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캐러멜!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
곤살로 모우레 지음, 배상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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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말로만 하는 대화가 전부일거라 생각하나요? 말로 하지 않으면 감정은 전해지지 않고, 말로 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듣지 못하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믿지 못하는 당신께 사하라 저 머나먼 사막에서 모래 바람을 타고 코리가 걸어오고 있어요. 당신에게 당신이 기적이라 부를만한 일을 전해주기 위해.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당신 아마 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거예요. 그건 우정이니까요, 그건 사랑이니까요. 그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것이니까요. 하긴 그래서 기적일지도 몰라요. 당신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의 기적을 깨울 시간입니다

 

 

 이건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데도 저는 옛날이라고 시작을 할래요. 이건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저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시작을 할래요. 아직은 나만의 캐러멜을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아직은 코리의 마음처럼 맑은 마음을 가지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이건 옛날 아주 머나먼 곳의 이야기라고 할래요.

 

 이야기가 끝났을 때 당신에게 코리와 캐러멜이 얼만큼 가까워졌는지 내게 이야기 해줄래요? 나도 이야기 해줄게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거든요. 언젠가 나도 캐러멜을 만날 수 있다고, 나도 누군가의 코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게 되거든요.  

 

 

 옛날(사실은 조금 가까운 과거) 머나먼(사실은 조금 가까운 곳)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에 있는 사하라위족의 난민촌 중 하나인 스마라라는 곳에 여덟 살 코리가 살았어요. 그곳은 자갈들, 끝없는 모래, 하이마(천막), 허름한 진흙집, 낙타 우리, 하얗게 회칠한 건물들 그리고 하늘뿐이었죠.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예요. 누구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 겉모습만 보이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요. 그곳은 보이는 것보다 더 힘들게 사람들이 살고, 울고, 아파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들여다 봐줘요. 코리가 보이나요? 저기 눈이 예쁜 남자아이가 보이나요? 그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세요.

 

 코리의 눈은 사람들의 입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요.

'동그란 입술, 옆으로 벌린 입술.'  이게 코리의 이름이죠. 그래요. 코리는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어요. 코리는 참 신기해요. 사람들은 어떻게 말이란 것을 하고,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입술 모양으로 말을 하는 걸까요? 자신은 이름 하나만을 아는데도 참 힘들었는데 말이죠. 그건 조금은 슬픈 느낌이예요. 모두가 아는 세상을 눈 앞에 두고도 만질 수 없는 것은, 느낄 수 없는 것은 슬퍼요.

 

 슬퍼도 웃을 줄 아는 코리를 위한 선물일까요? 낙타를 좋아하는 코리에게 캐러멜이 생겼어요. 실은 캐러멜은 코리만의 낙타는 아니랍니다. 삼촌네 낙타가 새끼 낙타를 낳았고 캐러멜 색의 조그만 낙타에게 코리가 이름을 붙여준 것 뿐이었죠. 하지만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 낙타는 나만의 것이 되잖아요. 캐러멜도 그랬답니다. 코리만의 캐러멜, 캐러멜만의 코리.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져 갔답니다. 행복하게, 따뜻하게. 사막은 더이상 삭막해 보이지 않았어요.

 

 코리는 캐러멜을 만날 때면 노트와 연필을 들고 가요. 캐러멜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죠. 작은 캐러멜이 코리의 이름을 부른 순간 코리는 알았거든요. '동그란 입술, 옆으로 벌린 입술.' 캐러멜이 코리의 이름을 부른다는 걸. 물론 그건 낙타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코리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코리에게 이미 캐러멜을 말을 할 수 있는, 코리 역시 캐러멜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답니다. 코리는 캐러멜의 말을 옮겨 적었고 그건 모두 시가 되었어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시가 되는 것처럼 말예요.

 

 그리고...

그리고...미안해요. 이번에는 지금까지만 할게요. 조금만 더 담담히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만큼 심장이 따뜻해지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코리와 캐러멜이 말하기만 하면 모두 시가 되는 그들만의 사랑이야기를. 사라하 사막을 호수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투명한 눈물을 닮은 그들의 우정을 기적같은 이야기. 하지만 기적이라고 불리기 싫어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눈이 보이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귀가 들리지 않으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고 알았기에 세상 모든 것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코리와 캐러멜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말은 마음을 타고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알았다해도 사물과 동물과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커버린 듯한 나이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속이 상해 입을 더 꽉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제게 코리가 알려줍니다. 마음의 입은, 마음의 귀는 나이와는 상관 없다고. 마음을 여는 데는 나이, 성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구요. 그래요. 마음을 듣는데는 단 하나만 중요합니다. 열린 마음, 이것 하나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땅에 먹을 것이, 입을 것이 넘쳐난다고 삭막하게 말라가는 다른 나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말을 하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어느 곳에나 꿈이 피어오릅니다. 그 꿈은 모두 반짝 거려요. 그 꿈에 바람을 불어넣어 주세요. 그 꿈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코리가 캐러멜을 보내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랑을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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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형제 - 날개가 필요해 우리들의 날개 아름북스 12
이은하 지음, 홍영지 그림 / 삼성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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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제대로 알아 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철이의 이야기

 

<"여러분, 새 친구가 왔습니다. 이름은 왕대철! 반갑게 맞아주세요.!"

단발머리 여선생님이 대철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이들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내 이름이 왕대철이었지......'

이 녀석, 저 녀석, 겁 없는 악마, 쓰레기.....>   -p.44

 

 

 자신의 이름보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대철이. 초등학교 5학년인 대철이는 자신이 쓰레기 라고 생각해요. 늘 화만 내시는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고, 잘못하면 매 먼저 드는 아빠가 말씀하시고, 학교 친구들도 대철이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며 그렇게 말하니까요. 이제 자신의 이름이 대철인지 쓰레기인지도 모르겠어요.

 

 대철이는 마음이 여린 아이예요. 돈을 뺏는 친구들에게 맞기만 하다가 용기를 내서 싸운 것 뿐이었고, 엄마가 자신보다 강아지를 더 예뻐하기에 엄마가 아끼는 강아지를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주고 왔고, 아빠가 물으시면 대답을 하려 했지만 굳게 다문 입으로 허리띠를 푼 아빠의 매를 그저 맞고마는 아이예요. 친구의 콧대를 부러뜨렸지만 그건 무서웠기 때문이었어요. 그 친구의 괴롭힘을 견디는 건 참 힘들었거든요.

 

 그저 대철이가 원한 건 매일 싸우기만 하시는 부모님께서 대철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고, 낯가림을 잘하는 대철이를 친구들이 조금만 기다려 주었으면 하는 거예요. 부모님께서  대철이가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하고 바라는 것 뿐이예요.

 

 

#쓰레기라고 불려도 좋아. 쓰레기로도 날개를 만들 수 있으니까-만복이의 이야기.

 

 하루종일 웃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하루종일 쓰레기라고 불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처음에는 싫었어요. 쓰레기를 줍는다고 쓰레기라고 부른다면 생선집 친구는 생선으로 고기집 친구는 고기로 불려야 하잖아요. 그래도 웃었어요. 전 약하고 친구들에게 준비물을 빌려야 하고 냄새가 나기도 하고 사실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니까요. 쓰레기로도 멋진 새를, 예쁜 우산을, 아름다운 날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않는 만복이는 아픈 할머니와 먹지 못해 바람에 날라갈 듯한 동생과 살아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는 쓰레기를 줍는 일밖에 못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만복이는 늘 웃는 얼굴이랍니다.

 

 대철이는 매번 인상을 쓰는데  만복이는 매번 웃어요. 아마 그래서 서로 알아본 것은 아닐까요? 만복이는 대철이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먼저 인사도 하고 다가갈려고 노력도 했어요. 물론 대철이의 까칠한 성격으로 인해 무안을 당했지만요. 그것이 대철이가 부끄러워서 그랬다는 것을 안 건 한참이 지난 후였어요.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알아봤고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여주었어요. 우리에게는 위로가, 우리의 아픈 마음을 알아봐주는 딱 한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쓰레기라고 다른 사람들이 불러도 날개를 만들 수 있는 쓰레기라는 것을 알아봐주는 친구가 되었어요.

 

#우린 날아오를 거예요! 쓰레기로 만든 날개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걸까? 대철이의 말처럼 태어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만복이로부터 돈을 달라는 말을 들을 것도 아닌데 왜 대철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하고 만복이를 볼 때면 인상을 쓰는 걸까? 우린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쓰레기로 만드는 걸까?

 

 아이들은 생각을 할 줄 모른다고,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마음이 없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왜 나는 자꾸 잊는걸까? <쓰레기 형제> 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대철이 부모님께 대철이 대신 말하고 싶어서 속이 타들어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아이들의 책에 들어있는 한숨이 점점 깊어진다. 웃음이 넘치는 아이들의 책을 만나기 위해 마음으로 보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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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 레옹의 행복 - 레오나르와 줄리엣의 특별한 이야기 1
아네스 라코르 지음, 김희경 옮김, 릴리 스크라치 그림 / 키다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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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핑크빛 표지의 그림책, 표지에는 스티커를 붙인 듯한 드라이기와 빗을 들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 레옹인 듯하다. 미용사인 레옹씨, 머리카락이 그렇게 적어서야 되겠어요? 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표지를 보고 뒤를 봤을 때 한 문장이 내 눈을 의심하게 한다.

 

"두 사람의 성장 이야기 속에서 사랑, 이별, 슬픔, 열정, 용기, 희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에 사랑과 열정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별과 슬픔이라니 이런 것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음에도 나는 그럴려면 멀었나 보다.  아이들이 읽는 책 속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현실 속에서 사랑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사랑에 대한 환상을 아이들에게 요구했다. 사랑은 영원해도, 영원하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책을 읽고 깨달았다.

 

 사랑 이야기는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배우고 싶은 감정들이 책에서 퐁퐁 솟아난다. 사랑하고 싶은 레옹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아름다운 집에 살고 일요일이면 할머님의 슈크림 빵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전기로 가는 장난감 기차에 32단 기어가 달린 자전거를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레옹. 행복이 가득해서 웃고만 지낼 것 같은 레옹의 어린시절은 예상외로 우울하다.


레옹이 우울한 이유는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레오나르 티쇼' 때문이었다. '아르티쇼'라는 별명으로 친구들은 레옹을 엄청 놀려댔죠. '아르티쇼'는 커다란 잎사귀가 달린 국화라는 뜻이었거든요. 문득 레옹의 아픔을 보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생각났답니다. 삼순이란 이름의 아픔을 아는 자만이 레옹의 아픔을 알 수 있겠죠? 레옹은 친구들의 놀림으로 점점 더 내성적이 되고 슬프고 외로워졌어요.

 하지만 왕따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아픈 무기는 레옹에게는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그때 줄리엣이 레옹 앞에 나타났어요. 근시가 너무 심해 늘 커다랗고 무겁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는 줄리엣을 본 레옹은 그녀가 왕따임을 알고는 그녀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둘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답니다.
 
 
레옹은 줄리엣에게 다양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주는 것을 참 좋아했답니다. 줄리엣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던 이유도 있지만 레옹의 손에서 줄리엣의 머리카락은 더 아름답게 변신해갔어요. 줄리엣은 다양한 머리를 하게 되어 참 행복했답니다. 제가 맘에 드는 것은 땋아서 끝을 풀어 헤친 머리였답니다. 앞머리가 참 귀여워서 혼자 큭큭 거리며 웃었답니다.
 
줄리엣 역시 레옹의 해주는 아름다운 머리와 어울리도록 두꺼운 안경을 벗고 콘택트 렌즈를 맞추기로 했어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거죠. 역시 두꺼운 안경을 벗은 줄리엣는 동네 총각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줄리엣은 결국 레옹과의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안경을 벗음으로서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을 어떻게 원망할 수 있겠어요. 왕따였던 그녀를 둘러싼 많은 친구들은 줄리엣에게 행복을 전해준 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레옹은 아주 멀리 떠나기로 했어요. 그녀와 같은 곳에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니까요. 사랑이 떠났다고 해서 삶이 멈추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레옹은 여행을 하던 중에 '생-파르도-쉬르-루와르- 시에 머물기로 마음 먹었어요. 아담한 도시는 이상하게도 침울해 보였어요. 그래서 레옹의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레옹의 마음도 우울했으니까요.

 

 하지만 레옹은 우울해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참 똑똑하죠? 하지만 이 깨달음을 위해서 레옹은 많이 울고 많이 힘들어야 했답니다. 레옹은 마을에 <레옹 헤어살롱>을 열었어요. 레옹이 참 멋진 미용사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잖아요.

 

 레옹은 미용실을 열고 열심히 일했고 마음 사람들은 점점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레옹의 마음도 행복해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레옹은 겁이 난답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거든요. 레옹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책을 읽는데는 물론 나이가 상관이 없다. 하지만 가끔 어른들은 상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어른들이라면 이 책은 상관이 없다. 사랑, 꿈, 행복, 열정, 이별, 슬픔, 용기는 우리의 삶에서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기에! 이 책을 내 친구와 같이 읽었는데 우리는 정말 허리를 펼 수 없을만큼 웃었댔다. 재밌는 그림이 큰 몫을 했다. 다 웃고나서 책을 다시 보니 내용 역시 위트가 넘친다. 레옹을 통해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가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아이들과 읽으면 짝꿍 이야기나 좋아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내 친구들에게 선물 해 준다면 웃음과 함께 마음 속 무언가를 움직이게 해줄 것이다. 스티커를 붙인듯 올록볼록한 그림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좋을 것 같다.

 

 레옹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줄리엣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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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라이팅 클래식 3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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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손에 들고 놓고를 몇번이나 반복한 끝에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이건 차라를 읽지 않으려는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내게 니체의 책은 위험한 책이 아니라 어려운 책이었다. 열장을 읽어가기도 전에 머리 속에 책의 문장들이 단어로, 단어가 글자로 해체되기 시작했고 그 글자들은 더 작은 모음과 자음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내 머리 속 블랙홀로 사라져 읽었음에도 읽지 않은 듯했다.

 

 이 책은 위험하다는 타이틀을 달고 내 앞에 약간 두툼한 몸집을 내세우고 그 앞에 니체를 그린듯한 그림을 내세워 나를 한 순간 제압해버린다. 니체의 콧수염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 걸까? 난 그를 알지도 못하는데. 이 책을 다 읽기까지의 시간을 한 달로 잡고 목차를 보며 하루에 읽을 분량을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라도 니체를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전에 읽은 니체와 바그너의 이야기가 나를 끌어들인 탓일까? '신은 죽었다' 라는 말 하나의 울림이 멋져 보여서 일까? 아무 뜻도 모르고 말하던 그 말은 의미를 잃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을 매료시킬가?  대체 니체는 왜 사람을 끌어들이게 만들까? 저자가 니체를 이야기 함으로서 나에게 전해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계획을 세워서 책을 읽는 것이 괜찮은걸까란 마음 속 의구심은 책을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자 사라졌고 그 후로는 책이 아니라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하듯 앞을 다시 보기도 하며 혹은 수업 중간중간 딴짓을 하며 수업을 듣기도 했다. 수업은 횟차를 더 할수록 몰입의 순간의 연속이었고 질문조차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듣을정도로 푹 빠지게 만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왜 조금 더 참지 못하고 읽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만큼 니체의 말은 매혹적이었다.

 

 1부에서는 니체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고 있다. 니체의 삶이 얇은 종이로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면서도 서글퍼진다. 알면 알수록 그에게 '좋은 귀' 가 되어주지 못해 슬프다면 니체는 웃을까? 아니면 그냥 등을 보이며 듣는 척도 하지 않을까? 그도 '좋은 귀'를 찾지 못해 슬펐겠지만 나역시 '좋은 귀'가 될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해 누구보다 슬펐다.

 

 "나의 모든 작품은 낚시 바늘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낚시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해도 내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물고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니체는 그에게 동조하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니체의 고독이 일곱 겹이나 된다고 해도 그에게 친구가 되어 줄 수 없는 내가 혹은 더 많은 사람이 더 슬플 수도 있는 것이다. 고작 이 책 한 권을 읽고 니체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인데도 니체의 여러 책을 읽는다 해도 니체의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서글픈 것이다. 니체의 낚시 바늘을 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는 것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이렇게 위로하면서 책을 봤다. 니체를 뛰어넘는 생각을 할 수도 없는 나는 니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나는 제대로 살고 싶어진다. 그래서 니체의 책은 위험하다.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 되었음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고 자기 가치의 주인이 될 수 없다면 살 이유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니체만큼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주인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고 가슴 속에는 어느새 뜨겁게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나를 흔들어 놓는다. 끓어오르면서 불순물을 버리는 내가 되고 싶어진다. 온전한 나만의 나! 그것은 가능할까? 이런 망설임조차 니체에게 들킬까 무섭기만 하다. 나의 삶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운명애'(amor fati).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해 주는 것이다. 창조!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그 고통을 즐기는 자만이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위대한 형상을 끄집어낼 선물, 그것이 내게는 니체가 선물해 준 책이 아닐까?

 

 책의 2부로 들어가면서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의 해부가 시작된다. '신은 죽었다' 부터 '위버멘쉬'까지 읽어 내려 가다보면 푹 빠져서 고개를 연실 끄덕이는 나를 보게 된다.  신과 종교, 국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맞아' '옳은 말이야' '왜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 못 한거지?' 라고 속으로 말하며 책을 보다 아차 싶다. 역시 난 니체로 부터 선택받지 못한 독자가 되고 말거야! 읽을 수 있는 눈이 달려 있지만 니체가 바라는 읽을 수 있는 눈은 아니기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르고스에게 백 개의 눈이라도 빌려볼까?

 

 3부는 <차라투스트라> 의 여행 가이드북과 총체적인 설명을 해주며 책을 마무리 해주고 있다. 또한 니체를 알고자 하는 이들이 읽으면 도움이 되는 책들도 설명해주고 있어 내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덮고 책장에 꽂혀있는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의 빨간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니체를 알면 알수록 고통을 겪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을 즐기고 견디는 자가 되고 싶게 만드는 것도 니체다.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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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학교에 간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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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다케 히로타다, 내 나이대의 친구들은 대부분 그를 안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이기도 하지만 그해 방학동안 우리에게 그의 책은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도, TV를 통해서도 전해져왔다. 수능으로 힘들어하던 우리에게 힘을 주고 싶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가 처한 현실을 보게 되고 나를 위로하게 된다.

 

 사람이란 얼마나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걸까를 떠올렸다. 오토다케를 보면서 내 삶은 괜찮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오토다케씨도 사는데 내가 이러면 되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나에게는 신체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되려 힘든 것은 쉽게 포기하고 마는 성격과 의지박약에 있었다. 오토다케 그의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 부러웠고 그를 끝까지 이끌어주시는 그의 학교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그는 그렇게 부러움과 나의 부끄러움 속에서 사라져갔다.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기 전까지.

 

 오토다케, 여전히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 앳된 모습과 귀여운 미소가 사라지고 평화로운 웃음과 함께 그가 분필을 끼우고 나타났다. 분필? 선생님? 그래, 선생님! 오토다케가 선생님이 된 것이다. 오토다케의 표지 속 사진 만으로 두근거렸다. 장애를 가진 이가 자유롭게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장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그렇게 자란다면 장애를 입은 친구나 사람들을 쉽사리 차가운 눈길로 쳐다보는 행동은 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다케, 그가 두근거리는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며 무언가 이야기 한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들리는 소리. '장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은 장애가 아닌 일본 학교의 현주소와 고민 그리고 대안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 이 책은 장애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오토다케가 일본 교육의 씁쓸한 현실과 아직은 남아있는 희망찬 교육의 현장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대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이들의 바른생활 파트너로 활동하면서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오토다케는 교육 분야에서 일하려고 했지만 교육은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고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한다. 오토다케가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게끔 해 준 그의 어머니 말씀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래, 나 역시 학력 사회라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학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해봤자 아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네가 정말로 학력 따윈 삶의 행복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네 자신이 학력을 제대로 갖춘 뒤에 그걸 주장했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설득력이 생기니까." -p.18

 

 책을 읽노라면 <오체 불만족>일 때도 그랬지만 오토다케의 주위에는 참 멋지고 든든한 그리고 엄한 분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이건 오토다케가 장애를 가지고서도 누구나처럼 활발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배려를 전해주고 싶다는 오토다케 그가 이제는 그걸 돌려주기 위해 교단으로 향한다.

 

 "교육은 문부성 회의실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실이라는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p.23

 

 오토다케는 교생실습을 하면서 생생하게 겪은 체험과 해외 교육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주며 앞으로 나아갈 대안과 희망을 이야기 해준다. 물론 씁쓸한 일도 부지기수다. 체벌논란, 성추행 논란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건넬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학력격차로 인한 사교육 증대, 장애아동과의 통합교육 논란, 왕따 등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문제를 책도 다루고 있다. 이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의 현실을 보며 모델을 삼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오토다케의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본다. 학교에는 이미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간다고 해도, 학교를 불신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고 해도 학교는 포기할 수 없다. 선생님이라는 살아있는 사람이 학교에 있기에, 포기했다고 말하면서도 잡아주길 원하는 학생들이 있기에 학교는 희망의 풍선을 터트릴 수가 없다. 꿈과 용기, 신뢰와 배려가 넘치지는 못하지만 아직 학교에는 차가움보다 따뜻함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감싸안으려는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는 우리의 체온보다 2 도 더 높아질려고 애쓰고 있다.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책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라서 한번 나를 당황시켰고 그 속에 담긴 교육의 여러 모습들이 내게 희망을 갖게 한다. 점점 더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선생님의 지위는 내려가고 있다. 선생님이 바로서는 교육, 신뢰와 존경이 있는 교실을 책을 통해 꿈꿔본다. 오토다케의 교사생활이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는 걸 보면 그의 팬이 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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