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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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자화상 표지가 인상적이다. 꼭 다문 붉은 입술은 세상에 대한 단단한 거부감을, 쾡한 듯 커다란 눈은 우울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의 모습이랑 딱 어울린다. 그리고 책 표지 안에서 턱을 괴고 막막한 눈동자로 세상을 내려다 보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도 사뭇 닮았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 -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 만으로도 소설 내용이 짐작된다. 모든 것이 지나가기야 하겠지만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고달픔이라기보다 스스로 만들어 낸 힘겨움으로 조로(早老)해 버린 한 청년의 삶과 삶을 견디는 방식이 가슴 아프다. 예민하고 섬세하다고 해서  미덕이 되고 완전하게 이해 받기에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지나치게 팍팍하다. 

호로키와 넙치의 이중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모습을 통해 인간성 상실을 드러내고 그들과 부대끼며 그런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마침내 정신병원에 갇혀 버린 요조,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조차 당당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며, 마침내 포기해 버린다.  

세상에 저항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요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하게 말해 주고 싶다. 이러면 안돼. 한 번뿐인 삶을 흘려 보내서는 안돼. 너의 아름다운 눈을 세상을 향해 열어 놓고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해. 세상을 포기하기에 너는 너무 젊지 않니.. 

소설을 읽는 동안 겨울비를 맞을 때의 추위와 외로움이 함께 했다. 그만 조용히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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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6
김만중 지음, 설성경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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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전들은 만화나 동화, 교과서 등을 통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따로 시간을 내어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시간을 내어 읽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진정성에 닿기보다 그저 아는 이야기로 넘어 가게 된다.  나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구운몽>을 '일장춘몽' '어머니에 대한 효심 발휘'등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해 버려 더이상 책을 구해 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책 또한 사람의 인연이랑 다르지 않는 법. 어찌어찌 책세상 <구운몽>이 나와 인연을 새롭게 맺었다.  

어머님의 즐거움을 위해 지었다는데, 정말 재밌고 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밌고 쉽다'라는 의미속에는 인생이 참 재밌고도 쉽게 살아진다라는 뜻도 부여된다. 평범한 아버지는 알고 보니 신선이라 ,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하늘위로 홀연히 사라진다. 현세의 성진은 신선의 아들로 출발한다.신선의 아들은 달라도 참 다르다. 옥골선풍의 외모에 탁월한 글 재주, 명석한 두뇌와 주변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한 몸에 가득히 받으니!! 

오오!! 무엇보다도 여덟 여인과의 희롱과 사랑이야기는 많은 남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다. 잘난 남자들은 여자들도 쉽게 알아보는 법, 그가 가는 곳곳마다 기다리는 인연들은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바짝 부여 잡는다. 소유는 그저 바라보고 받아 들일 뿐, 사랑이란 이름에 뒤따르는 속앓이가 많지 않다. 하늘이 자신의 편인데 무엇이 어려울까. 소유의 삶은 우리들이 원하는 로또 당첨보다 강한 욕망을 표현한다.  

세속의 모든 현상이 꿈 같고, 환상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더라도 이런 인생이라면 한 번 살아 보고 싶다. 이런 모든 것을 겪고 눈을 감는다면 세상에 미련이 무에 있을까. 우리의 주인공 성진이는 소유의 삶에서 허무를 보고 진정한 불생불멸의 도를 얻었다지만 나는 소유를 통해 현세적 욕망을 확인했다. 한바탕 꿈,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시각이 다소 남성 중심적이라, 여성 영웅 박씨 부인이 생각난다. 어머니를 염두에 두었다면 여성의 영화를 그려내는 것도 좋았으리라 싶다. 아니면 지극한 사랑으로 눈물 적시는 춘향이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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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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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눈이 내리지는 않지만 거리를 다닐 때는 어깨가 잔뜩 오그라들어 힘들다. 시내에 나갔다가 너무 추워 찻집에 들어가 몸을 데웠다. 햇살이 통유리 창 가득 비쳐 들어 조금 있으니 찜질방에 들어온 듯 몸이 후끈해졌다. 겨울에는 뭐니뭐니 해도 따뜻한 게 최고!! 온천장이 아니면 햇살로라도 찜질을 하면 좋다. 언 몸이 노곤해지면서 행복감이 밀려 든다. 설국의 시마무라씨가 눈의 나라에서 온천탕을 즐기던 모습이 생각난다. 갑작스레 설국이 읽고 싶어 근처 서점에 갔다.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이 한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욕심.. 다 읽지는 못해도 저 책의 무리들을 우리집으로 끌고 가면 좋으련만!!  

<설국>은 첫문장이 참 매력적이다.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 까만 밤과 세상을 뒤덮은 흰 눈이 대조되면서 시골의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한 풍경이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유한 한량 시마무라의 눈에 정성껏 애인을 돌보는 요코의 애절한 모습은 꿈인 듯, 상상인 듯, 연기를 내뿜으며 멀어져 가는 기차꼬리처럼 애잔하다. 예전에 읽었던 설국은 항상 이 장면에서 멈춰 기억된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 장면!!  

근데, 오늘은 고마코의 어쩌지 못하는 투정어린 사랑이 읽힌다. 1년에 한 번씩 찾아 와, 고작 세 번 만난 이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 그녀는 시마무라의 무릎에 자주 얼굴을 묻는다. 고개 숙인 그녀의 붉은 목덜미가 눈처럼 희고 차갑다. 인생에서도 길 위에서도 지나가는 사람일 뿐인 시마무라는 서로에 대한 마음이 일치할 때가 떠나야 할 때라는 걸 안다. 시마무라에게 고마코와 요코가 신비해 보이는 이유는 더이상 함께 해서는 안되는 잠깐 동안의 인연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달리며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 

설국- 눈의 나라에도 봄이 오고 가을이 온다. 느닷없는 요코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지만, 비현실적인 그들의 삶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고마코가 더이상 사미센을 남을 위해 연주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또는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 연주하면 좋겠다. 그녀의 찬란한 스물 한 살이 눈의 나라에서만 머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보다 더 치열한 삶을 그녀가 만들기를 바라는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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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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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 좋은 사람으로부터 거한 이야기 한 자락을 듣고, 입이 헤하고 벌어졌다. 빠른 이야기 전개에 넋을 잃었다가 이야기가 끝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속은 거 같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야기의 어디까지를 믿고. 말아야 할지, 이야기꾼이 괜시리 의심스러워진다.  

그래도 한동안 사람의 마음을 홀랑 앗아 갔으니 진정한 이야기꾼을 만났다 . 책의 표지에서 넘실 대는 저 붉은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살아 나왔다. 국밥집 할머니의 지독한 복수에, 금복의 성취와 욕망, 춘희의 진정성까지...서로 별개의 이야기들이 엉키고 섥혀 완벽한 서사를 이룬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금복이 있다. 아이를 낳다 죽어 버린 어머니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배워 버린 금복은 펄펄 살아 바다를 장악한 대왕고래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삶을 그토록 사랑했던 금복의 삶은 , 김훈의 말처럼 던적스러웠다. 무너진 지붕에서 돈벼락을 맞은 그녀는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사랑했고, 평대로 사람들을 불러 들여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떠다 돌아 오지 못한 강을 건너 버린 그녀... 고래극장의 화재는 저 붉은 바다와 하나다.  이글대며 출렁거린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춘희가 있다. 춘희는 금복의 딸이면서도 금복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있다. 춘희가 없었다면 소설은 어떠했을까. 분노와 욕망을 삶에 대한 성실과 진정성으로 꼭꼭 다져 벽돌을 만든 춘희는 이야기의 꽃이고 희망이다.  

깊아가는 겨울에 입이 궁금하다면 뜨끈한 군고구마와 소설 '고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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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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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쿠다 히데오를 만났다.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차다. 한 가득 부풀어 오른 풍선 크기의 바람 덩이들이 하나 둘..내게 와 부딪히고 지나간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가을이잖은가.. 시내 서점엘 나갔다. 따끈한 신간 도서들이 눈에 띄었고,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눈에 익은 책도 많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는 책도 인연이지만, 서점을 기웃대다가 만나는 책 또한 소중한 인연이다. 포인트 적립 하나 없이 책을 사자니 본전 생각에 머뭇거려지기도 하는데, 지금 이 책과 만나지 않으면 마음에서 잊혀질가봐 과감하게 지른다. 

다양한 소재와 개성 넘치는 문체로 인정 받는 일본 작가들이 많다. 평론가 이권우씨가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내는 감탄사로 소개한 '이크!!!' 오쿠다 히데오 씨의 소설을 읽고  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크!!  , 그리고 아 ~~ 재밌다...구성도 좋고 문체도 좋다.  노란 각진 얼굴에 빨간 머리, 눈은 도깨비 눈처럼 끝이 살짝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 40쯤으로 보이는데, 어울리지 않게 까만 교복을 입고 있다. 거기다가 제목도 참 요상하다. 남쪽으로 튀어!!.. 뭘 어쩌자는 건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머나먼 남쪽 나라가 따뜻한 고향을 느끼게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북쪽 눈 많이 내리는 곳이 향수를 느끼게 한다고 들었다. 표지의 제목만으로는 의미 파악이 좀 힘들고, 국가체제에 저항하는 화자의 아버지를 눈여겨 보니,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알겠다. 옳다 또는그르다 가치 판단에 앞서, 어려운 화두일 수도 있는데, 참 시원시원하고 쉽게 잘 풀어 갔다. 고집스럽게 보이는 표지 모델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모두 뚜렷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루는 "학교는 하루씩 건너 뛰어도 돼'라고 거침 없이 말하는 아버지 이치로(이름이 좀~~) 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찻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사쿠라, 누나 요코, 여동생 모모코와 함께 도쿄에서 산다.  이 또래 꼬마들이 경험하는 성적인 혼돈이 아주 재미나게 그려져  크게 웃었고, 그네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폭력적 위계에 아이들이 무너질까 심란해지기도 했다. 순수하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체제 순응적인 선생님은 다소 무력해 보였고, 고집 센 부모덕에 저 멀리 남쪽 나라로 많은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솔약국집 아들들이 사랑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멋진 대사들이 맛깔스럽게 조화를 이뤄 감동과 관심을 이끌어 내서이지 싶다. 아들과 아버지,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의도나 바람과 상관 없이 주어지는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건들이 빠르게 진행된다. 아들과 아버지는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무심한 척, 지나는 척 개입하는데 자신의 가치를 주입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하도록 한다.  때로는 비열하게, 때로는 폭력적 대응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세계는 별개이고 서로에게 무력하다. 

아들의 세계에서 폭력은 구체적이지만, 아버지 세계의 폭력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감지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공동체적 삶이 인간 문명의 발전을 극대화 시켰지만, 자본주의하 전체주의적 삶에서 공동체의 삶은 개인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하기를 강요한다. 아이는 공동체 삶의 규칙에 익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학교로 가고, 어른은 산업전선에서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출근한다.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는 몹시 어렵다.  남쪽으로 떠나지 못하고 튀어 가는 지루네의 삶이 2부에서 어떻게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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