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좋지 않다.
아침으로 먹은 빵과 커피가 탈이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복 상태에서 어제 먹은 술이 원인일지도 모르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 죽은 고양이를 보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 안 곳곳의 섬뜩한 기운에 , 밤새 뒤척이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불편하고 기분이 나빠, 소화제 대신 멀티비타민을 먹었다.
그러니까, 이,
멀티비타민은 알라딘 추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것이다.
무려 육십정씩 세 통이 들어있다.
부키 출판사의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으로 인해
받은 것인데 내 책이 아니다.
한 달전, 사장님이 몇 권의 책을 주문하라 하셨는데
그 틈에 이 책이 끼여 있었을뿐이고 운이 좋아
당첨까지 됐다. 육천원이 넘는 마일리지까지 챙겼으니
감지덕지다. 정확히 내 이름으로 배달 된 택배를
뜯어 쇼핑백에 담아 책상 옆에 두었더니
지나가시면서 이게 뭐니, 하고 물으시길래
당당하게 제 꺼요. 했다.
긍정이 배신을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
단지 난, 이 멀티비타민의 효능만 배신하지 않으면 된다.
매일같이 뜨거워지는 날씨와 낙화하는 꽃잎에 대해 얘기하다
오늘부터는 쓸데없는 날씨거사 따위는 되지 않기로 했다.
무언가를 미화하기위한 소재로는 충분하지만 왠지, 멍청해보인다.
이를테면 더러운 걸레나 음식물 냄새가 나는 쓰레기통을 뒤져
좀 더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데에 힘을 쏟아야겠다.
검은 계단을 읽고 있다.
서평의 의무가 주어졌고 지켜야 할 기간은
지났다. 개의치는 않지만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지나치게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변명으로 합리화를 시켜보지만, 결국은 술이다.
취한채로 읽기도 하지만 그건 책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몇 페이지까지 읽었는지
대체로 잊는 편이라 다시 읽어야 한다.
이런 서평의 의무가 주어진 책은 ,
책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다.
유일하게 욕심부리는 것이 있다면 속옷과 책인데 책에 더 민감하다.
여러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평단 모집이나 이벤트에
빠짐없이 신청했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그건 아니올시다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책을 구매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분기마다 책에 드는 비용은 만만찮다. 읽지도 않으면서 그저
쌓아두는 것이다. 왜 !
서평의 의무가 주어진 책을 먼저 읽고 서평기간을 지켜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기간도 지키지 못 할 거면서 서평단을 신청해 진정으로
이벤트 책을 읽고 싶은 이들의 기회를 빼았는가.
그건 일종의 나 스스로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와의 약속이 주어진 책은, 90% 읽어내는 편이다.
그렇게라도 책을 읽으려 함이 솔직한 이유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있는 책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읽을 수 있지만,
책장에 읽지 못한 책이 더 많이 꽂혀있다는 사실을 자각할때마다
취미를 독서라고 자신있게 적어내는 나를 기만하는 일이 아니게
만드려는 일방적인 나의 독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난, 하나의 수단으로 몰락한 독서를 지속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부터 생각해봐야겠다.
쓰다보니 이런 물음이 갑자기 생겼는데, 답이 있을까도 싶다.
일찍이 내가 읽는 책들에는 '지혜의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