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1 - 고려태조 김성한 장편소설 왕건 1
김성한 지음 / 행림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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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가장 재미있게 본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대하드라마 왕건이다. 이 책도 아내가 빌려온 책이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쉬고 싶을 때,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때 곧잘 써먹던 것이 재미난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삼매경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겨울을 맞이하여 이 책을 읽었다.

  몇 가지 특징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우선 소설이기 때문에 정사와는 다르겠지만, 대하드라마와도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 종간, 아지태가 소설에서는 그리 큰 비중이 없는 것이나 역사적인 사건의 순서가 다른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 소설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소설류에 비하여 완성도는 조금 떨어진다. 전쟁 소설 특유의 박진감과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지만 왕건의 부인 오씨나 친구 종희에 관한 대목은 지나치게 늘어지는 감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 왕건에게 치명적이었던 공산 전투나 나주 정벌 등은 조금 더 진지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관제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당시 사회, 문화적 상황을 활용한 극전개를 통하여 간접적인 학습의 효과를 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소설은 드라마와 달리 활자의 매력과 장점이 있다. 소설과 드라마를 비교하는 것이 그리 좋은 시도는 아니겠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서 남겨 놓았다.

  하지만 왕건에게서 정말 배울 점은 덕일 것이다. 용맹과 관용. 두 가지를 고루 갖춘 왕건이 그렇지 못했던 다른 범부들과 경쟁하여 통일 왕조를 이룩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을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정치력이다. 억지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을 만들고, 그런 환경을 잘 활용하여 남들에게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면 얼마나 좋은 것이랴!

 

하지만 왕건이 끝난지 한참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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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2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5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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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내가 알기로 이책은 본래 한권이다. 예전에도 한권으로 번역되었는데, 최근에 와서 두 권으로 분리되었다. 전체적인 서평은 1권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만약 1권만 읽고 도중에 그만 두었다면 2권까지 꼭 마저 읽기를 바란다. 지하철에서, 버스 기다릴 때 읽어도 될 정도로 내용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난 오히려 2권에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 좋았다.

참고로 아래는 내가 읽다가 표시한 쪽 들이다.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은 부분을 표시하였다면, 느끼는 감정을 교류해보고 싶다.

9, 19, 21, 43, 85, 87, 117, 132, 138, 144, 183, 202, 217, 263, 266,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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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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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쓴 말은 파인만의 동료들이 한 말이라고 한다. 파인만이 프린스턴에 입학한다고 하였을 때 말한 덕담이다. 난 이 대목을 보다가 정말 한참 웃었다...

 

파인만을 처음 안 때로 잠시 돌아가고 싶다.

 

대학교 1학년때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과 선배의 방에서 어떤 사람의 포스터를 보았다. 나는 그때 그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선배는 그 유명한 사람을 모르냐고 되물었다. 죽은지 몇 해 안된 유명한 물리학자인데, 이름이 파인만이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이 파인만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또 들은 것은 파인만 시리즈라고 알려진 물리학 책을 살 때였다. 대단히 똑똑하면서도 별난 사람이라고 했다.

 

이 책은 물리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책이다. 물리학을 접한지 벌써 십여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부러울 정도로 창의적인 생각들, 엉뚱하고 기발한 행동, 무서운 집중력, 뚜렷한 자기주장과 자신감. 하지만 부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세기의 천재 물리학자인 파인만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은 굳이 물리학도가 아니어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요즘 보면 중학교 학생들의 4월 과학독후감으로도 읽히고 있었다. 과학자에 대한 단상(딱딱함, 고지식, 세상과 무관 등등)을 바꿔주면 더욱 좋으련만...

(번역도 그럭저럭)

 

<아래는 내가 특히 재밌게 본 부분들이다>

1권 : 45(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 것이다).

78(프린스턴에 누가 들어왔는지 그들이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라! 그들이 실수를 깨달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79(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84, 104, 182,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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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혜원세계문학 68
올더스 헉슬리 지음 / 혜원출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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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교육학과에서 주로 학부생들에게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책이다.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지만 많은 선후배 동기들이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내용과 줄거리는 간단하다. 인간이 계획과 통제를 통하여 태어나고, 계급에 따라 주어진 일을 하면서, 자기 역할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다가 죽는 사회에 생식활동을 통해 태어난 젊은이가 들어와서 겪게 되는 일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 사회에 속하는 모든 인간은 계획된 유전자 조합을 통하여 인공적으로 태어난다. 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서 사회에서 하는 역할에 맡게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유전자에 따라 결정되며 질병과 고통을 모르고 살아가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분업을 통한 생산성의 극대화를 추구했던, 기계 혁명의 상징인 포드의 이름을 딴 통치자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준다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가장 뛰어난 알파로 시작하여 베타, 델타, 노동자인 감마 등이 있으며 고통을 이기게 해주는 소마를 먹으며 모두들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회인 것이다. 지은이는 여기에 지금 세상의 잣대를 가진 야만인 청년을 등장시키고, 그를 통해 미래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정말 이런 사회가 나쁠까 하는 점이다.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인류가 생긴 이래로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소망이었다. 이것을 이루도록 한 이 유토피아는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어쩌면 나도 소설 속의 포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인간미가 없는 이 유토피아를 비난하지만, 난 솔직히 이런 유토피아를 동경하기도 한다. 선택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신이 내린 형벌은 바로 인간으로하여금 선택하게 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신이 내린 가장 큰 원죄는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더불어 재미도 있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하여, 여러 사람이 번역하였다. 사실 내가 특별히 이 번역가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읽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좀 웃긴 표현이지만 읽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면 번역서 치고는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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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화
C.P. 스노우 지음, 오영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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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고등학교에 가면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공부할까? 이것은 항상 내게 의문이었다. 의사가 되는데 거의 상관없는 수학을 공부하는 이과생들, 나중에 웬만한 수학과 학생만큼 수학을 보는 경제학도들, 자연과학같지만 문과생들만 지망할 수 있는 심리학과 지리학. 그런 구분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면 왜 그렇게 꼭 구분이 되어야 하는지 늘 궁금했다. 게다가 같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끼리는 정말 같은 범주안에 들어갈 만한 공통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전까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이 책에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인문학과 자연과학 분야에 있는 지식인 집단이 서로 다른 문화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영국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몰이해의 골은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하여 결국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빈민을 더욱 힘들게 하여 온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시 영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주장에 대한 많은 논쟁도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아직까지 큰 해결책이나 협의가 없이 그냥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은이인 스노우는 1950-70년에 걸쳐 이 두 지식체계와 지식인 부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스노우는 당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최고 지식인들을 두루 알고 지냈으면, 자신이 또한 두 지식체계의 첨단에서 실제로 배우고 많은 경험을 갖은 사람이었다. 이 논의는 1959년 그가 리드 강연에서 이런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촉발되었다.

  사실 20세기는 흔히 말하는 지식과 정보의 폭발적 팽창기였다. 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지식의 분화였던 것이고, 어찌 보면 이런 주장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많은 지식체계가 어찌 항상 같은 형태만을 유지할 것이며, 르네상스 시기도 아닌데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제는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생각을 늘여보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나누어 본다고 하지만 이제는 같은 인문학, 같은 자연과학분야라도 서로 너무나 달라서 별 공통점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쉬운 책이 아니라서 길게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책 뒷부분에 있는 스테판 콜리니의 해제는 오히려 본문보다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고, 오히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원래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모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노우는 두 문화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는 정신으로 온 인류,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돕자고 했다. 원칙적인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솔직히 그런 논쟁에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지는 의문이다. 당장 내가 먹고 사는 것에 큰 영향이 없을 듯 한데 누가 이 어려운 일에 손을 들고나설 것인가? 읽을 기회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서평들을 참고하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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