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가다 1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아사다 지로, 그의 이름을 입으로 되뇌이면 읽은 그의 책들의 주인공이 생각나 눈물 한 방울 흐르게 될 것 같다. 아사다 지로를 좋아하는 그녀가 선물한 책은 <지하철>과 <파리로 가다> 였다. 아마 그녀는 눈물을 쏙 빼는 작가로만 아사다 지로를 기억할 내게 아사다 지로가 폭소를 내놓을 수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려 두 개의 책을 선물했나 보다. 가슴 아림과 유쾌상쾌, 두 권의 책은 읽는 과정은 달랐지만 마음의 온도는 똑같아진다. 사람의 체온을 조금 더 올려주는 작가, 아사다 지로 그는 독자로 하여금 힘있게 발을 구르게 한다.
 

 유쾌상쾌통쾌한 마음 치료하러 가볼까요?

 

 ♪ 요기조기 모여보세요~♬

 

그래서 모였다! 부도 직전인 한 여행사가 비교체험 극과극을 하려는 것이 아님에도 부도를 막기 위해 극과극 파리여행단을 모집했다. 그들이 감행한 것은 불법 이중 투어! 한 방에 두 팀이 묵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불법 이중 투어를 모르는 이들은 속속 여행에 참가한다.

 

 포지티브팀!! -이름도 화려한 빛팀의 구성원은 상사와의 불륜으로 사랑도, 직장도 잃고 회사에서 준 위자료(?)를 한 번에 써버리기로 한 30대 후반의 사쿠라이 가오리부터, 자살하기 위해 여행을 택한 부도직전의 사장과 그의 아내, 이 책 속의 다른 액자소설을 쓰는 세계적인 소설가와 그와 동행한 편집자, 벼락부자가 된 남자와 호스티스 출신의 그의 애인. 그리고 포지티브팀을 이끄는 팀장은 부도난 회사 사장과의 불륜관계인 아사카 레이코.

 

 네거티브팀!!! -이름도 화려하지 않은 그림자 팀의 구성원은 우직한 40대 남성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전직 경찰관 곤도 마코토, 떠나버린 사랑을 찾아 트렌스젠더 크레용, 그림자팀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검은빛의 부부 단노 부부, 교사로서 자식교육과 교육에 일생을 보낸 이와나미 부부, 포지티브팀의 세계적인 소설가를 쫓아 온 편집자 다니 후미야와 가토리 요시오. 그리고 네거티브팀을 이끄는 팀장인 소심함이 얼굴에 그대로 쓰여진 아사카 레이코의 전 남편 도가와 미츠오.

 

 ♪ 요곳조곳 골라보세요~♬

 

 여행지는 파리, 머물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샤토 드 라 레느’ 라는 왕비관.

 

 누구나 한 번쯤은 머물고 싶은 곳이라는 왕비관. 일정은 9박 10일.

 2000만원 or 200만원으로 즐겨보자구요!

 

 포지티브팀을 위한 호화찬란한 여행의 경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천오백만원이다. (가오리씨 같은 경우는 혼자 가는 여행이라 5백만원 추가되어 2천만원이 된다) 네거티브팀을 위한 알뜰한 여행의 경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이백만원이다. 같은 장소에서 머물며 먹는 것 다르고, 잠자는 것 다르다고 여행의 경비는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수상쩍은 이 여행,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모이고 비행기는 당연하다는 듯 일본에서 파리로 날라간다. 

 

♪ 임을찾아 꿈을찾아 떠나간다우~♬

 

 사랑찾아 떠나는 크레용부터 사랑했던 기억을 버리러 가오는 가오리,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자살하러 가는 부부를 비롯해 벼락부자인 거 팍팍 티내는 가나자와 커플, 은근 범죄분위기가 흐르는 시모다 부부, 독특하게 글을 쓰는 작가와 그를 죽자살자 따라다니는 편집자들까지 여행객들의 이력만으로 심심할 일이 없다.

 

 여행을 해 본 누구나 알듯 같은 장소로 여행을 간다고 해서 다 같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떠나는 순간부터 나만의 여행이 된다. 아사다 지로의 힘은 여기서 발휘된다. 등장인물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주고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대를 끌어낸다. 내 주위에서 혹은 드라마 속에서 본 듯한 인물들로 인해 책 읽는 재미는 배가 되고 톡톡 웃겨주는 작가로 인해 읽는 동안 영화를 보듯 즐겁기 그지 없다.

 

 또한, 여행을 해 본 이라면 알 듯 함께 여행하는 사람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거나 내가 모르고 지냈던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옛날 루이 14세 때도, 현재에도 사람이 희망이 된다.

 

♪오늘도 아슬아슬 재주넘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곰이네 ~♬

 

 여행은 시작되었고, 비밀 이중 투어를 기획한 아사카의 들키지 않기 위한 작전 역시 책의 묘미를 제공한다. 스치듯 만나는 두 팀의 사람들의 행동은 요절복통 웃음이 나기도 하고 손에 땀을 쥐듯 아차 싶은 순간도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여행사 사장을 위해 불법 투어를 기획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아사카를 보며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되돌아 보게 한다.

 

 여행자들이 지키고자 싶은 것 혹은 버리고 싶은 것들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를 위해 했던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그건 그를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함이었고, 나를 위한다고 혹은 사랑한다고 귓가를 간지럽히던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이 편하고자 했던 행동도 있었다. 좁은 우물에 갇혀 바깥 세상을 욕했지만 나와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색안경을 끼고 봤던 이들의 마음을 듣고 혹은 보는 순간 그들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책 속 등장인물 누구나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잘 걸어 왔다고, 비틀대면서도 잘 걸어 왔다고.

 

♪마음대로 춤을추며 떠들어보세요. 어차피 우리에겐 내일은없다~♬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 비밀을 알려드리지요.

 

<“내가 사는 방법은 이거야. 현재를 소중히 여긴다.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손에 움켜쥔 보석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그냥 그것뿐이야.”>

 

 현재에 충실하다는 것, 그것이 행복의 비밀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후회와 걱정으로 현재를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아쉽다. 우리는 매 순간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러기에 항상 우리는 최선을 선택을 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최상의 선택은 아니라도 스스로가 최선을 다해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게는 참 힘들었던 현재에 충실하기를 이 책에서 배운다. 최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현재를 사랑하고 싶어진다.

 

 

 파리로 갈래요, 당신? 그곳에는 당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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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아사다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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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처음 탔을 때 얼마나 놀라고 떨렸는지 지금도 손에 땀이 날 것 같은 아찔함이 몰려 온다. 표를 버려서 친구가 표를 사다줬던 기억,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서 있는 사람들의 달인에 오를것만 같은 모습 그 중 나를 가장 아찔하게 했던 것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탔음에도 지하철 안은 따뜻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하철 한 칸보다 작은 시내버스에만 타도 아주머니들의 혹은 학생들의 소란스러움에 인상을 쓰고는 했던 나인데도 지하철 속 냉기와 침묵은 생각보다 충격이었던 듯하다.
 

 그 이후로 지하철을 두고 일어났던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은 나를 지하철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했고 지금도 지하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냉기가 먼저 감돌고 무서워지고는 한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탔는데도 지하철에는 수다스런 냄새가 나지 않는 걸까? 방긋 웃을만큼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만큼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이런 나를 알았던 것일까?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준 사람으로 인해 이제 지하철은 마법의 공간이 된다. 큰 기적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공간이 아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마법의 공간이.

 

 고누마 신지, 후줄근한 양복에 피로에 지친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은 속옷회사의 영업사원이란 직함을 가진 남자. 그에게 지하철은 피곤한 몸을 이동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의 경험 전에는.

 

 그날의 지하철은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현실을 달리던 지하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긋나는 운행으로 그를 과거로 데려간다. 엄마의 뱃속에 들어있는 듯한 따뜻함이 몰려오는 출구 그 속에서 그는 누군가를 만난다.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을 몰랐던 사람을.

 

 아사다 지로,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어딨겠냐마는 그가 살아온 길을 짤막하게 본 후로 그는 맘껏 가족을 사랑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 소중함을 알았다 해도 미안하고, 그립고, 애달픈 그의 마음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그린 <천국까지 100마일>에서의 주인공의 마음, <지하철>에서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연습을 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어쩌면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는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강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여자인 나와 엄마의 친밀감이 아빠와 오빠에게는 조금 낯설다.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해보지도 못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고누마 신지에게는 그 낯설음이 벽을 뛰어넘어 바다를 만들었다. 왜 소중한 것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하고 뒤늦게야 후회하는 것일까. 조금 더 솔직하게 손을 내밀고, 안아주고, 주저 앉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일까? 사람이기에 그렇다는 이모의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사람이기에 후회를 하지만 사람이기에 화해를 청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지만 사람이기에 마음을 연결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잘한 것 같다. 이 책 속 주인공 모두가 그래주길 바란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또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게 된다면 이 책이 생각나서 타는 동안 주문을 외울지도 모르겠다. 마법의 문아 열려라! 이런 주문을. 그 때 이 책을 선물해 준 이와 함께라면 주문 역시 2배의 힘이 되어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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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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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만이라고 누군가가 외칠 수도 없는 게임이죠. 그저 최후의 1인이 뒤집힐 때까지 혹은 그 상대방이 사라지기 전까지 끝낼 수 없는 게임이죠. 훗,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살아있는 내내 게임을 하는 거 아닌가요? 삶에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별로 없지만 지고 싶지는 않으니 게임은 점점 더 흥미로워집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전 뒤집힌 적이 있는 걸까요? 늪지를 앞에 두고도 고요한 마음은 뒤집힌 결과일까요? 그럼 꽉 쥔 주먹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엔드 게임>, 빛의 제국을 읽지 않고 민들레 공책을 읽은 후에 만난 책이다. 온다 리쿠의 연작 시리즈는 차례로 읽으면 그 서늘함과 기발함에 놀란다는 것을 알지만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을 겁없이 펼쳐 들었다. 그런데 이 책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중반에 들어서까지도 안개낀 늪을 걷게 하는 기분이다. 지금껏 내가 느낀 온다 리쿠 책들은 늪가를 걷되 안개는 드리워지지 않고 그저 수분기 먹은 바람만이 불어오는 듯했는데 이 책은 다른 공간에 나를 내려 놓았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일> 이란 책도 아리송했지만 그건 안개가 아니라 빙빙 도는 회전목마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과 같은 느낌이었다.

 

 도코노 일족, <민들레 공책>을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기묘한 일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 속 도코노 일족은 기존의 아름다움과 기묘함 보다는 무언가 차갑고 검은 안개를 드리운 듯한 집단 같다. '뒤집힐 수 있는' 사람의 운명을 타고 났다면 그 운명을 지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뒤집힐 위험이 없도록 어딘가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뒤집히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 혹은 뒤집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도 있고, 뒤집힐 위험이 없도록 그 능력을 지워버리는 이들도 나온다.

 

 책을 읽는 동안 도코노 일족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온갖 언론매체에 뒤집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우리, 그럼에도 뒤집혀 언론의 생각을 내 생각이라고 여기는 우리,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우리를 사회라는 이름으로 주관을 빼앗아 버리는 우리도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뒤집혔고, 기억을 잠식당하고 잃어버렸는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자고, 세상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맞서 싸우겠다고 외치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는?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일 것이다. 도코노 일족은 그것을 알고 있고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 차이가 가져다 주는 불안과 공포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난 무엇에 뒤집히게 될까? 란 두려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겁만 내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길은 이어져 있으므로. 그 길위에 혼자가 아니므로.

 

 이 책을 다 읽고도 안개가 걷히지 않은 느낌이다. 온다 리쿠의 책 중 이런 느낌은 <호텔 정원에서 생긴일>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다. 대체 무엇을 놓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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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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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영화는? '검정 고무신' 이다. '검정 고무신'이란 만화영화는 온가족이 함께 보는 프로그램 중 유일한 거였다. 언제부터인가 집에 텔레비전이 안방과 거실에 생기면서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는 했던 것이 어디 우리집 뿐일까? 그러던 중에 오빠와 내가 보던 '검정 고무신' 을 아빠가 보면서 우리 가족은 그 시간만 되면 같이 눕거나 혹은 앉아서 만화를 봤다.
 

 아빠의 어린시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만화 속 이야기에 우리 가족은 즐겁게 보고난 후 아빠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질문하고는 했고 아빠는 신이 나서 이야기 해주셨다. 그렇게 행복한 저녁이 되고는 했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한다. 먹을 것이 없었고, 입을 것이 없었으며, 학교보다는 논이나 산으로 더 많이 나가야 했던 아빠,  막내동생을 업고 학교에 가야하기도 했던 엄마는 힘들었던 그 시절을 말씀하실 때 행복해 보이신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라는 내 물음에 아빠는 고개를 흔드시며 잘은 모르겠다고, 그래도 그 시절은 정말 춥고 배고팠는데 따뜻하고 배불렀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시절이 있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도 춥고 배고팠지만 따뜻하게만 기억되는 그 시절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그 소중한 선물을 받고 있는 걸까? <3번가의 석양> 을 읽으며 되묻는다. 왜 이 책은 이리도 따뜻한 걸까? 이 따뜻함을 간직한 이는 점점 줄어들게 되는 걸까? 사람이 희망이 되던 시절, 사람이 온기가 되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지금 그러지 않기 때문일까?

 

 <3번가의 석양>은 따뜻하다. 추운 겨울날 눈 싸움을 하느라 비닐 장갑을 껴도 꽁꽁 언 손을 할머니가 아랫목에 넣어줄 때의 따뜻함만큼이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또한 책은 따뜻한 눈물이 흐르게 한다. 가난했기에 갖고 싶은 것을 조르다가 엄마에게 맞은 후에 엄마가 가슴에 안고 등을 쓸어 줄 때 엄마 눈에서 흐르던 눈물만큼이나 따뜻하다.

 

 이런 따뜻한 책이 사람들의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높이고 있다. 불신과 경제적 문제로 점점 사람들의 가슴은 얼어 붙고 있지만 우리는 꿈꾸고 있다. 녹여주기를, 누군가가 마음을 문질러 온기를 나눠주기를 바라고 있다. 소설이 꿈꾸는 것은 희망임을, 따뜻함임을 책을 통해 깨달았다. 가슴에 품으면 손난로가 되어줄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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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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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소녀(모두가 그녀를 여인이라고 말해도 제게 그녀는 소녀죠, 언제나.)를 알고 있죠. 잘 아냐고요?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일이니 난 한 소녀를 알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땐 그녀를 뒤집어 흔들어 본다면 분홍색 음표들이 또르르르르 하고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땐, 그녀에게는 핑크빛 세상만이 가득하리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녀를 조금 더 알았을 땐 그녀에게서 나온 분홍빛 음표들의 머리마다 눈물이 담겨 있은 것을 알았어요. 음표들이 또르르르르 소리를 냈던 것은 아마 눈물들이 들어있어서라고 그제야 알았죠. 슬퍼도, 눈물을 흘려도 핑크빛 세상을 꿈꾸는 그녀를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조금, 조금 더 알았을 땐 눈물로 가득찬 분홍빛 음표들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위해 날개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하늘로 날아올라 음표들을 연주하고 싶은 그녀입니다. 그녀의 연주는 지금도 진행중이죠. 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마법의 분홍색 펜을 선물해주고 싶지만 그녀 빼고 모두가 알고 있듯 그녀는 마법의 펜 없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죠. 세상에 행복의 방울을 불어넣어줄 그녀를 조금, 조금 더 알게 되었죠.

 

 내게 조금씩 행복의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그녀가 내게 선물한 책은 그녀를 닮았습니다. 가볍게 통통 튀는, 통통 튈때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방울들은 무지개를 보여주기도 하며 지친 제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나요?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소중한 사람이 걱정할까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슬픔도 웃음으로 넘겨주는 사람. 그녀는 그런 사람이죠.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사랑 그리고 희망이 아닐까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이 꿈꾸는 곳에서.

 

 이 말만큼 사랑하는 이를 안심시키는 단어가 어딨을까요. 잘 지내고 있다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어요. 그것도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데 말이죠.

 

 책은 주인공의 시선과 주인공의 우주비행사인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로 진행됩니다. 거듭되는 취업난으로 힘든 주인공 은미는 감기약 200 알을 먹어야 자살할 수 있지만 그게 뮤직비디오에서 보는 것만큼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죠. 감기약 먹다 배불러서 죽는 건 자살로는 모습이 별로잖아요.

 

 세상 모든 일이 이러하죠. 한 걸음 뒤에서 보면 참 멋지고 아름답던 것들이 가까이 가보면 예상 외의 모습이 많잖아요. 달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전 달을 더 아름답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처럼요.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좇아갑니다. 그 끝에 희망이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꿈은 다른 꿈을 꾸기 위한 계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든 계단을 올랐을 때 야호-를 외칠 기분보다는 허탈함이 더 큰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꿈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사람이 이어져 있듯 꿈도 이어져 있음을. 누군가의 꿈을 같이 이루어 줄 수 있다면 꿈은 그리 추하지도 허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니까요.

 

 주인공 은미와 고모를 만나보면 아리송한 저의 글이 이해가 될 듯하네요. 아주 행복한 여행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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