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W. 캠벨(1910-1971)은 이른바 SF의 황금시대인 1930-40년대를 주름잡은 미국 잡지 <어스타운딩>의 편집자로 유명하다. 그 분야의 3대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에다가 '작가들의 작가'인 시오도어 스터전까지 모두 발굴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그 뛰어난 눈썰미며 폭넓은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나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그는 SF 창작도 병행했는데, 이중에서는 중편 "거기 누구냐?"가 가장 유명하다. 남극의 연구 기지에서 얼음에 파묻힌 외계인을 발굴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부활해 날뛰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물과 인간으로 의태하여 정체를 숨기는 바람에 대원들 사이에 의심과 불신이 급속히 퍼지며 외부 공격은 물론이고 내부 갈등까지도 겪는다는 이야기이다.


1950년대 매카시즘 공포를 반영했다고 평가되는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와도 유사한 줄거리인데, 캠벨의 중편은 정작 저 반공주의 광풍보다 10여 년이나 먼저 비슷한 상황을 묘사했으니 이래저래 흥미로운 일이다. <바디 스내처>와 "거기 누구냐?" 모두 여러 차례 영화화되어 오래도록 인기를 누린 요인도 외계인보다 인간 갈등 묘사가 탁월한 까닭은 아닐까.


캠벨의 중편에서 특히 흥미로운 인물은 외계인의 부활 앞에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정신줄을 놓아 버린 생물학자이다. 횡설수설 해대는 그를 딱하게 여긴 동료들이 일단 창고에 감금하는데, 나중에 다시 가 보니 광증은 연기일 뿐이고 이미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했고, 지구에는 없는 기술을 이용해 생전 처음 보는 기기며 무기며를 잔뜩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우주선 비이글 호>에서도 엄청난 무력과 뛰어난 두뇌를 지닌 외계인을 멍청한 지구인이 우주선에 들이는 바람에 삽시간에 쑥대밭이 되는데, 가까스로 외계인을 제거하고 보니 짧은 시간인데도 비범한 사제 무기를 만들었기에 지구인이 기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을 납치해서 자기 알을 심어놓는 그 외계인은 훗날 영화 <에일리언>에도 영감을 제공했다.


그나저나 새삼스레 캠벨의 소설을 다시 꺼내 읽은 까닭은 얼마 전 뉴스에서 한국 남극 기지의 흉기 난동 사건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대원들 간에 시비가 붙어서 당사자 두 사람을 다른 구역에 격리해 놓았다는데, 그중 한 명이 작업장에서 기계를 이용해 흉기를 제작해서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였다. 십중팔구 철판을 자르고 다듬어 만든 사제칼이 아니었을까.


비록 반중력장치나 광선총까지는 아니지만, 남극에서의 무기 제작이라 하니 캠벨의 소설 내용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남극 체류 경험자의 수기를 보면, 장기간 고립 상태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정신 건강의 양호함은 물론이고 대인 관계의 원만함도 필수 조건이라 했는데, 어쩌다 저 소설 내용에 버금가는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던 건지 모르겠다.


나귀님이 본 책 중에서는 <얼음에 갇히다>라는 논픽션이 남극 기지의 생활상을 가장 자세하고 흥미롭게 묘사했던 것 같다. 중년 여성 의사가 남극 기지 근무를 자처해 난생 처음 월동에 들어가는데, 불운하게도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원격 진료와 자체 수술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환자라서 향후 남극 체류를 금지당한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남극에서는 물자가 귀해서 사소한 물건도 내버리지 않고 재활용과 재재활용을 거치며, 주요 시설도 오래 되어 툭하면 고장 나기 때문에 불편 감내와 고통 분담은 선택 아닌 필수였다 한다. 대신 콜라에 만년설을 얹어 마시기, 사우나에서 나오자마자 남극의 눈밭에서 달리기 하고 들어가기 등 오로지 그곳에서만 가능한 보상도 있었다.


지난번 어느 방송국에서 예능 촬영을 한답시고 남극 기지에 찾아갔다가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을 축내는 등 공연히 민폐만 끼치고 돌아왔다며 비판 여론이 일었는데, 이번에는 칼부림까지 일어날 뻔했다니 이래저래 수난의 남극 기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편 비슷한 폭력이 전부터 비일비재했다는 지적도 있으니, 어쩌면 그것도 '한국형' 부조리의 연장일까.


그나저나 남극 최초의 칼부림 기록은 의외로 한국이 아니라 2018년에 러시아가 먼저 세웠다고 한다. 그 이유도 황당한데, 아직 읽지 않은 책의 결말을 동료가 먼저 이야기하는 바람에 빡친 사람이 칼을 휘둘렀다던가. 뭐, '스포일러라면 그럴 수도'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결국 나귀님도 이 글 한 편에 스포일러를 여럿 넣어버린 셈이니 살짝 뜨끔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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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그리스와 로마 고전의 원전 번역이 활발해지는 추세인 듯하더니만, 뜻밖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이미 간행 중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그린비와 아카넷 두 군데 출판사에서 간행하기에, 뭐 이런 걸 가지고 또 경쟁을 벌이나 싶어 희한했는데, 알고 보니 '원맨쇼'에서 비롯된 착시 현상 비슷한 상황인 듯하다.


우선 아카넷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토피카>,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을 포함해 <분석론 전후서>, <동물지>, <경제학> 등 10여 권의 전집 목록을 준비하고 있다"는 출판사 공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2020년에 제1권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가 김재홍 번역으로 나온 이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특이하게도 아카넷에서는 그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인 <영혼에 관하여>와 <에우데모스 윤리학>을 내놓기는 했지만, 양쪽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아니라 '정암고전총서'로 간행되었다. 이미 '전집'이 있는데도 굳이 '총서'로 간행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아카넷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중도작파로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그 사이에 아카넷에서 근간 예고했던 저술 중에서 <정치학>, <동물지>, <경제학>은 그린비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의 일부로 간행되었고, <토피카>와 <분석론 전서>와 <분석론 후서>는 서광사의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의 일부로 간행되었다. 하나같이 김재홍의 번역이니, 혹시 아카넷과 전집을 내려다가 모종의 이유로 출판사를 옮긴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린비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원래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절판된 <시학>과 <범주들/명제에 관하여>를 재간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심지어 <시학>은 원전 번역도 아니고 프랑스어판의 중역이다), 김재홍의 합류로 국내 초역(初譯) 작품을 여럿 갖게 되었고 (다만 <정치학>과 <관상학>은 구판의 재간행이다) 여차 하면 최초 완간까지 노려 볼 만하겠다.


서광사도 박종현의 플라톤 번역서가 처음 나온 30년 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서를 근간 예고했었다. 어떤 번역자는 노환으로 별세하여 교체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사반세기만인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왔지만, 김재홍의 <토피카>와 김진성의 <형이상학>은 절판본의 재간행에 불과했고, 김재홍의 <분석론 전서>와 <분석론 후서>부터가 국내 초역본이다.


이쯤 되면 결국 한국 아리스토텔레스 업계(?)를 김재홍 혼자서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카넷, 그린비, 서광사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우후죽순으로 간행하며 원전 번역 경쟁에 돌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사실은 한 사람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서를 간행 및 재간행하고 있는 셈이니 사실상의 '원맨쇼'에 불과하다.


김재홍 외의 원전 번역으로는 천병희의 <수사학/시학>,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있고, 조대호의 <형이상학>과 <동물발생학>, 김진성의 <형이상학>과 <범주론/명제론>과 <자연학 소론집>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책들도 절판과 복간을 거듭하다 보니, 마치 최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이 유독 활발해진 것 같다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다. 


그래도 <시학>과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뿐이었던 예전에 비하자면 훨씬 더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위서와 <자연학>을 제외하면 주요 저술은 대부분 나왔으니 말이다. 다만 플라톤의 저서는 정암학당을 비롯해서 번역과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맨쇼'에 의존하고 있으니 의아하고도 아쉬운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인용에 사용되는 '베커 쪽수'(1-1462)로 단순 계산하면, 지금까지 번역된 저술은 전체의 65퍼센트에 달한다. 김재홍은 공동 및 단독으로 전체의 40퍼센트를 옮겼으니, 전체 저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연학 분야 이외의 나머지를 대부분 옮긴 셈이다.(물론 자연학 가운데 일부도 옮겼고, 논리학과 윤리학 중에 안 옮긴 것도 있긴 하지만).


비록 '원맨쇼'라고 표현했지만, 오랜 세월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에 매진한 김재홍의 업적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물론 그 완성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플라톤 전집에 관한 글에서도 말했듯 고전 번역은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니니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고생한 사람에게는 마땅한 명예가 돌아가야 맞지 않나 싶다.


여하간 이쯤 되면 김재홍도 단독 번역 전집 완간 욕심이 생길 법하지만 현재로선 어려워 보인다. 번역서가 아카넷, 그린비, 서광사, 길 등 여러 출판사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린비와 서광사의 전집에는 다른 번역자도 관여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어느 출판사도 완간을 장담할 수 없으니, 머지않아 '헤쳐모여'를 거쳐 김재홍 단독 전집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이렇게 될 경우, 앞서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이 출판사를 옮기면서 완간이 지연되고 판형이 달라져서 독자를 골탕먹였던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즉 아카넷이나 그린비의 기존 '전집'을 구매한 독자는 결국 완간되지 못한 낱권만 갖게 되고, 빠진 권수만 채워 넣더라도 디자인 면에서 통일성이 없는 들쑥날쑥한 '전집'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출판사고 번역자고 간에 '전집'에 대한 철저하고 장기적인 계획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계획을 갖고 시작해도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으니 중도에 뒤집어질 가능성이야 항상 있겠지만, 이 분야에서 모범적인 사례인 서광사와 박종현의 사례처럼 수십 년째 지속되는 협력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영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와중에 박종현은 이제 <파르메니데스/테아이테토스> 한 권만 더 간행하면 결국 30년 만에 단독으로 플라톤 전집 완역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예정이니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독자를 우습게 아는 저놈의 정암학당도 전집 완간을 향해 박차를 가하며 <국가>를 내놓기는 했는데, 나귀님이 예견했듯이 판형을 바꿔서 역시나 근시안적 사고방식을 노출하고 말았고...




< 김재홍의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서 >


ㄱ. 맨 앞의 숫자는 베커 번호를 가리킴.

ㄴ. 제목의 [ ] 기호는 위작으로 간주되는 저술을 가리킴.

ㄷ.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베커 사후 발견되어 번호가 없음.


24-70: 분석론 전서 (서광사, 2024)

71-99: 분석론 후서 (서광사, 2024)

100-163: 토피카 (까치, 1998; 길, 2008; 서광사, 2021)

164-183: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한길사, 1999; 2007; 아카넷, 2020)

639-697: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 (그린비, 2024)

715-790: 동물의 발생에 대하여 (그린비, 2025)

805-814: [관상학]  (길, 2014; 그린비, 2024)

1094-1180: 니코마코스 윤리학 [공역] (이제이북스, 2006; 길, 2011)

1181-1213: 대도덕학 (그린비, 2024)

1252-1342: 정치학 (길, 2017; 그린비, 2023)

1343-1353: [가정경제학] (그린비, 2024)

( x ):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 (그린비, 2025)




<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서 (26년 5월 기준) >


ㄱ. 맨 앞의 숫자는 베커 번호를 가리킴.

ㄴ. 제목의 [ ] 기호는 위작으로 간주되는 저술을 가리킴.

ㄷ.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베커 사후 발견되어 번호가 없음.


1-15: 범주론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5; 2009; 그린비, 2023.

16-23: 명제에 관하여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5; 2009; 그린비, 2023.

24-70: 분석론 전서

a. 김재홍, 서광사, 2024.

71-99: 분석론 후서

a. 김재홍, 서광사, 2024.

100-163: 토피카

a. 김재홍, 까치, 1998; 길, 2008; 서광사, 2021.

164-183: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a. 김재홍, 한길사, 1999; 2007; 아카넷, 2020.

402-435: 영혼에 관하여

a. 유원기, 궁리, 2001.

b. 오지은, 아카넷, 2018.

436-485: 자연학 소론집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15.

639-697: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

a. 김재홍, 그린비, 2024.

715-790: 동물의 발생에 대하여

a. 김재홍, 그린비, 2025.

b. 조대호, 아카넷, 2025.

805-814: [관상학]

a. 김재홍, 길, 2014; 그린비, 2024.

980-1093: 형이상학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7; 서광사, 2022.

b. 조대호, 나남출판, 2015; 길, 2017.

1094-1180: 니코마코스 윤리학

a. 김재홍 외, 이제이북스, 2006; 길, 2011.

1181-1213: 대도덕학

a. 김재홍, 그린비, 2024.

1214-1248: 에우데모스 윤리학

a. 송유례, 한길사, 2012; 아카넷, 2021.

1252-1342: 정치학

a. 천병희, 숲, 2009

b. 김재홍, 길, 2017; 그린비, 2023.

1343-1353: [가정경제학]

a. 김재홍, 그린비, 2024.

1354-1419: 수사학

a. 천병희, 숲, 2017.

1447-1462: 시학

a. 천병희, 문예출판사, 2002; 숲, 2017.

b. 이상인, 길, 2023. 

( x ):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

a. 김재홍, 그린비, 2025.


* 저작 전반의 발췌본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김재홍 외, 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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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이번 주말에 특별 할인 행사를 하는 모양이다. 구매 금액 3만 원 이상은 4천 원, 5만 원 이상은 1만 원 즉시 할인이라니 제법 쏠쏠한 혜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몇 주 전에만 해도 구매 부수 2권 이상은 10%, 4권 이상은 20%, 6권 이상은 30% 할인 행사를 했었으니, 어찌 보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혜택의 폭이 더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귀님이야 지난번 행사 때에도 굳이 중고매장을 방문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굳이 찾아가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 만한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물건이 괜찮으면 가격이 안 좋고, 가격이 좋더라도 여러 매장에 한 권씩만 있으니 교통비나 배송비까지 감안하면 새책과 별 차이가 없어져서 구입을 꺼리게 되는 거다.


지난번 할인 행사 때에도 전부터 사고 싶은 물건이 딱 한 권씩만 있었던 논현점과 부천점을 하루씩 찾아가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우주점에 올라온 재고 목록을 훑어도 한 곳에서 2권 이상 구입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워 보여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 최소한 3만 원 이상 구입해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행사라면 더욱 더 참여하기가 어렵지 않겠나.


나귀님이 살까 말까 생각 중인 저 책들의 상태를 보면 알라딘 중고매장의 현 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는 듯하다. 원체 보기 드문 책들이어서 예전 같으면 누가 진즉 가져가 버렸을 법한데, 나귀님이 발견한 지 6개월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팔리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귀님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이용자들도 구입을 꺼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찌 보면 중고매장의 문제는 우후죽순식 확장의 역설로도 보인다. 중고 물품의 공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매장이 늘어나는 만큼 상품은 줄어들게 마련이어서, 이제는 중고 서적 대신 신간이나 문구를 더 많이 진열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중고 물품도 대부분 악성 재고일 뿐이고, 나귀님의 경우처럼 어쩌다 살 만한 물건이 있어도 사방팔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중고매장 초창기에 종로점이나 신촌점에 가면 늘 한두 박스씩은 구입했던 나귀님이지만, 지금은 매장마다 살 만한 물건이 한 개쯤 뿐이고, 그나마도 가격이 맞지 않거나 배송료가 아까워서 사지 않고 버티는 참이니, 그 물건은 머지않아 악성 재고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반짝 할인 행사 대신 가격이나 배송료 인하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덩치 늘리기에만 골몰해 매력을 상실한 것이 알라딘 중고매장의 현 상황이 아닐까 싶다. 매장은 늘어나고, 상품은 줄어들고, 수익도 줄어드니 가격을 올리자고 생각했겠지만, 이용자라고 해서 무조건 수긍할 리는 없다. 중고 구매의 매력은 어디까지나 '싼 맛에 하나 더' 산다는 것인데, 중고매장의 정책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외면당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예전 어느 헌책방 사장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주인은 절대 손님보다 똑똑한 척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1만 원짜리 책이 있어도 9천 원만 부르면 손님은 '여기는 주인이 가격을 잘 몰라서 싸게 판다'고 생각해서 단골이 되지만, 항상 제값을 부르면서 에누리조차 없으면 손님도 횡재하긴 글렀다고 생각해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구입을 삼가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지 않아서 대학가의 식당들이 폐업까지 고려한다는 뉴스 기사가 나온다. 음주 문화가 바뀐 것도 사실인 듯하지만, 그보다는 코로나 이후 급격히 인상된 주류와 음식 가격의 영향도 없지 않을 듯하다. 뒤늦게 가격을 내리는 곳도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아닐까. 나귀님 보기에는 알라딘 중고매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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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양반이 까먹었는지 태블릿을 놓고 나갔기에 오랜만에 유튜브에 들어가 보니, 배우 김석훈의 채널에 고액 세금 체납자 압수품 경매를 살펴보는 동영상이 있기에 클릭해 보았다. 이 배우는 홍길동이며 "궁금한 이야기"며, 여하간 반듯한 이미지로만 생각되었는데, 의외로 중고 물건을 좋아해서 종종 찾아다닌다기에 신기하면서도 뭔가 친근한 느낌까지 생겼다.


간혹 뉴스에서 국세청 직원이 고액 세금 체납자의 자택을 급습해서 집안 곳곳에 숨겨놓은 현금이며 각종 고가 물품을 압수했다는 내용이 보도되는데, 이번 경매는 그렇게 압수한 물품을 처분하는 자리였다 한다. 경매는 3월 11일에 이미 끝났으며, 김석훈은 경매를 앞두고 진행사인 서울옥션을 방문해서 미리 물품을 확인하고 설명을 듣는 내용을 콘텐츠로 제작했다.


압수품 중에는 가방과 장신구 같은 각종 "명품"은 물론이고, 미술품과 골동품에 심지어 와인까지도 있었는데, 의외로 책도 한 권 있어서 특이하다 싶었다. 지난번 최화정 유튜브에서 윤유선 집에 있다고 나왔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대형 화집인데, 출간 당시 가격이 수백만 원대이고 지금은 더 뛰었으니 충분히 고가 물품이라고 간주되어 압수 대상이 될 만해 보인다.


김석훈도 가방과 장신구와 와인 같은 각종 "명품"보다는 이 책을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다. 추정 낙찰가 300-700만 원이라서 자기도 400만 원까지는 쓸 의향이 있었다지만, 실제 경매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니 이미 830만 원까지 가격이 오른 상태여서 응찰도 못 하고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귀님 입장에서는 저 응찰가가 뭔가 너무 비싸지 않은가 싶었다.


왜냐하면 지난번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호크니의 초대형 화집은 원래 정가 400만 원이지만 지금도 알라딘에서는 850만 원에 구입 가능하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 저 초대형 화집에는 전용 받침대도 끼워주었던 반면, 이번에 경매에 나왔다는 화집은 그 받침대가 없는 듯했다. 신품을 85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면 중고로 830만 원은 비싸지 않나?


물론 애초에 9,000부 한정판이고 해외에서는 모두 품절이니 830만 원에 구입해도 충분히 이득이겠지만, 만약 알라딘에 재고가 있다면 차라리 적립금 25만 원 받고 정가 850만 원에 신품을 사는 편이 더 이득일 것이다. 관건은 알라딘의 재고 유무인데, 어쩌면 진짜로 창고에 먼지 쌓인 재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어쩌면 "전산 착오"로 재고 없는 책일 수도 있다.


여하간 진짜로 있다고 치면, 딱 "콘텐츠 각"이기는 하다. "정가 850만 원, 전세계 9,000부 한정판, 전설의 희귀본 구입기!"라며 주문부터 "언박싱"까지,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그걸 중고매장에 들고 가서 정가의 20퍼센트인 170만 원에 중고로 되파는 과정까지 찍어보면 제법 화제가 되지 않을까. 알라딘 회원 중에 혹시 유튜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도해 보시라.


그나저나 저 화집의 낙찰가가 얼마인지 궁금해서 구글링했더니, 경매 결과는 서울옥션 회원에게만 공개된다 해서 결국 알아내진 못했다. 한 번 부른 가격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결국 830만 원 이상의 가격으로 낙찰되지 않았을까. 물론 김석훈이 탐낸 또 다른 물품인 달항아리는 경매 시작과 동시에 응찰가가 4천만 원이었으니, 책값이야 새 발의 피 수준이다만.


한편으로는 저 호크니 화집의 원래 소유주가 과연 누구였을지 궁금하다. 단순 치부 목적에서 고가품을 섭렵하다 한정본 화집까지 구입한 걸까, 아니면 호크니의 그림을 구입하기 위한 참고서로 구입한 걸까, 아니면 진짜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이것까지 구입한 걸까. 그런데 어쩌다가 고액 세금 체납자가 되어서 기껏 산 책을 빼앗기고 경매에 내보낸 걸까.


물론 뒤집어 생각해 보면 딱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고액 체납자의 기준이 2억이라니 이렇게 재산 압류까지 들어갔다면 최소 수억에서 최대 수십억 단위의 범법자라고 봐야 할 테니까. 최근 늘어난 전세 사기 사건에서도 건물주가 국세 체납자인 경우가 많았으니, 상습 고액 체납자라면 세금은 둘째 치고 다른 방면에서도 이미 피해자를 다수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책 한 권에 830만 원이라니. 가진 책 전부를 오늘 당장 경매에 내놓아도 총액이 그쯤은 못 될 나귀님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금액이다. 물론 어쩌다 수도 요금 한 번 밀리기만 해도 가슴 덜컥 하는 나귀님 입장에서는 무려 세금을 수억씩 체납하면서까지 호크니 화집을 집에 두고 있었다는 것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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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읽기의 계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였나, 오랜만에 문득 생각이 나서 알라딘의 또 다른 신규 서비스인 "투비컨티뉴드"에 들어갔더니만, 알라딘에서 서비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창작자들의 성토가 한창이기에, 이것도 결국 오래 못 가겠구나 싶었는데 또 새로운 서비스라니, 이건 또 얼마나 가다 말려나.


그나저나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주제별 책 소개인 듯한데, 26년 1호의 주제는 "AI는 인간의 꿈을 꾸는가?"이다. 대강 그 주제에 해당하는 책들을 줄줄이 소개하고 설명을 덧붙였는데, 어째서인지 사고싶어도 살 수 없는 책들이 몇 가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신화적 원형" 항목에 소개된 에이드리엔 메이어의 <신과 로봇>은 현재 절판이기 때문이다.


"대항문화와 실리콘밸리" 항목에 소개된 티머시 리어리의 <플래시백>도 역시나 절판본인데, 이건 오역 논란까지 있었던 책이다. 심지어 "불평등 가속 체계" 항목에서는 <AI 지도책>의 서지 정보를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을유문화사"라고 잘못 적어놓기도 했는데, <신과 로봇>의 내용을 잘못 "복붙"한 결과로 보이니, 이래저래 부실공사투성이다.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구입 가능한 책과 가능하지 않은 책, 절판본과 오역본을 구분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정돈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옥석을 뒤섞다 못해 존재하지 않는 정보까지 존재한다고 우기는 환각 증상이 AI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는 지금 상황에서 보자면, "읽기의 계보" 서비스야말로 충분히 현 추세에 맞는 것 같다만...



[*] 위에 쓴 것처럼 알라딘의 잘못에 대해 지적질을 했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서지정보를 수정해 놓았다. 기껏 책 팔아보겠답시고 이벤트를 만들면서도 서지정보 하나 제대로 못 적어놓고, 심지어 팔 수도 없는 절판본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밑에 장바구니 담기 버튼을 넣어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어 황당한 상황을 만들다니, 이래저래 부실하고 시늉뿐인 알라딘이다. 지난번 21세기 최고의 책 이벤트도 그랬지만, 매번 뭔가 일을 벌일 때마다 잘못되거나 미진한 부분이 눈에 띄니, 뭔가 진심이라곤 없고 시종일관 불성실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하간 지들이 잘못한 것은 나귀님 서재 글 읽고 슬그머니 고치면서도, 정작 선정하고 나서도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뭉개 버린 서재의달인 기념품은 여전히 소식도 없으니 참으로 웃기는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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