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한쪽 눈을 뜨다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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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순간순간 움찔하고 가슴이 뻐근한 부분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녀석들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지나온 길목이었으므로, 눈물이 찔끔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상처가 아물면 무른 살이 단단해지듯, 어느 날 뜬금없이 녀석들을 덮치고 괴롭히려 들 미래에 대한 예방주사쯤으로 생각하자, 아이들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예방주사를 맞는 당사자는 몹시도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 사이에서 주사 바늘을 들고 있는 상대를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당하게 멋지게 맞는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하느님을 외치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을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 찰흙처럼 부드럽고 연약한 아이들.
 

영섭, 태준, 정진, 태석.

그 아이들을 통해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나를, 만났다.
그 아이들을 통해 시간을 앞으로 돌려 미래 내 아들의 모습을, 만났다.

 

*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나는 황라사마귀가 되고 싶다.
나는 황라사마귀다.

뜬금없이 황라사마귀라니. 세상에 별별별 멋지고 재미있는 것들을 놔두고 풀밭에선 보이지도 않는 황라사마귀가 되고 싶다니. 그런데 녀석의 이야기가 사뭇 상세하고 진지해서 나 또한 금세 녀석이 있는 초원 어귀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운동장만큼 넓은 초록색 잎 위에서 춤을 추로 노래‘하는 황라사마귀. 곁으로 하나 둘 초원의 동물들이 모여들지만 아무도 녀석을 찾을 순 없다. ‘나뭇잎과 똑같은 빛깔을 한 황라사마귀니까’.
책을 읽다보면 금방 알게 된다. 영섭에게 황라사마귀란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를, 하이에나와 악어의 등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프리카맹꽁이로 변하거나 카멜레온으로 변하는 것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를 말이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에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 교실의 모습이 약육강식의 세계인 ‘사바나’에 비유하여 그려지고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의 동물들이 모여 서로 으르렁거리고 살아남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교실 안 남자아이들에 투영되어 귀로만 익숙한 교내 현실을 독자로하여금 보다 실감나게, 그러나 너무 진지하지 않게 다가서도록 한다. 어수룩한 영섭을 놀려먹으며 매일 반을 시끄럽게 만드는 문제아 태준정진. 상위권 성적을 지키며 조용하게 제 자리를 지키다 어리바리하게 반장 자리를 꿰차고 만 태준. 그들 사이를 조율하느라 등골이 휘는 어수룩한 시인 담임선생님. 어쩐지 이름만 낯설 뿐 어딘지 낯설고 익숙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래! 15년 전, 나의 교실에도 그들은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중학교 시절을 되짚으면 늘 어색하고 불편했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집 앞 초등학교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등교하기 시작했을 때. 몸집보다 큰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정류장에 삼삼오오 모여 이미 만원이 버스 안을 비집고 들어서던 때. 그 때의 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 사이에서 곡예 중이었다. 한 발짝 잘못 떼면 어린이로 전락해버리기 십상이었지만 입고 있는 교복은, 학년과 반과 번호는, 무겁기만 한 교과서들과 칠판 옆 게시판에 붙어 펄럭대는 내 성적은, 나를 청소년이라 우겼다. 내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이 흡사 타임머신처럼 금방이라도 고등학생으로, 성인으로 휘리릭 끌어다 나를 던져놓을 듯 불길했고 두렵기 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감정들을 간직하고 있기엔 너무나 연약했고 작았다. 찰흙덩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만지는 그대로 모양이 남아 흉터가 되거나 무늬가 되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합반은 아니었던 학교생활 속에서 누가 누구와 연애를 한다느니, 학년 킹카 누구는 벌써 여자와 잤다느니 하는 알 수 없는 말들이 떠도는 동안, 다이어트 약을 먹으며 살을 뺀다는 친구의 다리가 나날이 가늘어지는 동안, 내가 이유 없이 싫다고 대놓고 말한 뒷자리 아이의 강요에 못 이겨 시험시간이면 목숨을 걸고 건넨 쪽지가 쓰레기로 사라지는 동안, 나는 키도 자라지 않았고 얼굴이 예뻐지지도 않았다. 교복은 여전히 컸다. 그러면서도 내 뒤에 등수 아이의 성적이 나를 치고 올라왔을 땐 툭, 하고 못된 말을 뱉기도 했다. 가슴 안에서 누군가 계속 그 말을 해야 나중에 그 아이를 이길 수 있다고 외쳐댔다. 활짝 웃는 얼굴이 예뻤던 그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 말을 뱉었던 것인지. 그 뒤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두고두고 미안했던 생각이 들었다  남학생들은 저마다 아빠 옷을 입은 것처럼 얼굴과 교복이 잘 매치되지 않았지만 표정이 없고, 우울해 보이고, 욕이 툭툭 튀어나오는 입술이 달린 얼굴만은 비등비등했다. 남자반이 늘어선 복도를 지날 때면 맡아지던 이상야릇한 냄새들. 초등학교 때 분명 한 반을 지냈음에도 남녀 반으로 분명한 선을 그어놓은 그 때는 눈이 마주치면 괜히 어색해 고개를 획 돌려버리게 되었다. 무언가 이상한 징조가 느껴졌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다른 모양으로 변화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혹은 잘못된 일이라고 일러주지 않았다. 
 

노는 패거리의 만만한 상대였던 영섭을 보며 내 학창시절 속 ‘영섭’을 떠올렸다. 세 명의 ‘영섭’. 그녀들은 늘 자신보다 큰 안경을 쓰고 있었고 몸집이 컸고 누가 어떤 말을 건네든, 어떤 부탁을 하든 활짝 웃는 얼굴로 답하곤 했다. 노트 필기 글씨는 삐뚤빼뚤이었고 시험이면 꼴등을 도맡아 주었다. 짓궂은 아이들이 놀리는 말에도 진지하게 답하면서 제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선사했지만 되돌려 받는 건 또 다른, 새로운 부탁일 뿐이었다. 늘 혼자서 화장실을 가고 늘 혼자서 밥을 먹었다. 가끔 또 다른 ‘영섭’이 찾아와 우리 반 ‘영섭’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혹시나, 여전히,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어린이란 꼬리표를 떼고 청소년이란 수식을 달 때, 그것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 듯 간단한 의식이 아니었다. 곧 내 연약한 표피를 뚫고 뿔이라도 돋아날 것 같은 심정. 그런데 그것이 나를 보호해주기 보단 나조차도 헤칠 듯 겁이 나는 순간의 닥침.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불안감. 어느 것 하나 주어진 힌트도 없이 스스로 부딪혀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막막함. 그 감정들의 혼재 속에서 아이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괴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조차도 선택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가 있는 듯, '괴물'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그 주인의 불안을 잠재우고 내가 곁에 있는 아이보다 강하다는 착각을 입증해 주었다.

주먹을 내두르고, 주먹에 맞고, 발길질하고, 발에 차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낯설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졌다. 싸우는 사람은 내가 분명한데 나 같지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조종한 건가? 내 안에 괴물이 하나 들어 있나? 

- p.87 , 태준 셋-눈을 뜨다 부분  

태준은 다른 아이들에겐 성적도 좋고 조용한 아이로, 학급반장을 맡고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야동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또한 떳떳하지 못하다. 야동을 끊지 못하는 자신을 변태처럼 여기면서, 치밀어 오르는 욕구들을 불결하게 느끼면서 자신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컴퓨터로 다가서고 마는 아이. 내가 태준의 어머니 입장이라면 당황하고 놀라 할 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엔 녀석이 끊임없이 야동생각을 하는 모습이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태준이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 나는 잠시 먹먹한 마음이 되었다. 혼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그 아이를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위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녀석이 자신의 태도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른 아이들이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성적을 유지하려하고 어떨 땐 상대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서 태준 스스로가 자신의 기준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태준도 연약한 영섭에게 폭력성을 느끼긴 마찮가지였다. 또한 중2 마지막 겨울방학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초등학생의 MP3를 빼앗아보면서 자신 안에도 있는 괴물을 발견하며 조금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길 줄 알게 된 영섭. 어느 날엔 정진과 태석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하는 녀석. 끝까지 그 아이가 당하는 꼴만을 보았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일어난 일들을 쉽게 넘겨두지 못했을 것이다. 과잉보호를 받고 있는 정진. 부모의 체벌을 견뎌야하는 태석. 녀석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면은, 집에서 무시당하는 자신을 또래 아이들에게까지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부모의 손길에, 타인과의 관계 속에 빚어진 스스로를 다듬고 만들어가는 일에 익숙하지 못해서 학교에서 문제아가 되고 연약한 아이를 괴롭히며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삶으로 빠져들게 되었으리란 생각. 아마도 그 아이들까지도 따뜻한 한마디의 말과 격려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언젠가 나의 아이와 내 사이에 다가오기도 할 일. 나는 어떤 말들로 나의 아이를 붙잡아주어야 할까. 사실 마지막에 태준의 어머니가 "난 우리 아들 믿어.", "듬직한데. 우리 착하고 성실한 아들." 이라고 말할 때는 나 또한 뿌듯하게 태준을 바라보았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 잘못과 실망된 마음을 미뤄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작은 아이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것만큼 멋진 부모가 되는 일이 있을까. 


끈적끈적한 막으로 감싸 있는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철퍼덕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갈고리처럼 밑으로 굽은 손톱 네 개가 툭 불거져 나와 막을 찢고 사이를 벌리더니 살진 두꺼비 같은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중략)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상한 짐승이 내 눈을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씨익 끌어 올렸다.

네가 그 놈이니?


-p.218, 태준 여섯-고슴도치 부분  


나는 중학교 시절  어떤 외피를 찾아 입고자 했을까. 키가 크고 눈망울이 동그랗던, 사복을 입으면 날씬하고 긴 다리를 감싼 청바지가 너무나 멋지게 보이던, 화이트 데이엔 인형이 담긴 거대한 사탕 바구니를 책상 위에 턱하고 올려놓은 채 자랑스러운 웃음을 날리던 그 친구들처럼 되고 싶었다!
키가 훌쩍 크고 눈매가 매섭게 살아난 아이들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어른이지만 그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면 느껴지는 그 나이 때의 천진난만함이 금세 드러나고, 앞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핀 먼 훗날의 시간까지 짚어보게 된다. 그 아이의 얼굴에 너무 일찍 아이라인이 그려지고 파우더가 칠해져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그 가능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아이의 얼굴만을 보고 그 가능성은 보아주지 못했는지. 그리고 어른들이 무심코 던지고 돌아서는 싸늘한 시선 앞에서 얼마나 불안함을 느끼며 자신을 가리기 위해, 더 삐딱해지기 위해 진한 화장을 해야 했는지. 거리를 걷다가 마주치는 아이들의 교복 매무새를 시선으로 따라가며 나는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저 아이들이 또래와 웃고 떠드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곁에 있는 어른들의 몫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은 살아가며 몇 번이나 더 스스로의 가면을 바꾸어 자신의 모습을 찾아 갈 것이다. 그것은 적잖이 괴기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어색한 것일 수도 있고, 볼품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아이가 스스로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사이에서 어른들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가 되돌아올 수 없는 일을 선택할 때뿐이라는 생각이다. 부모인 내가 아이의 삶을 일일이 챙겨줄 수 없듯이 아이는 스스로의 앞길을 선택해 나아가며 넘어지고 다치면서 길을 수정해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시행착오가 줄어들고, 자신을 바르게 지킬 줄 알게 되고, 스스로가 꿈꾸는 삶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며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곁에서 아이가 너무 오래 넘어져 있지 않게, 포기하지 않게 돌아보면 위로받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은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였고 내 아이의 이야기였고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태준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었던 모습, 영섭이 선생님이 쥐어 준 무기(각서)를 들고 정진에게 경고하던 모습, 자신의 안에서 깨어난 괴물과 마주한 사내아이의 모습, 그런 아이들을 요리조리 몰아가는 선생님의 달콤살벌한 말씀들. 아이들은 알까. 지금 그들이 놓인 시간이 흔들리는 수면처럼 불안할지라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림과 싸우며 자신을 지탱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작은 꽃망울처럼 앙증맞고 귀하다는 사실을. 연약한 자신을 너무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시간들안에서 치열하게 상처받고 멋진 흉터도 만들어가며,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도 하나 둘 마음속에 세기며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나가길, 가만히 바라본다. 거리에서 골목에서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지나가는 아이들의 곁을 내 작은 아들의 손을 쥔 채로 지나갈 때면 책 속에서 만난 네 녀석의 얼굴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봄꽃처럼 아른거린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더욱 남자다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태준과 영섭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미소가 번진다. 이런 걸 희망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뿜어내고 있는 먼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내 한 쪽 손에 쥐어진, 거대하고 신비한 내 아들의 시간도. 그 곁에 함께 걷고 있음이 마냥 감사하다. 때때의 시절이 주는 방황의 특권과 무수한 절망의 고리를 힘차게 뛰어 넘어 모두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오늘의 웃음을 눈물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봄날,

 

언젠가 내 아이가 방황 끝에 괴물로 변하더라도, 꼭 해주고야 말, 한 마디를 꾹꾹 가슴에 세긴다. 

정말 절대 까먹어서는 안될 한 마디.  

 너니까, 너라서 괜찮아,  
 

그리고 꼭, 믿지 않아도, 해주고 싶은 말.   


너희의 모습은 정말, 정말, 정~말 아름답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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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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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녀의 글을 기대듯 읽는다. 누군가의 익숙하고 넓은 등에 온몸을 기대앉은 듯. 봄볕과 초록이 유영하는 공기 속에서 내가 지나 온 삶의 페이지 사이를 산책하듯. 그렇게 그녀의 책 속을 깊이 거닐었다. 지나 온 자리에 흐릿하게 남은 발자국들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끌어안으며 뭉클한 가슴을 숨겼다. 내 앞에 앉은 이의 환한 웃음 속에 그렁한 눈물을 마주한 듯,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얼굴이 되어 이 책을 덮었다.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펜을 들어 떠오른 문장들을 펜으로 옮겼다.

어두운 삶을 밝히는 등불 같은 이야기.

누구나의 가슴에 있지만 잊히고 마는 한 사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 이야기 듣기 교실

동화작가 오명랑은 칠 년 전 동화작가로 떡! 등단했지만 주변사람들의 기대치에 부흥하지 못하는, '해괴한 사치'나 부리는 백수 아닌 백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밖동네'라는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나온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도 있는데 자신의 글을 읽은 독자를 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힘들' 고, 수입도 일정치 않아 어머니에게 빈대 붙은 처지. 그러나 그런 그녀는 이름처럼 명랑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철없게, 하하하, 웃으면서. 끝내는 그녀가 가족들의 등살에 못 이겨 백수 꼬리표를 떼기 위한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열기에 이르지만.  

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
선착순 소수 정예 모집!
1개월 무료 수강!
-동화작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 
 

 

이야기 듣기 교실이라니. 이야기 쓰기 교실이 아니라. 무언가 어설프게 느껴지지만 어쨌든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세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한 오명랑 작가. 제 각기 다른 이유로 그녀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조금씩, 천천히 시작된다. '아직 독자들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가슴에 꽁꽁 숨겨 둔 이야기. 부끄럽고 누추해서 숨기고' 싶었던 한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의 가슴 속에서 흘러나온다. 그렇게, 오명랑 작가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우리의 앞에도 자연스레 놓인다. 징검다리처럼, 껑충껑충 뛰며 그녀의 이야기를 건너가 본다.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에 조금씩 몰입되어가는 청자들. 저 끝엔 무엇이 있을까, 불쑥 가슴이 떨려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한쪽에서 같이 듣던 '어머니'의 안절부절못함도, 스스로 말하다가 흥분하고 주춤하고 먹먹해하던 오명랑 작가의 모습도 책을 덮은 지금엔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나만의 그림. 아니지, 아닐 거야 싶은 마음으로 넘겨가던 페이지를 붙잡고 잠시 멈추었던 손. 떠오른 옛 기억들.

현재와 그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얽히면서도 전혀 혼란 없이, 오히려 친근하게 읽혀진다. 건 작가의 매끄러운 문장뿐만 아니라 그녀가 마음을 열고 꺼낸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 또한 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삭막한 현실 속에선 일어날 수 없다고만 느껴지는 꿈같은 이야기. '꿈같은 이야기'라고 쓰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슬퍼진다. 내가 어릴 적엔 한 동네 안에서 어른들이 건네던 따뜻한 손길을 가슴 뿌듯하게 받아들이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은 무조건 조심해야 하고, 절대, 절대로 그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어버렸으니. 이런 현실 속에서 만난 이 책은 나를 더욱 애달프게 한다. 내 곁에 있는 아이가, 그 이유일지도. 내가 내 아이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삭막한 삶의 배경들 속에 나는 아이에게 건널목 씨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생각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오고갔다.

 

#. 건널목 씨! 하고 부르면

이름도 연고도 불분명한 사람.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건널목 씨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둘둘 말린 카펫을 배낭에서 풀잖아. 그 카펫을 들고 서서 도로를 살피더니, 차가 안 오니까 잽싸게 도로에 깐다. 세상에, 건널목이야! 검은색 천에 흰색 페인트로 칠을 한 카펫 건널목인 거야.

아리랑아파트 후문에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건널목이 되어준 건널목 씨. 쌍둥이 형제를 두 번이나 위험에서 구해준 인연으로 그는 아리랑아파트 105동 경비실에 기거하게 된다. 그는 부지런하게 아파트 주변을 정리했고 아이들의 등하굣길엔 어김없이 빨간색과 초록색 동그라미가 있는 안전모를 쓰고 아이들의 건널목이 되어주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건널목 씨는 밤이면 아파트 주변을 순찰했고, 그곳 사람들의 이웃이며, 아파트 주민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의 부부싸움을 피해 아파트 복도에 홀로 앉아있던 도희를 만난다. 차가운 밤바람에 익숙한 듯 또랑또랑하게 말을 건네던 아이. 낯선 아저씨였지만 경계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더욱 두려웠을 아이. 제 또래에겐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그가 끓여내 준 라면 한 그릇에 조금씩 조금씩 제 이야기를 꺼내놓는 아이의 모습은 천진난만 했고, 그 모습에 더욱 안쓰러웠다.

그러나 도희는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사람 건널목 씨를 만난 것 아닌가. 집으로 데려올 수 없어 친구도 만들 수 없던 도희는 건널목 씨를 통해 특별한 친구를 소개받는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돈을 벌러 떠나 소식조차 없는 처지의 태희, 태석 남매. 한 겨울에도 보일러를 켤 수 없는 지하 방에 사는 두 아이. 가족도 또래 친구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허허로운 거리로 나선 아이들에게 건널목 씨는 부모였고, 오늘에서 내일로 아이들이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다리였다. 비슷한 또래였던 도희와 태희, 태석은 서로에게 친구이며 남매처럼 서로에게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열고 서로를 웃게 하면서 마음 기댈 든든한 곳이 되어주었다. 건널목 씨가 이어 준 희망이었다.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 건데 아리랑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더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야 했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의 시선. 맹목적으로 퍼주는 부모의 사랑이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놀이터에 나가 있으면 아이들의 외로움이 드문드문 보인다. 부모의 직장생활에, 늦게 까지 비어있는 집에서 나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면서 그 두려움을 잊는다는 걸. 어둠보다도 외로움이 더 두려운 것이라는 걸. 그 마음을 읽고 난 뒤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 아이에겐 주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의 무게를 왠지 내가 그 아이들에게 떠민 느낌이 들었다.

도희가 이사를 가고 남매의 곁에 어머니가 돌아온 뒤, 건널목 씨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어쩌면 아이들을 가엾게 여긴 하늘이 그를 내려 보내 작은 아이들에게 내일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준 걸까. 아내와 자식을 잃어야 했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다른 아이들에게 선물한 사람.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 건널목 같은 어른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누구나 책처럼. 그들도 그것을 누군가가 기쁘게 읽어주기를 그렇게 공감해주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보낸다. 작고 여린 아이들이 품고 있기엔 너무나 벅찼던 일이었지만 '참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볼 때는, 그 때의 아픔보다 누군가가 어루만져 준 손길을 떠올렸다. 그 때가 그리워지는, 삶을 위로하는 선물 같은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오명랑 작가는 스스로의 안에 흉터라고 생각하며 숨겼던 그 시절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자신이 어쩌지 못했던 외로움과 두려움을 건널목 씨를 통해 지나왔음을 뚜렷이 깨닫게 된다. 건널목 씨 또한 그 때, 아마도 그런 아이들의 얼굴에 어느 한 때 두려움이 가시고 활짝 피어오르던 웃음꽃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픔을 잊어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작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며 파란불 같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주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그래서 아직도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누구나의 가슴에 있는, 그러나 시간의 때를 입고 잊히고 마는 건널목 씨에 대한 꿈이 사실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오명랑 작가의 이야기 수업을 들은 세 아이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지금 이 글을 읽으려는 아이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까.
‘에이, 그런 어른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거짓말!’ 하고 말하게 되진 않을까. 작가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아, 나도 널목 씨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 있어요!” 하고 대답할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나는 아이들은 이 책을 슬프게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널목 씨와 같은 어른도 있다는 희망으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 오명랑 작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기쁘게 읽었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삶에서 꼭 필요한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슬픔을 나눠주는 사람. 그러나 우리는 늘 그런 진실을 잊고 스스로에겐 아무것도 없다고, 포기하고 슬퍼한다. 아마도 오명랑 작가의 곁엔 그런 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다시 돌아와 준 어머니가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주었고 공유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명랑한 모습으로 동화를 쓰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통해 길어 올린 이야기들로, 그 사랑으로 더 많은 좋은 글들을 쓰게 되었으리라.  

마음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선 곁에서 체온을 나눠 줄 한 사람이 간절하다는 걸, 아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동화를 읽은 후엔 곁을 지키는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지길 바란다. 
 TV프로그램에서 너무 쉽게 쏟고 담아버리는 사랑과 고마움을, 내 입 안에 담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건널목 씨의 이야기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누군가의 입술에서, 어느 천진난만한 아이의 가슴 속에서 건널목 씨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누구든지 그 사람을 본 적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하여 
따뜻한 가슴으로, 너그러운 손길로 살아야겠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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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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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감성이 또 한 번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아! 건널목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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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펼쳐보는 세계사연표 그림책>, <어제저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어제저녁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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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은 우연들이 겹쳐져 만들어내는 행복,
그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  『어제저녁』

  
네. 이것은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그림이 아닌 따뜻한 색감이 뒤덮힌 인형들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반 책과 같이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쭉 이어진 구조의 책이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단조롭게 적혀진 작은 글밥들은 무심한 듯 건조하게 읽혔습니다. 어쩐지, 어색하기도 하고 우울한 첫인상이었죠.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책으로 잘 알려진 실력있는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지요. '구름빵'은 TV 만화로도 제작되어 여러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작 작가님의 책은 이제야 처음 만나게 된 것 같아요. 그 분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하고 정감어린 시선을 아이에게도 꼭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기회로 만나게 된 것이지요.

동물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 만들어진 인형들이 우리의 일상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6시 정각,
얼룩말은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표지엔 어쩐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짧은 문장이 제목 곁에 담겨져 있습니다.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곤색의 코트를 걸친 얼룩말과 함이지요.
책을 펼치면 개부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어쩐지 표정은, 그냥, 그런, 어느 날과도 다르지 않는 개부부의 모습.
207호의 양 아줌마는 눈이 내리는 거리를 홀로 걸어 집으로 오고 있습니다.
401호의 여우가 산양의 저녁 초대 젼화를 반갑게 받고 있어요.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 그들은 몹시도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 인데도 말이지요.

 
고요했던 아파트 안에는 이상한 사건도 벌어집니다. 

개부부는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리고 흥분해 짖었고,
그 소리에 이웃집 8마리 아기 토끼들이 놀라 날뛰었고,
양 아줌마도 소리에 놀라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반갑게 초대에 응산 여우는 산양이 주는 음식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2011년 겨울.
부족한 것도 많고, 지치는 일도 많지만, 따스한 이웃, 편안한 공간이 있는 '우리집'이 있다면 적당히, 매우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작가의 말
 
 
처음엔 막연하게 읽었던 이 동화책 위에 한순간 환한 등불이 달린 듯 무언가가 반짝, 하고 가슴에 켜 졌습니다.
개부부에게, 양아줌마에게, 여우에게 느껴지던 우울함은 바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것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집과 매일 저녁 먹는 따뜻한 밥 한끼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사를 건낼 이웃이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꾸미며 추운 겨울 날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인데 말입니다. 너무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채 살면서 행복하지 못하다 여기고 있었어요.
 
쓸쓸해보이는 이웃들에게 찾아온 작은 우연과 나눔들이 그들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바꾸어줍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스탠드 아래서 평온함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번집니다.
그들은 아마 모르겠지요. 서로에게 서로가 선물한 작은 평온과 행복들을요.
 
27개월 지호에게 이 책을 보여줍니다. 제 눈에는 동물들이 모두 곰으로 보였던 모양이예요.
따뜻한 분위기에 얻힌 입체적인 동물들의 모습이 우리 일상의 단면을 담고 있어 더욱 친근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조금은, 실없이, 더 많이 웃으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과 보낼 수 있는 따뜻한 저녁에 필요한 건,
서로를 위하고 생각해 줄 수 있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보내는 저녁이, 아이와 이 책을 읽던 밤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는지를 느끼게 되었어요.
지호는 아직 어린 아이지만, 이 책을 오래 곁에 둘 수 있게 해준 엄마로써도 행복합니다.이 책을 통해 따뜻한 저녁에 관한 레시피를 오래 두고두고 보면서, 그 아이가 맞이할 여러 개의 무수한 저녁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이 울적해지고 내가 작은 점처럼 위태로워보일 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무료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 이 책을 함께 보다보면 쓸쓸한 어른이 혼자 이 책을 천천히 넘겨 보다보면 알 수 있게 되실 겁니다.
 
곧, 따뜻한 저녁이 찾아 올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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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쏙 끼우며 배우는 ㄱㄴㄷ
애플비 편집부 엮음 / 애플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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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7개월 지호는 말이 틔인 뒤로는 알려주지 않아도 제법 사물과 이름을 연관시켜 말하곤 하는데요. 제가 알려줬었나, 싶을 정도로 의아스러운 것들까지 이름을 꿰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아직 어린이집 생활을 하지 않는지라 엄마가 집에서 짚어주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내심 깊은 고민이 되는 요즘. 전에는 거들떠 보지 않턴 퍼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끼우고 난 뒤엔 스스로 뿌듯해하고 자신감도 갖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던 중 한글과 퍼즐이 접목된 재미있는 책을 발견나게 되었어요~ 

바로, 애플비에서 출간 된 『쏙쏙 끼우며 배우는 ㄱㄴㄷ』 입니다.


 

 
애플비 책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소리책이나 맞추기 책을 비롯해 유아동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들이 엿보인다는 것이예요. 얼마 전, 지호가 만났던 손바닥 책 『치카포카는 양치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가 양치질 하는 소리 버튼을 눌러보고, 스스로 따라하기도 하면서 아이가 칫솔을 사용해 양치하는 데 거부감이 없도록 도와주었구요.  『뿡뿡아, 뭐하니?는 이제 배변훈련을 시작하는 아이가 뿡뿡이를 모방하면서 변기를 이용해보기도 하고, 뿡뿡이가 물 내릴 때, 물 내리는 소리 버튼을 아이가 누르면서 정말 실감나는 놀이가 되더라구요.^-^ 암튼 이런 기대 속에서 이번 책 또한 지호가 퍼즐놀이 통해 한글과 친숙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했답니다. 그리고 역시, 지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흐믓했어요.^^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온 책. 아이에게 줄 책이 깔끔하지 않게 배달되면 좀 마음이 그렇죠. 그리고 책을 받고 난 뒤 깜짝, 놀랐습니다. 선물 상자 같은 책! 퍼즐 형태의 책임을 알고 있었지만 두께가 이만큼이나 될지는 몰랐거든요.^^

 


폭신폭신한 스폰지형 책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12개월 미만의 아이가 놀잇감으로 혼자 가지고 놀아도 안전해서 걱정없을 듯 해요. 
지호가 보면 반가워 하면서 뭐야? 뭐야! 하고 물으며 좋아할 것 같아 기대가 되었어요. ^^

한 면, 한 면에 담긴 그림들이 알록달록하고 앙증맞기만 합니다.
'ㄱ' 퍼즐 자리의 옆에는 'ㄱ'과 관련된 단어들 '공', '고양이', '강아지' 등이 그림이 담겨 있어
모음 'ㄱ'을 어떻게 글자에 활용하는 지도 살펴보고 함께 익힐 수 있어요.
한글을 공부하는 책임에도 복잡하지 않고 처음 글자를 눈으로 익히는 아이가 놀이를 통해 성취감을 얻고 즐겁게 놀이하며 글자들을 익힐 수 있는 책인 듯 해요. 친근한 그림들을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정보를 배치하고,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까지 제공해 주고 있어서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까지 내내 유용하게 활용할 것 같아요.



 

'ㄱ'와 'ㄴ'이 똑같다고 함께 붙여 보고 갸우뚱~ 합니다. 엄마는 그림으로 구분합니다. 'ㄱ'에는 공 그림이 'ㄴ'에는 나비 그림이 있거든요.
물론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요. 'ㄱ'과 'ㄴ'은 같다는 아이의 발견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책을 보는 내내 지호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기역, 니은, 디귿…… 의 모음 이름들도 곧잘 소리내어 따라하고,
퍼즐을 집중해서 맞추고 제가 칭찬하면 스스로 기뻐하는 모습이 보여 엄마로써 무척 보람되었어요.^^ 


 

퍼즐에도 관련된 모음의 그림들이 있고, 퍼즐을 빼낸 자리에도  관련 단어가 숨어 있어서 아이와 요 안에 숨겨진 건 뭘까? 이게 숨어 있었구나~ 하면서 모음 퍼즐을 빼내보며 놀았어요. 그림을 보고 (시각) 엄마가 읽어주는 단어를 듣고 (청각) 손으로 빈 자리에 알맞은 퍼즐을 맞추어 보고 (촉각)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활용하다 퍼즐을 잃어버리더라도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그림들로 인해 책이 많이 허전하진 않을 것 같아요~ 퍼즐을 다 빼낸 뒤엔 또 색다른 그림책이 되니까요.^-^



퍼즐들을 한꺼번에 꺼내 두어도 알록달록 참 예쁘죠? 퍼즐도 폭신폭신 스폰지 재질에 두께감도 있어 따로 활용하기도 좋아요.
자음들 위엔 관련된 사물 그림들이 예쁘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지호는 처음엔 하나 빼고 하나 끼우고, 그렇게 신중하게 보더니 요즘엔 모두 빼서 놓은 뒤 책을 넘기며 하나하나 찾아 넣어요.
점점 놀이의 난이도?가 높아만 가는 듯 합니다. 엄마인 저는 모르는 척 그림들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아요~ 아이는 즐겁게 대답해줍니다. 그러면 저는 '와~ 지호 이것도 아는구나!' 하고 칭찬하구요^_^ 

지호는 벌써 이 책 뒷 면에서 『쏙쏙 끼우며 배우는 ABC 『쏙쏙 끼우며 배우는 123를 보고는, 이것도 해보고 싶다며 달라고 난리예요. A B C~ A B C~ 하면서, 제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알파벳을...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조르고 있습니다. -.-;;
아들이 하고 싶다고 호기심에 차 있을 때, 어서어서 보여주고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지요.
스스로 무언갈 하겠다는 아이가 대견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을 보면서 사물과 이름을 더 많이 연관하여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직은 글자를 읽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소리내어 스스로 읽고, 쓰는 때까지 꾸준히 활용해 보려고 합니다. 돌지난 아이 놀이책, 촉감책으로 일찍, 준비해두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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