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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ㅣ 책세상 루트 2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좋은 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딱딱한 내용을 읽기 쉽게 풀어 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라고 하겠다. 이 책이 그렇다. 원래 이 책은 토론에 대한 책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이다. 토론을 잘 하려면 논리를 알아야 하고, 그렇다면 우선 논리에 대한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나 역시 때로 다른 이들에게 토론을 못한다고만 하였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하여 가르쳐주지 못했다. 다만 짐짓 아는 체를 했을 뿐, 나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미나에서도 가끔씩 나는 말실수를 할 때가 있었고, 어찌 보면 내가 토론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할 때나, 논문을 쓰는 것도 모두 논리적 토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기초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탁석산이 쓴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한국인의 주체성이라는 탁석산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고, 또 그 책이 읽기도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었기에 이번에도 지은이의 이름을 보고 이 책을 골랐다. 철학박사이기도 하고, 실제로 논리학에 대한 강의를 10여년간 하였다고 하니, 그 정도면 책 내용도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대상은 고등학생, 대학생, 일반인 정도로 생각된다. 지은이도 말하듯이 워낙 학생과 보통사람들에게 논리학에 대한 공부가 안 되어 있어서 딱히 대상을 말하기가 어렵다. 책은 특이하게도 만화가 곁들여져 있었는데, 그래서 내용은 대학생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으면서도 형식은 마치 중고생용으로 보였다. 그림도 내용과 상당히 관련이 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좋았다. 또 본문 옆에서는 글쓴이의 짧은 설명이 달려있어서 주석의 역할을 하거나, 요약의 역할 등을 하였다. 이 두 가지가 처음에는 오히려 번거롭게 느껴졌는데, 나중에는 이 방식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간단한 논증이나 신문 사설을 예로 들어서 중간중간 설명을 해주는데,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서 아예 독립된 장을 만들어 조중동과 한겨레의 사설을 하나씩 예로 들면서 분석을 해 주었는데, 실제로 앞서 배운 내용을 예를 통하여 다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무척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설의 내용을 글쓴이의 분석에 맞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였다. 아마도 아직은 논리초보자인가 보다.
로마에서는 법학자가 아닌 사람도 변호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논리학을 공부한 삶이 오히려 변호사를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박사에게 변호사 자격증을 주는 것은 어떨까? 내가 사시과목을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너무 논리학에 대하여 당연히 아는 것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고위층이나 상위계층에서도 기본적인 논리학이나 토론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람을 쉽게 본다. 나 역시 그 중 한사람이겠지만, 이제 제발 그런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물리를 잘 하는 교수라고 해서 논리적으로 뛰어날 수는 없다. 그것은 일종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물리=논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교수의 일은 결코 물리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논리를 배운 것과 논리적으로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다만 논리를 배운 사람은 논리적으로 살 가능성이 높다. 물리 + 교육 = 물리교육 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도 결국은 합성의 오류가 아닐까?
이 책은 대학생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진작 이런 내용을 미리 공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이 책은 좋은 논증을 위한 네 가지 조건 (관련성, 전제의 참, 충분한 근거, 반박 잠재우기과 대표적 오류에 대한 설명(역시 네 가지 조건에 따라서), 그리고 실제 사설을 이용한 예시와 분석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구성도 명쾌하다. 글쓴이는 이 책을 논리학의 셈본이라고 말한다. 셈본은 셈을 잘 하게 되면 전혀 쓸모가 없다. 나도 이 책을 더 뒤적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논리학을 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