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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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추천해준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야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산지도 꽤 지난 것 같다. 고래는 매력적이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이 고개를 약간 갸웃하면서도 강력하게 말했던 것 같다. 음, 지금까지 소설과 다르다, 그런데 낯설기보다 재밌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과연 금복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 온 것일까? 아니면, 그런 행운이 찾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주인공이 된 것일까?’ 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불경스런 질문이며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까다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금복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있게 되었다. -아, 몇 쪽이었더라.

 

그날 이후, 완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된 대신 그의 눈앞엔 기억 속에 담겨 있는 풍경들이 아무 때고, 순서도 없이 불규칙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먼 과거에서부터 눈이 멀기 전까지의 긴 시간에 걸쳐 그의 인생을 모두 기록한 사진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유년희 풍경과 전쟁터에서 목격한 온갖 끔찍한 장면들, 그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벽돌공장을 다닐 때 보았던 낯선 이국의 풍경들, 그리고 떠오를 때마다 언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가족들의 얼굴, 또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벌이던 금복과의 정사와 혼자 남발안에 남아 벽돌을 굽고 있을 때의 한없이 쓸쓸했던 겨울의 풍경 등, 그의 전 생애에 걸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필름에 담아둘 수 있었다면 한 평범한 사람의 생애에 그토록 많은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또한 한 사람의 기억 속에 그토록 많은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 한편, 인류학과 사회학, 역사학과 심리학 등 여러 인문학 분야에서 더할 수 없이 귀한 자료가 되었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 모든 장면들은 몇 년 뒤, 그가 버드나무 아래 개울가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266쪽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폰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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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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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이고 거대하다. 고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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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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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에 대한 많은 자료와 실상, 의견까지 소설이라기 보단 보고서 같지만, 술기운을 느끼면서 같이 푹 빠져든다. 이 작가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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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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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의 메모장을 보니 어느 날 이런 메모를 해뒀다.

‘하루 동안 생각하고 다 겪은 것을 글로 정리한다면...’ 아마 뒷말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겠지. 어떤 날은 그런 욕망이 든다. 거기다 난 기억력도 나빠서 겪은 것을 제멋대로 쓰겠지. 물론 쓰지 않는다.

쓰기 시작한 메모만 여럿이다.

그런데 그런 작가가 있다.

나카지마 라모. 소설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삼십 대 중반 알코올성간염으로 50일간 입원해서, 그때 체험을 바탕으로 이 책 <오늘 밤 모든 바에서>를 썼다. 뭐, 이런 작가는 많다. 그런데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대마는 인체 무해’라며 <마귀광버섯>이라는 적나라한 마약 체험담을 발표하고 결국 체포된다. 그런데 구치소 안에서 에세이 <감옥에서 하는 다이어트>를 출간한다. 이 책은 <오늘 밤 모든 바에서>에도 언급된다.

‘병으로 마르는 다이어트’ 이 책 아이디어로 나중에 ‘감옥에서 하는 다이어트’를 썼나보다. 재밌는 사람이다. 그리고 책 내용이 무지 궁금하다.

소설은 알코올 중독에 대한 많은 이야기, 50일 동안의 병원 생활이 잘 나와있다. 거기서 만난 사람, 얽힌 이야기까지해서 술술 잘 넘어간다.

 

‘왜 그렇게 마시나.’

‘잊으려고.’

‘뭘 잊고 싶나.’

‘……. 잊어버렸어, 그런 건’

(고대 이집트의 이야기)

 

알코올 중독 문헌을 ‘안주’ 삼아 위스키를 마신다는 자학적인 심경을 즐겼다. -52쪽

 

유일한 해결책은 마약을 정부가 전매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어떨는지 모르지만 일본 정부는 그럴 ‘자격’이 있다. 암의 원흉인 담배를 전매하고 공영 도박으로 자릿세를 벌고 주류세로 살을 찌운 어엿한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갱에게 마약의 이권을 건넬 바에는 국가가 오명을 뒤집어쓰고 관리하면 된다. 그리고 이익의 몇십 분의 일쯤을 중독자들의 요양에 환원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마약 상용자를 체포할 자격이 없다. 알코올 중독을 양산하는 형이하학적인 주범은 정부다. 범죄자에게 범죄자를 체포할 자격은 없다.

일본의 알코올 실태는 미쳐 가고 있다. 열한시 이후에는 이용할 수 없지만, 거리 곳곳에 온갖 술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다. 위스키, 맥주, 소주, 청주의 광고료는 거대한 방송 수입원이고 주류세는 연간 이조 엔에 달하는 세금 수입이다. 공도 민도 언론도 일환이 되어 ‘마셔라, 마셔라’ 하고 암시를 걸고 있다. 일본의 알코올 중독이 이백이십만 명 정도에 그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일본인 중에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전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나는 앞으로 알코올 중독이 더욱 늘 것이라 확신한다.

...미국 알코올 중독 국가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같은 해 술에 관련된 사망, 즉 간경변, 자동차 사고, 자살, 익사, 기타를 합친 총수는 구만 팔천명이다. 연간 약물사가 약 삼만 명, 불법 약물사가 사천이백 명이니까, 마약과 술의 ‘마성’의 차이는 뚜렷하다. 헤로인에 따른 사람은 천사백 명, 코카인은 팔백 명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담배에 의한 암 사망은 삼십이만 명이다.

아마 백 년이 지나 지금의 일본 법률이나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담배나 술을 거대 미디어를 통해 광고하는 한편, 대마초를 금지해서 연간 많은 인간을 범죄자로 만든다.

...

규제가 있건 없건 일본은 머지않아 술과 마약의 세례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본에서는 물건과 돈 대신에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106쪽

 

다만 제가 알코올 중독이라서 아는데요. 학자는 아무리 접근 방법을 바꾸어도 알코올 중독의 실태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유아 체험이니 뭐니 아는 척 분석당하면 열받습니다.

알코올 중독을 알 수 있을 때는, 다른 중독을 전부 해명했을 때입니다. 약물 중독은 물론, 일중독까지 포함해서 인간의 ‘의존’이란 것의 봄질을 모르면 알코올 중독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건 부수적인 것뿐이겠죠.

‘의존’은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뭔가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죽은 사람뿐입니다. 아니, 유령이 나오는 것을 보면 죽은 사람도 뭔가에 의존하는지도 모르겠고.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전부 사람의 의존 대상이겠지요. 알코올에 의존하는 인간이야 귀엽고. 피와 돈과 권력에 중독된 인간이 국가에 의존해서 살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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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얼마전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내가 산 책'이라는 꼭지가 있었다. 평소에 책 많이 읽기로 소문난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최근에 산 책들을 이야기해주는 것인데,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이지만, 그렇기에...이 책에 대한 기대, 내가 이 책을 택한 이유가 더 선명해보이기도 한다. 사실 읽지도 않았는데, 살 수 있다니! 어떻게 보면 책은 '기대'만으로도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놀라운 상품이다. 이 글도 아직 읽지도 않은 신간들 중에 기대가 되는 책을 꼽아보는 글이다.
기대를 하고난 뒤여야 찬사든, 실망이든 뒷 감정들이 따르는 법이니, 이렇게 꼽아보고 책을 읽으면 더 신날듯.

 

 

 

 

 

 

 

 

 

 

 

 

 

지금 이 길의 아름다움
길이 좋다. 어디 특별히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라 동네 탁구장에서 집까지 오는 12가지 돌아서 오는 길이, 여행지에 가서 숙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의 길이,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따라간 친구의 산책길이.
이따금씩 새로운 길을 걷는다. 어제는 음식만큼 글을 좋아하는, 실은 글을 더 좋아하는 요리사 박찬일이 자주 산책한다는 와우산길을 걸었다. 사실 집에서 가까운 동네이기도 한데, 어째 그 쪽으로는 또 처음 올라가 본 길이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글속에, 슬리퍼 끌고 편하게 돌아다닐 산책길을 걷는 것은 참 재미지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무려 16개의 글을 안내해주는 책이 나왔다. 사실 어떤 주제로 여러 사람의 글을 모은 책은....진심으로 우러나온 글이라기보다 기획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골고루 뽑은 16개의 길에 대한 이야기인데, 보고 싶다.
누군가가 추천해주고 이끌어주는 길, 길은 그렇게도 넓고 길어진다.

 

좋은 이별-김형경 애도심리 에세이
사랑과 이별의 순간 김형경의 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의 책에서도 당연히 이별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잘 이별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니 궁금하다. 차례를 보니 심리학책의 여러 단계를 적용시켜 표현되어 있는데, 충격, 마비에서 통합, 내면화까지 작업이라...꼭 연인과의 이별만이 아니라 살면서 겪는 많은 이별이 어떻게 사람을 성장시키는지...궁금하다.

 

 

 

 

 

 

 

 

 

 

 

 

 

 

내 식탁 위의 책들
음, 푸드 포르노 중독자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 1990년대 후반에 생긴 말이라니. 그러고보니 나도 중독자까지는 미치지 못하지만, 꽤 좋아한다. 이런 나의 정서가 지금 지금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니.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겪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조금 읽다보니 나는 푸드 포르노 중독자로써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내가 푸드 포르노 중독자에 속할 것이란...생각은 이 책의 문장들이 서늘한데도 팍팍 꽂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행복한 오기사가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고 말해줘서 좀 다행이다. 나에게 서울은 여행지 같은 곳인데, 맨날 욕하고 궁시렁대지만, 그래도 좀 좋다. 그러나 내가 싸돌아다닌 곳은 그래봤자 한정적. 서울사람이라는 오기사의 안내로 서울을 더 싸돌아다니고 싶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항상 서울은 떠나야 할 곳으로 남아있으니 여행지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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