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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소녀(모두가 그녀를 여인이라고 말해도 제게 그녀는 소녀죠, 언제나.)를 알고 있죠. 잘 아냐고요?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일이니 난 한 소녀를 알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땐 그녀를 뒤집어 흔들어 본다면 분홍색 음표들이 또르르르르 하고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땐, 그녀에게는 핑크빛 세상만이 가득하리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녀를 조금 더 알았을 땐 그녀에게서 나온 분홍빛 음표들의 머리마다 눈물이 담겨 있은 것을 알았어요. 음표들이 또르르르르 소리를 냈던 것은 아마 눈물들이 들어있어서라고 그제야 알았죠. 슬퍼도, 눈물을 흘려도 핑크빛 세상을 꿈꾸는 그녀를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조금, 조금 더 알았을 땐 눈물로 가득찬 분홍빛 음표들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위해 날개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하늘로 날아올라 음표들을 연주하고 싶은 그녀입니다. 그녀의 연주는 지금도 진행중이죠. 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마법의 분홍색 펜을 선물해주고 싶지만 그녀 빼고 모두가 알고 있듯 그녀는 마법의 펜 없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죠. 세상에 행복의 방울을 불어넣어줄 그녀를 조금, 조금 더 알게 되었죠.
내게 조금씩 행복의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그녀가 내게 선물한 책은 그녀를 닮았습니다. 가볍게 통통 튀는, 통통 튈때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방울들은 무지개를 보여주기도 하며 지친 제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나요?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소중한 사람이 걱정할까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슬픔도 웃음으로 넘겨주는 사람. 그녀는 그런 사람이죠.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사랑 그리고 희망이 아닐까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이 꿈꾸는 곳에서.
이 말만큼 사랑하는 이를 안심시키는 단어가 어딨을까요. 잘 지내고 있다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어요. 그것도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데 말이죠.
책은 주인공의 시선과 주인공의 우주비행사인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로 진행됩니다. 거듭되는 취업난으로 힘든 주인공 은미는 감기약 200 알을 먹어야 자살할 수 있지만 그게 뮤직비디오에서 보는 것만큼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죠. 감기약 먹다 배불러서 죽는 건 자살로는 모습이 별로잖아요.
세상 모든 일이 이러하죠. 한 걸음 뒤에서 보면 참 멋지고 아름답던 것들이 가까이 가보면 예상 외의 모습이 많잖아요. 달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전 달을 더 아름답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처럼요.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좇아갑니다. 그 끝에 희망이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꿈은 다른 꿈을 꾸기 위한 계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든 계단을 올랐을 때 야호-를 외칠 기분보다는 허탈함이 더 큰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꿈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사람이 이어져 있듯 꿈도 이어져 있음을. 누군가의 꿈을 같이 이루어 줄 수 있다면 꿈은 그리 추하지도 허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니까요.
주인공 은미와 고모를 만나보면 아리송한 저의 글이 이해가 될 듯하네요. 아주 행복한 여행을 약속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