 판다고 말하며 덧붙인다.
 
"내 동생은요, 고자질쟁이예요. 세게 띠리지도 않았는데 징징 짜기나 하고 엄마한테 일러서 나만 야단맞게 하잖아요."
 
역시나 꽃집 할아버지도 거절하고 빵집 아줌마도 친구 솔비도 동생은 거저 줘도 싫다고 한다.
 
하지만 짱짱이는 거줘주면 동생은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잘때는 아주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왕자님 놀이도 잘하고 하인역할도 아주 잘하는 동생이니까. 이제 짱짱이는 동생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동생을 주기 싫단다.
 
#
동생이 미운 것도 고자질쟁이이란 말도 다 맞다. 그래도 거줘 주려니 아까운 동생이다.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보다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더 많이 생각하지만 그래도 동생이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되지 않는 짱짱이다. 우리 오빠도 책을 찢는 내가, 맨날 오빠 먹는 걸 뺏어먹고 친구들 노는데 늘 따라가는 내가 싫고 미웠겠지만 아무래도 거줘 주기에는 아까웠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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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형이니까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5
후쿠다 이와오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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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치는 억울하다. 동생이 없었다면 자신은 형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조건 참기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엄마는 맨날 동생편만 들고 맨날  "형이니까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말씀하신다. 동생만 없었더라면 부모님은 여전히 자기를 예뻐하고 갖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것을 놀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았을텐데.

 

유이치의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어느날 유이치의 동생 다카시가 행방불명된다. 자신의 속만 썩이던 다카시가 사라졌는데도 유이치는 이상하게 속이 후련하지 않다. 맛있는 과자를 혼자 먹어도 혼자 놀아도 행복하지 않고 한숨만 나온다. 그때 다카시를 찾았다는 전화에 유이치는 다시 동생 흉을 본다. 멍청해서 그런거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유이치는 동생은 없는 것보다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생이 없으면 걱정되니까! 왜냐하면 난 형이니까!

 

#

참아야 예쁜 게 첫째고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 건 동생이다. 내가 오빠라고 해도 이건 좀 억울할 것 같다. 칭찬받고 예쁨받는 건 분명 노력한 사람인데 동생이란 특권만으로 부모님은 그냥 예뻐한다. 오빠는 참고 또 참고! 자라면서 오빠와 싸울 때가 있을때면 역시 혼나는 건 오빠의 몫이었고 아빠의 칭찬은 전부 내 몫이었다. 예쁜 옷도 용돈도 내가 더 많았고 오빠는 입만 삐죽거려도 혼이 났다. 오빠니까! 이제야 그런 오빠를 보며 메롱했던 게 미안해진다. 오빠에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오빠도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았을 걸. 오빠라고 참아야만 하고 나대신 혼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동생으로 자랐어도 커서는 누군가의 선배가 되고 누나가 되고 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어린 시절의 오빠나 누나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다. 지금의 나는 다 자랐으니까, 그 시절의 오빠와 누나는 나와 같은 어린이였으니까. 형이니까라며 동생이 머리를 잡아 당기고 장난감을 부러뜨려도 참아내는 주원이를 한번 안아주며 말해야겠다. 주원이가 참 예쁘다고! 오빠한테는 부끄러우니 안부전화 하며 갖고픈 것은 없냐고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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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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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

내 이름은 이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

 

오늘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차()를 보내왔다. 펄 쟈스민이란 차를. 은은한 쟈스민 향이 뜨거운 물에 우리기도 전에 내 코를 자극해서 몽롱하게 만든다. 진주모양으로 동글하게 만 펄 쟈스민은 이현이 사랑한 여자 이진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덮은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나는 이 책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이진의 마음도, 이현의 마음도 짐작이 될 것 같아서. 이현의 사랑을, 이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미안해서 어떤 말을 적기가 망설어졌던 내게 친구가 준 차가 그녀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은은한 향기를 가진 그녀를.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는 내게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라고 알려주었다. 아니, 이진이 결혼할 남자 이현에게 보내는 편지를 내가 훔쳐보았다는 말이 맞겠다. 책의 시작, 나는 이진과 이현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이가 되고 말았다. 아니 이현의 기록을 읽는 사람이 된 것인지도.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지요, 그게 전부랍니다.

영혼을 기록하는 게 삶의 목적이고 그게 전부인 여자 이진. 특이한 점은 그녀가 기록하는 영혼은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영혼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 작은 카우치가 들어갈 수 있는 방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록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생계비. 조용하고 소박한 생활, 들리는 건 사각사각 연필 쓰는 소리. 그게 이진이 바라는 삶이었다.

 

하지만 이진의 아버지는 명성있는 시인이었음에도 이진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자립을 요구한다. 그의 아내를 그대로 닮은 이진은 아버지 이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아버지로부터 자립해야 하는 이진에게 이현이 나타난다. 이현, 그는 그녀가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존중해주겠다며 결혼을 요구하고 그들은 3년동안 계약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결혼을 받아들였다. 아늑한 집에서 영혼을 기록할 수 있기에!

 

#이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이진을 처음 보는 순간 이현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버지의 앨범을 뒤져 이진과 같은 얼굴을 한 여인의 결혼식 사진을 꺼내들고 이진을 만나러 간다. 우린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너무나 똑같은 여인이겄만 그녀는 이진이 아니라 이진의 어머니라고 한다. 6살이었던 이현이 첫사랑이라 불리는 사진 속 여인에게 나는 살구향기를 이진에게도 맡으면서 이현은 이진을 사랑하게 된다.

 

두번의 이혼도 흠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남자, 이현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라는 독특함에도 이진을 사랑한다. 아니 그건 정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6살 때 정해진 운명. 이현은 자신 있었다. 언젠가는 이진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리라, 응해주리라. 그런 믿음이. 영혼을 기록하는 일 이외의 시간에는 자신과 있었으므로.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이진

살아있는 영혼들을 기록하는 이진을 보며 궁금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영혼만 따로 만날 수가 있는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이진은 어떻게 영혼들을 기록할 수 있는지. 영혼이 이진을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다니던 영혼들은 이진에게 덜미가 잡혀 원하든 원치않든 그들이 밝히고자 하지 않는 내밀한 이야기까지 모두 기록되어야 했다. 이진은 기록하는 순간 이진이 아니라 그 영혼이 되었으니.

 

영혼이 빠져나간 내 몸. 언제부터인가 영혼은 내가 눈 뜨고 있는 순간에는 내 몸에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내게 살아있는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은 충격이었다. 자신의 영혼이 어디를 갔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놀랐다. 차차 그 영혼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 한명은 내 삶을 철철히 알아주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이진이 가여워졌다. 영혼을 기록하며 살 수밖에 없는 그녀가 슬펐다.

 

살면서 누군가 한명은 자신의 이야기를 은밀하게 모두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그건 우리 모두에게 숨겨진 진실일까? 이진은 그래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걸까?

 

#사랑, 언제가 한번쯤은 통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이현

살구즙 향기가 가득한 여자,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눈에 튀지 않지만 그녀를 한번 본 남자들은 그녀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여자. 두번 그녀를 만난다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으리란 꿈을 꾸게 만드는 여자. 하지만 절대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한마디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여자. 그래서 남자들의 삶을 더 아프게 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 이현.

 

항상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얼마나 힘이 들까? 그녀가 내 곁에 있는데 마음이 내게 없을 때 그건 얼마나 외로운걸까? 내 마음은 사랑임이 틀림 없는데 사랑이 아닐리가 없는데 그녀만 몰라준다면? 그녀가 알면서도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사람은 얼만큼 절망하게 될까?

 

이현의 아픔을 보며 이진을 탓할 수 없음에 아프다. 그녀라고 오죽할까. 영혼의 기록 이외에는 마음을 써보지도 써 볼 수도 없는 그녀라고 오죽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두사람 다 아프다.

 

#이 책의 보물찾기-이진의 기록

책에는 이진의 기록으로 4개의 단편이 등장한다. 2개는 이미 그녀가 발표한 작품이고 뒤의 두개는 신작이라고 한다. 그걸 모르고 이 4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나 고민하며 읽었는데 다 읽고 보니 이 단편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윤경, 그녀의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매번 놀란다.

작가의 첫번째 책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다 읽고 나서 작가가 이공계 전공이란 사실에 놀랐다. 아름다운 문체와 마음을 울리는 글쓰기를 하는 그녀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분자 생물학이었다. 작가의 2개의 책을 마저 읽고도 역시나 놀란다. 이공계라고 감성이 부족하리라 생각했던 내 오해가 작가 심윤경으로 인해 깨졌다.

 

<좋았던 구절>

1.

기록이란 중요한 거예요. 원초적으로 그래요.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아니라고요? 실존이란 엄연하고도 무거운 거라서, 지켜보는 눈길이나 기록하는 손가락 따위의 존재 여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나요. 나하고는 생각이 다르군요.

존재했던 엄연하고 무거운 현실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립니다. 그 반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도 일단 기록되어버리면 존재했던 것으로 착간되어요. 세월이 흘러 증언자들이 모두 늙어 죽어버리면 더욱 그렇죠.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니까요. 우리는 기억을 믿듯이 기록을 믿어요.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 존재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 범위까지만 유효성을 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에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2.

나는 사랑을 쉽게 보았습니다.
한 잔의 붉은 와인처럼 말입니다.
그 사랑이 나의 심장을 갈라 쏟아져 나오는 붉은 피처럼 처절한 것이었음을 알았더라면
나는 차마 그녀를 사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랑이 있다.
하나는 잠시 불타올랐다가 곧 이전의 광채를 잃어버리는,
금세 지루한 일상의 범주로 편입되는 평범한 사랑이다.
또 하나는, 전자에 대한 대칭적 개념으로 정의하자면 비범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 테지만,
그보다는 신비로운 사랑이라고 해야 좀더 그 자체의 성질에 가까울 것이다.
 
후자 쪽의 사랑은 좀더 희귀하고 벼락같다.
 
전자 쪽의 사랑만 경험하고서도 신비롭고 벼락같은 경험이었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후자 쪽의 사랑을 만나면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흔해빠진 다른 사랑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순수, 운명, 복종, 이런 복고적 단어들이 섬광같이 정수리를 내리치는 그런 감각은 일반적은 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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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7-0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닉네임이 보여서 땡스투 날려요~^^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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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서 서점에 가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 때우기에 서점은 내게 놀이터 같다. 신기하고 즐거운 서점나라에 가면 살려고 적어둔 목록은 백지가 되고 혼자서 이리저리 놀러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제목이나 내 눈을 사로잡는 표지의 책을 손에 들고 나온다. 서점을 나오고 나서야 꿈이 깨는 앨리스처럼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생각해보며 뒤를 돌아보게 된다. 서점의 선물일까? 그렇게 달콤한 꿈을 꾼 듯한 서점 데이트에서 가져온 책은 대부분 내 마음을 울리는 책이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제목을 보고 나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 꼬맹이들은 미운짓을 할 때도 있지만 그 눈웃음 하나에 자신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기에.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남학생들이었다. 내게는 아름답다는 말을 쓰기가 어색한 고등학교 남학생들인데 왜 작가는 이들을 아름답다는 말로 수식했을까!

 

주인공 선재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선재도 그의 일기장에 나온 많은 아이들의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아이들은 아름다웠것만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건 나와 같은 어른들이었다. 책은 연작소설로 5개로 나뉘어져 있다. 선재의 아픈 성장을 지켜봐야 하는 5권의 일기장을 보는 기분은 구름을 움직이는 서늘한 바람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1

 

#구름 그림자

언제부터인가 선재는 구름 그림자에 열중하게 된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 잠시도 쉬지 않고 떠도는 구름이기에 지구 표면에는 언제나 구름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는 구름 그림자에 대해서. 구름 그림자에 가리워졌던 운동장에 그림자가 사라졌을 때 선재는 물체들이 모두 달라진 것처럼 느낀다.

 

이제 그 이전의 운동장과 지금의 운동장은 다르다. 선재 역시 그 전의 선재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 이전의 선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재는 구름이 지나가면 다른 구름이 나타나듯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짐에 고민하고 그 고민을 고입 입시에 떨어진 친구 순석에게 편지로 들려준다. 왜 순석에게 선재는 편지를 쓴 걸까? 선재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런 친구가 필요했던 걸까? 바람이 구름의 이야기를 들어주 듯. 구름에게 구름이 지나간 자리가 구름 그림자라면 선재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 일기장이 남겠지. 끊임없이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나이는 10대만이 아닌데 그 시절에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반성문을 쓰는 시간

선재의 국어선생님의 별명은 왜냐 선생님이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시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어시간의 주제는 <허생전>이다. 허생의 삶을 주인공과 함께 돌아보며 꼭 허생전을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해주고 싶은 왜냐 선생님은 노동조합원으로 학교에 대항하느라 결국 허생전의 수업은 마무리 되지 않는다.

 

허생전이 패자라고 말했던 선재. 결국 허생이 자신의 틀을 깨지 못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지만 자신의 생각을 의문을 들어줄 왜냐 선생님은 더이상 수업을 할 수 없다. 궁금해도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같다. "너희는 공부만 하면 된다!"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제 그 수업은 들을 수 없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도 반성문을 쓰는 시간동안의 윤수의 일기 속 어른들은 독단과 독선으로 가득 차있다. 이야기 하려하는 아이들의 말을 귀로 듣지 않거나 어쩌면 그들의 몸을 둘러싼 유리벽에 튕겨져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을 위한 학교라고 하지만 학생을 위해 열린 귀는 어느 곳에도 없는 학교였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고 3을 위한 기원의 밤이 다가오고 선재는 3학년 형을 위해 시를 지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기원이고 무엇을 위한 기원인가.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을 닥달하고 공부만을 위한 로봇이 되달라고 부탁한다.

 

말을 더듬으며 윤수가 묻는다. "환, 환경에 맞지 아, 않는 건 모두 죽어, 죽어야 합니까?" 적자생존을 배우는 생물 시간에 윤수의 엉뚱한 질문을 듣고 선생님도 선재도 그리고 나도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윤수가 말하는 환경은 학교겠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누구보다 힘들어 하는 윤수, 그 아이에게 학교는 얼마나 살벌한 환경인걸까? 누가 그렇게 만든걸까? 왜 그 질문을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한걸까?

 

윤수가 기원의 밤에서 한 말이 책을 덮고도 나를 흔들었다.

 

"우, 우, 우리는 마, 마라톤 선수, 선수가 아닙니다."

"모, 모두 승리, 승리하면 누가, 패, 패배합니까?"

 

누가 패배합니까? 왜 일등만을 고집하는 사회가 이어지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이토록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는데...... 어쩌자고 아이들이 로봇이라도 되는 양 무조건 요구하게 되는 걸까? 자꾸만 잊게 된다. 그들이 자라 우리가 되었음을. 그들의 한숨 역시 지금의 내 한숨과 다르지 않음을. 아름다운 그 시절에 고민을 해도 방황을 해도 된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는 걸까? 그 시기를 놓치면 실패한다고 왜 말하게 된걸까? 어른이 문제인건가? 사회? 아니면 아직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아름다운 아이들이 문제인가?

 

섬으로 떠난 선재의 일기는 얘기 할 수 없을만큼 아픈 밤이다. 가벼운 책의 무게가 아이들의 한숨과 무게에 점점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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