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중에 <나는 새들이 왜 노래하는지 아네>라는 것이 있기에, 마야 안젤루의 자서전이 표지를 바꿔 새로 나왔나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엉뚱하게도 탐조 활동에 관한 논픽션이었다. 그렇다면 저 흑인 작가의 책 제목은 뭐였나 싶어 검색해 보니,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고 나온다. 이쯤 되면 순진한 나귀님이 충분히 착각할 만해 보인다.
탐조 활동에 참여해 본 적은 없는 나귀님이지만, 그 분야의 애호가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훗날 영화로도 제작된 <빅 이어>라는 또 다른 논픽션을 통해서 그 극단적인 사례를 일별한 기억도 나고 말이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난초 도둑>과 <깃털 도둑> 같은 더 극단적인 사례에서처럼 취미에 대한 집착이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등장해서 뉴욕 센트럴파크의 탐조 활동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유튜브에서 검색해도 못 찾겠더라!) 어쩌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여의도 샛강이나 뚝섬 서울숲 같은 곳에서는 비슷한 활동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샛강 풀숲에서 족제비인지 수달인지 여러 마리를 본 기억도 난다.
예전에 이어령은 동양에서는 새가 "운다"고 표현하지만,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라고 표현하는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며 동서양의 사고방식 특징을 설명했었다. 지금이야 미국의 대중 문화를 중심으로 전세계 문화가 몰개성 동질화되는 추세이고, 이른바 '케이' 문화도 거기 편승해서 문화적 '소중화'를 자처하고 있으니, 그 차이도 많이 희석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최근 화제가 된 '스웨덴의 손님 접대'처럼 국가별 문화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고, 특히 유튜버들이야말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열심인 듯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공 장소에서 핸드폰을 놓아두어도 훔쳐가지 않더라'를 비롯한 각종 실험 영상에서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런 양심적인 모습이 우리 일상에 정착된 지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곳곳에 깔린 '씨씨티비'일 것이다. 어차피 훔쳐가도 오래 못 가서 걸리고 말 터이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는 셈이고, 혹시나 주인을 찾아주고 싶어도 공연히 오해를 받을까봐 굳이 손대지 않는 것이 아닐까. 반면 지난번에 말했듯 쓰레기 무단 투기를 비롯해서 비양심적인 행동도 빈번하니, 제도의 차이를 문화의 차이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반면 위에 언급한 책 두 권 모두 제목을 "새가 왜 우는지"로 의역하지 않고 "새가 왜 노래하는지"로 직역한 것은 문화적 차이의 희석 사례로 지적할 만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외국어 표현을 직역해서 차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지만, 사실 언어와 문화의 상호 침투는 나라마다 꾸준히 있어 왔던 현상이니 이제 와서 뭐가 옳고그르고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새가 운다"라고 표현했던 문화에서는 "새가 노래한다"라는 표현을 신선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리하여 "새가 노래한다"가 옳은 표현인 것마냥 통용되던 어느 날 누군가가 "새가 운다"라는 표현을 재발굴해 유행시킬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어 어느 교정 전문가의 지적처럼 일본어 관용구가 난무한다던 박경리의 <토지>가 마치 한국어 문장의 모범처럼 추앙되듯이.
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제 뉴스에서 미국 배우 리처드 체임벌린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의 대표작이 콜린 매컬로 원작의 드라마 <가시나무새>였기 때문인데,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서 큰 화제가 된 작품으로 기억한다. 저 제목은 영어 원제 The Thorn Birds의 직역인 듯한데, 우리나라에는 그 새의 정식 명칭이 없는 듯하다.
이 배우는 <가시나무새>와 <쇼군> 같은 드라마로도 유명하지만, 나귀님은 <삼총사> 시리즈에서 아라미스 역할을 맡은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라이더 해거드 원작의 '알란 쿼터메인' 시리즈에서도 무명 시절의 샤론 스톤과 함께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아류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으니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이 배우의 얼굴을 표지에 등장시킨 책이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 첫 권인 <본 아이덴티티>의 1988년 드라마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고려원에서 출간한 시리즈 3부작 여섯 권 모두에 얼굴을 올렸기 때문이다. 나귀님이 '본'이라면 지금도 맷 데이먼보다 리처드 체임벌린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래서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