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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내 방 ㅣ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평점 :
허균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변화무쌍하면서도 신선한 그의 사유를 날 것으로 맛볼 수 있어서 좋다.
<누추한 내 방>이라는 허균의 산문집을 엮어 옮긴 김풍기 선생의 말씀이다. 선생의 말씀에 공감이 가긴 하지만 불우한 그의 생애를 들여다 보니 인간적으로 참 외로왔겠구나.. 홀로 정신은 맑고 높았겠으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고 부유하였으니 그 쓸쓸함의 끝은 어디였을까 싶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추한 내 방'이라는 글에서 그는 "사람들이 누추하여 거처할 수 없다지만, 내가 보기엔 신선이 사는 곳이다. 마음 안온하고 몸 편안하니 군자가 산다면 누추한 게 무슨 대수랴" 라는 글로 마음껏 독서하며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작은 방에서의 자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기질과 변화 무쌍한 사고가 좁은 방안에서만 머물 수 있었을까? 소년 홍길동을 대변해서 말하듯 대장부로 태어나 그 능력과 뜻을 펴지 못함은 곧 죽음과 같은 것인데 말이다. 그리하여 결국 혁명을 꿈 꾸었으나 그 또한 꿈으로 남았고, 시장 바닥에서 능지처참이라는 끔찍한 형을 당하여 후세에 두고두고 대역죄인으로 기억되던 그이다.
작은 방안에서의 사유( 앉아서 유목하기)는 안빈낙도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허균에게는 말이다. 방대한 독서를 통한 생각의 갈무리 - 그것은 좀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꿈을 꿀수록 현실에서 멀어져 그 괴리로 인한 고독한 좌절의 깊이는 얼마였을까? 또 형과 누이 아내와 아들을 차례로 잃어 가면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그 고통은 또 얼마였을까? 한석봉, 이정 권필과 같은 쟁쟁한 같은 시대의 벗들이 있었음에도 도연명,이태백,소동파와 같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이를 벗 삼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또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싶다.
대장부의 삶 - 곤궁함과 현달함은 제 스스로 분수가 있는 법이니 하늘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향에서 만난 그대 - 저는 그대를 보내고 성곽에 올라 홀로 봉생정 위에 외로이 앉았더랬습니다.
술 한 잔 하러 오시게, 속절없이 봄날은 간다, 등의 척독을 통해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을 간절히 원하는 허균의 모습이 보이지만, 종당에 맞는 외로움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주어진 한 생애를 살면서 외롭지 않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싶지만, 생각이 깊을수록, 꿈이 높을수록, 세상과 맞지 않을수록, 생의 쓸쓸함과 고독함은 더 강하고 아프게 남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