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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
나가시마 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올 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 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손에 책 한 권만 있다면 세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나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오늘의 책은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 이었다.
제목을 봤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소설이란 말에 제목이 다르게 느껴진다.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는 말이 빗방울 소리와 함께 가슴으로 톡톡 떨어진다. 울지 않는 여자는 없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적게 우는 여자들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일까?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는 제목에서 울음을 참아내는 삶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책은 두 가지의 단편 소설로 되어있다.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와 <센스 없음> 두 가지로 되어있는데 비슷한 성향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무쓰미는 실업난 속에서 취업에 대한 기대를 가진 것도 아닌데 덜커덕 작은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무쓰미는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고 하루 종일 전표를 분류하는 회사원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삶에서 생기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따분한 생활을 하는듯한 그녀는 산책을 좋아하고 거리의 풍경을 기억하는 소소한 것들에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자다. 무쓰미의 건조한 일상은 회사 동료인 히카와가를 좋아하면서 미묘하게 변화를 맞는다.
<No, woman, no cry>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이 노래는 가수 밥말리가 불렀는데 책 속에서 히카와가가 이 노래를 부르고 제목을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라고 말한다. 직역으로는 <여인이여, 울지 마라>인 것을 아는 무쓰미는 내내 궁금해 한다. 왜 그가 노래 제목을 그렇게 말한 것인지 울지 않는 여자가 없다라는 것이 그를 왠지 서글프게 하는 것 같다.
책의 제목을 보고 <로맨틱 홀리데이>의 카메론 디아즈가 생각나서 무쓰미가 그런 캐릭터인가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쓰미의 가슴에는 동요가 일지 않는다. 아니, 동요가 일어났고 해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해 읽는 내가 궁금해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건 대체 뭐냐고. 그랬다면 그녀는 답해주었을까.
<센스 없음>의 주인공 야스코는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을 요구 받지만 그녀 역시 무쓰미만큼 태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딱 한번 남편에게 청동상을 던진 것만 빼면. 겨울이 배경이라 내리는 눈과 함께 거리를 무심히 걷는 그녀의 모습이 겹쳐져 나 혼자서 한숨을 쉰 것이 여러 번이다.
야스코와 무쓰미.
담담함.
어른이 되면서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 담담한 가슴을 갖고 싶다는 친구가 있다. 나 역시도 이별로 아플 때면 <내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처럼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내가 원했던 그 심장을 가진 무쓰미와 야스코를 만났을 때 서글펐다. 담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새로운 사랑을 만난 무쓰미와 사랑이 떠나간 야스코, 담담한 것이 이상하다. 너도 나도 쿨(cool)한 세상을 외친다고 하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홀가분한 게 아니라 애달프게 느껴진다. 사랑을 했는데 사랑이 떠났는데 어떻게 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감정에 서투른 그녀들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 슬픈 감정을 참고만 사는 우리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감정을 숨기는 것,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졌다.
사랑과 이별이란 단어에 쿨하게가 들어갈 수 있을까? 담담함이 들어갈 수 있을까? 차가운 것은 차갑게, 뜨거운 것은 뜨겁게 느끼고 살고 싶다. 쿨한 세상을 바라는 건 20대 초반이었는데 이제는 뜨겁게 살고 싶다. 이 책의 마무리가 좋은 이유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지길 삶에 열정을 다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