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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기묘한 몽상 ㅣ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27
이언 매큐언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같이 일하는 작가랑 어린시절 이야기를 했다. 어떤 어린이였어요?
그냥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 난 지금도 그런데 불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참 좋아요.
방 안에 우산 펴서 집 같이 만들어놓고 그 안에 있는 게 좋았어요. 쇼파 뒤 같은데 들어가 있는게 편하고 좋았어요.
거기서 그냥 헛생각 하는거요. 그냥 그렇게 특별한 생각은 아닌데, 엄마가 여우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상상, 별로 과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그냥 그런 헛생각 하는 거요. 일곱 살때쯤에는 밤마다 벽 쪽을 보면서 울면서 잤어요. 슬픈 상상하다가요.
지금은 소리내서 우는 것도 할 수 있는데 그땐 소리 안 내고 눈물만 쭉 흘리는 걸 잘했어요. 스스로 그렇게 우는 내가 기특했고. (아, 이런 이야기는 실제 내가 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덧붙여지는 것.)
그러고보니 혼자서 동네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때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씻고, 정리 좀 한 다음에 숙소에서 나와 그 도시를 쭉 걸어보는데
난 그게 참 좋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이나 그냥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시장 구경도 하고, 어슬렁어슬렁 다니기. 내가 지금 게으른 점을 가지고 있다면, 혹시 내가 지금 부지런하다면 그건 다 이십대 초반 그 여행에서 얻은 습관이다. 부지런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한...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닌 언젠가...다시 그런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이사가서 새 동네에 적응하는 시간이 좋았다. 학교가는 길을 오늘은 여기로 가보고, 내일은 돌아서 가보고, 모레는 다른 길로 가고.
동생한테는 미안한 짓이었겠지만 이런 동네돌아다니기를 동생이랑 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항상 혼자였던 것 같은 기억.
그리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 앞부분 피터 묘사에서 깜짝 놀랐다.
피터
피터 포춘은 이따금 어른들한테 ‘어려운’아이라는 소리를 듣는 열한 살 먹은 소년이었다. 피터는 어른들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어렵다는 말인가? 마당 담벼락에 병을 내던진 일도 없고, 이마에 빨간 케첩을 묻히고 피를 흘리는 척해 본 일도 없고, 장난감 칼로 할머니 발목을 친 일도 없는걸. 이런 장난은 어쩌다 머릿속으로만 해 본 생각들이다. 감자만 빼고 다른 야채는 먹지 않아도, 생선이든 달걀이든 치즈든 뭐든 가리지 않고 먹었다. 아는 사람을 다 떠올려 보아도 어느 누구보다 시끄럽지도 않고, 지저분하지도 않고, 아둔하지도 않았다.
...
나중에 어른이 되고 알았지만, 어렸을 때는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피터가 너무 말이 없어서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린애가 말이 없는 게 신경쓰였던 것이다.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피터가 혼자 있기 좋아하는 아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무 때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날마다 그런 것도 아니고. 하지만 대개 하루에 한 시간은 어딘가로, 예컨대 자기 방이나 공원 같은 데로 사라지는 버릇이 있었다. 피터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자기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했다.
...
그랬다. 피터가 혼자 있는 것, 어른들은 그것도 언짢아했다. 어른들끼리도 혼자 있는 어른은 싫어한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 사람들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나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혼자만 따로 노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 기분을 망친다. 피터는 딴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남과 어울리는 것도 적절한 자리에서는 나름대로 잘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지는 않았다.사실,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사람하고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고 날마다 조금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내어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면, 세상은 더 행복해질 테고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피터의 생각은 그랬다.
*인형들, 고양이, 지우는 크림, 주먹 대장, 도둑, 아기, 어른...
피터의 몽상 속 세상이 낯설지 않으면서 또 기발해서 재미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한 몽상들은 어떤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