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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ㅣ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봄이 되면서 서점에 가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 때우기에 서점은 내게 놀이터 같다. 신기하고 즐거운 서점나라에 가면 살려고 적어둔 목록은 백지가 되고 혼자서 이리저리 놀러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제목이나 내 눈을 사로잡는 표지의 책을 손에 들고 나온다. 서점을 나오고 나서야 꿈이 깨는 앨리스처럼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생각해보며 뒤를 돌아보게 된다. 서점의 선물일까? 그렇게 달콤한 꿈을 꾼 듯한 서점 데이트에서 가져온 책은 대부분 내 마음을 울리는 책이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제목을 보고 나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 꼬맹이들은 미운짓을 할 때도 있지만 그 눈웃음 하나에 자신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기에.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남학생들이었다. 내게는 아름답다는 말을 쓰기가 어색한 고등학교 남학생들인데 왜 작가는 이들을 아름답다는 말로 수식했을까!
주인공 선재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선재도 그의 일기장에 나온 많은 아이들의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아이들은 아름다웠것만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건 나와 같은 어른들이었다. 책은 연작소설로 5개로 나뉘어져 있다. 선재의 아픈 성장을 지켜봐야 하는 5권의 일기장을 보는 기분은 구름을 움직이는 서늘한 바람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1
#구름 그림자
언제부터인가 선재는 구름 그림자에 열중하게 된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 잠시도 쉬지 않고 떠도는 구름이기에 지구 표면에는 언제나 구름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는 구름 그림자에 대해서. 구름 그림자에 가리워졌던 운동장에 그림자가 사라졌을 때 선재는 물체들이 모두 달라진 것처럼 느낀다.
이제 그 이전의 운동장과 지금의 운동장은 다르다. 선재 역시 그 전의 선재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 이전의 선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재는 구름이 지나가면 다른 구름이 나타나듯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짐에 고민하고 그 고민을 고입 입시에 떨어진 친구 순석에게 편지로 들려준다. 왜 순석에게 선재는 편지를 쓴 걸까? 선재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런 친구가 필요했던 걸까? 바람이 구름의 이야기를 들어주 듯. 구름에게 구름이 지나간 자리가 구름 그림자라면 선재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 일기장이 남겠지. 끊임없이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나이는 10대만이 아닌데 그 시절에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반성문을 쓰는 시간
선재의 국어선생님의 별명은 왜냐 선생님이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시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어시간의 주제는 <허생전>이다. 허생의 삶을 주인공과 함께 돌아보며 꼭 허생전을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해주고 싶은 왜냐 선생님은 노동조합원으로 학교에 대항하느라 결국 허생전의 수업은 마무리 되지 않는다.
허생전이 패자라고 말했던 선재. 결국 허생이 자신의 틀을 깨지 못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지만 자신의 생각을 의문을 들어줄 왜냐 선생님은 더이상 수업을 할 수 없다. 궁금해도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같다. "너희는 공부만 하면 된다!"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제 그 수업은 들을 수 없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도 반성문을 쓰는 시간동안의 윤수의 일기 속 어른들은 독단과 독선으로 가득 차있다. 이야기 하려하는 아이들의 말을 귀로 듣지 않거나 어쩌면 그들의 몸을 둘러싼 유리벽에 튕겨져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을 위한 학교라고 하지만 학생을 위해 열린 귀는 어느 곳에도 없는 학교였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고 3을 위한 기원의 밤이 다가오고 선재는 3학년 형을 위해 시를 지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기원이고 무엇을 위한 기원인가.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을 닥달하고 공부만을 위한 로봇이 되달라고 부탁한다.
말을 더듬으며 윤수가 묻는다. "환, 환경에 맞지 아, 않는 건 모두 죽어, 죽어야 합니까?" 적자생존을 배우는 생물 시간에 윤수의 엉뚱한 질문을 듣고 선생님도 선재도 그리고 나도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윤수가 말하는 환경은 학교겠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누구보다 힘들어 하는 윤수, 그 아이에게 학교는 얼마나 살벌한 환경인걸까? 누가 그렇게 만든걸까? 왜 그 질문을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한걸까?
윤수가 기원의 밤에서 한 말이 책을 덮고도 나를 흔들었다.
"우, 우, 우리는 마, 마라톤 선수, 선수가 아닙니다."
"모, 모두 승리, 승리하면 누가, 패, 패배합니까?"
누가 패배합니까? 왜 일등만을 고집하는 사회가 이어지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이토록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는데...... 어쩌자고 아이들이 로봇이라도 되는 양 무조건 요구하게 되는 걸까? 자꾸만 잊게 된다. 그들이 자라 우리가 되었음을. 그들의 한숨 역시 지금의 내 한숨과 다르지 않음을. 아름다운 그 시절에 고민을 해도 방황을 해도 된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는 걸까? 그 시기를 놓치면 실패한다고 왜 말하게 된걸까? 어른이 문제인건가? 사회? 아니면 아직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아름다운 아이들이 문제인가?
섬으로 떠난 선재의 일기는 얘기 할 수 없을만큼 아픈 밤이다. 가벼운 책의 무게가 아이들의 한숨과 무게에 점점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