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식당 북멘토 가치동화 23
박현숙 지음, 장서영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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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먹고 싶다. 비빔밥에 화룡점정처럼 맨 위에 찍히던 노란 동그라미도 사라지고, 노르스름한 옷을 입은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도 급식 메뉴에서 자취를 감췄다. 나야 반백년 가까이 살았으니 슬금슬금 먹어도 상관없지만, 아이에게 먹이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다보니 덩달아 못 먹게 되었다. 계란찜, 계란프라이, 계란말이, 삶은 계란, 계란 옷 입혀 부치거나 튀기는 무궁무진한 재료들. 몇 안 되는 요리 아이템 중 요직을 차지하던 이 소중한 것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허탈감이라니!

 

음식을 만드는 이의 양심을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말하는 동화이다. ‘제대로 된 맛을 찾아라라는 TV프로그램에서 선정한 17호점 식당 금보 일식’. 하지만 이 식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밀가루와 간장, 된장, 접촉 불량인 냉장고 안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고기, MSG가 첨가된 우동 국물 소스를 몰래 쓰고 있다. 친구 아빠가 운영하는 이곳이 비양심적인 비밀을 감춘 채 운영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주인공 여진이는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처음으로 접하는 저자의 글이다. 천연재료로 우려낸 따끈따끈한 우동 국물을 마신 것처럼 개운하다.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이 동화가 지닌 장점은 등장인물 중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력에 있다. 비양심적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식당의 주인조차도 감싸 안는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참 좋다.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전개도 신선하다. 중간 중간 소금처럼 살짝 뿌려지는 약간의 유머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면서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 의식이 분명하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일식집의 초밥처럼 깔끔한 글이다.

 

어릴 때 가장 맛있게 먹던 음식은 구운 김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반찬 그릇은 분홍색 둥그스름한 김 통이다. 안방에 신문지를 깔고 들기름을 솔로 바른 후 맛소금을 솔솔 뿌리는 것은 우리 형제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번갈아가며 미션을 수행하면 엄마는 네모난 석쇠를 정성스레 뒤집어가며 연탄불에 김을 구우셨다. 바삭 구워져 살짝 갈색테두리가 생긴 김은 여덟 등분으로 나뉘어 김 통에 담겼다. 아직도 가끔 입맛을 다시면 그 때 먹던 김 맛이 생각난다. 도시락 김이나 8장 들어있는 A4 김이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음식은 어린 내게 그저 허기를 면하는 기능 이외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 습관적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다. 엄마가 되어 직접 요리를 하게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가 먹던 김 맛이 왜 그리 특별했는지를, 나의 세 끼에 들어있던 최고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를. ‘음식의 최고 재료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래요.(p64)’ 나는 엄마의 정성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왔던 거다.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든다. 비슷한 내용의 문장은 많은 책에서 언급된다. 음식의 기능은 에너지를 내고 몸을 구성하고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능을 조절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를 검출하는 내용을 수업에서 가르치면서 습관적으로 말하는 내용이다. 가르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말했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보니,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아이가 먹는 것이 아이의 몸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흡입할지언정 아이에게는 어떤 재료든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실전은 달랐지만 정말 마음은 그랬다는 얘기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참치 캔이나 비엔나소시지, 베이컨, 도시락 김을 상습적으로 들이밀었고, 원 푸드 반찬을 제공한 적도 많았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준 지가 언제였더라. 둘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저녁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준다며 좋아라했던 불량 엄마는 최근의 행동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이리라 다짐한다.

 

계란을 사기가 조심스러워지기 몇 달 전, 계란말이를 하다가 처절하게 캬라멜 빛으로 변한 계란을 탄생시켰다. 음식은 할수록 숙련되기 마련이건만 계란말이는 갈수록 실패를 자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했어.(p187)’ 처음으로 계란말이를 해보았을 때가 언제였더라. 그 때는 처음인데 너무 잘했다며 좋아했는데. 뒤집개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여 조심스레 말았던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초심을 잃었던 걸까. 책 속에 나온 문장을 보면서 음식을 향했던 초심을 생각한다.

 

살충제 파동이 일었을 때, 계란에 무슨 벌레가 있길 래 살충제를 뿌릴까 의아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자유롭게 몸을 가눌 수 없는 좁아터진 닭장. 그 안에 갇힌 닭들에게 생기는 진드기를 제거하려고 직접 몸에 뿌린다고 했다. 밤에도 알을 낳게 하려고 조명을 계속 켜놓는다고 들었다. 책 속에 등장한 일식집의 비리도, 살충제 계란도 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부른 결과이다. 광우병이 이슈가 되었을 때, 소는 초식 동물인데 왜? 라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심이 가지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명을 지닌 존재는 또 다른 생명을 취해 그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한 때 또 다른 생명이었던 존재 아닌가. 어찌할 수 없는 먹이사슬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최고의 재료를 담아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던 때를 기억하는 마음이라면, 음식과 관련된 사람들도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일을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음식마다 최고의 재료를 담아내리라. 이런 마음이라면 다음에는 노르끼리하고 반들반들한, 예술혼이 담긴 계란말이가 나올 것 같은데, 언제쯤이면 편안하게 뒤집개를 휘두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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