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었니?
 

 어릴 적 참 못하던 놀이가 숨박꼭질이었다. 무서워서 어두운 곳에는 숨지도 못하고  술래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만 숨어 제일 먼저 걸려서 술래가 다른 아이들을 찾을 때까지 함께 다니기도 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칠 때까지 찾아지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면 신기해서 어디 숨었냐고 물어보고는 했는데 한 친구는 끝까지 자신이 숨은 곳을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해 술래를 계속 했던 나는 그만 아이에게 화를 냈었다. 너 집에 갔다 온거지? 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나무 바로 앞 숲에 있었다고. 숲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우리 무릎 높이의 수풀 속에 그 아이는 누워있었다고 했다. 싱긋 웃으며. 해질녘의 그 아이의 웃음은 아무런 사심이 없어 보였고 해맑아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지켜 보고 있었을까?

 

 <ZOO> 를 통해 내게 찾아와 밤을 훔쳐 달아나고 소름을 남겨준 작가 오츠이치의 이번 책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는 내게 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뺏어 간걸까? 제목을 봤을 때  참 예쁘네라고 생각하다가 '나의 사체' 라는 말에 놀라고 만다. 기묘한 제목의 책을 펼쳐든 순간 내가 뺏긴 것은 내 몸 속의 열과 오늘 밤의 달콤한 잠이고 얻은 것은 여름날의 축축한 더위를 날려버릴 서늘함과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의 아찔함이었다. 책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늘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돋는 이야기를.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마지막으로, 나는 아까 디딤돌을 삼았던 커다란 바위에 등을 부딪쳐 죽었다. -P.25

 

 누가 죽었는지 알고, 누가 죽였는지를 나는 안다. 초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밝혀진 진실 앞에 고개가 갸웃한다. '오츠이치, 당신 내게 어떤 공포를 보여줄 셈이야? 이건 무슨 게임인거야?' 속으로 중얼중얼 하며 책장을 넘기길 주저하는 내게 저자가 말한다. '일단 따라와야 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면 뒤로 도망갈 순 없잖아?'

 

 범인과 진실을 모르는 공포는 익숙했지만 이렇게 진실을 알고 진행되는 공포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죽은 아이의 시선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그 아이가 죽었음에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죽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사체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나의 사체' 이야기인 것이다.

 

 거울 속의 나를 보고 느낀 이질감을 기억한다. 내가 내가 아닌 듯하지만 그건 분명 나이다. 내 죽은 몸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오츠이치는 그 느낌을 독자에게 맡겨버렸다. 절제된 말투는 죽음으로 인한 주인공의 감정을 꼭꼭 감춘 듯 했고 그저 자신 주위를 빙~ 둘러보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이야기 해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책이 주는 오싹함의 근원이 아닐까? 책 속에 꽁꽁 싸맨 냉기와 원한 그리고 서글픔과 함께 몰아치고 덕분에 팔에 돋은 소름은 쉽사리 가라앉지 못한다.

 

 특히나 이 이야기의 공포를 높이는 것은 죽은 아이, 사쓰키의 나이가 9살이라는 것과 그 아이를 죽인 아이, 야요이 역시 9살 동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오이와 함께 사체를 은폐 시키려고 하는 오빠 켄 역시 어린 11살이다. 그 아이들이 감당할 죽음의 그림자와 범죄 조용히 올라오는 공포. 싱긋 웃으며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한 켄의 얼굴이 떠올라서 머리카락이 쭈뼛선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어린이 있는 곳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걸까?

 

 어린이들은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기에 더 무서운 이야기.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한 사쓰키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싹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잔함을 담아낸다.

 

 #요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일거라 믿는 것. 이것이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 아닐까? 내 추리가 딱 맞아 떨어질거란 자신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을 어긴터라 책 마지막에서 앗! 이란 소리를 지르고 만다. 하지만 앞의 이야기만큼의 놀라움은 아니여서 아쉬웠다. 혹시 앞의 이야기에 기운을 모두 써서 지쳐서 그런건 아닐까? 란 생각도 해 본다.

 

 도리고에 가家에는 마사요시와 그의 아내 요코 그리고 식모로 일하는 키요네가 산다. 그리고 그 집에는 비밀이 담겨 있다. 아니, 비밀은 집에 아니라 사람에게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

 

 

#카고메 카고메,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

 

 카고메는 어릴적 일본 아이들이 자주 하는 놀이로 빙 둘러싼 아이들의 원 중앙에 술래가 서 있으면  아이들이 돌면서 "카고메 카고메 (역: 둘러싸라~ 둘러싸~)" 를 부르며 빙빙 돌다가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 에서 멈추면  술래가 뒤에 있는 아이를 맞추는 거라고 한다. (역자의 말 참고-눈을 감고 술래가 맞추는 건지는 모르겠다.)  

 

 책 띠지와 첫 번째 이야기 시작에 적혀있는 카고메 놀이를 보며 왜 적혀있는 걸까 생각했 봤다.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 이 말이 첫 번째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 이해가 되고 입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무서움이 몰려온다. 이 놀이를 일본 아이들은 웃음 소리와 함께 재밌게 할텐데 내게는 그 웃음 소리마저 무서워질 것 같다. 

 

 역자의 말에서 책의 공포만큼이나 놀란 것이 있는데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를 오츠이치가 17살에 쓴 그의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대체 그 어린나이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그가 데뷔작을 넘어서는 작품을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면서 앞으로의 여름은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해 본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앞다투어 우리나라에 소개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 온다. 한 꺼번에 너무 많이 발표되면 무서워서 정말 잠이 못들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의 작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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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1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티티새님 반가워요^^ 추천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