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바라기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 까마득한 옛날 일 같은데, 사실은 수십 년 밖에 안 된 일이다. 유대인이란 족속을 아예 없애 버리겠다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들로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
그걸 당하는 유대인은 희노애락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와 용서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인간이었지만 가해자인 독일군에게 있어 그들은 짐승이었다. 없애버려야 할....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일어나 버렸다.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짐작케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소름 돋게 한다.
그런 잔인한 일을 당했다면 나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당시나 직후에는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은 해도 마음 깊이 용서하게 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내가 겪은 고통이 희석되어 떠오를 때쯤이면 용서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역시 비젠탈과 같은 지독한 고통을 겪지 못한 소시민의 짐작이겠지.
용서.... 이 책의 화두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밀양'이 자꾸 생각났다. 영화 밀양에서는 여주인공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용서하고자 범인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범인은 자기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자기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자기 대신에 먼저 용서를 한 거냐며 신에게 배신감마저 느낀다. 정말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용서와 사랑이 현실과 만났을 때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가... 신은 인간에게 '인간'임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하시는 걸까.... 그 노력을 가상히 여기시겠다는 것인가...
유대인들은 당사자가 아니면 용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내세운다. 어느 쪽이 옳으냐.... 이런 답을 구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들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다만 저마다의 소신만 밝힐 뿐....
그러나 '용서'를 빌미로 비슷한 악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살인을 저지를 때 이미 자신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있다면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다. 따라서 진정한 용서란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잘잘못은 잘 가려야 한다.
우리 나라도 유대인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상상도 못할 만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 일제와 함께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민족을 저버린 친일파에 대한 정죄는 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또다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잘못이 저질러질 수있음을 뜻하기에 정말 섬짓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보통의 문명 생활을 하는 내가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던 '용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인상 깊은 말>
151쪽-침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욱 설득력 있으며, 또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224쪽-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남편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까닭은, 계속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서 당신을 더 괴롭히고 분노하는사람으로 만들 만한 자격이 그에게 없기 떄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