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온 책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소와당과 서유구에 대한 이야기를 연이어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새삼스레 <임원경제지> 번역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임원경제지> 번역본은 본래 소와당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다가, 지금은 번역을 주관하는 풍석문화재단에서 직접 간행하고 있다.


예전에 풍석문화재단 측에서 올린 해명에 따르면 <임원경제지> 자체가 워낙 방대한 내용이다 보니 출간 작업이 차일피일 지체되었고, 이 과정에서 참여자 일부가 이탈하며 그때까지 번역이 완료된 분량만 소와당을 통해 간행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소와당에서 나온 분량은 훗날 풍석문화재단에서 번역자가 바뀌어 재간행되었다.


<임원경제지> 번역은 2003년에 시작되었지만, 2008년에야 임원경제연구소가 발족하며 사업이 본격화되어, 2009년에 소와당을 통해 첫 번역서가 간행되었다. 이후 2015년에 풍석문화재단이 발족하며 번역서를 직접 간행하기 시작해서 2024년 현재 31책까지 간행되었다. 번역서도 원본처럼 52책이라 하면 5분의 3이 간행된 셈이다.


출간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번역 진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원문 해석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번역료를 선지급하다 보니 돈만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지원을 받았던 <주자대전> 번역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애초에 책상물림들의 돈 관리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돈 이야기를 하고 보니 책값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권당 3만 원씩이니 52책 전권을 사려면 15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웬만하면 헌책이라도 사보려는 나귀님 입장에서도 영 손이 나가지 않는 수준이니, 아무리 대단한 책이라 하더라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가격은 살짝 아쉽기도 하다.


여하간 이왕 생각난 김에 <임원경제지>의 편명과 분량, 간략한 내용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아래 내용은 풍석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나온 다음 게시물에서 가져왔다. http://pungseok.net/?page_id=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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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권 52책. 필사본. 일명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십육지 林園經濟十六志≫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기예와 취미를 기르는 백과전서로 생활과학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113권을 16개 부문으로 나눈 논저로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본리지(本利志, 권1∼13, 13권 6책):밭 갈고 씨 뿌리며 거두어들이기까지의 농사 일반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전제(田制), 수리(水利), 토양지질, 농업지리와 농업기상, 농지개간과 경작법, 비료와 종자의 선택, 종자의 저장과 파종, 각종 곡물의 재배와 그 명칭의 고증, 곡물에 대한 재해와 그 예방, 농가월령(農家月令), 농기도보(農器圖譜), 관개도보(灌漑圖譜) 등에 걸쳐 서술했다.





2.관휴지(灌畦志, 권14∼17, 4권 2책):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을 다루고 있다. 각종 산나물과 해초·소채·약초 등에 대한 명칭의 고증, 파종시기와 종류 및 재배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3.예원지(藝畹志, 권18∼22, 5권 2책):화훼류의 일반적 재배법과 50여 종의 화훼 명칭의 고증, 토양, 재배시기, 재배법 등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다.





4.만학지(晩學志, 권23∼27, 5권 2책):31종의 과실류와 15종의 과류(瓜類), 25종의 목류(木類), 그 밖의 초목 잡류에 이르기까지 그 품종과 재배법 및 벌목수장법 등을 설명하였다.





5.전공지(展功志, 권28∼32, 5권 2책):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과 직조 및 염색 등 피복재료학에 관한 논저이다.





6.위선지(魏鮮志, 권33∼36, 4권 2책):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이른바 점후적(占候的) 농업기상과 그와 관련된 점성적인 천문관측을 논하였다.





7.전어지(佃漁志, 권37∼40, 4권 2책):가축과 야생동물 및 어류를 다룬 논저로서, 가축의 사육과 질병치료, 여러 가지 사냥법, 그리고 고기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과 어구(漁具)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8.정조지(鼎俎志, 권41∼47, 7권 4책):식감촬요(食鑑撮要)는 각종 식품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의약학적 논저와, 영양식으로 각종 음식과 조미료 및 술 등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9.섬용지(贍用志, 권48∼51, 4권 2책):가옥의 영조(營造)와 건축기술, 도량형기구와 각종 공작기구, 기재·복식·실내장식·생활기구와 교통수단 등에 관해서 중국식과 조선식을 비교해 우리 나라 가정의 생활과학 일반을 다루고 있다.





10.보양지(葆養志, 권52∼59, 8권 3책):도가적(道家的) 양성론을 편 논저로, 불로장생의 신선술(神仙術)과 상통하는 식이요법과 정신수도를 논하고, 아울러 육아법과 계절에 따른 섭생법을 양생월령표(養生月令表)로 해설하였다.





11.인제지(仁濟志, 권60∼87, 28권 14책):의(醫)·약(藥) 관계가 주로 다루어져 있으나 끝부분에는 구황(救荒) 관계가 다루어지고 260종의 구황식품이 열거되어 있다.





12.향례지(鄕禮志, 권88∼90, 5권 2책):지방에서 행해지는 관혼상제 및 일반 의식(儀式) 등에 관한 풀이이다.





13.유예지(遊藝志, 권91∼98, 6권 3책):선비들의 독서법 등을 비롯한 취향을 기르는 각종 기예를 풀이한 부분이다.




14.이운지(怡雲志, 권99∼106, 8권 4책):선비들의 취미생활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15.상택지(相宅志, 권107·108, 2권 1책):우리 나라 지리 전반을 다룬 것이다.





16.예규지(倪圭志, 권109∼113, 5권 2책):조선의 사회경제를 다룬 것으로 양입위출(量入爲出)·절생(節省)·계금(戒禁)·비예(備豫) 등을 다룬 것과 무역이나 치산(置産) 등을 다룬 화식(貨殖) 등이 논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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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미국 대통령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연이어 읽은 기억이 난다. 저서나 자서전은 물론이고 측근의 회고록과 리더십 평가서도 제법 나온 상태였고, 심지어 은밀한 사생활이며 에어포스원의 역사에 대한 책까지 의외로 많은 자료가 있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주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이라는 것이었는데,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무려 22년 뒤인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판매 중인 것으로 나온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철 지난 자료가 된 것 같지만 말이다.


부제에 나온 것처럼 당시까지의 미국 대통령 40명 가운데 최악으로 선정된 10인의 약전을 모아 놓았는데, 이 당시의 최악은 탄핵 직전까지 가서야 하야를 선택한 리처드 닉슨으로 꼽혔고,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당시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린 빌 클린턴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지금 와서 다시 검색해 보니, 최근에 와서는 닉슨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는지 오히려 순위가 상승하여 중위권에 진입한 반면, 링컨 이전의 제임스 뷰캐넌을 비롯한 몇몇 대통령과 가장 최근의 (그러나 또다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가 최하위권으로 손꼽히는 모양이다.


닉슨이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촉발된 선거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서 거짓말을 늘어놓아 탄핵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에 못지않게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지지자의 의회 습격 사건을 비롯한 각종 막장 행보 때문이겠고 말이다.


거짓말과 의회 압박이라는 사안 각각만 놓고 보더라도 역대 최악의 대통령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데, 어젯밤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선포되었다가 불과 두 시간 반 만에 국회의 결의안 통과로 싱겁게 끝나 버린 비상 계엄령 조치야말로 이 두 가지 사안의 조합이라 할 만하다.


애초에 그런 조치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일방적인 발표가 나왔다는 것도 뜬금없었는데, 마지막 계엄령으로부터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난 까닭인지 비록 군대가 출동하고 국회에 진입했다지만 예상만큼 기세등등하지는 못하고 흐지부지되었으니 더욱 황당무계한 일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도 묘사되었던 것처럼 애초에 군인 출신 대통령이라면 군대에 대한 장악력이라도 확실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터인데, 병역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고 심지어 현재 지지율이 10퍼센트대인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면 사상 최초 탄핵의 주인공인 박근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차점자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번 계엄령 사태를 계기로 결국 쫓겨나게 생긴 윤석열이 이들 모두를 능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소련 말기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고르바초프를 억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옐친이 시위대를 이끌고 군대를 설득하며 탱크에 올라가 연설함으로써 반란이 진압되고 소련 해체가 가속화되었던 것처럼, 기껏해야 두 시간 반짜리였던 계엄령이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나귀님이 학교 다닐 때에만 해도, 사회 시간에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배울 때에는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덧붙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일어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는구나 싶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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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첫 화면에 <이웃집 빙허각>이라는 아동 소설을 광고하기에, 이게 누구던가 싶어 클릭해 보니 <규합총서>의 저자였다. 옛 여성들은 이름이 없거나 망각되어 당호(집에서 따온 이름)로 지칭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다. '당'과 '헌' 모두 건축물을 가리키는 말이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신래미안과 허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1차쯤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202호 신씨와 1001호 허씨이거나.


<규합총서>는 예전에 신구문고 판본으로 갖고 있었던 듯해 책장을 뒤져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린원 판본으로 갖고 있었나 싶어 또 다른 책장을 뒤져 보았지만 역시나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책더미 속 깊은 곳 다산과 실학 저자들의 각종 국역서 옆에 들어 있거나, 아니면 <제민요술>이나 요리 관련서, 아니면 서유구 관련서나 기타 다른 책에 곁들여 읽으려 꺼내 놓았다가 엉뚱한 데에 방치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쨌거나 국역본을 하나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여러 번이나 헌책방에서 <규합총서> 번역서를 보고도 딱히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구글링해 보니 판본이 여러 가지인데 특히 정양완의 번역본이 대표적이라 하니, 어쩐지 몇 번쯤 봤던 것 같은 그 책을 미리 구입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하다. 참고로 정양완의 아버지는 위당 정인보, 남편은 국문학자 강신항, 아들은 논란이 있었던 수학자 강석진이다.


아동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니 몰락 양반가의 딸인 주인공 소녀가 이웃집 할머니 빙허각을 만나 <규합총서>의 저술에 일익을 담당하는 내용인 듯하다. 어쩐지 에밀리 디킨슨의 이웃집 소녀가 등장하는 그림책이 생각난다. 최근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숨은 조력자' 모티프를 빙허각의 사례에 가져다 붙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삼은 경우에 자칫 역사며 사실 왜곡 논란이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숨은 조력자'란 문자 그대로 어떤 업적의 주인공의 그늘에 가린 중요한 조력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가리키는데, 최근의 유행에서의 시발점은 논픽션으로 시작해 영화로도 제작된 <교수와 광인>이 아니었나 싶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제작 과정에서 정신병원에 수감된 광인이 자료 조사를 자원했다는 실화를 다루었는데, 이후 <나랏말싸미>와 <말모이> 같은 한국 영화에서도 이 모티프를 차용한 바 있다.


문제는 두 편의 한국 영화 모두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승려 신미가 핵심으로 관여했다는 줄거리이고, <말모이>는 일제 시대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과정에서 전과자에 까막눈인 판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줄거리이다. 양쪽 모두 '숨은 조력자' 모티프에 충실하려다 보니,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우주 개발에 관여했지만 주목 받지 못한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와 그 원작인 <로켓걸스>, 비슷한 여성 서사를 원자폭탄과 암호해독으로 옮겨놓은 <아토믹걸스>와 <코드걸스>, 또는 일종의 도시 전설로 자리잡은 '아인슈타인에게 업적을 가로채이고 사회적으로 매장된 첫 번째 아내'에 대한 소문도 마찬가지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뒤집다 보면 사안을 실제보다 과장하고 왜곡할 위험이 상존한다.


왜냐하면 영화와 책에서 부각시킨 것과 달리, 위에 언급한 각종 '걸스'와 밀레바 아인슈타인이 각각의 유명한 업적에서 담당한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연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도 나름대로는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초등에서도 텐징 노르가이의 공헌이 컸지만, 에드먼드 힐러리를 비롯한 영국 원정대가 없었다면 저 셰르파 혼자서 성공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숨은 조력자' 모티프도 대중의 구미에 맞아 유행하는 것이겠지만, <나랏말싸미>와 <말모이>처럼 무작정 대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선을 넘으면서 역사 왜곡 논란으로 치닫게 되는 듯하다. 비교적 잘 대입한 경우에도 논란은 여전한데, 걸작으로 칭송되는 영화 <서편제>조차도 토속적인 소재라는 외양과 달리 핵심 줄거리는 한국적인 한의 모티프가 아니라 그리스 비극의 카타르시스라는 국문학자 조동일의 비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지난번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 참고하려고 꺼냈던 박용구의 <역사소설입문>을 다시 뒤적이니, 역사소설은 사실에 충실하되 허구의 여지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작가도 사실과 허구의 선을 명확히 그어야 하고, 독자도 상상의 여지를 충분히 허락해야 한다는 뜻인데, 갈수록 의견 대립이 첨예화하는 사회에서 그걸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나온 <이웃집 빙허각> 역시 해당 인물에 관한 사료가 절대 부족한 점이 난관이었을 법한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나 궁금하다. 흥미로운 점은 빙허각 이씨 자체야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채로 남았지만, 그 주변 인물 중에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야 완역이 시도되었을 만큼 방대한 조선 시대의 실용 백과 <임원경제지>의 저자인 서유구가 바로 빙허각 이씨의 시동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유구가 젊은 시절 형수에게 글을 배웠다고도 전하니, <이웃집 빙허각>에서도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서씨 집안에는 원래부터 전해 내려오는 장서가 많았다고 하니, <규합총서>와 <임원경제지> 모두 개인의 업적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장서와 학술적 기풍 같은 환경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또 누군가는 이걸 보고 '시동생에게 연구 성과를 빼앗긴 형수'의 이야기를 구상할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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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라딘을 돌아다니며 새로 나온 책을 살펴보니 '케임브리지 세계사'라는 시리즈가 눈에 띈다. 원서는 2015년에 전7권 9책으로 완간된 모양인데, 번역서는 다시 둘씩 쪼개 18책으로 완간할 예정이라 한다. 2021년부터 출간을 시작해서 2024년 말 현재 원서 VI-1권의 번역서인 11-12책까지 나왔으니, 잘만 하면 몇 년 안에 완간도 가능하겠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콘사이스>(소와당, 2018)라는 요약본도 나온 모양인데, 같은 출판사에서 본편 간행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개요 성격으로 미리 내놓은 모양이다. 소와당은 예전에 <임원경제지> 중복 출간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별로 좋지 못한 인상을 받은 출판사인데, 이후 역사 서적을 꾸준히 내놓는 것으로 보아 일회성으로 생겨난 곳은 아닌 듯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케임브리지 세계사'라는 이름의 시리즈는 이전에도 몇 가지가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약사'(A Concise History) 시리즈 중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편이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개마고원, 2000-2002)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최근에는 스페인 편이 <케임브리지 스페인사>(글항아리, 2024)로 나왔다.


이름 그대로 도판을 곁들인 '케임브리지 도판 역사'(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시리즈 중에서는 프랑스, 중국, 독일, 이슬람 편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각국사'(시공사, 2001)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왔다. 일반 역사가 아니라 개별 분야의 역사로는 <케임브리지 서양음악이론의 역사>(음악세계, 2022)라는 것이 간행되기도 했다.


단권사나 축약본이 아닌 케임브리지 통사로는 '케임브리지 중국사'(전15권)의 번역본인 '캠브리지 중국사'(새물결, 2007)가 우선 10권과 11권을 4책으로 간행하며 시작되었으나, 이후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추가 간행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결국 중도작파한 듯 보인다. 물론 책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붙이는 출판사이니 완간되어도 문제겠지만.


케임브리지의 이름을 내건 교양서 시리즈도 그동안 꾸준히 나왔다. '입문'(Introduction) 시리즈인 <케임브리지 중국철학 입문>(유유, 2018)과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그린비, 2024), '개론'(Companion) 시리즈인 <본회퍼 신학개론: 캠브리지 지침서>(종문화사, 2017)와 <도스토옙스키: 케임브리지 대학 추천 도서>(우물이있는집, 2018)가 대표적이다.


알라딘에서 '케임브리지'로 검색하다 보니 '케임브리지 7인'과 '케임브리지 5인'에 대한 책도 나오는데, 전자는 19세기 말에 중국 선교사로 투신한 그 학교 졸업생들을 가리키며, 후자는 20세기 초에 소련 스파이로 활동한 (그리하여 훗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소재가 된) 그 학교 졸업생들을 가리킨다. 참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한 동문들이다.


때로는 '케임브리지'를 강조하려다 그만 삐끗한 경우도 있다.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소와당, 2019)는 비록 그 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지만 원제는 '케임브리지' 없이 '중국경제사'뿐이다. 저자도 '캘리포니아 학파'를 대표하는 미국 학자라니, 출판사도 뒤늦게야 부적절하다 생각했는지 머지않아 <폰 글란의 중국경제사>로 제목을 바꿔서 재간행했다.


케임브리지 이야기를 한참 했으니 그 라이벌인 옥스퍼드도 빼놓을 수 없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단권본 '역사'(History)로는 <옥스퍼드 책의 역사>(교유서가, 2024), <옥스퍼드 영국사>(한울, 2006),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열린책들, 2005)가 나온다. 마지막 책은 이후 <세계 영화 대사전>(미메시스, 2015)으로 제목이 바뀌어서 재간행되기도 했다.


옥스퍼드의 통사로는 '옥스퍼드 미국사'(전12권 예정) 가운데 제2권인 <위대한 대의: 미국 혁명 1763-1789>(사회평론, 2017)가 번역되었다가 절판되고, 이후 <미국인 이야기>(사회평론, 2022)라는 제목으로 분권 신판이 나왔지만, 근간 예정이었던 4-6권은 무려 7년 뒤인 지금까지 간행되지 않았으니, 결국 시리즈 완간은 물 건너가 버렸다고 봐야 맞겠다.


'옥스퍼드 도판 역사'(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중에는 <(일러스트레이션판) 옥스퍼드 유럽 현대사>(한울, 2003), <옥스퍼드 과학사>(반니, 2019), <옥스퍼드 세계사>(교유서가, 2020)가 나왔다. '약사'(The Short History) 중에는 <옥스퍼드 영문학사>(동인, 2003)가 번역되었는데, 고유명사 표기가 지나치게 제멋대로라 문제였다고 기억한다.


짧은 분량으로 미루어 개론 수준에 가까워 보이는 '새로운 옥스퍼드 세계사'(New Oxford World History)라는 시리즈 중에서는 도시, 민주주의, 테크놀로지 편이 '옥스퍼드 세계사'(다른세상, 2016-2017)라는 시리즈명으로 간행되었고, 중국 편만 별도로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유유, 2016)이란 제목으로 간행되었는데, 이후로는 소식이 없는 듯하다.


'옥스퍼드 미술사'(Oxford History of Art) 중에서는 중국 미술, 20세기 디자인, 포토그래피가 '옥스퍼드 히스토리 오브 아트'(시공사, 2007)라는 시리즈로 나왔다. 같은 출판사에서 더 먼저 나온 <옥스퍼드 20세기 미술사전>(시공사, 2001)과 <옥스퍼드 미술사전>(시공사, 2002)은 번역서 제목과 달리 원서가 사전이 아니라 '개론'(Companion)으로 분류된다.


'안내(Handbook)' 시리즈 중에는 <인지언어학 옥스퍼드 핸드북>(로고스라임, 2011),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따비, 2020), <정치네트워크론>(학고방, 2022),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책과함께, 2023),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교유서가, 2024)가 번역되었고, '사전'(Dictionary) 시리즈 중에는 <옥스포드 교황 사전>(분도출판사, 2014)이 번역되었다.


옥스퍼드의 개론 시리즈로는 '짧은 개론'(A Short Introduction)과 '아주 짧은 개론'(A Very Short Introduction)이 있다. '짧은 개론' 중에는 생각, 감정, 신화, 선 편이 '옥스퍼드 인트로'(이소출판사, 2002-2004)라는 시리즈명으로 번역되었고, '아주 짧은 개론'은 '첫단추 시리즈'(교유서가)라는 이름으로 2015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50권 넘게 나왔다.


'옥스퍼드'라는 이름을 굳이 내세우지 않고 암약한 책도 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간행한 '일곱 가지 대죄'(The Seven Deadly Sins) 시리즈가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민음인, 2007)이라는 평범한 시리즈명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앞서 언급한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처럼 '옥스퍼드'라는 이름 사용이 의아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오늘의 단어책>(월북, 2023)은 그 대학 출판부의 저 유명한 영어 사전을 담당했던 사람의 저서이기는 하지만, 원제에 '옥스퍼드'가 들어 있지도 않고, 그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같은 논리라면 역시나 그 영어 사전 편집장이었던 사람의 저서 <단어 탐정>(지식너머, 2018)도 <옥스퍼드 단어 탐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줄곧 경쟁만 일삼는 듯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이지만, 의외로 양쪽의 협업이라 할 만한 책도 있다. 앞서 언급한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의 저자가 옥스퍼드 카프카 연구소의 대표이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 옥스퍼드 카프카연구소 소장이 쓴 카프카 입문 완전판>이라는 사뭇 카프카스러운 제목이 탄생하고 말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외국 대학 이름 팔아먹기의 대표 주자는 하버드라서 각종 '하버드 수업'을 비롯한 책 대부분은 원제와 번역서 제목이 영 딴판이게 마련이다. 심지어 '하버드 중국사'(너머북스, 2014-2020)와 '하버드-C.H.베크 세계사'(민음인, 2018-2023)도 원제는 '중화제국사'(History of Imperial China)와 '세계사'(A History of the World)이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정식으로 그 학교 이름을 걸고 간행한 책뿐만 아니라, 단지 간행만 했을 뿐인 책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대학이나 대학 출판부에 재직했던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그 명칭을 가져다 쓰는 이유는 당연히 그 권위 때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학문적 권위가 각 대학의 이름에도 배어 있다고나 할까.


따라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책도 신뢰할 만한 자료로 손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대학 출판부라면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은 열악한 상황에서 책을 간행하기 때문에 편집이나 디자인 면에서 일반 상업 출판사에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같은 사례는 더욱 돋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모두 지금은 대학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만, 원래는 지명이라는 것이다.(참고로 하버드 대학이 있는 미국의 지명도 '케임브리지'이다) 어원을 따지면 '옥스퍼드'는 '소'(ox)의 '여울'(ford)을 뜻하니, 직역하면 '쇠여울' 소재 '쇠여울 대학' 부설 '쇠여울 대학 출판부'에서 '쇠여울 세계사'와 '쇠여울 중국사'를 내놓은 셈이다.


일면 우스워 보이지만, 우리나라 대학 이름으로 대체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출판부에서 '서울 세계사'와 '고려 중국사'를 내놓으면 살짝 모순 같지 않겠나. 그나마 무난한 이름이라면 '연세 세계사'와 '연세 중국사' 정도인데, 이 대학은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는 우유와 크림빵 같은 식품 분야에 전념하고 있으니 아쉬울 뿐이다.


여자 대학은 문제가 더 복잡한데, 예를 들어 '이화 여자 세계사'나 '성신 여자 중국사'가 나오면 세계사인지 여성사인지 중국사인지 중국 여성사인지 헛갈릴 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덕 여자 세계사'가 나온다면 '학생들과 상의 없이 남성에 대해 서술했다'는 이유로 락카칠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대학은 이제 출판부도 없어진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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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렸는데 아직 초겨울인 11월임을 감안하면 의외로 양이 많아서 여기저기 사고며 불편을 초래한 모양이다. 어린 시절에야 눈 내리는 모습만 봐도 신이 나더니만, 어른이 되어서는 저걸 또 어떻게 치우나, 저걸 또 어떻게 피해 다니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저나 눈 소식을 접하니 <만엽집>에 나오는 남녀의 문답가가 문득 떠오른다. 지난 여름에 어쩌다 보니 완역본 2종을 연이어 구입하게 되어서 관련서도 뒤적이다가, 우에노 마코토라는 연구자가 쓴 <천년의 연가 만엽집>이라는 해설서에서 우연히 접하고 흥미를 느낀 까닭이다.


이 책은 <만엽집>의 내용을 토대로 옛 일본인들의 기쁨, 분노, 비애, 즐거움을 설명하는데, 그중 기쁨에 관한 장에 "내리는 눈에 신명나서 떠들어대는 만엽 시대의 사람"이라는 절이 있다. 제목 그대로 <만엽집>에 수록된 작품을 남긴 시인들은 눈을 무척이나 귀하게 여겼다는 거다.


왜냐하면 그들 중 상당수의 거주지였던 긴키(近畿), 즉 오늘날의 간사이(関西) 지역은 원래부터 눈이 드문 곳이기 때문이다. 우에노 마코토는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만엽집> 권2에 나오는 덴무 천황(673-686 재위)과 후지와라 부인의 문답시를 제시한다.



내가 사는 곳에 큰 눈이 내렸구나

당신이 있는 후지와라의 낡아서 추레해진 마을에

내리는 것은 나중이겠지 (권2 103)



여기서 부인(夫人)은 왕비(妃) 다음가는 지위인데, 당시의 천황은 왕비 두 명과 부인 세 명을 비롯해서 여러 아내를 거느릴 수 있었다. 마침 후지와라 부인은 덴무 천황의 거처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따로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부인은 다음과 같은 답가를 보냈다.



그 눈은 언덕의 용신에게 제가 명령해서 내리게 한

눈의 일부가 그쪽에 내린 게 아닐까요 (권2 104)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남자가 '여기는 눈 오는데 거기는 후진 동네라 안 올거임. ㅋㅋ' 하고 문자를 보내자, 여자가 '어, 그 눈, 내가 내리라고 해서 내리는 거임. ㅋㅋ' 하고 답장 문자를 보내는 셈이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준다고 해야 맞겠다.


<만엽집>이라고 하면 일본 내에서도 정확한 해독이 어렵다는 평가가 있고, 우리말로는 한동안 번역이 없었던 까닭에 일각에서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둥, 그 안에 고대 한국과 관련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둥 사실상 유사역사학에 가까운 주장도 나오곤 했다.


하지만 위의 눈 노래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남녀의 애정을 비롯한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서 노래한 다양한 시를 엮은 작품집이라고 해야 맞을 법하다. 한때 유교적 이상을 담았다고 여겨진 <시경>도 지금은 남녀의 애정 같은 다양한 주제의 노래집으로 재평가되었듯 말이다.


<만엽집> 완역본은 2종인데, <만요슈>(전3권, 최광준 옮김, 국학자료원, 2018)는 절판이고, <만엽집>(전14권, 이연숙 옮김, 박이정, 2012-2018)은 현재 일부 품절이다. 선집으로는 이와나미신서 중 하나인 <만요슈 선집>(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2020)을 참고할 만하다.


완역본 2종 가운데 이연숙의 번역은 원문의 운율까지 감안하여 시의 형태를 유지하려 노력한 직역이고, 최광준의 번역은 운율보다 의미 전달을 우선시한 의역으로 간혹 첨언도 서슴지 않은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덴무 천황과 후지와라 부인의 문답시를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권2 103


이연숙: 우리 마을에 / 많은 눈이 내리네 / 오호하라의 / 그 한적한 마을에 / 내리는 건 후겠지


최광준: 우리 마을에 큰 눈 왔네. 당신이 있는 오하라처럼 오래 된 마을에는 나중에 내리겠지?


김수희: 우리 마을에 많은 눈이 내렸네 / 오하라의 한적한 마을에는 나중에 내리겠지.



권2 104


이연숙: 우리 마을의 / 용신에게 말해서 / 내리게 했던 / 눈의 그 조각들이 / 거기 내린 거겠죠


최광준: 내가 사는 언덕의 물의 신에게 부탁하여 그곳에 눈이 내린 것이예요. 그런 줄도 모르고 좋아하셨죠?


김수희: 이곳 언덕의 용신에게 고하여 내리게 했던 / 눈의 그 조각들이 그곳에 내렸군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귀님이 <만엽집>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국문학자 김사엽이 저술한 대우학술총서의 <일본의 만엽집>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저자는 일본에서 오래 활동하며 <만엽집>의 우리말 번역도 시도했지만 중도에 타계하며 결국 완역하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다.


두 번째 시도인 이연숙의 <만엽집>은 처음 1-3권이 나왔을 때만 해도 과연 완간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웠는데, 무려 6년의 노력 끝에 최초의 완역본이 탄생했으니 노고를 칭찬할 만하다. 세 번째 시도인 최광준의 완역본 <만요슈>는 이연숙보다 조금 늦게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나귀님이야 <만엽집> 완질을 구매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중고가 나올 때마다 호기심에 한두 권씩 구입하다 보니 전권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이연숙 번역본은 12년에 1-3권, 16년에 4-5권, 22년에 9, 14권, 23년에 6-8, 11-13권, 24년에 10권을 무려 12년에 걸쳐 모았다.


최광준 번역은 <일한대역 만엽집 선>으로 처음 접했는데, 일본어 학습 교재를 의도한 까닭인지 시 자체는 번역하지 않고 해설 위주라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절판본 <만요슈> 완질 중고가 알라딘 일산점에 있기에 충동구매를 하면서 얼떨결에 완역본 2종을 갖게 되었다.


앞서의 사례처럼 <만엽집>에는 남녀 간의 애정시가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유서 깊은 사례만 놓고 보아도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선동적인 주장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헛소리일 수밖에 없는데,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도 동조하니 묘한 일이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이 문화유물론의 괴수 마빈 해리스를 비판하며 말했듯이, 남녀가 "고기 먹게 사냥하자"고 노래하기보다는 "너랑 나랑 사랑하자"고 노래하기 더 쉬운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나.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도태될 운명일 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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