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거울 속으로 팔을 넣어 오늘 내게 필요한 가면을 몇 개 꺼내 마음의 가방에 담는다. 그 느낌은 생각보다 섬뜩하고 소름이 돋지만 하루의 평안을 약속하기에 거울 속으로 손을 집어 넣을 때의 아픔은 이미 무감각해진지 오래이다. 어쩔때는 가면을 벗지 않고 잤다는 사실도 잊고 거울 속의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도 몰라서 한참을 쳐자보고 있을 때도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정말 나인가? 이것도 가면을 쓴 나는 아닐지.
 
 가면을 쓰고 학교에 발을 들여 놓으면 슈지는 인기 만점의 고등학생이다. 화려한 말솜씨와 매력적인 외모는 친구들의 호감을 자극하고 누구나 슈지가 재치있고 밝은 성격의 인기있는 남자아이라고 단정 짓는다. 아니, 슈지가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가면을 써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슈지는 타인을 대할 때는 절대 가면을 벗지 않는다. 
 
 가면을 쓰는 삶을 전혀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슈지는 타인을 기만하기 위해서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의 모습에서 <인간실격>의 요조가 생각난다. 사람을 대하기 어려웠던 요조는 점점 사람으로 멀어져 갔지만 슈지는 두려운 자신을 속이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을 택했다. 그 선택은 매력적인 슈지를 가능하게 했고, 슈지 역시 사람들로 부터 호감을 얻는 다는 것에 편함과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도 몇 개의 가면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좋지만 사람에게 다가서는 법을 몰라, 진정 사랑 받는 법을 몰라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닐까?
 
 고등학생의 슈지가 밉지 않고 안타까운 이유는 그 아이의 선택이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점점 힘들고 지쳐간다는 것이다. 속으로 아픔이 차곡이 쌓이는 슈지. 그도 겁이 난걸까? 가면을 벗으면 자신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까란 추측이.
 
 책은 슈지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답답함 보다는 상쾌함, 유쾌함, 십대만이 주는 환함이 담겨있다. 작가의 젊은 나이가 작용한 것일수도 있지만 고등학생들의 심리를 잘 표현해서 마치 내가 고등학교로 돌아간 듯하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로. (물론, 그 시절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반짝반짝 빛나는 인기남인 슈지 앞에 들돼지를 연상시키는 고타니 신타라는 지저분하고 완전 비호감인 남학생이 전학온다. 이미 왕따는 예상된 결과. 슈지는 고타니에게 노부타(들돼지)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호남형 노부타로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슈지의 제목 그대로의 '들돼지를 프로듀스' 의 야심한 계획이다.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즐겁게 실행하는 슈지의 모습은 마냥 천진난만한 고등학생이다. 활발하고 행복한 모습의 고등학생 무리, 그 속에 들어가고 싶다. 슈지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친구가 되고 싶었으며 그의 가면을 벗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슈지는 뒷걸음 치겠지만 그래도 뒤에서 잡아주는 친구가 되고 싶어 괜히 애가 탄다.
 
 남학생들의 휘파람 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책. 그 책에 담긴 한숨이 사라지길 바라며 슈지의 행로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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