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지음 / 민음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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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편하게 수업을 마친다. 매시간 실실 웃으며 주변 친구들과 속닥거리는 녀석의 책상 위에 교과서가 없는 것은 이미 당연한 일이다. 웃는 모습만 이쁜 녀석! 점심시간에 팔씨름을 하다가 팔이 잘못되어서 병원에 갔단다. 한 이틀 학교에 못나오더니 한동안 기브스를 하고 다닌다. 삼일천하가 된 수업시간, 녀석과의 실랑이가 다시 시작된다. ‘좀 더 푹 쉬어도 될 텐데, !’다친 아이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에는 청소년들이나 아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수업을 방해하는 그 녀석보다 더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거나, 부모님이나 세상을 향해 뾰족한 날을 세우고 있거나 어른들에 의해 상처를 입고 있다. 학교조차 다니지 않는 가출 청소년, 오토바이 폭주족, 미혼모, 성폭행으로 죽은 아이,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는 아이, 섹스가 아무렇지 않고 타인의 죽음에도 무감각해진 아이들이다.

 

죽음, , , 섹스, 담배, , 냄새, 쓰레기. 책 속에서 줄줄 꿰어져 곰팡이처럼 떠다니는 단어들에 거부감이 일어난다. 나무 위에 뒤엉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매번 장식하는 전등이 생각난다. 전등에 꽁꽁 묶인 채 생기를 잃어가는 나무가 아이들과 겹쳐진다. 이런 단어들에 둘러싸여 눈물 대신 마음의 피를 흘리며 축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소설이라는 표지에 둘러싸인 다큐적인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내게 온 작은 단어들을 곱씹으며 한 발 한 발 지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p262)라고 한 말처럼, 김 봄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꼭꼭 씹어 드러낸다.

 

세상과 부모와 어른들은 절대 온도처럼 차갑다. ‘유일하게 자신의 붉은 속살을 제 몸에 붙여주는 녀석이었으니까요.’(p38, 무정) 라 하며 가족이 아닌 자신을 핥는 개에게서 온기를 찾고, ‘그러니까 차가운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아무리 추워도 너도 딱 거기까지만 차가워질 거야.’(p191, 절대 온도)라며 273에서도 위안을 찾으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겨울 성냥팔이 소녀를 보는 듯 애처롭다.

 

그들에게 세상은 더럽고 잔인하다. ‘세상이 다 화장실 같다면서 말이다. 수완의 말이 맞았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만 가득하다.’(p97~98, 내 이름은 나나) 화장실만을 찾아서 나나와 섹스를 하는 수완의 행위는 세상에 대한 배설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삼촌은 씨방만 남은 사과를 빼앗아 들고 어금니로 으깨 먹었어요. 그 순간 삼촌이 짐승 같았어요. (중략) 왠지 모르게 삼촌의 모습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뜯어먹는 것처럼 보였어요.’(p119, 아오리를 먹는 오후) 성폭행으로 죽기 전에 엄마의 애인인 삼촌이 사과를 먹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소녀의 모습이 연두빛 아오리와 겹쳐진다.

 

엄마의 눈에서 파리지옥을 연상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천적과 같은 존재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조차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내가 아닌 게 없는 방이었지만 나인 것도 없는 방이었다.’(p161, 문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서도 가장 먼 남인 것 같다.’(p230, ! 해피) 엄마를 남으로 느끼는 딸에게 엄마의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없을 때, 부모는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p267)라는 말이 아프다.

 

이 책의 인물들에게 죽음은 허무하리만큼 쉽고 대수롭지 않다. ‘납작한 종이 인형이 죽은 것처럼 여자의 테두리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죽음 자체도 그렇게 간단해보였다.’(p41, 림보) 죽음의 현장을 일상의 공기처럼 들이마시는 형사에게 자신의 집에 있는 지하실은 유일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다. 제목이 왜 림보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여자의 모습, 낮게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실에서 림보를 할 때 취해야 할 자세가 연상된다.

그냥 등지고 나가면 되는 거야. 뭐가 어려워.’(p198) 팸을 결성했다가 의도치 않게 죽은 가출 청소년을 버려두고 몰래 도망가려는 아이들은 그들을 등진 세상과 섬뜩할 만큼 닮아있다.

 

작품을 해설을 하는 문학 평론가 강유정의 관점은 이 책의 핵심을 제대로 관통한다. ‘문제는 이 아이들의 속도가 파괴하는 것이 그들이 조종하는 세계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p271) ‘아이들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세상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p283)

어른들이 읽어야하는 책이다. ‘어른들한테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서정홍, p91)이라던 봄날 샘의 말씀도 생각난다.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무난하게 모범생의 길을 걸어온 교사의 시야를 넓혀준다. 부모들이 읽으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 생각된다.

 

보는 순간, ! 이쁘다! 했던 책 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얼마 전, 사이버 폭력에 대해 연수했던 강사가 한 질문이 생각난다. ‘수박은 초록색일까요, 빨간색일까요?’ ‘바나나는 노란색일까요, 흰색일까요?’표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책 안에 담겨있는 아이들의 상처를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문장도 생각난다. ‘스키드 마크 대신 수완의 피가 길게 수완의 그림자를 만들었다.’(p100, 내 이름은 나나) 자신의 존재를 피로 남길 수밖에 없던 오토바이 폭주족의 리더. 아이가 세상의 차가운 바닥에 스크래치를 남기며 죽는 순간은 내 마음 속을 할퀴고 지나가며 스키드 마크를 남겼다.

학교에서의 그 녀석이 떠오른다. 이제껏 녀석의 겉모습만 바라보고 판단해왔던 건 아닐까. 녀석의 웃음 뒤에 또 다른 상처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마음속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 순간, 갑자기 녀석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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