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식량 - 인류는 자연환경의 위기에 맞서 어떻게 번성하는가
루스 디프리스 지음, 정서진 옮김 / 눌와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생대의 거대한 포식자였다던 아노말로카리스’. 발음조차 어색한 이 생물의 존재를 밝히는 과정을 보여주던 다큐멘터리 <생명, 그 영원한 신비>는 교과서 속 세상을 과거의 전부로 받아들이던 내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고생물학은 신비한 발견에 앞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수많은 시간들을 감내해야하는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다르구나, 참 많이 다르구나. 화석이란, 화석을 발굴한다는 건 오래된 책장 사이에 눌려있던 마른 나뭇잎 한 장 가뿐히 들어 올리는 일이 아니었다. 단단한 암석을 도자기 다루듯 숨죽이며 다루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광활한 지대에 분포한 버제스 셰일을 페이스트리처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일에는 고도의 섬세함이 필요했다.

그 때 알았다. 교과서를 휘리릭 넘기며 휴지 한 장의 무게감으로 무심코 지나치던, 지루하게만 다가오던 수많은 문장들이 얼마나 묵직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가를. 수백, 수천, 어쩌면 수억 년 걸렸을 지도 모를 시간과 누군가의 일생이 담겼을 지도 모를 문장들을 얼마나 가볍게 지나왔던가, 나는. 교과서란 이런 의미에서 얼마나 무거운 책인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어렴풋이 느꼈던 걸까. 한동안 물컹한 느낌을 묵직하게 안고 있었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보통의 인문학 서적은 지식을 전하거나 깊은 사유를 하게 하거나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뜨이게 한다. 소설도 아닌 책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건만 감동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그 이상의 무게감이 마음에 얹혀졌다. The Big Ratchet이라는 책 앞에서 나는 먼지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한쪽으로 굴러가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의식이 휘말려 들어가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지금까지 펼쳐지는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체험하고 온 듯했다. 한동안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20여 년, 듣도 보도 못한 고생물 화석을 탐구했던 끈질기고도 지난한 역사를 다시 마주한 듯 기시감을 느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사이로 내려다보았던 지표면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눈금실린더의 최소 눈금보다도 얇은 두께로 꼬불거리던 강물의 줄기, 나뭇잎 크기만 하던 논, 드문드문 보이던 갈색의 땅. 평면으로 이루어진 그림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별 것 아닌 일로 화내고 울고 한숨 짓던 시간들이 구름처럼 흩어졌다. 저 아래에서 아등바등 살던 내 모습이 후 불면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지상의 풍경은 자질구레한 모습들은 감추어버리고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훅 다가와 지그시 내 마음을 눌렀다.

자연환경의 위기에 맞서 끊임없이 번성해온 인류의 문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연상시킨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문명은 옳지도 그르지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다만 이 지구상에서 진화해가는 생명의 일부이다.(p18)’ 식량을 얻기 위한 인류 문명의 역사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기록한 책이다. 10장으로 구성된 이야기 안에는 지질시대, 대기와 물의 순환, 별의 진화, 물질의 순환, 지구와 생명의 탄생, 우주와 행성, 자기 조절 시스템, 신체 구조의 변화, 멘델의 유전법칙,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진화, 질소고정, 인의 순환, 부영양화, DNA의 구조 등 지구과학, 화학, 생물학 분야의 학문적 지식이 총동원되어있다. 중학교 과학을 가르치면서 각기 다른 학년과 다른 단원에서 소개하던 내용들이 인류 문명과 식량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줄줄이 꿰어지는 모습은 놀라움 이상이었다. <지식e>를 떠올리게 하는 객관적인 데이터의 끝에는 인류의 노력에 대한 경외심이 느낌표로 매달렸다.

 

뭘 좀 제대로 알고 가르쳤어야 했다. 내 지식의 깊이가 습자지만큼 얕았다는 사실이 어찌나 선명하게 다가오던지. 교과서를 통해 가르쳐왔던 과학적인 지식이 불쑥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광물의 굳기를 추정하는 기준이 되는 10종의 표준 광물 모스굳기계. 26년째 교과서를 통해 해당 학년을 가르치면서 5번째 광물인 인회석이 무덤가에서 도깨비불로 발견된다는 그 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인이 함유되어있어 인...이라 불렸다는 사실을. 변명처럼 말하자면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교사용 지도서에도 나온 적이 없고, 한 번도 그 이름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태양에너지가 지구상 물질 순환의 근원이란다.’ 아마 백 번도 넘게 내 입에서 나왔을 거다. 태양 에너지. 초등학생들도 알 법한, 과학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시험 문제에도 난이도 하의 문제로 출제하곤 했는데.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는 있었을까 싶다.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태양에너지의 부족이 아니다. 태양에너지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다.(p111)’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흡수하는 과정을 가리켜 저자는 먹을 수 있는 형태로의 전환이라고 했다. 전환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제껏 태양 에너지를 먹어왔다는 생각을 하니 느낌이 묘하다.

 

음식도 문화라지만 이 둘의 인과적인 관계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잉여 식량이 공급되면서 식량 생산이 아닌 다른 활동에 종사하게 된 인간들에 의해 문명이 발달한다. 식량이 문명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연히 발견된 은 음식과 문화에 혁명적인 불을 지핀다. 날 음식에서 익힌 음식으로 전환되면서 인간의 창의성은 다양한 문명으로 발현된다. 환경의 변화는 인체의 구조 중 학습에 관여하는 뇌의 크기에 변화를 초래하고 이에 새로운 사냥 방식이 발달하면서 문화는 더욱 다양해진다. ‘문화가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유전자가 문화를 변형시킨다.(p75)’

농사를 짓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닥쳐온 난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놀라운가. 질소와 인을 붙들려는 인간의 치열한 노력은 감탄의 연속이다. 학창 시절에도 배운 비료의 3요소를 이루는 물질들. 왜 하필 그 물질들로 비료를 만들어야 했을까 의심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많은 문명들이 만들어진 근본적인 배경을 알려준다. 뭐든 쉽게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동물의 배설물과 암석 등 자연에서 이 물질들을 찾아내고, 이용 방법을 고민하고, 가축의 힘을 빌리고, 화학적인 거름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종자를 도입하며 농업혁명을 이루어낸다.

식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시장 문제와 정치 문제도 발생한다. 저장 식량을 이용하는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던 이들, 식량 생산을 위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아프리카인들, 녹색 혁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민들 이야기를 읽으며 풍요의 시대, 비만의 시대로 불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 지구상의 이름 모를 이들을 떠올린다.

 

왜 하필 옥수수가 가축의 사료로 많이 쓰이는가.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하고 서양은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전과 환경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들의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다윈이 사촌과 결혼을 했기에 근친교배의 단점을 발견하고 걱정을 했다는 일화, 8년 동안 완두콩으로 실험하며 유전법칙을 알아낸 멘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유전과 진화에 관한 생물학적인 과학사가 등장한다. 유전자 변형 기술과 화학 비료와 화석 연료를 동력으로 하는 기계의 도입으로 수확량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증대된다. 저자는 옥수수, , 대두 등 작물의 번식 방법을 유전학을 기초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증대된 수확물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메뚜기 떼와 각종 곤충들과의 전쟁은 천연적인 살충제를 넘어 DDT를 탄생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물질과의 전쟁을 하는 중이다. 비만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지방과 설탕과의 전쟁과 더불어.

고대에 동물의 힘을 빌리던 것에서 현대식 기계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조작하는 새로운 방법 중에 시행착오 없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p278~279)’ 당시에는 획기적인 최선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미련하게 왜 그랬을까 여겨지던 사건들이 어떻게든 조금씩 개선되고 해결되는 과정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창의성에서 비롯된 거대한 변화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할 것이다.(p286)’ 수많은 한계에 부딪혔지만, 그만큼의 해결책을 만들어낸 인간들이 수천 년 동안 축적한 지식과 묵직한 문화들은 암울해 보이는 미래를 향해 희망의 빛을 비추는 듯하다.

 

노트북을 켤 때마다 종종 바뀌는 화면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오늘은 북극 주변에서 나타난다는 오로라 사진이다. 보라와 청색이 그라데이션 되는 어울림은 사진이 맞을까 싶도록 현실감을 잊게 만든다. 이 책의 표지를 바라본다. 꼭 컴퓨터의 바탕 화면 같다. 간혹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순환의 고리가 끊어져 수시로 나타나는 이상 기후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빙, 환경오염이 야기하는 섬뜩한 풍경들을 접하면 그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표지에 나와 있는 풍경들을 컴퓨터 바탕화면에서만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완벽하게 객관적인 글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저자의 시각이 마음에 든다. ‘어떤 특정한 삶의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p12)’라 말하는 그녀의 사유는 비관적이지도 않고 낙관적이지도 않다. 인류의 발자취를 덤덤히 따라가며 거대한 패턴을 발견하고 묵묵히 그 사실을 기록한다. 지금은 성장하는 시기일까? 위기의 시기일까? 아니면 전환점이 나타나는 시기일까? 판단은 고스란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어느 시점에 있건 저자의 안목을 믿어보려 한다. 톱니바퀴로 돌아가다 성장의 도끼가 내리찍어도 중심축이 바뀌어 다시 천천히 돌아가며 지나온 인류의 12,000년을 믿어보고 싶다.

 

 

*오타

p57, 4째줄 : 평형동물 편형~

p65, 9째줄 : 어울러져 어우러져

p184, 밑에서 6째줄 : 우성과 열성의 법칙 멘델의 논문에는 우성열성의 개념은 있으나 이를 법칙화하지 않았기에 개정된 교육과정에는 우열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삭제되었고, ‘우성과 열성이라 표현된 제목이 교과서에 제시되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06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6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