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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4
필리파 피어스 지음,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44
“신경쓰지 마라, 톰. 이모부는 옳고 그른 것에 유난히 민감한 분이란다. 이모부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너도 자라면 그렇게 될 거야.”
그웬 이모가 말했다.
“난 지금도 그래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안 그렇다구요!”
톰이 발끈해서 외쳤다.
톰은 앨런 이모부를 제쳐놓고 그웬 이모만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
그건 신사적인 행동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너그러운 결심은 조금만 압력을 받아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게다가 상대편이 짜증스럽게 굴면 그런 결심은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지금 톰은 몹시 짜증이 났다. 정말 억울한 기분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이모랑 이모부 때문에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들잖아.
-어렸을 때 도덕심에 더 충실한 것 같다. 나만 봐도 그렇고.
55
밤과 낮 사이에는 풍경이 잠드는 시간이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만이 그 시간을 볼 수 있다. 또는 밤새 여행하는 나그네가 객차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보면, 쏜살같이 지나가는 정지된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나무와 덤불과 식물들은 모두 잠들어, 꼼짝도 하지 않고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서 있다. 나그네가 간밤에 외투나 담요로 몸을 감쌌듯이, 바깥 풍경은 잠에 감싸여 있다.
톰이 정원으로 나간 것은 아침이 오기 전의 이 고요한 잿빛 시간이었다. 톰은 분명히 자정에 층계를 내려와 현관을 지나서 뒷문으로 갔다. 그런데 톰이 그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갔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이든, 깊은 어둠에 싸인 밤이든, 정원은 밤새도록 깨어 있었다. 그렇게 밤새 불침번을 서고 나서, 이제 정원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새벽이나 밤은 남들이, 다른 풍경이 다 잠들어있어...꼭 내 것 같은 시간이라 놓쳐버리기가 아깝다. 아이들이 자기 싫어하는 것이나 일찍 일어나서 놀고 싶어 하는 것도 그 시간이겠지.
147
해티와 다툰 날 오후, 톰은 해티가 따지고 드는 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톰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해티는 소녀답게 옷차림에 민감해서, 톰과 말다툼을 할 때 옷차림새를 무기로 이용했다. 톰은 자기도 그런 관찰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톰은 정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도 그저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사생활’에 나온 것처럼 남녀 아이들의 차이가 드러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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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는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을 자면서도 얼굴 표정이 변했기 때문이다. 미소를 짓다가, 금세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한번은 넋이 나간 듯이 보여서, 롱 부인은 아득히 먼 곳에 가 있는 피터를 이곳으로 다시 불러 오고 싶었다.
-꿈을 꾸고 있는 아이.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아이들은 꿈을 안 꾸고 어른이 되면서 꿈을 꾼다는 말이 있어서 그 말이 날 너무 가뒀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아이들이 꿈을 안 꾸다니....틀린 말임에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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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문득, 그 시계를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중에는 크게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던 그날 밤, 오래 전 그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시계를 보고 톰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뒷문까지 갔다가 다시 이층으로 올라오는 데는 몇 분이 걸렸지만, 정원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정원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내도 부엌 시계는 그 시간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아마도 그것이 괘종시계가 열세 시를 치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열두 시 이후의 시간들은 통상적인 시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통상적인 시간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 통상적인 60분 안에 끝나지 않는 시간, 끝이 없는 시간이었다.
-시간에 대한 고민...어떤 순간이 영원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시간이 일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어렸을 때 그런 기억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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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각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뚫고 해티와 바티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톰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그건 어른들의 대화여서 재미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도 모두 따분한 것들뿐이었다...아니면 해티가 이제는 자기를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야릇한 느낌 때문에 깨어서 활동하고 있다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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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쯤 되면 누구나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 속에서 보내게 된단다.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고, 과거를 꿈꾸기도 하면서…….”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원에서는 왜 날씨가 항상 화창했는지, ‘시간’이 왜 앞뒤로 왔다갔다했는지, 그 이유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밤마다 정원이 나타난 게 꼭 바솔로뮤 부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인이 정원을 그토록 자주 꿈꾼 것은 올 여름이 처음이라고, 어린 시절의 느낌, 함께 놀 친구와 장소를 애타게 찾던 그 기분을 그토록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것도 올 여름이 처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제가 올 여름에 여기 와서 간절히 바란 것도 바로 함께 놀 친구와 장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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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이 미친 듯이 뛰어올라가더니, 둘이 얼싸안지 뭐예요. 오늘 아침에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귄 친구 같더라니까요. 그보다 더 신기한 일도 있었다구요. 당신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바솔로뮤 부인이 꼬부랑 할머니이긴 하지만, 몸집이 톰과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톰이 바솔로뮤 부인을 조그만 소녀라도 되는 것처럼 두 팔로 껴안으며 작별 인사를 하더라구요.”
*홍역을 피해 이모집으로 갔다.
이모집은 같이 놀 친구도 없고, 멋진 정원도 없는 심심한 곳.
현관에 있는 낡은 괘종시계는 종을 멋대로 치고 밤 12시가 넘은 어떤 시간에 열세번 종을 친다.
어느 날 밤 시계 종소리를 듣고 뒷마당으로 나간 톰은 멋진 정원을 발견.
거기서 해티라는 꼬마애랑 친구가 되고, 넓은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톰의 존재를 아는 아벨...이게 실제인지 꿈인지 불안하고 긴장감이 든다.
해티가 넣어놓은 스케이트가 실제 톰에게 전해지는 장면. 아,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바솔로뮤 부인 꿈-오래전 행복했던 정원에서 논 기억.
톰 꿈-놀 친구와 장소가 필요해.
피터 꿈-나도 형이랑 같이 정원에 가고 싶어.
이 세 사람의 꿈이 만나려면 여기는 꿈 속. 그러면서 현실과 선은 이어져있다.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중간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 긴장.
정원....숲이라고 해도 될만한 정원에 대한 묘사가 아이들이 자연에서 노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를 보여줬다. 아무런 도구가 없어도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어 몇 시간이고 빠져들 수 있는 무수한 놀이. 그리고 상상의 세계. 참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