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도둑과 목요일의 키친 - Faust Novel
하시모토 츠무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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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느낌의 제목에 피식 웃음이 난다. 고마운이에게 선물 받은 책으로 인해  마음은 이미 뽀송뽀송해졌고, 20대가 되면서 좋아지기 시작한 고양이 꼬리가 그려진 책 표지에에 내 마음은 둥둥 떠오르기 시작한다. 둥둥 떠오르는 마음을 담담한 문체로 저자는 바람을 불어넣어주었고 나는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하긴 앞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에서는 앞과 뒤가 없으므로)

 

 

 그렇게 바람따라 흘러가는 마음을 잡을 길 없어 그냥 둔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책을 읽던 도중 마음은 따뜻하리만치 행복한 그리고 조금은 슬픈 먹구름을 만났다. 비를 내리는 먹구름은 생각했던 것보다 차갑지도 무서운 색깔도 아니였다. 손을 대자 비를 뿌리는 것이 미안한 듯 나를 한번 꼬옥 안아준다. 수분기 가득한 바람이 부는 듯한 포옹, 그 품에서 울고야 만다. 울려서 미안하다는 먹구름에게 안녕을 고하고 다시 저자가 불어주는 바람에 실려 책 속을 여행했다.

 

 하시모토 츠무구는 <별똥별 머신>를 통해서였다. 담담한 문체에 읽는 도중 가슴이 저렸을 때 왜인가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던 저자. 그의 책을 두 번째 만나고서야 담담한 바람으로 불어넣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작가의 힘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가 불어 준 바람에 나는 마음을 놓고 있었음을, 마음을 쉴 수 있었음을 알고는 그가 한없이 고마워진다. 일본 소설의 힘은 이런 조용한 바람에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책은 17살의 미즈키란 여고생과 동갑인 켄이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미즈키와 켄이치는 가슴 속에 반짝이는 상처가 있다. 미즈키는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새 아버지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엄마는 가출해 버린 집에서 다섯 살 남동생 코우와 살고 있다.

 

 엄마의 가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는 미즈키가 그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해오다시피 살아서이다. 음식과 청소를 엄마보다 잘 하는 미즈키인지라 엄마가 사라졌어도 불편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 말투에 마음의 출렁거림을 막고 웃는 미즈키의 얼굴이 떠오른다. 괜찮을리 없다. 아무리 엄마가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엄마는 미즈키를 아직은 어른이 아님을 알려 줄 어른이다. 포근히 안아줄 수 있고, 따뜻한 말을 해 줄 수 있고, 동생 코우를 울지 않게 해 주는 것도 엄마이다.

 

 어렸을 때부터 예상치 못한 이별에 어른아이가 되어버린 미즈키, 자신이 결정한 것도 아닌데 세상은 그 결정에 돌아간다. 그런 미즈키가 결심한다. 자신의 힘으로 지켜주고자 하는 것을 지키려 한다. 그 행동에 응원을 보내느라 나는 정신이 없다.

 

 무릎 인대를 다쳐서 더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켄이치란 소년 역시 매력만점이다. 덤덤한 척 하지만 마음은 홍당무가 되는 귀여운 소년. 그가 미즈키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미즈키는 동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이 다친 무릎보다, 저는 다리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켄이치는 미즈키와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지어준다. 그가 참 좋다.

 

 켄이치와 코우 그리고 미즈키는 누가 뭐래도 가족이다. 가짜 가족이 아니라 진짜 가족. 그들이 가족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도 미즈키와 함께 맞서 싸울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서도 가족이라고 우길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믿기에! 미즈키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가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책을 끝마치고 나니 이 책을 선물해 준 이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그 분은 어디에서 웃었을까? 울었을까? 나처럼 다 읽고 나서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켰을까? 아니면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까? 참 잘 읽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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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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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었니?
 

 어릴 적 참 못하던 놀이가 숨박꼭질이었다. 무서워서 어두운 곳에는 숨지도 못하고  술래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만 숨어 제일 먼저 걸려서 술래가 다른 아이들을 찾을 때까지 함께 다니기도 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칠 때까지 찾아지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면 신기해서 어디 숨었냐고 물어보고는 했는데 한 친구는 끝까지 자신이 숨은 곳을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해 술래를 계속 했던 나는 그만 아이에게 화를 냈었다. 너 집에 갔다 온거지? 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나무 바로 앞 숲에 있었다고. 숲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우리 무릎 높이의 수풀 속에 그 아이는 누워있었다고 했다. 싱긋 웃으며. 해질녘의 그 아이의 웃음은 아무런 사심이 없어 보였고 해맑아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지켜 보고 있었을까?

 

 <ZOO> 를 통해 내게 찾아와 밤을 훔쳐 달아나고 소름을 남겨준 작가 오츠이치의 이번 책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는 내게 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뺏어 간걸까? 제목을 봤을 때  참 예쁘네라고 생각하다가 '나의 사체' 라는 말에 놀라고 만다. 기묘한 제목의 책을 펼쳐든 순간 내가 뺏긴 것은 내 몸 속의 열과 오늘 밤의 달콤한 잠이고 얻은 것은 여름날의 축축한 더위를 날려버릴 서늘함과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의 아찔함이었다. 책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늘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돋는 이야기를.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마지막으로, 나는 아까 디딤돌을 삼았던 커다란 바위에 등을 부딪쳐 죽었다. -P.25

 

 누가 죽었는지 알고, 누가 죽였는지를 나는 안다. 초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밝혀진 진실 앞에 고개가 갸웃한다. '오츠이치, 당신 내게 어떤 공포를 보여줄 셈이야? 이건 무슨 게임인거야?' 속으로 중얼중얼 하며 책장을 넘기길 주저하는 내게 저자가 말한다. '일단 따라와야 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면 뒤로 도망갈 순 없잖아?'

 

 범인과 진실을 모르는 공포는 익숙했지만 이렇게 진실을 알고 진행되는 공포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죽은 아이의 시선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그 아이가 죽었음에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죽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사체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나의 사체' 이야기인 것이다.

 

 거울 속의 나를 보고 느낀 이질감을 기억한다. 내가 내가 아닌 듯하지만 그건 분명 나이다. 내 죽은 몸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오츠이치는 그 느낌을 독자에게 맡겨버렸다. 절제된 말투는 죽음으로 인한 주인공의 감정을 꼭꼭 감춘 듯 했고 그저 자신 주위를 빙~ 둘러보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이야기 해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책이 주는 오싹함의 근원이 아닐까? 책 속에 꽁꽁 싸맨 냉기와 원한 그리고 서글픔과 함께 몰아치고 덕분에 팔에 돋은 소름은 쉽사리 가라앉지 못한다.

 

 특히나 이 이야기의 공포를 높이는 것은 죽은 아이, 사쓰키의 나이가 9살이라는 것과 그 아이를 죽인 아이, 야요이 역시 9살 동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오이와 함께 사체를 은폐 시키려고 하는 오빠 켄 역시 어린 11살이다. 그 아이들이 감당할 죽음의 그림자와 범죄 조용히 올라오는 공포. 싱긋 웃으며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한 켄의 얼굴이 떠올라서 머리카락이 쭈뼛선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어린이 있는 곳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걸까?

 

 어린이들은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기에 더 무서운 이야기.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한 사쓰키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싹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잔함을 담아낸다.

 

 #요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일거라 믿는 것. 이것이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 아닐까? 내 추리가 딱 맞아 떨어질거란 자신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을 어긴터라 책 마지막에서 앗! 이란 소리를 지르고 만다. 하지만 앞의 이야기만큼의 놀라움은 아니여서 아쉬웠다. 혹시 앞의 이야기에 기운을 모두 써서 지쳐서 그런건 아닐까? 란 생각도 해 본다.

 

 도리고에 가家에는 마사요시와 그의 아내 요코 그리고 식모로 일하는 키요네가 산다. 그리고 그 집에는 비밀이 담겨 있다. 아니, 비밀은 집에 아니라 사람에게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

 

 

#카고메 카고메,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

 

 카고메는 어릴적 일본 아이들이 자주 하는 놀이로 빙 둘러싼 아이들의 원 중앙에 술래가 서 있으면  아이들이 돌면서 "카고메 카고메 (역: 둘러싸라~ 둘러싸~)" 를 부르며 빙빙 돌다가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 에서 멈추면  술래가 뒤에 있는 아이를 맞추는 거라고 한다. (역자의 말 참고-눈을 감고 술래가 맞추는 건지는 모르겠다.)  

 

 책 띠지와 첫 번째 이야기 시작에 적혀있는 카고메 놀이를 보며 왜 적혀있는 걸까 생각했 봤다.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 이 말이 첫 번째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 이해가 되고 입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무서움이 몰려온다. 이 놀이를 일본 아이들은 웃음 소리와 함께 재밌게 할텐데 내게는 그 웃음 소리마저 무서워질 것 같다. 

 

 역자의 말에서 책의 공포만큼이나 놀란 것이 있는데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를 오츠이치가 17살에 쓴 그의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대체 그 어린나이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그가 데뷔작을 넘어서는 작품을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면서 앞으로의 여름은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해 본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앞다투어 우리나라에 소개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 온다. 한 꺼번에 너무 많이 발표되면 무서워서 정말 잠이 못들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의 작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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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1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티티새님 반가워요^^ 추천하고 갑니다~
 
이산 정조대왕 - 조선의 이노베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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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그를 모르고 20대 후반까지를 살아왔음이 내게는 참 부끄러운 사실이었다. 대왕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왕이었음에도 그를 몰랐다는 사실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했다. 영원한 제국으로 정조의 삶을 살짝 엿본 후에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로 내게 정조는 잊지 못할 사람이 되어간다. 그를 사람이라 해도 될까? 그 시절에 하늘에 있는어떠한 신이 그에게 어울리는 별자리를 새로 만들어 하늘에 새겨주었을텐데란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참 좋았을텐데, 죽어서도 빛날 것만 같던 그 빛을 쉬이 땅 속에 묻기 힘들었을테니.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책은 읽기도 전에 점수를 후하게 주게 된다. 정조대왕이란 이름만으로 책은 읽기도 전에 소중한 대접을 받았고 이 책을 읽는동안 그 어떤 소설보다 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 정조를 앞에 세웠다는 것만으로 눈 감아주기에는 아쉬운 점이 걸린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정조대왕의 화성행차의 이야기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기회가 닿는다면 조선 왕조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의궤'를 다룬 책이 있다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화성 행차의 모습은 웅장하고 거대하였으며 아버지를 향한 정조의 사랑과 어머니를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총 8일을 두고 치룬 화성 행차 이야기 뒤에는 정조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정조 독살설에 대해 저자는 그를 쉬이 보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마음이 만들어 낸 안타까움이라 말하고 있다. 정조는 죽었다. 독살이든 아니든 그의 죽음은 그 자체로 온 백성의 눈물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고 그로 인해 태평성대의 증거를 나타내던 논의 벼 포기마저 하얗게 말라 죽었다. 그 사실이 아픈 것이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일이 눈 앞이었는데 죽었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다. 그가 뿜어내던 환한 빛들이 너무나 어이없게 금방 사라졌다는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이다.

 

 2부는 사도세자의 아들로서의 정조를 말하고 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에 그가 당했어야 할 핍박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에 그가 감당했어야 할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죄송함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린 정조는 속으로 속으로 쌓아냈을 것이다. 왕이 되려면, 아버지의 한을 풀려면 지금 죽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커왔을 것이다. 정조는 왕이 된 후 그 마음을 한번에 쏟아내지 않았다. 아버지의 한보다 그는 나라의 안정을 먼저 떠올렸다. 그는 왕이었다. 올바른 신하들은 많지 않았것만 올바른 왕이 되고자 했던 정조 그의 애달픔을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왕이었기에 외로웠고 왕이었기에 외로움을 참고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했던 정조의 아픔이 담겨있던 장이었다.

 

 3부는 정조가 이뤄낸 개혁들이 적혀있다. 이 부분은 다른 책들에서도 봐왔것만 그의 개혁과 추친력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이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뤄낼 수 없는 일들-상언과 격쟁은 내 마음을 울렸다. 세종대왕 시대의 백성들은 무조건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던 내게 그 시대의 백성이 조세로 인해 괴로웠고 힘든 생활을 보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진정 태평성대를 이뤄 낸 이는 정조대왕이지 않았을까? 정조는 그 자리에서 힘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힘듬으로 농민의 힘들을 덜고자 했고 재주있는 자들의 아픔을 덜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더 힘들었다.

 

 4부는 정조를 둘러 싼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정조 개혁을 시작하게 끔 도와주었던 홍국영의 허망한 꿈부터 두 얼굴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비롯해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까지 여러 인물을 다루고 있다.

 

  책 소개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책의 아쉬운 점을 말해야 겠다. 책 속의 정조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저자 역시 정조의 삶을, 정조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잊을만하면 가벼운 말투들이 나오는 것일까? 읽던 도중 순간 '엽기 역사' 시리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처음부터 정조를 차분하고 깊게 조명해보고자 했다면 가벼운 말투는 자제 해야 했던 것 아닐까?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돋우고자 했다면 할말 없지만 내게는 마이너스가 되는 문체였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저자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정조대왕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전의 책들에서 나온 정조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으며 저자가 바라보는 정조에 대해서 뚜렷한 모습이 없다. 한편 저자가 한 주장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의구심이나 깊이 있게 파고들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 역사는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만은 없다.

 

 정조라는 이름만으로 책은 반가움이 컸지만 그 반가움은 어딘지 모르게 입안에 와서 감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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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말투 2007-10-1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부로 현대적 어법으로 처리한것 같은데요
이 책은 학문을 위한 전문서적이 아니라 일반 대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했기때문에 자칫 딱딱해질수 있는 내용들을 편하게 읽도록 한 저자의 배려라고 생각되네요.
그렇다고 본질까지 훼손한것 같지는 않은데요.
역사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벼워선 안된다는건 좀 관념처럼 들리는데 말이죠..ㅎ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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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아름다운 바람이 불고- 그곳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처럼 들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죠.

 그곳은 아름다운 습원이 있고- 그곳은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한 풍경인 듯한 습원이 있죠.

 그곳은 아름다운 학교가 있고- 그곳은 이상하리만치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학교죠.

 그곳은 아름다운 비밀이 있고- 아름다운 비밀은 들여다 볼수록 아름다움으로 더욱 빛나죠, 칼날 같은 아름다움, 피가 날 것 같은 아름다운 비밀이 숨겨 있죠.

 

 그곳으로 초대하죠. 당신만을.

 

 온다 리쿠, 그녀만큼 학교라는 공간을 이용한 미스터리를 잘 쓰는 작가가 있을까?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 학교라는 공간을 그녀는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라고 이야기 했다. 닫힌 공간의 학교, 이번에 온다 리쿠는 그 학교를 정말로 닫힌 공간으로(외부로나, 내부로나) 만들었다. 넓은 습원을 둘러싼 파란 언덕의 학교. 기숙사가 갖추어진 학교는 입학하게 되면 외부로 부터 단절된 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학교,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한 학교, 그 부족함을 알았다 해도 나갈 수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 학생들은 누군가로부터 유폐되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부터. 그렇기에 그들이 닫힌 공간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혹은 하든 그 사실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 학교. 아름다운 풍경과 향기를 머금은 학교, 정말 아름다운가?

 

 '삼월의 학교' 입학과 졸업이 3월에 이루어지는 학교. 그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하나. '2월의 마지막 날 전학 온 학생이 그 학교를 망하게 한다.' 그 전설을 모르고 2월의 마지막 날 전학 온 학생 리세를 중심으로 이야기 문이 열리고 있다.

 

 아니, 문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에서 이미 열려 있었는 지도 모른다. 4부에 얼핏 나온 리세의 이야기와 삼월의 학교,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다 알고 있는데, 다 알려 준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건가, 이 작가 라며 입을 삐죽거리는 내게 작가가 역시나 한 방을 먹인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이 말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저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미스터리, 아름다운 스산함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마지막에 이르러 짜맞추어지는 퍼즐 조각은 눈을 혼란케 한다. 눈 앞에서 거대한 큐브가 손 안에 들어올 만큼의 크기로 작아지는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트랜스 포머를 본 탓일까;;;)은 온다 리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되어간다. 아름다움에 취하고, 은근한 공포에 취하고, 알수 없는 무엇에 취하고 결국 남은 건 감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봤던 리세의 고등학교 이야기를 닮은 <황혼녘 백합의 뼈>를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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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4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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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거울 속으로 팔을 넣어 오늘 내게 필요한 가면을 몇 개 꺼내 마음의 가방에 담는다. 그 느낌은 생각보다 섬뜩하고 소름이 돋지만 하루의 평안을 약속하기에 거울 속으로 손을 집어 넣을 때의 아픔은 이미 무감각해진지 오래이다. 어쩔때는 가면을 벗지 않고 잤다는 사실도 잊고 거울 속의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도 몰라서 한참을 쳐자보고 있을 때도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정말 나인가? 이것도 가면을 쓴 나는 아닐지.
 
 가면을 쓰고 학교에 발을 들여 놓으면 슈지는 인기 만점의 고등학생이다. 화려한 말솜씨와 매력적인 외모는 친구들의 호감을 자극하고 누구나 슈지가 재치있고 밝은 성격의 인기있는 남자아이라고 단정 짓는다. 아니, 슈지가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가면을 써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슈지는 타인을 대할 때는 절대 가면을 벗지 않는다. 
 
 가면을 쓰는 삶을 전혀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슈지는 타인을 기만하기 위해서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의 모습에서 <인간실격>의 요조가 생각난다. 사람을 대하기 어려웠던 요조는 점점 사람으로 멀어져 갔지만 슈지는 두려운 자신을 속이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을 택했다. 그 선택은 매력적인 슈지를 가능하게 했고, 슈지 역시 사람들로 부터 호감을 얻는 다는 것에 편함과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도 몇 개의 가면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좋지만 사람에게 다가서는 법을 몰라, 진정 사랑 받는 법을 몰라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닐까?
 
 고등학생의 슈지가 밉지 않고 안타까운 이유는 그 아이의 선택이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점점 힘들고 지쳐간다는 것이다. 속으로 아픔이 차곡이 쌓이는 슈지. 그도 겁이 난걸까? 가면을 벗으면 자신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까란 추측이.
 
 책은 슈지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답답함 보다는 상쾌함, 유쾌함, 십대만이 주는 환함이 담겨있다. 작가의 젊은 나이가 작용한 것일수도 있지만 고등학생들의 심리를 잘 표현해서 마치 내가 고등학교로 돌아간 듯하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로. (물론, 그 시절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반짝반짝 빛나는 인기남인 슈지 앞에 들돼지를 연상시키는 고타니 신타라는 지저분하고 완전 비호감인 남학생이 전학온다. 이미 왕따는 예상된 결과. 슈지는 고타니에게 노부타(들돼지)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호남형 노부타로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슈지의 제목 그대로의 '들돼지를 프로듀스' 의 야심한 계획이다.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즐겁게 실행하는 슈지의 모습은 마냥 천진난만한 고등학생이다. 활발하고 행복한 모습의 고등학생 무리, 그 속에 들어가고 싶다. 슈지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친구가 되고 싶었으며 그의 가면을 벗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슈지는 뒷걸음 치겠지만 그래도 뒤에서 잡아주는 친구가 되고 싶어 괜히 애가 탄다.
 
 남학생들의 휘파람 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책. 그 책에 담긴 한숨이 사라지길 바라며 슈지의 행로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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