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가성비에 대한 환상






비비케이(BBK)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100만부나 팔리고 그게 시중의 화제가 되고 칼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이 100만부나 팔리는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수도 있다.
 
ㅡ 장정일





                                                                                                                                                                                                                  자본주의 상품 가운데 " 가성비 " 가 가장 낮은 것은 책'이다. 책이라는 상품은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큰 효용(실용)을 주지 못한다. 투자 비용과 독서를 위해 소비된 시간을 감안하면 쾌락(만족)은커녕 오히려 고통을 선사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 스터전의 법칙 > 을 생각한다.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 ! 


그중에서도 가성비가 최악인 상품은 제임스 조이스의 << 더블린 사람들 >> 일 것이다. << 더블린 사람들 >> 은 읽는다는 행위가 고문의 한 형태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제품이다. 독서 행위가 마라톤 경주라고 했을 때, << 더블린 사람들 >> 에는 깔딱고개가 수십 개 등장한다. 완주할 수 있을까 _ 라는 의문이 계속 들지만 의문이 계속될수록 결승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목표는 기록 경신이 아니라 완주'가 아니던가 ! 독서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다. 고로 간서치는 마조히스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성비가 낮다는 것은 좋은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260억이 넘는 스위스 파텍필립 수제 황금 회중시계는 실용과 효용적 측면만 놓고 보면 형편없다. 시간을 보기 위해 이 시계를 구매하는 억만장자는 없다.  이 시계는 오로지 감상용일 뿐이다.  반대로 가성비가 높다는 것은 하품(下品)을 의미한다.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박리다매 전략을 통해서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사고 읽는 행위는 럭셔리한 것이다. 한승태 노동 에세이이자 르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 고기로 태어나서 >> 는 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다(문학 분야에서는 애나 번스의 << 밀크맨 >> 을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한국 출판문화에서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르포르타주에서 이룩한 뛰어난 성취라 무엇보다도 반갑다(출판 문화 강국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논픽션이다). 평소 소설과 시만이 위대한 문학 예술이라고 믿는 문인(문단)의 지랄같은 허세가 역겨웠는데 이 작품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다. 첫 번째 장편소설로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픽션 대신 논픽션을 선택한 로이는 문학 한다고 힘 주는 작가들에게 묻는다. " 대체 언제부터 작가들이 논픽션 쓰기를 포기했는지요 ? " 


이 책은 저자가 몸소 체험한,  고기로 태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닭/돼지/개 농장 현장을 다룬 르포인데 심각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학적 재능에 힘입어 쉽게 읽힌다. 사육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다. 이 책을 읽다 보면 " 사육장 " 이라는 단어는 " 살육장 " 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한 나치의 언어규칙(Sprachregelung)화'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나치는 < 학살 > 이라는 표현 대신 < 최종해결책> 이라는 단어로 은폐했다). 저자는 동물농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동물을 기르기 위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기 위한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이 늦은 병아리와 돼지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리, 도태, 청소된다. 동물 복지 윤리에 따른 애도도 없고 절차도 없다. 병아리 다리를 잡고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내리치는 것이 전부다. 새끼 돼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명이란 질긴 것이어서 머리가 으깨진 병아리 더미에서도 아프다고 밤새 운다고 한다. 우리가 가격 대비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찬양하는 치느님의 고단한 일생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민 치느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 표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이 찬양하는 치느님은 닭 농장에서 평균 35일을 산다. 닭이 13살까지 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짧은 생'이다. 


얼마 전, 키우던 개가 죽었다. 대형견이어서 수혈 1회 비용이 150만 원이었고 하루 입원비는 40만 원이었다. 개에게는 피가 필요했고 그럴수록 나는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돈 때문에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가 죽은 후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다짐이 영원한 결의가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개 한 마리 입양해서 키울 생각이다. 젊은 녀석보다는 늙은 녀석을, 예쁜 녀석보다는 흉한 녀석을, 순종보다는 믹스견을 입양의 조건으로 고려해 보아야 겠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으면 한다. 한국 출판 문화에서 훌륭한 르포르타주를 만난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행운이다. 이 책은 기(록하는)자의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 소설가의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다. 저자 한승태는 기자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지만 둘 다 해냈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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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1-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승태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만 찰스 부코스키가 자신의 산문집인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에서 썼던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끔찍한 일이다. 우린 얼른 뒈져서 여길 떠나주는 게 제일 좋다.˝
사실 환경보호와 동물존중에 갈음할 수 있는 말은, 인간절멸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2019-11-18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틱번뇌보이 2019-11-18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한승태님의 ‘인간의 조건‘과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두 르포를 읽고 공장식 축산방식에 경악함과 동시에 작가의 글맛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르포 작가의 표본이 있다면 이런 분이 아닐까 싶어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전 장정일 작가님께서 독서일기에 적었던 글이 생각나네요.
˝바람직한 사회는 예컨대 천안함-세월호 사건 직후, 거기에 대한 논픽션이 20여권이나 쏟아져 나오는 사회다.(중략)
논픽션은 민주 사회를 지키는 보루이며, 나아가 공공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필요한 무기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8 18:25   좋아요 1 | URL
한국 출판 문화가 낙후되었다는 명징한 증후가 바로 르포르타주죠. 일본만 해도 르포가 많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유독 한국 출판은 황무지입니다. 천시하는 경향도 있고요. 순문학을 숭배하는 이상한 꼰대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한승태의 이 책은 발견이었습니다. 조은의 << 사당동 더하기 22 >> 라는 르포르타주도 좋죠. 이런 르뽀 많이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장정일의 말에 100% 동의합니다..

기록이야말로 진실의 가장 강력한 힘이죠.

에로틱번뇌보이 2019-11-19 13:34   좋아요 1 | URL
5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삼풍백화점붕괴사고 관련 르포도 2016년 출간된 <1995년 서울, 삼풍> 1권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서울문화재단의 기획과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르포르타주가 관련 사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제의의 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는 타인의 비극에 무감하고 되려 천시하는 끔찍한 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사당동 더하기 22>>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








                                                                                                 SF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은 " SF문학의 90%는 쓰레기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 " 라고 말했다. 이것을 < 스터전의 법칙 > 이라고 한다. 홧김에 내뱉은 요설처럼 보이지만 곰곰 뜯어보면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주장은 작가가 SF의 90% 는 쓰레기라고 생각한 사람들, 혹은 장르 문학을 싸잡아서 비난하고 순문학을 숭배하는 사람과의 논쟁에서 반박용으로 마련한 말풍선이었다. 이 기준을 다른 곳에도 적용한다면, 영화, 문학, 상품, 매식(식당 요리) 따위도 90% 는 쓰레기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시어도어 스터전이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공상 과학 소설은 다른 모든 예술 장르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인간이라고 해서 스터전의 요설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90%는 쓰레기'다. 망언처럼 들리지만 달리 생각하면 특정한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쓰레기일 확률이 높다. 우우, 하지 마시라. 나 또한 우주에 떠도는 쓰레기에 불과하니까. 쓰레기'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주에 떠도는 티끌 정도로 해 두자.  내 독서 경험,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사는 소비 행위에 비춰 말하자면 10권을 사면 마음에 드는 책은 2권 정도에 불과하다. 영화도 그렇다. 한 편의 걸작(傑作)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홉 편의 걸작(乞作 : 거지 걸)을 먼저 만나야 한다. 영화가 거지 같다고 징징거리며 울 필요는 없다. 훌륭한 영화를 만나기 위해서 징검다리 하나를 놓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우는 법이니깐 말이다.  스터전의 법칙에 순응하면 우리는 하자 많은 상품에 대하여 불같이 화를 낼 필요 없다. 어차피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 성공할 확률은 10%에 불과하니깐 말이다.  백종원이 << 골목식당 >> 에서 음식 맛이 형편 없다며 씹던 음식을 휴지에 싸서 버렸을 때, 그가 정작 버려야 했던 것은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썩어빠진 염통이었다.  우리는 돈을 주고 구입한 책이 재미가 없다고 해서 작가의 집을 찾아가 그 사람 면전에서 책을 찢어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영화관 직원 멱살을 잡고 환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선택 행위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실패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맛이 없다고 해서 음식점에서 음식을 뱉는 행위는 버릇 없는 세 살 아이'나 할 짓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진상 짓이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의 90%는 맛이 없다. 요식업이라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나머지 10%다.  살아남은 식당이 결국에는 맛집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맛 없는 음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음식물 쓰레기'라고 믿는 백종원은 과연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을까 ? 


프랜차이즈 식당의 폐점률(가맹점 업주의 계약 해지 비율)을 살펴보면 백종원 프랜차이즈 식당은 다른 프랜차이즈 식당과 비교했을 때 대동소이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높다.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11개 프랜차이즈 폐점률은 6.7%로 치킨(6.6%)와 피자(6.7%) 분야의 주요 프랜차이즈 업종의 평균 폐점률과 유사하다. 가맹점 수가 많든 적든 폐점률 수치가 높다는 것은 기대한 수익보다 실제로 받는 수익이 적거나 본사에서 관리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종원이 다른 식당에 비해 맛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 골목식당 >> 에 출연한 식당이 성공하는 이유는 백종원의 레시피 때문에 아니라 방송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맛을 결정하는 것은 요리가 아니라 단순한 허기'이다.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 선택의 연속 " 은 곧 " 실패의 연속 " 이기도 하다. 돌고 돌아서 원점에서 다시 말하자. 다자이 오사무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처럼 징징거리며 말하겠다 : 인생이란 결국 실패의 연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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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1-1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냥 지저분한 쓰레기로 살래요. 완전 깨끗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요. 적당히(이게 어느 수준이 저도 잘 모르겠고, 명확하지 않지만) 지저분하게 살아야 병균에 견디고 면역력이 생기니까요..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9 23:3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조금 지저분하게 사는 것도 숨통이 트이는 방식 아니겠씁니까..ㅎㅎ
 










쩨쩨한 문학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쩨쩨하다. 궁상맞다고나 할까 ? 형색은 꾀죄죄하고 성질머리는 구질구질하다. 또한 다른 문학 속 주인공과는 달리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혼잣말을 할 때는 달변인데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눌변인 경우가 많다. 내 눈에는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은 궁서체의 세계'처럼 보인다. 다변과 요설의 세계인데 그 뒷면은 눌변이고 변명의 세계이다. 배경음악으로 궁상각치우로 이루어진 풍악이 울리면 금상첨화'다. 공교롭게도 나는 쩨쩨한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을 좋아한다. 반면에 장황한 주제와 맞물린 문학은 질린다. 국민교육헌장의 세계, 그러니까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문학을 읽을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너나 잘하세요. 한국 문단은 스스로를 지고지순한 존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응준이 신경숙 표절을 고발하면서 촉촉한 문장으로 순문학의 순결한 의지와 회복을 강조했을 때 나는 이응준의 결의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문학적 신파를 읽었다. 한국 문인들은 매문을 치욕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밥벌이를 위해 억지로 글을 썼던 대문호는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곰곰 생각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빚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써야 했기에 궁상스러운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고 다자이 오사무가 좋다. 굶어죽을 걱정은 없으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은 원인 모를 반감이 든다. 이런 작가들이 대부분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인류 공영이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는 주인공보다 나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죽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는 이도 치열하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죽는 이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이니 둘 다 이열치열이다. 숭고한 문학은 얼마든지 찬양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문학은 반드시 숭고해야 된다고 믿는 문인을 보면 귀싸대기 한 대 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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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다 2










                                                                                               불행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사무엘 베케트는 썼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인간은 행복을 꿈꾸지만 정작 흥미를 가지는 쪽은 불행이다. 문학이나 영화 혹은 일일드라마는 대부분 타인의 불행을 다룬다. 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자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②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으로부터 애인이 생겼다며 결별을 선언하는 이야기'다. ③ 설상가상, 이 스토리에 사춘기 딸이 그날 밤에 가출하는 서사를 덧붙인다면 ?  당신이 시청자'라면 아마도 세 번째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울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때 시청자는 편한 마음으로 그 불행을 즐긴다. 왜냐하면 그 불행이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에 동시에 남편의 이별 통보와 딸의 가출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일은 일상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니 말이다. 저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니까 즐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서 행위(혹은 드라마 시청 행위)는 근본적으로 잔인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교양 - 쾌락인 셈이다. 독자를 탓할 필요도 없고 관객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불행을 찬양하는 것은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이 유일한 종이라는 점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이다. 반대로 짐승은 아프다고 해서 아픈 내색을 보이지 않고 반대로 최대한 숨기려고 한다. 아프다는 신호는 다른 짐승으로부터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자가 소떼 무리를 염탐할 때 제일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은 무리 속 짐승과는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는 짐승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다리를 다친 짐승은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는데 사자는 이런 짐승을 표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모든 짐승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최대한 숨기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펄럭이는 그날 아침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혀로 자신의 털을 열심히 핥았다. 마치 아프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눈에 선하다. 죽는 그 순간에도 일어나려고 발버둥거렸던 당신. 오래오래 기억하겠다. 굿바이. 건투를 빈다. 







+

개는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여전히 그곳에서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너는 평소 성정이 지랄같아서 천국보다는 지옥에 있을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네가 지옥에서 나를 기다린다면 기꺼이 내 어깨 죽지에 자라는 하얀 날개를 떼고 지옥으로 찾아가마. 그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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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11-1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트리버는 거의 다 착한것 같은데. 분명 순했을것 같아요.
이 상실의 아픔을 잘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4 22:36   좋아요 0 | URL
독특한 개였습니다. 견종은 리트리버인데 마치 사냥개처럼 매우 사나웠지요.

포스트잇 2019-11-1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펄럭이였나요. 이름이 좋..았네요ㅠ .곰곰발님 답습니다ㅠ
곰곰발님 마음이 어떨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먼저 보내야 하는 쪽이 인간이다보니... 딱한 인간이죠.
기운내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5 21:25   좋아요 0 | URL
그동안 리트리버 견종은 총 3마리 키웠는데 이 견종은 무조건 펄럭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펄럭이 1세, 2세, 3세....

수다맨 2019-11-16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곰곰발님 서재에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군요....... 기운 내셨으면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6 07:41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지요 ? 본 지 오래 된 것 같군요. 조만간 한 번 봅시다.
 










가 죽던 날,  화장실 변기가 막혔고 멀쩡했던 노트북이 고장 났다.   개는 피 수혈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다. 피 수혈 1회 비용이 150만 원이어서 만만치 않는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룰 수는 없었다.  병원 입원비만 1000만 원을 훌쩍 넘었고 공사비와 노트북 수리비를 더하니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직장은 7월에 이미 그만둔 상태'였다. 원래 계획은 통장에 남은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알뜰하게 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훌륭한 장편소설 하나를 쓰는 것이었다. 나름, 완벽한 계획이었다. 나는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내 문장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상태였고,  개는 건강했으며,  변기는 무쇠라도 씹어삼킬 만큼 흡인력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집에 처박혀 글만 쓰면 1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예상을 빗나갔다. 앞으로는 틈틈이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인형 눈깔 붙이는 부업이라도.... 과연,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까 ?  가난하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니 상상 그 이상이다. 슬프다. 사랑하는 개를 잃었다는 것도, 굶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막막한 공포도, 오늘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고서는 펄럭아 _ 라고 외쳤던 나의 착각도. 사무엘 베케트가 그런 말을 했다. 불행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 그래서 이 비루한 불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행복하시라.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내 불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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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1-14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곰곰발님께서 올리셨던 사진 속의 개가 떠오릅니다... 크고 곰곰발님을 잘 따랐던 녀석 같았는데 안타깝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4 12:53   좋아요 1 | URL
아마 성정이 지랄같아서 천국에는 가지 못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지옥에서 나를 기다린다면 함께 가야겠죠..

푸른괭이 2019-11-1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쇠라고 -> 무쇠라도 /

님의 서재에 자주 오는데, 새 글 보고서 반가운 마음에 처음으로 댓글 달아봅니다...^^;
사람은 가난하면 굶어죽을 수 있겠...더라고요 ㅠㅠ ^^;
님의 글을 보면 소설(픽션)인지 사실(논픽션)인지 헷깔릴 때가 많던데,
‘펄럭‘이가 진짜 죽은 건가요??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4 12:52   좋아요 0 | URL
괭이 님의 새책을 읽었는데 펄럭이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리뷰도 못 올렸네요. 10년 넘게 키우던 개입니다.
11살, 리트리버 견종, 몸무게 35kg인 수컷이었습니다.


+
책 잘 읽었습니다.

나와같다면 2019-11-14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잘 생기고 착해보이던 리트리버.
마음이 너무 아프시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6 07:44   좋아요 0 | URL
네에. 고맙습니다. 허전하네요. 이삿집 다 빼고 나면 갑자기 살았던 집이 넓어보이는 것처럼
집이 너무 넓어 보입니다.

2019-11-15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6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