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리 안   데 쓰   드 라 이 브  :


 

 

 

 

 



죽을 맛입니다



                                                                                                한국 사회는 죽음에 대한 강박적 언어 습관을 가진 문화에 속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배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배고파 죽겠고, 목말라 죽겠고, 외로워 죽겠고, 바빠서 죽겠다고 말한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 가능한 영역이다. 배 고파 죽을 수도 있고, 목 말라 죽을 수도 있으며 바쁘면 과로사로 죽을 수도 있고, 외로우면 괴로우니 죽을 수도 있는 아이러니. 아니 그러니 ?

그런데 우스워 죽겠고, 행복해 죽겠고, 예뻐 죽겠고, 미워 죽겠고, 심심해 죽겠다 _ 라고 말하면 복잡하다. 죽을 일이 많기로서니 바빠서 죽고, 우스워 죽고, 행복해 죽고, 심심해 죽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미워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은 아스트랄하다. 심심한 상황을 좋아하는 나는 심심해 죽겠다 _ 라는 경고성 멘트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러다가 나 정말 죽는 거임 ?!  이처럼 한국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간다.  주성치 영화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웃다가 죽는 꼴을 상상하면 정말 웃기는 상황이어서 몸서리나게 된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결국 생에 대한 강한 의지가 표출되는 모양이다.

한국인은 보신을 위해서라면 개불 알까지 뜯어먹을 기세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니 거시기를 뜯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할 때마다 " ~ 해서 죽겠어 ! "  라는 한국 특유의 죽음 충동(코리아 데쓰 드라이브 ?!)을 자주 언급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건강 염려증 환자의 럭키금성 삼 파장 발광 다이어드적 초정밀 극성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아따, 참말로 찌릿찌릿하다. 오호통재다. 자주 죽는 남자가 있다. 유덕화는 영화 속에서 자주 죽는다.  << 천장지구 >> 에서 코피를 흘리며 죽기 시작하더니 << 복수만가 >> , << 지존무상 >> , << 용재강호 >> , << 결전 >> , << 삼국지 : 용의 부활 >> , << 무간도 >> 에서도 죽는다.

대부분 장렬하게 죽지만 때론 비렬한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장렬하게 죽는다. 그는 멋지게 죽는 데 최적화된 배우이다. 그의 연기 철학은 목련처럼 지저분하게 죽느니 동백꽃처럼 단칼에 죽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입만 열었다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징징거리는 캐릭터라면 이룰 수 없는 폼사의 경지'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 죽을 맛 " 이라고 하는가 보다. 제작자가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유덕화는 자주 죽는다......        폼생보다 어려운 것은 폼사'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폼생폼사한다. " 폼生 " 은 자기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지만 " 폼死 " 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다. 사람들은 개똥밭에서 뒹굴지언정 멋지게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니 말이다. 살아서 " 폼생 " 을 성취할 기회조차 없었던 나는 유덕화가 멋지게 죽을 때 항상 감탄하게 된다. 나에게 폼생폼사는 불가능한 판타지이기는 하나 적어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는 생의 의지는 없다. 적멸(寂滅)하는 것이 내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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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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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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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지왕(우리엔터연말행사)(King Of Comedy)
우리엔터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                                         

 막   간   에         울    다    :


 




킹 오브 코미디


 

 

 


 


                                                                                               민둥산 같던 주둥이에 털이 듬성듬성 자라기 시작해서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  나는 주로 A급 영화'만 보았다.  칸느,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따위의 명성 자자한 영화제는 물론이고 기타 각종 유수 영화제 수상작만 골라 보았다.

그때는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또래들이 에로 영화에 발기탱천하고 친구들은 나이 제한 때문에 에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애로 사항을 내게 하소연하곤 했다.         총질에 삽질할 때  나는 격조 높은 영화를 보며 도도한 삶을 꿈꿨다.  도도한 이상과는 달리 노동자로서 나는 점점 미미하고 시시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상은 도했으나 성격은 개걸스러웠으며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바다 짠물을 잔뜩 먹은 솜옷처럼 축 늘어진 인생이었다. 나는 외쳤다.  대한민국, 다 (엿) 먹어라 그래  C !           (뭐), 이런 삐딱한 심정, (뭐) 이런 (욱)하는 마음.

격조 높은 영화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나는 개똥밭에서 뒹구는데 너무나 향기로운 높은 성에서 사는 꿈을 꾸고 있었구나. 그때부터 B급 병맛 영화를 즐겨 보게 되었다.  병맛 영화는 소프트 바디와 하드 바디가 모두 뛰어난 배우보다는 나와 비슷한 만무방이 나와서 쓴맛, 단맛, 병맛을 모두 경험한다는 점에서 내 루저 취향을 저격했다.  병맛의 참맛을 알게 해준 사람은 주성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병맛을 알아 ?   주성치 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 희극지왕, 1999 >> 이다.  이 영화는 주성치가 영화판에서 7년 동안 무명배우로 뒹굴면서 느꼈던 서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 영화'였다.


 

▶ 영화 오프닝 장면은  한 남자(주성치 분)가 바다를 향해 자기계발서에서  단골로 사용되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작한다. 나는 이 맬랑꼴리하며 블루스한 오프닝에 당황했다. " 투머치 슬랩스틱 오버 코미디 영화 " 에서 타이틀이 채 뜨기도 전에 쓸쓸한 < 뒷모습 > 을 보여준다는 것은 일종의 변칙이자 변종이다.  이 영화는 앞모습에 가려진 뒷모습에 대한 영화이다.

 


 

 

그는 시종일관 관객을 웃기려고 노력했으나 슬랩스틱 너머에 내재된 파토스는 숨길 수 없었다( 정극 배우의 슬픈 연기보다 희극 배우의 슬픈 연기가 더욱 돋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이는 찰리 채플린이었다. 그가 << 라임라이트 >> 란 영화에서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며 표정 없이 카메라 정면을 응시했을 때,  나는 까닭 모를 연민에 허우적거렸다 ).  그리고 피우피우 역을 연기한 배우가 택시 안에서 12월에 내리는 눈처럼 펑펑 울 때에는 나도 모르게 그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럭키금성의 삼 파장 초정밀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에 가까운 주성치의 유치찬란한 투머치 오두방정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 " 를 보다가

 

싱싱한 가거도 우럭처럼 울컥한 감정이 찾아오리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때 피우피우 역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장백지'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술집 여자'로 등장한다(그녀는 이 영화로 데뷔했다).  영화 줄거리를 당신에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주성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맥락이 아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배운 것은 연극(적)이 때로는 최상의 현실성이며 삶의 진정성을 표현하기에 좋은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허술하고 서툴지만 주성치의 진심이 담긴 멜로'이다. " 유치찬란 " 한 삶도 때로는 " 유치하지만 찬란한 삶 " 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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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5 2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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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5 2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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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9-06-05 23:54   좋아요 0 | URL
요즘 세대에게도 잘 통할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아해들이 잘 몰라 그렇지 알게 되면 다시 주성치형아 전성시대가 열릴 지도 모르는데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9-06-06 14:36   좋아요 0 | URL
주성치 영화가 좀 마니아적이기는 하죠... 불량식품이라고나 할까요.
 

 

 




시인이라는 낱말의 동의어는 화가'이다




                                                                  옛말인 " 믈 " 은 " 물(水) " 로 변화했다. 마찬가지로 < 블 > 은 " 불(火) " 로, < 플 > 은 " 풀 (草) " 로 변화하였다. 형용사 " 푸르다 " 에서 어간 " 프르 ㅡ " 는 < 플 > 이 바탕이다.

그러니까 색을 지시하는 푸르다(푸른색)는 풀빛을 중심으로 그 주변색을 포괄적으로 아우른 때깔이다. 색띠(색상 스펙트럼)에서 靑 : 푸를 청'과 綠 : 푸를 녹'은 서로 떼래야 땔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사이로 죽마고우요, 운우지정을 나누는 죽자사자 같은 사이'여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청색(BLUE)과 녹색(GREEN)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녹색 신호등을 " 파란불 " 이라고 말하고 잔디를 " 파란 잔디 " 라고 부른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사람들이 청색(BLUE)과 녹색(GREEN)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파랑( 먼셀 표색계에서 2.5PB 4/10에 해당되는 색)이라는 어휘가 다른 색 어휘와 비교한다면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색이라는 데 있다. 현대인이 인식하는 파랑은 자연(계)에서는 보기 힘든 색깔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파란색 꽃은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교배해서 만들어낸 것이고, 6만4000종의 척추동물 중에서 몸에 파란색을 지니고 있는 종은 단 2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파랑이라는 인공염료를 생산하기 전까지, 옛사람이 자연에서 파란색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옛사람들에게는 < 파랑 > 이라는 어휘 자체가 없었기에 청색과 녹색을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파랑이라는 색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떤 이와 < 파랗다 > 와 < 푸르다 > 를 두고 " 썰전 " 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 바다는 푸르다 " 거나 " 하늘은 푸르다 " 라는 표현을 문법 오류라고 지적했다. < 푸르다 > 가 녹색 계열인 풀빛을 중심으로 한 형용사이기에 " 바다는 파랗다 " 와 " 하늘은 파랗다 " 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늘과 바다가 먼셀 표색계에서 2.5PB 4/10에 해당되는 색'이라고 ??!!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여,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어 창문 너머 하늘을 보시라. 그냥 보시지 마시고 뚫어져라 보시라. 파랑인가 ? 내 눈에는 오히려 회색으로 보인다. 실제로 색 어휘를 습득하지 못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늘을 보고 하늘이 무슨 색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대부분 색이 없다거나

회색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하늘을 파랗다고 맹신하는 이유는 실제로 하늘이 파랑이기 때문이 아니라 " 하늘이 파랗다 " 는 학습 표현에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풍경화를 많이 남겼는데 그가 그린 그림 속에는 하늘이 다양한 색으로 그려져 있다. 하늘은 푸르다라는 문장을 틀렸다고 주장한 그 사람은 고흐의 그림을 보면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



- 수확하는 사람, 반 고흐



바닷물도 마찬가지'다. 서해에서 보는 물색과 남해와 동해에서 보는 물색도 서로 다르다. 물의 깊이와 수생식물의 종류 그리고 수질 상태에 따라서 물색은 제각각이다. 무엇보다도 물색의 기본은 " 색이 없다(투명) " 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하늘과 바다는 무조건 파랑이라고 해야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폭력이고 그 사람 밑에서 국어 교육을 받는 이는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시'라는 문학 장르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에 어느 시인이 자신이 쓴 시에서 " 파란 하늘 " 이라거나 " 파란 바다 " 라는 관용어(법)를 사용한다면, 그 시인이 쓴 시는 시시하다는 데 500원을 걸어야 한다.

시인의 첫 번째 덕목은 오래 보는 일이다. 내가 시인이라는 낱말의 동의어'는 화가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하늘이 파랗다, 라고 쓴 시인은 역설적이지만 하늘을 오래 본 사람이 아니다. 관찰 없이 관용(慣用)적 습관만으로 쓴 시는 사이비'다. 윤희상 시인의 시 < 화가 > 는 오랜 관찰 끝에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경지'를 다룬다. 화가가 그린 것은 수선화이지만 화가가 본 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이다.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뒤척거리는 수선화를 그렸다

바람에는 붓도 닿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람은 보지 않고

수선화만 보고 갔다

화가가 나서서

탓할 일이 아니었다

                        

                         - 화가,  윤희상

 

 

 

 


사랑의 본질은 " 본다는 행위 " 에 있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보고 싶다는 욕망(본다는 행위)이 결국에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욕망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한 번쯤은 시인'이었다. 나도 한때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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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7: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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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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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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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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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9-06-04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시는 그림과도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6-04 22:12   좋아요 0 | URL
마그리트 그림 보면 정말 시 같습니다... 그림과 시는 비슷한 구석이 매우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판 멘토는 없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멘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중략).... 어떻게 하면 자기들도 ‘멘토’를 구해서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었다. 조금은 시시했다.


- 멘토는 없다, 주진형 칼럼 中

 







                                                                                                     안철수는 한때 " 국민 멘토 " 였다. 그는 진보는 물론이요, 보수층도 두루두루 ' 아우 ' 를 만큼 시대의 ' 형님 ' 이자 스승이자 어르신이었다. 그는 초능력자들이 즐겨 입는 망토 입은 멘토'였다.

그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룸살롱이 뭐예요, 마카롱이에요 ? _ 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이 순진한 남자의 순정을 믿어 의심치 아니했다. 대구의 모 국회의원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찬란한 밤 문화를 마카롱化시키는 작태에 새빨갛게 발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꼰대에게 있어서 벤츠 몰고 룸빵 가서 여자 끼고 양주 원샷 때리는 것이 그 인간에게는 성공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자칭 / 타칭,  자신을 " 진보라 " 믿었던 이들은 안철수에게서 컬러풀한 아우라'를 보았다. 진보라보다는 연보라색을 좋아했던 나는 안철수를 멘토라고 숭배하는 대중의 꼴도 우스웠고, 스스로를 멘토라고 생각하는 안철수의 꼬락서니는 더더욱 우스웠다. Oops !!!   

          

 인생은 " 독고다이 " 라고 믿는 나에게 멘토는 공갈빵'이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것이 인간인데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인가 !  성공한 사람 옆에 붙어서 기생하고 싶은 멘티와 그것을 이용해서 나와바리를 확장하고 싶은 멘토가 있을 뿐이다. 내 허락 없이 이 골목 전봇대에 오줌 싸지 마라잉.  안철수는 멘토의 낯짝을 제대로 보여준 인간'이었다. 형광등 3만 개를 켜놓은 듯했던 아우라는 사라진 지 오래. 후광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초등학생 한 명이 초라하게 서 있었다. 내가 안철수입니까, 갑철수입니까. 네에. 아, 아아.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 아이 실망입니다.  

찬란한 어록을 남기고 사라진 그를 볼 때마다 멘토는 꼰대의 순화된 버전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 문단의 슈퍼스타 김경주 시인이 대필을 시인했다. 김경주 시인이 작성한 < 미디어 아티스트 흑표범의 전시 도록 해설 > 은 알고 보니 차현지 소설가가 대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당시 김경주는 문단의 불야성 같은 존재였으니 차현지 작가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멘토였으리라. 김경주는 언론 인터뷰에서“ 2016년 미디어 아티스트 흑표범의 전시 도록에 해설 원고 청탁을 받았으나 마감이 지나도록 쓰지 못하던 차에

후배이자 제자 격인 차현지 소설가가 자기 이름으로 나가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이 써 보겠다고 했고, 합의 하에 차 작가가 원고를 썼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 몇 년 지난 뒤 흑표범 작가에게 말해서 필자 이름을 바꿔 주기로 차 작가와 합의했고, 얼마 전 흑표범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 이런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들 사이에 험한 소리가 오갔던 모양이다. 김경주 시인은 " 차 작가와는 시나리오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 인터넷 문학방송 피디와 구성작가, 미술전시 공동 프로젝트 등 많은 작업을 같이 했고 개인적으로도 친한 사이였는데, 최근 소원해져서 나에 관해 부정적인 말을 주변에 하고 다닌다고 들었다"

라고 말한 반면에 차현지의 말은 김경주의 말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 김 시인이 먼저 대필 제안을 해왔다 ” 며 “ 당시 저는 작가적 자의식이 없는 신인이었던 데다 글을 쓸 기회가 너무나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 라고 말했다. 또 “ 대필을 제안하고 수락하는 관계는 결코 수평적인 관계일 수 없다 " 라며 “ 다른 신인 작가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대필 사실을 밝히게 됐다 " 라고 말했다. 누구 말이 옳든 그르든 간에 서로 드잡이하며 싸우는 꼴이 매우 뷰티풀해서 원더풀하다. 

인간이란 궁지에 몰리면 서로 물어뜯는 존재여서 드잡이의 풍경을 역겹게 볼 필요는 없다. 빈정 상하면 드잡이 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여튼....... 멘토와 멘티의 관계란 그런 것이다. 멘토는 없다. 상처에는 마데카솔 연고가 좋다고 하지만 빈정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상처에는 좋아라마이싱이 최고의 명약이다.  팔팔년도 쌈마이 동네 3류 극장 광고 버전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 (에코 빵빵 넣은 음향 버전) 오고가는 말풍선에 싹트는 우정. 어느덧 뾰족한 말풍선에 갈라선 빈정. 상처에는 마데카솔 / 빈정에는 좋아라마이싱. 동원극장 사거리 맞은편 광동 약국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 ! 
 




+  덧대기

 

김경주 시인이 차현지 작가'에게 보낸 메일.  메일 속 문장을 보면 그 유명한 굴다리 싱하형 문체가 생각난다.  싱하형 문체란 대략 이런 것이다.  " 형, 조낸 화났다. 지금 당장 굴다리 밑으로 쳐와라. 10초 준다. 8초, 9초 이런 건 소용 없다. 정확히 10초다. 지금부터 지켜보겠다  " 김경주의 문체를 싱하형 문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형, 조낸 화났다.  마지막 경고다.  글 지우고 한강 굴다리 밑으로 와라.  10초 준다.  9초, 8초 이런 건 소용 없다.  1초 늦을 때마다 내 주먹감자가 네 면상을 강타할 것이다.  그 파급력은 너의 주변인과는 다를 것임을 문학적으루다가 약속할 수 있다. 찌질이 새퀴, 긴장해라. 형을 몰라보는 새퀴는 조낸 죽을 때까지 패버린다. 내 나와바리에 오줌 싼 놈은 용서하지 않는다. 일단 나와라. 한강 굴다리에서 조낸 맞고 시작하자. ① 일 말의 용서도 없다. ② 두 말 하면 입 아프니까. ③ 세 말 하지 않으련다. ④ 네 말 명심해라.  자비는 없다. 형, 조낸 화났다. 쳐와라. 기한은 그때까지 딱 10초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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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로사랑해 2019-05-30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 소원해져서 나에 관해 부정적인 말을 주변에 하고 다닌다고 들었다˝고.
지가 잘못해놓고 자기 뒷담화하고 다닌다고 징징대는 것도 꼴볼견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5-30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부분이 참...... 품격을 훼손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구 보면 문인들은 말을 참 우아하게 하세요.
그냥 뒤따마‘라고 하면 될 것을 나에 관해 부정적인 말‘로 표현하시는 것을 보면 말이죠.

잠자냥 2019-05-30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경주가 차현지에게 보낸 (협박) 메일 보면 문장도... 참.......
시는 대체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지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5-30 16:36   좋아요 0 | URL
협박 메일도 있나요 ? 아. 찾아보니 뭐, 법적 대응 운운했었나 보죠 ? 허어..

잠자냥 2019-05-30 16:57   좋아요 0 | URL
넵 문제의 메일은 이 기사 끄트머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034

곰곰생각하는발 2019-05-30 17:07   좋아요 0 | URL
오, 방금 읽었습니다. 이야... 이거이거이거참............ 경주 씨, 이런 메일 보낼 때는 문장이 너무 아름답네요...ㅎㅎㅎㅎ

수다맨 2019-06-01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집에는 시집들이 거의 없는데 마침 김경주의 첫 시집인 ˝나는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2쇄본이 있더군요. 바로 버렸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04 16:45   좋아요 0 | URL
저는 시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서
김경주가 왜 이름값을 하는지 잘 이해는 안 가더군요.

수다맨 2019-06-05 13:29   좋아요 1 | URL
김경주가 이름값을 얻게 된 배경에는 (본인의 역량도 있겠지만)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권혁웅의 전폭적인 지지도 한몫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혁웅은 2000년경에 문단의 주류적 경향이었던 서정시들을 크게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황병승, 김경주의 시들을 내세웠지요. 뭐 단지 이러한 이유 때문에에 김경주가 이만큼 뜬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당대의 신진 비평가들(권혁웅, 신형철 등등)이 김경주에게 보냈던 기대와 지지와 후원이 컸다는 것만큼은 기억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05 13:40   좋아요 0 | URL
생각나네요. 권혁웅이 주도해서 이들을 이끈 측면이 큰데..
전 개인적으로 권혁웅을 매우 싫어합니다.
 


 

 

 

 

 

 

 

 

 

 

 

 

 

                                      

 

병  아  리  와    옥  수  수  :

 

 

 

 

 



대한민국 치킨뎐

















영화 << 집으로 >> 에서 시골 외딴집에 사는 외할머니는 도시에서 온 손자가 밥을 안 먹는 바람에 속앓이를 한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손자는 손짓, 몸짓, 말짓을 모두 동원하여 켄터키가 고향인 닭에 대해 말한다.

이마 위에 한손을 올리고는 닭벼슬 흉내도 내고 양손을 겨드랑이에 바짝 붙인 후 파닥파닥 날갯짓도 흉내를 낸다. 할머니, 꼬꼬댁. 파닥파닥, 알지 ?          그날 할머니가 손자 앞에 내놓은 것은 " 물에 빠진 닭 " 이었다. 노란 치킨을 원했던 손자는 하얀 백숙을 보자 밥상을 뒤엎는다. 짭쪼름한 천하장사 소세지를 달라고 했더니 닝닝하고 쓴 맛이 강한 도라지를 내놓은 꼴이다. 손자는 " 도라지처럼 토라져 " 입이 댓 발 나온다. 손자 입장에서 보면 닭과 치킨'은 둘리처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전혀 다른 음식'인 것이다. 저개발의 시대를 관통했던 할머니에게 닭 요리는 곧 백숙을 의미했다.

그 시대에는 거의 모든 고기를 물에 익혀 먹었던 시대였다. 가족 구성이 대가족 형태이다 보니 귀한 고기'로 많은 사람이 고기 맛을 맛보기 위해서는 국물로 요리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60년대와 그 이전이 " 물에빠진 백숙 " 의 전성시대였다면, 70년대는 " 전기구이 통닭 " 의 전성시대'였다. 옷을 입히지 않고 홀딱 벗기기는 했으나 끓는 물에 익혀 먹는 방식이 아니라 구워 먹는 전기구이 방식의 통닭은 백숙에서 치킨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간 단계를 차지한다(당시에는 고기의 기름 맛'을 매우 귀하게 여긴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워서 기름을 빼는 요리법은 사치에 가까웠다). 그것은 백숙도 아니고 튀김도 아닌,  마치 물속에서 사는 어류와 땅위에서 사는 파충류의 중간 단계인 양서류와 같은 포지션이었다.

" 통닭 " 이 " 치킨 "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점은  식용유가 업소용으로 값싼 가격에 대량 유통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때부터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튀김옷과 옥수수 기름이 만나 후라이드(fride)한 닭고기 튀김'이 탄생한다.  와우, 판타스틱 치킨 베이베, 오예 ~                         치킨을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딱 한 입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의 치느님이 탄생하게 되는 원년'이었다. 이때부터 한국인은 혓바닥이 남성의 귀두요, 여성의 클리토리스라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식욕이 성욕이었던 것이다. 뜯으면서 느끼는 것이다. 오, 예 ~ 우, 판타스틱 베이비 ~

재미있는 사실은 치킨용 닭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닭에게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서 옥수수 기름으로 튀김 요리를 내놓은 것이 바로 치킨이라는 점이다. 지금 당신이 혀끝에서 느끼는 오르가슴은 옥수수 맛이다. 그 인기가 영원불멸하여 결코 시들지 않을 것 같았던 프라이드 치킨도 90년대 들어서면서 양념 치킨에게 그 영광을 양보한다. 양념은 주재료가 고추장, 물엿, 간장인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물엿'이다. 치킨 양념에서 물엿이 차지하는 비율은 팔 할'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지점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물엿이다.

설탕이 사탕수수로 만든 당이라면 물엿은 옥수수로 만든 액상과당이다.  액상과당이 설탕보다 나쁘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옥수수 거의 대부분이 GMO(유전자조작농산물) 식품이라는 점에서 물엿으로 맛을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설탕으로 맛을 내는 것이 그나마 낫지만 액상과당(포도당과 과당의 액상 혼합물)이 설탕에 비해 값은 싸고 단맛은 강해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거의 모든 음식이 액상과당으로 단맛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 ① 유전자 조작 농산물인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닭을 ② 유전자 조작 농산물인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서

③  유전자 조작 농산물인 옥수수 기름에 튀기고 나서  ④ 유전자 조작 농산물인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물엿을 다시 입힌 것이 바로 ⑤ 대한민국 양념 치킨'인 것이다. 그렇다면 양념치킨이야말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로 생산한 정크푸트의 끝판 대마왕이 아닐까 ?  지금 당신이 찬양하는 치느님은 닭의 외피를 두른 GMO 옥수수'다. 그런 점에서 양념치킨은 박근혜의 반대말이다. 박근혜는 인간의 외피를 두른 닭이었으니깐 말이다. 오, 판타스틱 어덜트 베이비. 내가 대한민국 치킨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닭 요리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비만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국인 체형이 미학적으로 가장 훌륭했을 때'는 1970년대이다. 1970년대는 비만 인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었으며 대부분은 날씬한 체형을 유지했다.  암 유병률도 매우 낮았다. 그리고 비만과 당뇨는 " 부자병 " 이라 해서 일부 특권층의 사치병이라 불렸을 정도'다. 전기구이 통닭 시대가 한국인에게 가장 뛰어난 식단을 제공한 셈이다. (전기구이)통닭과 백숙 요리법의 핵심은 주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요리를 한다는 점이다. 반면, 체형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한 80년대에는 탄수화물을 지방(기름)으로 튀기는 요리법이 인기를 끌었다.

탄수화물 + 지방이 만나는 순간, 한국인의 체형은 서서히 살이 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름을 쏟아부은 요리법이 바로 단짠 양념의 과다 사용'이다. 90년대 이후, 비만과 당뇨가 치솟기 시작한 것은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단짠 양념에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닭 요리법의 진화는 결국 소울푸드였던 것이 정크 푸드로 변하는 과정과 일치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퇴행'이다. 그렇기에 양념 치킨(고탄고지+ 액상과당 과다)보다는 후라이드 치킨(고탄고지), 후라이드 치킨보다는 튀김옷을 입히지 않은 전기구이 통닭(고단), 전기구이 통닭보다는 백숙'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맛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소비 사회에서 적게 먹는다는 것은 매우 큰 미덕이며 똥을 너무 많이 싸는 것은 꽤나 은밀한 악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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