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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ㅣ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독후감 쓴 시간: 08년 3월 8일 16시 31분 3초 ~ 08년 3월 8일 21시 14분 35초
독후감 쓴 시간: 08년 3월 9일 11시 13분 58초 ~ 08년 3월 9일 12시 28분 50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피에르 바야르, 김 병욱 옮김 / 여름언덕)
자: 2008. 2. 24. (일) 13:56 (강남역) ~
지: 2008. 2. 28. (목) 09:09 (사무실)
비판 가득한 마음으로 이 책을 잡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터무니 없을 것 같은 그의 이야기가
일견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하나 하나씩 나의 관념을 풀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점점 그의 이야기가 가치있고 진실되게 들리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반론과 비판의 소리가 가슴에서 울렸다.
다 읽고 난 지금도 전체적인 그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는 반론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나는 그의 주장대로 책을 읽어온 것 같다.
그 동안 책을 제법 읽어왔지만 결코 나 자신을 잃지 않았다.
독서는 내게 창조력 개발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책 읽기가 창조적 글쓰기 혹은 독창적 삶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비독서도 가하겠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에, 책에, 교육에 세뇌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그의 주장은 지독히 지혜로운 이들에게만 맞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2008. 2. 28. 09:19
김 선욱 서
요즈음 독후감을 전혀 못쓰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한편도 쓰지 못했다. 바쁘다기 보다는 게으른 탓이다. 전에는 토요일에는 사무실에서 2편을, 그렇지 못할 때는 집에서라도 2편씩을 썼다. 그런데 토요일에 사무실에 늦게 나오는데다 뭔가 일이 있어 쓰지를 못하고 넘어가곤 했다. 일요일 집에서라도 쓰면 좋은데, 집에서는 또 나태해져서 쓰지 못하고 만다. 독후감도 거르지 않고 꼭 써야겠다고 굳게 결심을 해야만 쓰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아들과 축구 경기 구경을 다녀왔다. 하루 종일 성준이와 보냈는데 참 즐거웠다. 사무실에 들렸다가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그 때 독후감을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겨우 독서일지만 쓰고 말았다. 2일 일요일에는 집에서 쉬었는데도 독후감 한편 쓰지 못하고 기수련하다 자다 했을 뿐이다. 일요일이었지만 사무실에 나와 독후감이라도 한편 쓸까 하다가 너무 늦게 일어나 차라리 집에서 독후감을 쓰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반성을 많이 해야만 한다. 그 주에 읽은 책은 그 주 일요일까지는 꼭 독후감을 쓰겠다고 다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독후감을 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일찍 출근을 했다. 월요일에 7시 30분에 강의가 있다고 해서 이 참에 일찍 출근해야겠다 싶어서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첫차를 탔다. 하지만 마지막 날 금요일에는 지키지 못했다. 다음주에는 꼭 일주일 내내 첫차를 타고 다녀야겠다.
작년 한해는 첫차를 타지 못했다. 3월엔가 차가 고장 나서 집에 세워두면서 첫차를 타지 못했던 것이다. 차를 끌고 성대역까지 와서 첫차를 탔는데 차가 없으니 성대역까지 걸어 다녀야 했는데 그게 힘들고 귀찮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버스 첫차인 6시 7분 차나 다음 차인 6시 27분 차를 타고 다녔다. 늦을 때는 6시 47분 차까지 타기도 했으니 무척이나 게을러진 것이다. 게을러서 작년에는 책도 많이 읽지 못했다. 딱 90권을 읽었을 뿐이다. 재작년엔 119권을 읽었으니 29권이나 적게 읽었다.
첫차를 타고 출근하니 6시 30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일찍 출근하니 책을 읽게 된다. 하루에 1챕터씩 읽는 책과 30분씩 읽는 책 2종류를 읽게 된다. 이렇게 일년을 읽으면 열댓권의 책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아 올 3월 이후부터라도 첫차를 타고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책을 더 읽어야겠다.
지난 2월 21일에는 출판사 사장님과 상담을 했다. 독서에 관한 책을 한번 써 내보자는 합의를 했다. 하지만 아직 기획도 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될까 모르겠다. 역시, 뭔가를 꼭 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하니 결과물로 나오지 않는다. 상담을 한 곳이 합정역 근처라 RG사무실에 들리게 되었다. 그 때 서평으로 올린 이 책과 행복에 관한 책 2권을 받아왔다. 그래서 읽게 되었는데 제목이 좀 꺼림직했다.
사실 요즘과 같이 물질물명에 경도된 시대에 책 혹은 독서라는 게 참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출판 시장에서조차 독서 쪽은 찬밥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독서에 관한 책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나 개인적으로는 행복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 지난주부터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있지만 나는 행복에 관해서 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책을 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독서에 관한 책을 써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서에 관한 책도 쓰고는 싶다. 왜냐하면 나는 남다른 독서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독서가 일과 같이 중요한 생명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독서가 단지 취미로 머무를 수는 없다. 요즘과 같이 어려운 시대에 책을 한가하게 취미로 읽고 있을 여유가 없다.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서는 나무에 꼭 필요한 물과 같은 생명수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빵을 굶으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생명의 빵이라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공공연히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마음의 양식을 거스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부유했던 사람, 명예를 누리고 살았던 사람, 인기를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의 양식도 정말 중요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든 독서든 집짓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집을 짓는 것처럼 청사진이 필요하다. 전체적인 설계도에 따라서 집을 짓고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이란 건물도 반드시 설계도에 따라서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설계도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러기 때문에 작은 충격이나 흔들림에도 쉽게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성인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기초를 튼튼하게 해 놓지 않으면 언제든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튼튼한 기초가 필요하듯 독서에도 튼튼한 기초가 필요하다. 소설이든, 고전이든 취미로 읽으려면 생을 튼튼하게 유지해 줄 초석과 같은 분야에 대한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직업과 경제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자신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해나가는데 필요한 건강에 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어야만 생명을 남에게 맡겨서 잃거나 하지 않는다. 오늘날 직업환경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가. 그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절대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을 갖고는 이 험난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렇게 생명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토대를 갖춰 놓고 더 풍요롭고 향기로운 삶을 위한 독서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독서가들은 자기개발 서적류를 하찮게 여긴다. 독서가 고상한 취미로 여겨지던 시대나 환경에서 가질 법한 고정관념이다. 더 이상 먹거리와 가족의 부양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나,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인 것이다. 오늘날의 삶은 환경은 무척이나 변했다. 90~100세까지 살아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또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만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소질과 역량을 계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위해 필요한 서적은 또한 반드시 읽고 지식을 습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의 흔들림 없는 가치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꼭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인생철학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러한 변화무쌍한 시대에 자신을 지켜낼 수가 있겠는가. 나이 드신 어른이라고 해도 어린 사람에게 모범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 어른 노릇을 할 수가 있겠는가. 나이로 가르침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확고부동한 가치관을 갖고 정신적인 삶으로 가르침을 주지 못한다면 누가 존경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고 배우지 않는다면 어찌 가르칠 수가 있을까.
독서가 인생의 기초를 세워주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을 때 책이야말로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꼭 마음의 양식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독서를 하더라도 양서를 읽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책에 함몰되어 책 속을 떠도는 귀신 혹은 유령이 되고 말 것이다. 책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책을 제대로 읽고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엉뚱한 사고로 세뇌되고 만다. 그래서 매일 읽는 책이 그 사람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지금 참으로 유치한 사상에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 인류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하게 된다는 시장가격 형성 원리와, 그러한 자유 시장 원리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케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론에 속아 넘어가 자본주의 시대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그만큼 양서를 읽는 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책을 바르게 읽는 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우리는 엄청난 왜곡과 호도에 휘둘리게 된다. 누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했는가. 어려서 그런 왜곡된 주장에 이끌리고 말았다. 그것은 책을 읽어보지 않으면 속아넘어갈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은 주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제대로 읽어야만 한다. 그래야 현학자들이나 위선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갈 수가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 (모티마 J. 아들러/청하)란 책에서 하버드대 학생들이 고전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며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토론을 통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인용이 회자되었던 것과 다른 예들을 보더라도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읽지 않은 책은 확실히 밝힌다. 책을 읽지 않은 것은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니깐 말이다.
사실을 말하면 위에 언급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어떠한 맥락에서 어떤 취지로 언급했는지 모른다. 그 책에 이야기 하기 위해서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책을 구해 두었다. 그런데 우선 순위에 밀리다 보니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습지 않는가?
이처럼 읽지 않은 책을 말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자, 어찌되었든 ‘읽지 않은 책을 말하는 법’이란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그래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법도 배워보자.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피에르 바야르, 김 병욱 옮김 / 여름언덕) …
<책 읽은 시간>
자: 2008. 2. 24. (일) 13:56 (강남역) ~
지: 2008. 2. 28. (목) 09:09 (사무실)
<책 읽은 계기>
합정역 근처에서 책 출판 상담을 마치고 RG를 방문했다가 서평도서로 받아오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하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하는가. 읽어야 할 책 목록이 참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한한 시간을 사는 존재인 우리들은 결코 많은 책을 읽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꼭 필요한 책들만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책이 우리가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일까. 그리고 어떻게 책을 읽는 것이 정말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일까.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진리에 관한 책, 건강과 같이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분야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주는 책들을 꼭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것이 참 진리에 관한 책이고, 참 지식에 관한 책들인가. 그런 책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런 것에 관한 지침을 ‘에밀’에서 얻을 수가 있다고 본다.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해서, 또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에밀에서는 스스로 바르게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는 책을 읽게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그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려서는 책을 읽혀야겠다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이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뛰어 노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즉 행복하게 살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정확하지 않은 책, 편견과 왜곡을 불러일으키는 책, 정신을 산란하게 하거나 문란하게 하는 책 등을 읽는 것은 우리의 뇌를 그릇되게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뇌에 그릇된 사고의 지도를 그리게 만드는 것은 독서뿐만 아닐 것이다. 스스로 체험하는 경험, 남들로부터 주워듣는 이야기 등 많은 것으로부터 뇌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런 생각의 지도가 굳어져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되며, 평생 좋지 않은 고정관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지식의 보고인 뇌를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뇌 속에 중요한 지식, 정보를 쌓고 살아갈 때 어떻게 해야만 할까. 책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진정 바르게 책을 읽는 것은 어떤 한권의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정보이며, 인류의 지식 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 21:05 / 11:19~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 ‘읽지 않는 책을 말하는 법’은 의미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말 책을 잘 읽는 것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책에 함몰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련한 사서가 책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분류할 수 있듯이 책 제목과 목차를 보고 책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에밀에서 루소가 스스로 정확한 판단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의 주장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기준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은 책 제목과 목차를 보고 대강의 내용을 파악한 후에 책을 읽을 것을 요구한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중요하거나 필요한 부분만을 자세하게 읽어보고 전체적으로 통독을 하라는 사람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실용적인 독서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이런 주장들은 이 책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의 주장에 일치하거나 부분적으로 합치하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사시 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게거품을 물으며 주장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심히 거부감이 드는 제목이고 주장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죽은 목숨과 다르지 않다고까지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지 말라니 얼마나 황당한 소리겠는가. 그래서 처음부터 큰 반감을 갖고 이 책을 대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온전히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그의 설득력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일견 일리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그의 주장을 반박하자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첫째, 한 국가에 어느 특정 도서관에 있고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이 전 세계의 모든 책은 아닐진데 어떻게 특정한 한 권의 책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 사서가 프랑스의 가장 큰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전세계에 발행되는 모든 책을 접하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작은 부분으로 전체를 평가한다고 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물론 한 국가나 지역이라는 좁은 범위를 전제한다면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세상의 어떤 독서가들의 사서와 같이 많은 책을 접할 수가 있으며 제대로 책의 세계를 분류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교양이 있는 독서가라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교양이 있는 독자는 어떻게 교육되는가. 과연 이 세상을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있겠는가. 이렇게 비판의 눈으로 보자면 이 책은 터무니 없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 있다. 조금은 다르지만 말이다. 독서를 하지만 비독서가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1999년 깨달음을 얻고 책을 읽으면서 모든 지식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모든 것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파악해나가고 있다. 엄밀하게 보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은 책이 얼마나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으며, 가치 있는 주장을 하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직접 국가론을 읽어본 것이다. 책을 읽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와 같은 철인이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책을 판단하면서 읽다보면 별볼일 없는 책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사실을 밝히는 책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책들을 직접 읽어보려고 한다. 이런 면에서는 무질의 사서와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자.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에서, 읽었지만 책의 내용을 잃어버린 경우까지의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많은 책을 읽다보면 책을 내용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반박할 수가 없다. 사실 내가 언급했던 국부론은 전혀 읽지 않은 책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관해서 버젓이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하고 있으니 웃기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대로 따라서 해 보기 위해 일부런 언급을 했던 것이다. ^.^ 사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편하다. 나는 그런 편이다. 그게 전혀 부끄러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읽지 않는 책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담론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일반독자 개개인이 처하는 경우와는 다르지만 일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다. 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요령도 나와 있다.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우리는 자신의 삶을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닌 자신의 얘기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책이 나의 생각과 가치관, 주장과 많이 다르지만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권이 책이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는 근본적인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것을 보더라도 그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인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결국 피에르 바야르는 교육, 창작, 책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 책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짓누르고 있는 금기들은 학창시절부터 우리로 하여금 책을 신성시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책에서 어떤 변화를 가하는 순간 곧바로 죄책감을 느끼게 해 온 것들이다. (232p)
- 자기 자신이 창조자가 되는 것, 바로 이 계획이 이 책에서 우리가 일련의 예들을 바탕으로 행한 모든 사실 확인의 귀착점이며, 이는 내적 진전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다는 느낌으로부터 해방된 이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계획이다. (233p)
- 좀 더 놓은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읽지 않은 책이건 읽은 책이건 책에 대해 거리를 두도록 요구하는 창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역으로, 창작은 기존의 책들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234p)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창작의 요구에 부응하는 최초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면,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런 학습에 가치를 부여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부과된다고 할 수 있다. (255p)
-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통찰력 있게 말할 줄 안다는 것은 책들의 세계를 훨씬 웃도는 가치가 있다. 많은 작가들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교양 전체는 담론과 그 대상 간의 연관을 끊고 자기 얘기를 하는 능력을 보이는 이들에게 열리는 것이다. (236p)
- 교육은 피 교육자들이 작품들에 대해 충분한 자유를 누리면서 그들 자신이 작가나 예술가가 되도록 도와주는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236p)
- 이 책에서 열거한 그 모든 이유들로 인해 앞으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 때문에 나의 길을 저버리는 일 없이, 흔들리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계속 얘기를 해나갈 생각이다.(237p)
- 좋은 사명감이군! 괜찮은 책이야! 나는 바로 이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향을 받기는 받았지만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확인하는 차원이고,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책을 찾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2008. 2. 28 09:09 김선욱 (237p)
책을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여행인 것 같다. 비록 지나가는 모든 풍경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고, 한두 가지 좋은 교훈을 얻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그런 즐거운 여행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는 여행을 했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반성이 되는 일이 하나 있다. 전에 독서토론 모임을 참석을 했었는데, 한 출판사 사장님께서 책을 읽지도 않으시고 모임에 나오셔서 토론에 참여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책 얘기를 잘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책과는 동떨어진 얘기였지만 말이다. 그게 싫어서 그 모임에 더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반성이 되었다. 비독서를 하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내 어리석음은 고백하고 싶다. 지금은 자주 모이지 않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모임을 갖자고 얘기를 해 보아야겠다.
그래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뭐 읽지 않은 책을 얘기한다고 한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얼 피하고 두려워하겠는가. 읽지 않은 책을 떠벌여 보자. 사실 나는 논어와 맹자조차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공자의 인의 사상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리라.
2008. 3. 9. 12:27
독후감 한편을 오래 쓰는 고서
김 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