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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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자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집이 아닌데도 바나나의 책을 손때가 타도록 가방 속에 넣고 다닐 때를 돌이켜 보며 다시 묻고 싶어진다. 왜 바나나의 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얀강 밤배> <암리타> 이후로 바나나를 만나기가 두려워졌던 것은 그녀의 소설이 안개에 휩싸인 듯한 기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요즘들어 다시 바나나 월드로 빠져들고 있다. 얼마 전에 나온 <슬픈 예감>에 이어 선물받은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읽으며 전에 느꼈던 따뜻함을 만나게 된다.

 

책의 내용은 9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거기에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귀가 솔깃한 요시토모 나라가 그린 일러스트까지 뺀다면 70페이지가 조금 넘을 것 같다. 저번에 읽은 <슬픈 예감>보다 더 얇은 것에 서운한 것은 바나나의 따뜻한 바람을 더 오래 느껴보고 싶어서 일 것이다. 바나나의 책은 내게 비가 내린 후에 부는 상쾌한 바람과 뜨겁지 않은 햇빛을 떠올리게 한다. 산책하기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은 온도는 바나나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았던 시간을 이 책이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리만치 간단하다. 이건 바나나의 재주일까? 간단한 줄거리 속에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들어가 마치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형성하게 만들고 그럼으로 인해 나역시 바나나에게 위로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해준다.

 

엄마가 죽고 난 후 비석을 만들던 아빠는 동네에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소문난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다 쓰러져가는 3층 건물에 들어가 산다. 그 소문을 들은 미쓰코는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엄마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아빠 역시 엄마를 위한 돌고래 비석과 만다라를 만들며 위로받는 것을 알게 된다.

 

엉뚱하고 지저분한 아르헨티나 할머니(유리)는 세상과 단절된 듯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익숙했던 무언가가 달라진 뒤에 우리는 그리움을 갖게 된다. 그것을 뒤늦게 알고서 슬퍼하는 미쓰코에게 유리는 그리움을 견디는 방법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쓰던 가구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아 점점 더 지저분해지는 건물 역시 그리움은 닿을 수는 없지만 곁에 둔다면,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면 슬프지 않은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유리씨를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미쓰코를 보며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과 받아들이는 일은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유리씨는 신기하리만치 사람들을 잘 흡수한다. 아니, 미쓰코와 아빠가 잘 흡수되는 걸까?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설령 그가 사랑했던 여자를 위한 비석을 만드는 일이라도. 사람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자 하는 유리씨의 모습은 만다라를 만들만큼 아빠의 마음을 빼앗았을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내의 죽음으로 공허함에 빠진 아빠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시는 사랑하는 여인을 그렇게 허탈하게 보내지 않겠다고.' 그 마음이 있었기에 유리씨를 사랑하게 되면서 만다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주는, 평며이 아니고, 시간도 없어. 그리고 무수한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겹겹의 층 안에 시간과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고, 전부 이어져 있어, 마치 요술 상자처럼 말이야. 이건 어떤 이치로도 설명할 수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어. 어떤 부분이든 모든 부분과 통하게 돼있어. 깊숙한 공간이 한없이, 하염없이 겹쳐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걸 어떻게든 나타내 보려고 한 것이 만다라가 아닐까." -p.19

 

만다라를 만드는 아빠를 보며 유리씨와 미쓰코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픈 아내를 죽기 전에 먼저 가슴에 묻었던 어리석음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으리란 결심과 함께 유리씨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살아 있다. 절대 마음속에서 미리 묻어서는 안 된다.>  -p.23

 

투명한 눈물과 따뜻한 봄바람을 닮은 책은 바나나 스럽다.

그래서 좋기도 하고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은 유독 바나나의 글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하드보일드 하드 럭>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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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
나가시마 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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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 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손에 책 한 권만 있다면 세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나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오늘의 책은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 이었다.


제목을 봤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소설이란 말에 제목이 다르게 느껴진다.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는 말이 빗방울 소리와 함께 가슴으로 톡톡 떨어진다. 울지 않는 여자는 없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적게 우는 여자들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일까?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는 제목에서 울음을 참아내는 삶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책은 두 가지의 단편 소설로 되어있다.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와 <센스 없음> 두 가지로 되어있는데 비슷한 성향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무쓰미는 실업난 속에서 취업에 대한 기대를 가진 것도 아닌데 덜커덕 작은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무쓰미는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고 하루 종일 전표를 분류하는 회사원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삶에서 생기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따분한 생활을 하는듯한 그녀는 산책을 좋아하고 거리의 풍경을 기억하는 소소한 것들에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자다. 무쓰미의 건조한 일상은 회사 동료인 히카와가를 좋아하면서 미묘하게 변화를 맞는다.


<No, woman, no cry>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이 노래는 가수 밥말리가 불렀는데 책 속에서 히카와가가 이 노래를 부르고 제목을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라고 말한다. 직역으로는 <여인이여, 울지 마라>인 것을 아는 무쓰미는 내내 궁금해 한다. 왜 그가 노래 제목을 그렇게 말한 것인지 울지 않는 여자가 없다라는 것이 그를 왠지 서글프게 하는 것 같다.


책의 제목을 보고 <로맨틱 홀리데이>의 카메론 디아즈가 생각나서 무쓰미가 그런 캐릭터인가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쓰미의 가슴에는 동요가 일지 않는다. 아니, 동요가 일어났고 해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해 읽는 내가 궁금해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건 대체 뭐냐고. 그랬다면 그녀는 답해주었을까.


<센스 없음>의 주인공 야스코는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을 요구 받지만 그녀 역시 무쓰미만큼 태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딱 한번 남편에게 청동상을 던진 것만 빼면. 겨울이 배경이라 내리는 눈과 함께 거리를 무심히 걷는 그녀의 모습이 겹쳐져 나 혼자서 한숨을 쉰 것이 여러 번이다.


야스코와 무쓰미.

담담함.

어른이 되면서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 담담한 가슴을 갖고 싶다는 친구가 있다. 나 역시도 이별로 아플 때면 <내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처럼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내가 원했던 그 심장을 가진 무쓰미와 야스코를 만났을 때 서글펐다. 담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새로운 사랑을 만난 무쓰미와 사랑이 떠나간 야스코, 담담한 것이 이상하다. 너도 나도 쿨(cool)한 세상을 외친다고 하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홀가분한 게 아니라 애달프게 느껴진다. 사랑을 했는데 사랑이 떠났는데 어떻게 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감정에 서투른 그녀들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 슬픈 감정을 참고만 사는 우리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감정을 숨기는 것,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졌다.


사랑과 이별이란 단어에 쿨하게가 들어갈 수 있을까? 담담함이 들어갈 수 있을까? 차가운 것은 차갑게, 뜨거운 것은 뜨겁게 느끼고 살고 싶다. 쿨한 세상을 바라는 건 20대 초반이었는데 이제는 뜨겁게 살고 싶다. 이 책의 마무리가 좋은 이유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지길 삶에 열정을 다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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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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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눈을 뜨고 조용하지만 따뜻함을 느끼며 아침을 맞고 늘 하던 일을 하고 항상 타던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고 가족과 오붓한 저녁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잔다. 누구나 봐도 익숙한 일상이다. 소소한 일상이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이름에 가족이란 이름이 더해져 행복이란 미소가 묻어나기도 하는 일상이다. 주인공의 일상은 이러했다.

 

주인공은 40대가 넘어선 회사원으로 별다른 성공을 할 생각도 없지만 하지 못할거라는 것을 단정짓는다. 자신의 가치로는 더이상은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자랑은 가족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조용하지만 현명한 아내가 자신의 보물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몰아친다. 딸이 고교 권투 챔피언에게 맞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에게 그 사건은 충격이다. 늘 같은 일상이 삐그덕거리게 된 것이다.

 

병원에 있는 딸을 보며 팔을 뻗어 안아주지 못한 아버지. 비겁한 자 앞에서 더 비겁해진 아버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본 딸의 외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는 자신의 새장을 뚫고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나갈 용기는 없다. 그러나 가족은 사랑한다. 그 앞에 놓인  깨진 액자속의 가족사진. 다시는 투명하고 예쁜 액자에 담길 수 없는 것일까. 액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새장을 나가야한다. 반경 1m의 원이 다인 그 세상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스즈키씨 잘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전보다 견고한 액자를 사서 돌아올 수 있을까? 더이상 새장이 아닌 자신의 넓어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FLY -스즈키씨의 첫번째 비상하다, 성공할리 없다.

 

자신을 외면한 딸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은 딸 앞에서 그리고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을 인정하는 스즈키씨는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부던히 노력한다. 불면증과 식욕부진, 집에 내려앉은 무거운 공기, 이미 전과는 다른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과거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다는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단 하나, 돌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스즈키씨 첫번째 비상하다. 하지만 스즈키씨,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부억칼 하나 들고 딸을 그렇게 만든 이시하라의 고등학교에 찾아가 칼을 들이대며 이시하라를 찾는다. 그의 손목을 꺽어 칼을 빼앗는 녀석은 허무한 소리를 한다. 그 녀석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여기가 아니라고, 여긴 삼류고등학교, 그 녀석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일류. 스즈키씨 학교를 잘못 찾아와 좀비스를 만났다. 우리의 좀비스, 스즈키씨를 도와주기로 결정한다. 어떤 방법으로? 그거야 싸워서!!! 스즈키씨와 이시히라의 한판!!!

 

-짤막한 내 생각

나는 좀비스가 좋다. 그들은 진정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스즈키씨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이 나서서 싸우면 간단히 될 일이지만 스즈키씨에게 필요한건 이시히라를 실컷 패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놓혀버린 자신감과 가족의 사랑, 그리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강함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즈키씨가 펀치를 날려야한다. 이 정도까지 생각할 줄 아는 좀비스, 정말 고등학생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여기서 딸이 세이와여자학원이라는 말에 녀석들 눈이 초롱해진 것은 애교로 봐주자.) 스즈키씨, 첫번째 비상은 실패했지만 좀비스를 만났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비상이었어요.

 

* DADDY, 순신의 제자가 되다.

 

싸울려면 싸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배우기위해서는 스승이 있어야한다. 좀비스에서 그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은 싸움의 달인 박순신 밖에 없다. 결근한 적도 지각한 적도 없는 회사를 한달간 쉬기로 한 스즈키씨는 한달간 매일 양복을 입고 집을 나와 순신을 만나러 간다.

 

마흔 일곱, 키 168cm, 몸무게 65kg, 체지방 23%, 87-76-92의 신체 사이즈

이시히라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63kg으로 살을 빼고 근육을 키워야한다. 갈길이 먼 스즈키씨. 순신의 트레이닝은 스즈키씨가 아는 욕이란 욕은 다 나오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준다. 스즈키씨는 운동을 하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자신을 보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스즈키씨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흘러 넘치지만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잃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스즈키씨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잊은 것이다. 잃은 것과 잊은 것의 차이는 크다. 잃은 것은 다시 찾아 나서거나 처음부터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잊었다면 그 감각을,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를 일깨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는 약 60조. 그것을 일깨우면 어떤일이 발생할까? 스즈키씨의 몸에 있는 60조의 세포를 일깨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순신, 일깨우는 것은 스즈키씨. 최고의 콤비이다.

 

-짤막한 내 생각

화가 나면 눈 밑의 상흔이 붉어지는 박순신이 좋다. 무뚝뚝한 말투와 차가운 인상을 주는 얼굴임에도 그의 옆에 가면 모두 꾸벅 꾸벅 졸게하는 그의 온기가 좋다. 케빈클라인 속옷을 입는 스즈키씨도 좋다. 케빈클라인 속옷을 보고 순신이 코웃음치자 그에게도 선물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착한 스즈키씨가 귀엽다. 서로가 함께 일을 하는데 한쪽만 도움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순신이 스즈키씨의 몸과 마음에 근육을 만들어주었다면 스즈키씨는 순신의 감춰진 아이의 모습을 꼭 끌어안아주었다고 본다.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는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FLY -스즈키씨의 두번째 비상하다, 성공할까?

스즈키씨 결전의 날이 되었다. 스즈키씨 그동안의 훈련이 빛을 볼 것인가. 좀비스와 스즈키씨가 이뤄낸 하나의 기적. 그 기적이 열릴려고 하고 있다.

 

-짤막한 내 생각

스즈키씨가 버스와 시합할 때 속으로 얼마나 응원을 했던가. 그가 꺼진 딸의 방을 올려다 볼 때 얼마나 가슴이 조여왔는가. 스즈키씨를 응원하는 동안 우리 아빠를 생각한다. 우리 아빠를 한번 안아드려야겠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통쾌하다. 그것은 단지 이시히라와 스즈키씨의 대결만이 갖는 의미는 아니다. 이시히라를 나는 부조리한 사회로 봤다. 부모덕에 부를 가지고 싸움을 잘한다는 이유로 힘을 가지고 그는 일류라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족속이었다. 스즈키씨와 좀비스는 이시히라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일류라는 가면으로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어 자신의 아래는 짓밟는 사회와 싸운 것이었다.

 

**

야마시타, 이번에도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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렝켄의 비밀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베른하르트 오버디에크 그림 / 보물창고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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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슴 속 동화나라에 사는 미하엘 엔데를 만날 시간

 

미하엘 엔데, 그는 이제 우리에게 먼 나라 작가가 아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자신이 끊임없이 쓰려고 노력한 동화나라에서 편히 쉬고, 놀고 하는 미하엘 엔데는 우리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동화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하엘 엔데, 그는 <내이름은 김삼순>의 인기와 더불어 '모모'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다시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작가이다.  모모에서 보여준 잃어버린 꿈과 환상적인 세계는 미하엘 엔데가 추구하는 것이 담겨있다. 특히나 사람들이 무심코 낭비하면서도 소중함을 모르는 '시간'을 소재로 삼으면서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동화를 동화로만 끝내지 않고 현실과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 아니 마법일 것이다.

 

'모모'로만 그를 기억하기에는 그가 남긴 빛나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다. <꿈을 먹는 요정>처럼 짤막한 동화에서 <끝없는 이야기>처럼 702페이지에 달하는 장편까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독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선물인 엔데의 동화전집 1,2권은 입이 귀에 걸리게 한다.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 1 <렝켄의 비밀>을 만나보며 엔데의 매력에 빠져보자.

 

#미하엘 엔데, 그는 어떤 사람?!(1929-1995)

 

미하엘 엔데가 어린아이였을 때 가장 많이 놀던 곳은 화가인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초현실주의 화가였으며 어머니 역시 화가였다. 어린시절에 아버지가 나치 정부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모의 예술가적 기질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나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아버지와 나눈 종교, 철학, 신화 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미하엘 엔데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갑갑한 현실이었지만 미하엘 엔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에 창을 달아 숨을 쉬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라나 독일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그는 척박한 현실을 즐거운 세상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는 영혼이 피폐하고 세상이 어렵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이미 사라졌던 환상과 꿈의 세계를 되찾아 주었으며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로 재평가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마법 세계와 현실 세계는 이어져있다. 그 문을 찾아라!

엔데의 작품 속 마법 세계는 상상 속의 세계가 아니다. 어딘가에 분명 있는 곳이다. 우리가 찾지 못할 뿐이지만 누군가는 다녀오고 (예를 들면 엔데) 누군가는 아예 거기서 눌러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엔데는 사람들에게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상력 제로!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는 현실 속에서도 그토록 신나고 재밌는 마법 세계가 있을거라 믿는 것이다. 신나지 않는가!

 

<마법학교>에서 엔데는 '소원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물론 그곳은 현실 어딘가에 있는 곳이다. 다른 차원이든, 다른 세상이든 초대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왕래가 가능하다. 초대받기가 힘들어 가까움에도 만나기가 힘든 것이다. 마법학교는 소원나라 어린이들이 마법을 배우기 위해 다니는 흥미진진한 학교이다. 이곳에서는 어린시절 우리가 꿈꾸는 모든 마법을 가르친다.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새로운 생물을 만들거나 가장 꿈꾸는  하늘을 날 수있거나 순간 이동하는 마법까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쉽사리 누구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온힘을 기울여한다. 엔데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절대 공짜로 얻을 것은 없다는 것을 동화 곳곳에서 알려주고 있다.

 

엔데의 동화 속 신기한 세계로 통하는 문의 열쇠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그곳에 가려면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며(이건 아이들이 더 잘하는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모른체하면 절대 안된다.

 

#엔데의 동화는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엔데의 동화는 나이에 상관없이 어쩌면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동화라고 볼 수 있다. 철학적인 동화도 있으며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어른의 마음을 잘 이해한 작품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이 꼭 어린이가 아닌 이유만 봐도 그는 이미 우리, 어른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이다.

 

동화는 어린이의 것만이 아니다. 솔직히 동화가 필요한 것은 어른이다.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만으로 이미 동화 속에 살고 있다. 그 동화세상을 망치는것은 바로 어른이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동화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른도 동화책을 읽어야한다. 그리고 어른도 얼마든지 환상과 모험의 세계를 꿈꿀 수 있고,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동심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동심을 되찾았을 때 삶에 불어닥칠 활력은 상상 초월이다.

 

렝켄의 비밀은 어린시절 부모님의 잔소리에 벗어나고픈 어린이였을 때를 되돌아 보게 하고 끈기최고 트랑퀼라 거북이는 아이 어른 할 거없이 인내와 목표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교훈을 주기도 하며 모니의 걸작품은 어린왕자에게 조종사가 그려준 그림상자를 떠올리게 한다.

 

#환상의 세계, 그곳에는 현실의 거울이 있다.

-엔데가 죽고나자 사람들은 그를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를 고발한 철학가라고 말하며 그의 작품을 재조명 하고있다.  꿈을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엔데는 그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세상에서 불합리한 것들 역시 동화로 써서 사람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그가 그린 환상의 세계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회를 통해 꼬집어 말하고픈 부분들이 놓여있다.

 

힘만 내세우며 독재를 펼치는 코뿔소의 우매함을 꼬집는 <벌거벗은 코뿔소>나 어른임에도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혼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그린 <괜찮아요> 역시 현실에서 흔히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미하엘 엔데가 환상의 세계만을 그린다고 해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거라 생각하는 이가있다면 꼭 그의 작품을 봐야할 것이다. 미하엘 엔데만큼 현실을 직시하고, 교훈을 주며, 철학적인 이야기를 쓸 수있는 동화작가를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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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청소부 풀빛 그림 아이 33
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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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소부 아저씨.

아저씨를 청소부아저씨로 불러야할지 행복한 청소부아저씨로 불러야할지 지금도 헷갈려요.

 

아저씨는 어떤 것이 마음에 드세요?

저는 아저씨가 마음에 들어요. 청소부아저씨나 행복한 청소부아저씨는 길잖아요. 아저씨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아저씨 본연의 모습은 바꾸지 않을테니까요.

 

요즘은 잎들이 파릇파릇한 여름이라 일하기 힘들진 않으세요? 오늘의 길거리 청소 강연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음악가였나요? 작가였나요? 저는 요즘  카잔차키스 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어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나요? 아저씨는 책을 이해가 될 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다 면서요? 저는 이해가 안되면 바로 덮어버리는데 아저씨처럼 해봐야겠어요.

 

아저씨.

책을 읽으면서 저는 아저씨께서 휘파람을 부는 모습,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모습, 읽으신 책을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초록색 환경미화원 옷을 입은 아저씨의 모습에서는 빛이 났어요.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청소부 강사를. 아저씨는 어느 대학교수보다 멋졌어요. 아저씨는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저는 있잖아요, 아저씨.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좋은 직업을 가져야하는 줄 알았어요. 어른들은 항상 말씀하시잖아요. 행복해지고 싶으면, 성공하고 싶으면 공부 열심히해서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가야한다고. 저는 행복과 성공이 같은 것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저씨, 그건 아니었어요. 그쵸?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었어요. 또한 자신의 직업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었어요.

 

아저씨께 감사드려요.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해주신 것과 수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던 내 안에서, 내 일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신 거 참 감사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좋아지면 그게 행복이 되겠죠.

 

아저씨.

오늘도 휘파람을 불고 계신가요?

조금만 더 크게 불러주세요. 여기까지 들리게요.

 

아저씨.

다음에 아저씨가 청소하는 거리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추신.

아저씨,

마지막에 아저씨께서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을 때 저는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아저씨는 참 멋진 사람이예요.

 

                                                                            -여름의 끝자락에

                                                                                       티티올림.

 

 

**

이렇게 아저씨는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시를 읊조리고,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표지판을 닦았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었어. 파란색 사다리를 올려다보고는 깜짝 놀랐지. 그런 표지판 청소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거든. 대부분의 어른들은 표지판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시와 음악을 아는 사람 따로 있다고 생각하잖니. 청소부가 시와 음악을 알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아저씨를 보자 그들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진 거야. 그들의 고정관념은 수채통으로 들어가, 타버린 종이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어.

 

**

"참 안타까운 일이야"

어느날 아저씨는 동료 청소부들에게 말햇어.

"좀 더 일찍 책을 읽을걸 그랫어.하지만모든것을 다 놓친것은 아니야"

글은 아저씨의 마음을 차분하게도 했고 들뜨게도 했어.또 아저씨를 곰곰 생각에 잠기게도 했고 우쭐한 기분이 들게도 했어.기쁘게도 했고.슬프게도 했지.음악가들이 음을 대하듯 곡예사가 공과 고리를 마술사가 수건과 카드를 대하듯 작가들은 글을 대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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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저녁마다 아저씨는 책 속의 이야기들에 잠겨 있었어.
아저씨가 거기서 발견한 비밀들은 음악에서 발견했던 비밀들과 무척이나 비슷했어.
아하!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구나. 아니면 음악이 그냥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거나. 아저씨는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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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밤새 거실에 누워 음악을 들었어. 그러자 차츰차츰, 오래 전에 죽은 음악가들이 다시 살아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속으로 묻고 대답하고, 마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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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들이 음을 대하듯, 곡예사가 공과 고리를, 마술사가 수건과 카드를 대하듯, 작가들은 글을 대했던 거야.
아저씨는 작가들과도 음악가들과 같이 친구사이가 되었어.

 

**

가는 곳마다 아저씨의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진을 쳤어. 편지들이 커다란 자루에 가득 찰 만큼 집으로 날아왔어. 표지판 청소부 반장과 표지판 청소국 국장은 아저씨에게 칭찬을 늘어놓으며 꽃다발을 건네주었어. 아저씨 때문에 표지판 청소국의 위신이 높아졌거든. 네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이 왔어. 그렇게 하면 아저씨는 훨씬 유명해 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아저씨는 거절하기로 결심하고 답장을 했어.

"나는 하루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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