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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오늘 오쿠다 히데오를 만났다.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차다. 한 가득 부풀어 오른 풍선 크기의 바람 덩이들이 하나 둘..내게 와 부딪히고 지나간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가을이잖은가.. 시내 서점엘 나갔다. 따끈한 신간 도서들이 눈에 띄었고,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눈에 익은 책도 많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는 책도 인연이지만, 서점을 기웃대다가 만나는 책 또한 소중한 인연이다. 포인트 적립 하나 없이 책을 사자니 본전 생각에 머뭇거려지기도 하는데, 지금 이 책과 만나지 않으면 마음에서 잊혀질가봐 과감하게 지른다.
다양한 소재와 개성 넘치는 문체로 인정 받는 일본 작가들이 많다. 평론가 이권우씨가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내는 감탄사로 소개한 '이크!!!' 오쿠다 히데오 씨의 소설을 읽고 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크!! , 그리고 아 ~~ 재밌다...구성도 좋고 문체도 좋다. 노란 각진 얼굴에 빨간 머리, 눈은 도깨비 눈처럼 끝이 살짝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 40쯤으로 보이는데, 어울리지 않게 까만 교복을 입고 있다. 거기다가 제목도 참 요상하다. 남쪽으로 튀어!!.. 뭘 어쩌자는 건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머나먼 남쪽 나라가 따뜻한 고향을 느끼게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북쪽 눈 많이 내리는 곳이 향수를 느끼게 한다고 들었다. 표지의 제목만으로는 의미 파악이 좀 힘들고, 국가체제에 저항하는 화자의 아버지를 눈여겨 보니,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알겠다. 옳다 또는그르다 가치 판단에 앞서, 어려운 화두일 수도 있는데, 참 시원시원하고 쉽게 잘 풀어 갔다. 고집스럽게 보이는 표지 모델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모두 뚜렷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루는 "학교는 하루씩 건너 뛰어도 돼'라고 거침 없이 말하는 아버지 이치로(이름이 좀~~) 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찻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사쿠라, 누나 요코, 여동생 모모코와 함께 도쿄에서 산다. 이 또래 꼬마들이 경험하는 성적인 혼돈이 아주 재미나게 그려져 크게 웃었고, 그네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폭력적 위계에 아이들이 무너질까 심란해지기도 했다. 순수하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체제 순응적인 선생님은 다소 무력해 보였고, 고집 센 부모덕에 저 멀리 남쪽 나라로 많은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솔약국집 아들들이 사랑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멋진 대사들이 맛깔스럽게 조화를 이뤄 감동과 관심을 이끌어 내서이지 싶다. 아들과 아버지,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의도나 바람과 상관 없이 주어지는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건들이 빠르게 진행된다. 아들과 아버지는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무심한 척, 지나는 척 개입하는데 자신의 가치를 주입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하도록 한다. 때로는 비열하게, 때로는 폭력적 대응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세계는 별개이고 서로에게 무력하다.
아들의 세계에서 폭력은 구체적이지만, 아버지 세계의 폭력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감지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공동체적 삶이 인간 문명의 발전을 극대화 시켰지만, 자본주의하 전체주의적 삶에서 공동체의 삶은 개인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하기를 강요한다. 아이는 공동체 삶의 규칙에 익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학교로 가고, 어른은 산업전선에서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출근한다.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는 몹시 어렵다. 남쪽으로 떠나지 못하고 튀어 가는 지루네의 삶이 2부에서 어떻게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