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4
이아리.권혁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국에는 자본주의를 향한 이상한 믿음이 있다. “임금과 계약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같은.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기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좌우를 막론하고 꽤 뿌리 깊다. 노동과 소유를 전통적 사회관계로부터 뿌리 뽑아 투명한 숫자로 전환한다면 최소한 전근대적 악습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자본주의 만능론이라기보다는, 그만큼 한국의 봉건 질서가 지긋지긋하다는 환멸과 절규에 가깝다. 최근 다시금 화제가 된, 레즈비언 커플에게 한 분은 임대인, 한 분은 임차인으로 등록하면 대출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다며 영업했다는 편견 없는부동산 중개인의 모습은 우리가 자본주의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마냥 투명하지 않다. 우리의 낙관처럼(?) 온갖 낡은 전통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임금과 계약만으로 이뤄진 차가운 유토피아를 건설하지도 않는다. 전통적 사회질서에서 약자로 존재했던 이들이 자본주의를 만나 해방되었으리라는 믿음은, 따라서 오직 절반의 진실에 가깝다. 푸른역사 여자, 하다시리즈 마지막 권인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는 자본주의와 여성의 조우를 보다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제 식민지기 어멈혹은 식모로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글과 1980~90년대 엘리트 여성들의 회사 생활 투쟁기를 다룬 권혁은의 글은 얼핏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식민지기 식모든, 1980년대 회사원이든 젠더와 계급이라는 이중의 굴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아리가 머리말에 썼듯 우리 집은 엄마(또는 할머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회고는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여성의 먹여 살림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식민지기엔 가사 노동이 대표적이었다. 20세기 초엽, 신분제 폐지로 노비가 떠난 양반가의 행랑채를 농촌에서 올라온 행랑아범과 행랑어멈이 채우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는 농촌의 넘치는 인구를 흡수하는 개미지옥인 만큼, 행랑살이는 이내 식민지 수부 경성의 한 계급이 되었다. 다만 언제까지고 성인 남녀를 먹여 주고 재워줄 수는 없는 터, 별다른 일 없이 빈둥대던 행랑아범은 도시의 부랑자로 전락했다. 반면 행랑어멈은 홀몸으로 주인집에 들어와 집안일을 해주는 안잠자기, 나아가 완연한 가사노동자인 식모로 도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조선의 식모 산업을 뒷받침한 또 하나의 원동력은 급증하던 재조일본인이었다. 식민 지배가 10년을 넘어가며 아예 조선에 살 작정으로 건너오는 일본인이 늘었다. 주로 진고개(오늘날 충무로)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내지에서 번거롭게 식모를 데려오느니, 조선인 식모를 싸게 고용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조선인 식모 입장에서도 일본인은 나쁘지 않은 고용주였다. 비록 일본인 식모의 60%밖에 임금을 받지 못했어도 그만하면 조선에서 큰돈이었고, 조선인 가정에서 으레 하는 김장도 없었던 데다 빨래도 쉬웠다. 여럿이 한방에서 뒹굴어야 하는 조선인 집과 달리, 일본인 집은 여중 전용실이 있어 잠자리도 편했다. 물론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 아래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조선인 집에서 아씨서방님이니 존대를 바치며 굽신대는 것과 도긴개긴이라 생각하는 식모가 많았다.

 

그렇게 전통과 근대, 민족과 계급이 교차하는 가운데 식모는 어엿한 직군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직업소개소라는 근대적인기관을 거쳐 조선인과 일본인 가정에 식모로 고용되었다. 1930년대 내내 경성부 직업소개소 중개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식모 산업은 활황이었다. 1929년 이후 대공황 가운데서도, 아니 대공황이었기에 식모만큼은 건재했다. 농촌의 몰락으로 여성이 할 만한 일이 식모살이밖에 없었던 탓이다. 1930년 직업 통계에 따르면 가사 사용인으로 분류된 사람은 총 12877명이었다. 직업을 가지고 있던 9765,514명 중 농경 종사자가 75퍼센트를 넘는 가운데 농사가 아닌 단일 직군으로는 첫손에 꼽힐 규모였다. 한국 경제의 자본주의적 전환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식모였다.

 

이렇듯 근대 한반도의 여성들은 을 받는 일에 적극 참여한 경제활동의 주체였다. 다만 그 한계 역시 뚜렷했다. 여성이 식모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말해 그간 남성의 것이라 여겨진 일에 도전하는 순간 엄혹한 차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권혁은의 글은 바로 이런 금기를 넘어선 여성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대학원생, 회사원, 은행원 등 이른바 전문직, 엘리트 여성. 누군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배울 만큼 배운 특권층 아니냐며 빈정댈 수도 있지만, 권혁은이 굳이이들을 다룬 이유가 있다. 대학까지 마치고 여성 친화적직장에 들어갔음에도 차별의 높은 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수많은 회사가 응시 자격을 병역 필 또는 면제자로 한정함으로써 사실상 남성만 채용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드러냈다. 설사 회사에 들어갔더라도 여성은 직급이나 이름이 아닌, “미스 김으로 불렸다. “미세스 김이 없었던 건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나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은행과 사립학교에서조차 결혼과 함께 사표를 내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이는 암묵적 관행이 아닌, 각서와 교칙으로 문서화된 규정이었다. ‘공식영역에서조차 이럴진대 비공식영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성 은행원은 남성 은행원이 지폐를 종이비행기처럼 접어 날려 담배 심부름을 시켜도 투덜대며 따라야 했다. 은근한 추근거림, 노골적인 성추행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차별에 여성들은 단결과 파업으로 대응했다. 197511월 조흥은행 의무실 약사 강경자가 사표 아닌 휴가원을 내고 결혼했다. 여성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 그렇게 은행의 결혼 퇴직제가 폐지되고,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는 등 공식 영역에서의 차별은 점차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여전했던 비공식적 차별과 ()폭력에도 여성들은 목소리를 냈다. 권혁은이 글머리에 언급한 1993서울대 A 교수 사건은 그 바로미터였다. 여성 조교가 실험실의 A 교수와 서울대, 대한민국을 상대로 건, 성희롱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민사회는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연대했다. 지난한 재판 과정에서 성희롱에 대한 법적 개념이 구체화되었고, 마침내 19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이 명문화되었다.

 

이아리와 권혁은의 글이 보여주듯 여성과 자본주의가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다. 어떤 때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 덕분에임금노동의 선봉에 설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바로 그런 역할 탓에경제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대와 계급을 초월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최근 돌봄이란 말로 느슨히 묶이는 유지·관리·보수의 일로부터 여성이 단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 경제가 일본 경제에 강하게 예속되어 있던 식민지기엔 (일본인을 위해) 여성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하는 쪽이 나았던 반면, 본격적인 산업화 드라이브를 건 1960년대 이후엔 (남성 생계부양자를 위해) 가정에 강하게 종속시켜야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자본주의의 중요한 지표처럼 여겨지곤 하는, 임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이라 뭉뚱그려지는 전근대적 혹은 전통적 관계들을 말끔하게 뿌리 뽑지 않고, 도리어 그런 관계들에 기대어 번성한다. 그 점에서 나는 자본주의 발전엔 식민지가 필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영이 적자였다는 냉소는 얼마나 일면적인가!) 그중에서도 여성은 가장 대표적인 식민지였다. 임금을 받든 받지 않든 근현대 한국의 여성은 돌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식민지기 식모는 돌봄으로 돈을 받는 임금노동자였지만 정작 자기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돌봄은 받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의 워킹맘들은 (조주은이 기획된 가족에서 탁월하게 지적했듯) 일터에서도 압축적으로돌봄을 수행하거나,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하듯 여성 친족이나 가사노동자에게 돌봄을 외주 준다. 어느 쪽이든 돌봄의 마지막 종착역은 여성이었다.

 

이제는 많이 잊힌 표현이지만 윤해동의 말처럼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고 할 수 있다면, “모든 사회는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반봉건의 핵심에 여성이 있다. 그들의 역할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여성을 중심에 두고 근현대 한국 경제사를 다시 이해하는 작업이 몇몇 여성 기업가나 노동자에 대한 조명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여성을 어떻게 숙주 삼았는가, 시대와 계급에 따른 여성과 자본주의의 관계 맺음은 어떠했는가, 이 과정에서 임금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이 어떻게 활용되었는가. 식민지 없는 근대가 가능한지 회의했던 최인훈, ‘봉건적요소의 잔존 가운데서 이뤄지는 자본주의적발전을 규명하고자 했던 박현채와 맞닿아 있는, 그러나 이들이 끝내 가닿지 못한 질문들이 아니던가.

 

기실 최근의 여성(경제)사 연구들은 최인훈과 박현채의 고민으로부터 훌쩍 나아가있다. 조민지의 버스 안내원 연구, 김미선의 여사장연구, 김주희의 성매매 연구, 박해천과 송은영의 복부인 연구,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당기면 고전이 된 김원의 여공 연구 등 이미 여성을 통해 자본주의 자체를 다르게 보려는 작업이 적지 않다. 그런 만큼 관건은 이들 연구가 지금보다 많이 읽히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여자, 하다시리즈 서평을 쓰며 새삼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여성사를 여성사로만, 다시 말해 (주로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이들이 하는) 역사학의 한 분과로만 여기는 시각이 여전히 뿌리 깊다는 점이었다. “여자, 하다시리즈가 이런 뿌리 깊은 편견을 깨뜨려주길, 더 많은 여성사 연구로 나아가게 해주는 창이자 서로를 이어주는 실이 되어주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2
황향주.이민정.장지연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 시간 잊혔으나 시간이 흐르며 다시금 널리 읽히는 책들이 있다. 최근엔 양귀자의 소설이 그렇다. 모순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2030 여성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우리 세대는 오랫동안 그를 원미동 사람들의 지은이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제 양귀자라는 이름은 한국 여성주의 문학의 오래된 미래를 상징한다.

 

왜 하필 양귀자일까.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한겨레이유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소설이 페미니즘 대중화 현상을 통해 페미니즘 언어를 새롭게 만난 젊은 세대의 정서와 특별히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의 다른 여성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양귀자는 여성의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드문 작가라는 것이다. 양귀자 소설 속의 여성들은 맹렬하게 저항하고, 거침없이 욕망하며, 주저없이 행동한다. 이런 과감함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과 공명하는 것일 터다.

 

양귀자 소설의 새삼스런 인기가 보여주듯, 여성의 욕망은 최근 페미니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다. 푸른역사의 여자, 하다시리즈에 실린 적잖은 글들 역시 욕망하고, 증오하고, 행동하는 역사 속 여성을 다룬다. 이들은 딱히 선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고려 안정궁주는 남편을 두고 악공과 바람을 피웠다. 조선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은 궁궐 곳곳에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흉물을 묻어두었다. 18세기 함양 과부 박씨는 주도면밀한 계획 끝에 남편의 삼년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열녀가 되었다. 19세기 전주의 송씨 여인은 절굿공이로 전 남편을 때려죽였다.

 

바람 피고, 저주하고, 열녀가 되고, 살인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보다 재미다. 고려 안정궁주의 간통 사건을 다룬 황향주의 여자, 바람피다를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푸핫!”하고 웃음이 나왔다. “입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로 시작하는 도입부터 너무 강렬했다. 올 것이 왔다며 눈을 질끈 감는 안정궁주의 남편이자 피해자(?) 함녕백 박, 잔뜩 움추러든 그에게 대체 집안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며 노발대발하는 고려 명종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 웹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언젠가 황향주가 웹소든 웹툰이든 웹드든 여하간 자 들어가는 무언가를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

 

황향주의 글이 짜릿하다면, 이민정의 글은 서늘하다. 그가 쓴 여자, 저주하다는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이 궁궐에 파묻어둔 온갖 흉물을 나열하며 시작한다. 무덤에서 파낸 썩은 관 조각, 사람의 뼛가루와 뼛조각, 어린아이의 팔뼈와 두개골, 강아지 대가리, 살이 모두 타버린 고양이 시체······ 하나씩 떠올리는 것만으로 머리털이 쭈뼛 솟는다. 원래 책에 실릴 삽화도 목 잘린 고양이 사체였다는데, 들어가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에 대한 한보람의 글은 통쾌하다. 절굿공이로 때려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간통했다고 죽이고,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죽이고, 남편의 원수라고 죽이고······ 흔히 조선의 19세기는 찜통에서 죽어가는 개구리마냥 안온하게 쇠락하던 시기로 여겨지는데, 최소한 죽이는 덴 참 열심이었구나(?) 싶었달까.

 

이렇게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거침없이 행동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깔깔대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켠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 이렇게 웃어도 되나? 그래도 바람 피고, 저주하고, 살인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그나마 판단이 쉽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니깐. 훨씬 곤란한 건 장지연의 여자, 수절하다에 실린 함양 과부 박 씨 이야기다.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폐병쟁이 남편과 결혼했다. 예상대로(?) 남편이 혼례만 겨우 치르고 세상을 떠나자 개가를 권하는 시부모의 말도 무시하고 정성을 다해 상을 치른 뒤 독을 먹고 자결해 열녀가 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과부 박 씨는 고상하게 말해 가부장제의 희생자고, 좀 더 천박하게 말하면 소위 흉자. 그런 박 씨의 열녀 되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몇 년 전인 제20대 대선 전후, 웹툰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의 주인공 홍설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트위터에 소소하게 돌았던 적이 있다. 홍설이 연세대를 모델로 한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의 엘리트 여성이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가 무임승차자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싶었다. 그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생일 테니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꾸릴 즈음 문재인 정부의 아파트값 폭등을 온몸으로 겪었을 테다.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만큼 보수 정당의 구호에 훨씬 이끌렸을 것이고. 홍설이 윤석열에 투표했으리라는 가정은 퍽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문화연구자 구자준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남성성을 모방하고 활용하는 홍설에 주목한다. 홍설은 자기계발, 아버지의 차별, 데이트폭력 등 온갖 위협에 시달린다. 이런 피곤함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같은 과 남자 선배인 유정을 모방한다. 유정은 모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며, 삶의 모든 것을 자원화할 수 있는 냉정한 인물. 유정의 초국적 비즈니스 남성성은 정서적 과잉에 의존하던 기존의 남성성과 다르기에 여성인 홍설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상의 내용은 구자준, 변화하는 남성성과 젠더 수행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65, 2018)

 

홍설은 유정의 남성성을 모방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여성적으로 규정하는 구조적 압력에서 벗어난다. 함양 과부 박 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모두 남성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 나름의 방식으로 승자가 된다. 장지연의 지적처럼 박 씨의 죽음은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한글)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던 유교걸이었다. 당시 남성 사대부가 그러했듯 아전 집안 출신인 그녀에게도 고결하고 품위 있는 존재이고자 하는 명예욕이 있었다. 홍설과 박씨에게 어째서 남성성을 모방했냐고,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냐고 질문하는 건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그들에게 주어진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므로.

 

때로 여성은 남성의 논리를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뒤집거나 비틀기도 한다. 한보람의 글 속 살인하는 여성들은 법정에서 효를 위해, 의를 위해 죽였다고 호소했다. 그간 유교 질서 아래에서 여성에게 요구된 덕목이 오로지 열()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변화였다. 이들은 소수의 일탈적이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었다. 소진형에 따르면 조선 후기 널리 읽힌 여성영웅소설에선 남성보다 더 남성답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남장여성들이 등장한다. 비록 남장을 했을지언정 이들은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을 실현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소진형, 열녀 :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중화와 여성의 욕망, 한국정치학회보54, 2020)

 

이송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후기 여성영웅에 대한 상상이 근대적 애국부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분과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충을 실현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열망이 근대에 이르러 애국하는 여성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충이 윤리적 인정투쟁에 머물렀다면, 신소설의 애국부인은 픽션의 형태로나마 애국이라는 공적 덕목에 헌신한다. (이송희, 의와 충의 이중주: 조선 후기 한문소설의 여성영웅형 인물에게서 나타나는 여성윤리주체의 확대, 어문연구197, 2023) 그렇다면 이들은 유교 질서에 순응한 것인가, 아니면 이를 극복한 것인가? 아니, 순응과 극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 전 희극인이자 유튜버인 강유미의 중년남미새영상이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불러온 적이 있다. 대놓고 남성 직원을 편애하는 것을 넘어 끝내 그에게 성애적 감정을 드러내는 아들맘에 대한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일까, 유튜브 댓글창이 불타고 기사와 평론까지 여럿 작성되었다. 한편에선 학창 시절 남성 청소년들의 노골적인 성추행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다른 한편에선 남미새 프레임 역시 여성혐오라며 영상 속 아들맘묘사를 문제 삼았다. 오만 공간에서 온갖 이야기가 오갔지만, 사람들이 왜 이리 뜨겁게반응하는지, 영상이 보여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비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적어도 내게 중년남미새논란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여성의 욕망과 실천을 정교하게 이해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물론 주로 문화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소설과 웹툰, 드라마 속 여성의 욕망과 실천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미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분석들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서 멈춰버리고 만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는 연구자보다는 이들이 다루는 작품의 한계다. 구자준에 따르면 초국적 비즈니스 남성성을 재현함으로써 유정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는 홍설의 노력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 자신과 같이 이상한사람이 되어가는 홍설의 모습에 유정이 두려움을 느끼고, 솔직한 성찰과 반성으로 성급하게나아가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긴장과 위기는 로맨스를 통해 봉합된다. 오혜진 역시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능력주의와 금융 투기를 기꺼이 선택한엘리트 여성의 곤경을 지적한다. (오혜진,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한국 여성문학·퀴어문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24)

 

소설과 웹툰, 드라마가 멈춰 선 자리에서 역사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치인트 홍설은 윤석열을 찍었을까?”라는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답해야 할까? 역사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그나마 잘하는 일 중 하나는 성실히 자료를 모음으로써 맥락을 드러내는 것이다. 명예욕과 성취욕, 질투심과 생존 본능, 성애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다종다양한 욕망은 당대의 규범과 어떻게 마주했는가? 열에 열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조건 가운데서 여성은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선택을 내렸으며, 행동에 나섰는가?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강고한 질서는 어떻게 뒤집히거나 틈을 내주었는가? 역사학이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중년남미새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이든 여성의 욕망과 실천을 지금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리라 믿는다. “여자, 하다시리즈는 이를 위한 작지만 중요한 시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 18세기 인동 장씨 부인*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3
윤민경.한보람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위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정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정치인에 관심이 많다. 나무위키로 한국 정치인들을 검색해 보는 게 취미인데, 그때마다 흥미롭게 혹은 의아하게 본 게 있다. 남성 정치인의 어머니나 아내가 대부분 “어디 모씨”로만 나온다는 점이다. 비단 식민지기나 해방 전후 태어난 옛날 정치인뿐 아니라,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5~60대 정치인도 비슷하다. 여성이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저 가문의 사람으로만 여겨졌던 시절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고 놀라게 되지만, 한편으론 궁금해진다. 그들은 정말 “어디 모씨”로만 남아 있었을까? 아니, “어디 모씨”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을까?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에 실린 윤민경의 글 「여자, 기억되다」와 「여자, 의절하다」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은 “어디 모씨”로 존재했기에, “어디 모씨”의 방식으로 정치에 나섰다. 윤민경이 다루는 인물은 두 명, 함흥 기생 가련과 인동 장씨 부인이다. 가련과 장씨 모두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논리에 따라 정치를 이해하고 실천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남성 정치’의 성실한 학습자 혹은 체현자에 그치지 않는다. 가련은 10대 중반 함흥에 온 한양의 남인 도련님 목생을 통해 정치적으로 ‘각성한’ 뒤 평생 열렬한 남인의 옹호자로 살았다. 장씨 부인은 손자가 대대로 남인이었던 가문을 배신하고 노론으로 전향하자 그를 망설임 없이 파문했다. 


가련과 장씨 부인 모두 중앙의 유력 정치인과 연줄이 있지도, 상궁이나 나인으로 궁에서 일하지도 않았던 시골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가련은 평생 남인이라는 당색을 소중히 여긴 여협(女俠)이었다. 87세 할머니가 되어 함흥으로 유배 온 노론의 명사 권섭과 ‘찐한’ 연애를 할 때도 정치적 신념은 그에게 여전히 중요했다. 가련은 한문을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 글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남인과 소론 지식인의 글을 통해 계속해서 기억되었다.


기생 가련이 견해를 세우는 데 그쳤다면, 장씨 부인은 실제 행동에 나섰다. 손자 안택준이 서인-노론의 화신이었던 척화신 김상헌의 서원을 안동에 건립하려 하자, 손자에게 네가 우리 집을 노론으로 만들어버렸으니 남인인 류씨네로 시집간 딸네 머물겠다며 기어이 가버렸다. 장씨 부인이 안씨 집안의 전향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의 과감한 액션 덕에 이후 남인의 소굴 안동에서 누구도 감히 그 집안을 건드리지 못했다. 


누군가는 가련이 멋도 모르고 똑똑한 남성들에게 들은 내용을 그저 주워섬겼을 뿐이라고 빈정댈 수도 있다. 장씨 부인은 지역에서 집안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을 뿐인 할머니고 말이다. 윤민경이 조선의 ‘붕당의식’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며 들었던 이야기도 비슷했단다. 여성의 붕당의식이란 과장된 게 아니냐는, 그저 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윤민경의 대답이 재미있다. 15대 대선이 한창이던 1997년, 초등학생이던 자신의 일기장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회창이 어떻니,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중 어디가 더 낫니하는 얘기가 잔뜩 적혀 있더라는 것이다. 고려 안정궁주의 간통 사건을 쓴 황향주의 「여자, 바람피다」 머리말과 더불어 “여자, 하다” 시리즈에서 가장 웃겼던 대목이지만,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윤민경은 어린 자신이 뭘 알고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마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단순히 따라 적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정치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면 그저 세뇌되고 휘둘렸을 뿐인 것인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대부분은 잘 모르고, 어디서 주워 듣고 정치를 배우며 실천하게 되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게 정치의 본질은 아니던가?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정치가 굉장히 협소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윤민경이 조선의 ‘붕당의식’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이유가 있다. 때는 2013년, 안식년으로 학교에 없던 지도교수의 연구실에서 선배가 지나가듯 던진 이야기가 계기였다. 자기 증조할머니가 다니던 사찰의 스님이 옷매무새만 보고도 절에 온 여자가 노론인지 소론인지 척척 맞추더라는 것이다. 조선의 붕당정치가 남성 정치인의 정교하고 세련된 논쟁, 중앙조정에서의 권력 쟁탈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남성이 장악한 조정과 공론장을 벗어나, 구체적인 일상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붕당의식을 내면화하고 실천했는가를 주제로 『18~19세기 붕당의식의 사회문화적 재생산과 확산』(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023)이라는 박사논문을 썼다. 


기실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는 방식이 그렇다. 정치인의 명연설, 혹은 정책의 실행을 둘러싼 날 선 논쟁이 사실상 전부다. 하지만 정치란 게 말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고매한 언어를 뒷받침하는 조직, 진절머리나는 논쟁에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때론 맹목에 가까운) 신념, 나와 남을 명확히 가르는 정체성과 상징이 필요하다. 역사 속에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만 남았던, 수많은 “어디 모씨”들의 정치가 이뤄진 공간이 바로 여기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이들은 그저 남성 정치인을 보조하거나 따라 한 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구성하고 실현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꼭 인터뷰하고픈 인물이 있다. 지금은 마약 퇴치 전도사가 된, 경기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했고 한때 대권 주자로도 거론되던 남성 정치인 A의 어머니다. 언제나 그의 존재감은 비밀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전해졌다. A가 도지사로 출마하며 비게 된 지역구를 둘러싼 재보궐선거 당시, 도전장을 내민 야당의 유력 정치인 B는 과거 자신이 승리했던 신도시 지역구가 “경기도의 강남”이었다면 이곳은 “경기도의 영남”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지역과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결국 B는 꽤 큰 표 차로 패배했는데, 그 이유로 지역에 대한 A 모친의 여전한 영향력이 언급됐다. 반면 불과 2년 뒤 그 지역구가 야당에 넘어갈 때는 그가 조직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여당 후보를 돕지 않았던 것이 패배의 이유로 꼽혔다.


흥미롭지 않은가. 부자가 합쳐 6선을 하는 동안 지역을 조직하고, 관리하고, 단속해 온 그의 영향력이. 도지사까지 했던, 심지어 도청이 있던 바로 그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민 야당 유력 정치인을 떨어뜨렸으나 그렇게 자신이 당선시킨 여당 정치인 역시 2년 뒤 지역에서 쫓아낸 그의 존재감이. 지역에서 버스회사를 경영하던 남편이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 그런 남편이 갑작스레 사망해 미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을 불러와 정치에 입문시켰을 때, 여러 불운이 겹치며 아들이 정계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가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분명 남편이나 아들의 그것과는 같지 않았을 것이다. 


A의 어머니는 예외적이고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사모 권력’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으로 회자되고, 실제로도 썩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의 지역구를 아내나 어머니가 관리한다. ‘영남당’ 출신으로 호남 지역구에서 거듭 승리해 한때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었던 C는 정치인 경력의 시작이 국회의원 아내의 비서였다. 보수의 장자방이라 불린 책사 D는 당시 대권후보 아내와의 갈등으로 대선 국면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디 모씨”의 역할은 단지 비선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가 출신 정치인인 E의 아내는 군부독재 시절 감옥에 간 남편을 대신해 사람들을 잇고 모으며 투쟁에 나섰을 뿐 아니라, 남편이 사망하자 그의 지역구에 출마해 3선까지 했다. 


윤민경의 글을 읽으며 근현대 한국 정치사의 수많은 “어디 모씨”가 떠올랐다. 이들의 시각에서 정치사를 다시 쓴다는 건 단순히 여성 챕터를 추가하거나 여성의 비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디 모씨”의 정치사란 정치 자체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해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그간 유려한 연설, 의회에서의 표결, 정책의 집행, 정당의 이합집산에 가려진 조직과 신념과 상징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이러한 일들에서 여성이 맡아온 역할을 조명하는 것이다. 함흥 기생 가련과 인동 장씨 부인은 여성의 정치가 남성과는 다르게, 그러나 그만큼의 중요성과 존재감을 가지고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이들이다.


윤민경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경험이 한국인의 ‘남다른’ 정치의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여긴다. 실제로 요즘 학계 풍토에선 다소 대담하게도 그는 붕당이란 키워드로 전근대와 근대의 연결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당론서인 이건창의 『당의통략』이 근대 인쇄술과 미디어를 만나 어떻게 보급되고 유통되었는지 추적한 그의 논문을 나는 무척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난 그의 관심이 훨씬 크고 야심만만한 주제를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조직하고, 당파에 대한 신념을 기르고, 남과 나를 구분할 상징을 만들어온 조선 후기의 경험은 근현대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디 모씨”는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비단 여성사뿐 아니라 정치사 자체를 새롭게 쓰는 작업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4
이아리.권혁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역사는 곧 이야기라고도 한다. 수없이 되풀이돼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이 말엔 두 개의 부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는 그래봤자. 역사란 고작이야기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역사에는 방법론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지거나,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완고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역사는 사실을 발굴해 잘 잇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것이 역사학의 건전함과 엄밀함을 유지케 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어떠한 가공도 허용치 않는 그 추상같음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는 곧 이야기앞에 생략된 또 하나의 부사는 그래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란 것이다. 역사의 서사성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공공역사역사콘텐츠의 부상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주장이 서사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고 자극적인 을 양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강담사나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를 자처하는 역사콘텐츠 생산자를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같지만, 역사란 전부 이야기라며 환단고기등의 위서를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사이비 종교인에 가까운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역사는 곧 이야기앞에 놓인 그래봤자그래도는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이야기의 가치를 무한정 깎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 끌어올린다. 하지만 두 부사는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이야기, ‘그래도 이야기든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게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야기란 단수가 아니다. 역사가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역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역사 자체인가, 이야기에 따라 역사는, 혹은 역사에 따라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래봤자그래도는 이런 질문을 담아내지 못한다.

 

최근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시리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진지하게, 동시에 발랄하게 풀어낸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는 이 시리즈가 단순히 여성사로만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같은 낡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 하다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사고, 그렇기에 이야기 자체를 되묻고 다시 쓴다. 여성사라는 주제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에도 오랫동안 역사를 쓸 수 없고, 역사로 쓰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존재다. 그랬기에 일찍부터 여성사라는 범주가 만들어져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학부에서도 교양 강의가 열리곤 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카테고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여자, 하다시리즈의 저자들이 문제 삼고 싶었던 것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사가 단순히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처럼 역사학의 범주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읽는 시각이자 방법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자연히 이야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못한, 설령 남겼더라도 타자에 의한 기록뿐인 존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어떤 서술 방식이 필요한가?

 

당연하겠지만, 여성사라고 다 같은 여성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형식을 정해놓고 탬플릿처럼 시공을 초월해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리즈를 기획한 장지연이 쓴 두 글,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와 조선 과부 박씨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절부 조씨와 과부 박씨 모두 이곡과 박지원이라는 남성 지식인에 의해 그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절부 조씨는 개경 환도와 삼별초 진압, 일본 원정과 카디안의 침입 등 숱한 변란을 겪었으나 일흔 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과부 박씨는 폐병 걸린 남편과 이름뿐인 혼례를 치르고, 남편이 죽자 처가와 시댁의 만류에도 삼년상을 치르다 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단 두 사람의 삶뿐 아니라, 살아간 시대도 달랐다. 절부 조씨가 살아간 고려 말기는 여전히 기록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지만, 과부 박씨가 살아간 조선 후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료가 나오는 기록의 바다다. 심지어 서술자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도 달랐다. 이곡은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조씨의 삶을 기리고자 글을 썼다. 반면 박지원은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울분을 못 이겨 자살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당대에는 파격이었던 풍부한 감정 표현과 구체적인 일화를 곁들여 일찍 사별한 큰누이를 거듭 추모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퍽 냉소적이고 매정한 평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화할 것인가. 장지연은 두 여성에 대해 별개의 전략을 취한다. 절부 조씨의 경우 그와 이곡이 말하지 않은것에 주목한다. 조씨는 분명 언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친족의 도움으로 삶을 꾸려왔고, 이들의 존재가 조씨로 하여금 가부장 없이 절부로 남을 수 있게끔 해주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곡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혹은 조씨가 말하지 않았거나.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홀로꿋꿋이 살아온 조씨의 이야기가 당시 고려와 원에서 더 먹혔기때문이다.

 

물론 이곡과 조씨의 목적이 오로지 절부 만들기혹은 절부 되기만은 아니었다. 시골 출신 이곡에게 조씨는 자신이 몰랐던 중심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강화에서 개경으로 수도가 바뀌고, 변발을 한 고려 임금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몽골 공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을 조씨의 이야기가 왜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근래 정치의 잘잘못과 명문가의 내력또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전해지진 않지만, 조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문자 역사를 이루는 기둥과 서까래로 전해 내려왔다.

절부 조씨와 달리, 과부 박씨는 그가 직접 말한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박지원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 장지연은 박씨 스스로 남긴 언문(한글) 유서에서 열녀로 죽기 위한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계획을 읽어낸다.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묻힐 묫자리가 좁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대상(大祥) 날에는 죽은 뒤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이고자 남편과 자신의 저고리를 엮어 매듭(동심결)을 만든 뒤 불살랐다. 주변에 자신이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자결하겠다고 미리 알린 뒤 남편이 운명한 시각에 맞춰 독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박씨의 죽음은 장지연의 말마따나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박지원의 빈정거림처럼 세간의 쑥덕임이 두려워, 혹은 일시적 감정에 치우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거창 선비 신돈항이 쓴 열부 박씨 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며 흠모하던 유교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자살을 선뜻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자살의 이유를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고결한 존재이고 싶은 명예욕이 존재했으며,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전 집안 출신의 박씨처럼 양반 아닌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순간 일상적인 희롱과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보쌈이라 불린 납치 강간의 위협도 마주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박씨의 자살은 옹호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 된다.

 

이렇듯 고려 말기와 조선 후기, ‘말하지 않은 것말한 것을 실마리 삼아 뻗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한쪽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빈 부분을 채워가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분명 존재함에도 당대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았던 기록을 꼼꼼히 다시 읽어가야 한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근대와 현대로 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숱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말 재밌고 의미 있는 조각들을 속속 골라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고려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필자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 인용하는 사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여자, 하다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그럼에도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아홉 편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을 통한 새로운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저주로 출세하고 저주로 몰락한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을 다룬 이민정의 이야기에선 유교 사회 조선의 여백을 읽는다. 조선의 17세기는 국가에나 가정에나 주자학적 질서가 깊게 뿌리내린 시대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 종래의 믿음이 흔들리며, 임금과 세자가 반목하는 당대의 비합리적불안과 긴장을 달랠 언어가 부재했다. 조 귀인이 파고든 게 바로 이러한 공백이었다. 조 귀인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자학적 합리주의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울한 신경증의 징후다.

 

일제 식민지기 어멈혹은 식모라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이야기 역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서울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떠오른 행랑살이는 양반의 후예들이 종래의 전근대적삶을 이어가기 위한 근대적인수단이었던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이기도 했다. 교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 혹은 공장에서의 근대적 노동이 아니었음에도 엄연한 임금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불황에도 유일하게 수요와 공급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인기 업종이 식모였다. 흔히 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와 전업 주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업계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소비자로 제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인 혹은 오타쿠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여자, 하다시리즈에 대한 내 반응은 후자, 그러니까 업계인과 오타쿠에 가깝다.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라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는 슬픔도 있지만, 업계인에게는 또 업계인의 즐거움이 있다. 최근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임 개발자나 콘텐츠 제작자와 얼추 비슷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야기에 푹 빠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최근 역사학이 다루는 대상은 여성 정도는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넓어졌다. 그래도 여성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제 역사학은 은행나무나 다람쥐 같은 동식물은 물론 라디오나 아파트 같은 인공물까지 기꺼이 주인공으로 불러세운다. 문제는 이처럼 서술 대상의 확장에 발맞추어 서술의 방식 역시 달라졌는지다. 가령 남성 지식인이 주인공일 때와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일 때, 물고기와 손목시계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는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대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참고할 수 있는 사료의 양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역사학은 다루는 대상(주인공)의 폭에 비해 이에 맞는 서술(이야기)의 폭은 넓어지지 않은 듯하다.

 

나는 여자, 하다시리즈가 넓어진 주인공의 폭에 맞춰, 이야기의 폭 역시 넓힐 수 있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무엇을써야 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써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하는 광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앞서 업계인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한 업계에 몸을 담는다는 건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가 속한 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문성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최소한 역사학계에 한정하자면 이런 업계인화혹은 전문화가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감각을 사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은 이야기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들일 텐데, 정작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든, 이미 말한 것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든, 기존의 이야기를 무식하리만치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켜켜이 공부를 쌓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다르게 쓸 여지도 생기는 것일 터다. 그 점에서 여자, 하다시리즈를 기획하고 함께 쓴 일곱 명의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같은 업계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할 여지를, 나아가 그런 이야기에 도전해 볼 여지를 주었으므로. “여자, 하다시리즈가 꾸준히 읽히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2
황향주.이민정.장지연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역사는 곧 이야기라고도 한다. 수없이 되풀이돼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이 말엔 두 개의 부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는 그래봤자. 역사란 고작이야기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역사에는 방법론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지거나,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완고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역사는 사실을 발굴해 잘 잇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것이 역사학의 건전함과 엄밀함을 유지케 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어떠한 가공도 허용치 않는 그 추상같음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는 곧 이야기앞에 생략된 또 하나의 부사는 그래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란 것이다. 역사의 서사성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공공역사역사콘텐츠의 부상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주장이 서사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고 자극적인 을 양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강담사나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를 자처하는 역사콘텐츠 생산자를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같지만, 역사란 전부 이야기라며 환단고기등의 위서를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사이비 종교인에 가까운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역사는 곧 이야기앞에 놓인 그래봤자그래도는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이야기의 가치를 무한정 깎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 끌어올린다. 하지만 두 부사는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이야기, ‘그래도 이야기든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게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야기란 단수가 아니다. 역사가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역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역사 자체인가, 이야기에 따라 역사는, 혹은 역사에 따라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래봤자그래도는 이런 질문을 담아내지 못한다.

 

최근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시리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진지하게, 동시에 발랄하게 풀어낸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는 이 시리즈가 단순히 여성사로만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같은 낡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 하다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사고, 그렇기에 이야기 자체를 되묻고 다시 쓴다. 여성사라는 주제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에도 오랫동안 역사를 쓸 수 없고, 역사로 쓰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존재다. 그랬기에 일찍부터 여성사라는 범주가 만들어져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학부에서도 교양 강의가 열리곤 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카테고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여자, 하다시리즈의 저자들이 문제 삼고 싶었던 것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사가 단순히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처럼 역사학의 범주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읽는 시각이자 방법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자연히 이야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못한, 설령 남겼더라도 타자에 의한 기록뿐인 존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어떤 서술 방식이 필요한가?

 

당연하겠지만, 여성사라고 다 같은 여성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형식을 정해놓고 탬플릿처럼 시공을 초월해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리즈를 기획한 장지연이 쓴 두 글,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와 조선 과부 박씨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절부 조씨와 과부 박씨 모두 이곡과 박지원이라는 남성 지식인에 의해 그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절부 조씨는 개경 환도와 삼별초 진압, 일본 원정과 카디안의 침입 등 숱한 변란을 겪었으나 일흔 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과부 박씨는 폐병 걸린 남편과 이름뿐인 혼례를 치르고, 남편이 죽자 처가와 시댁의 만류에도 삼년상을 치르다 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단 두 사람의 삶뿐 아니라, 살아간 시대도 달랐다. 절부 조씨가 살아간 고려 말기는 여전히 기록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지만, 과부 박씨가 살아간 조선 후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료가 나오는 기록의 바다다. 심지어 서술자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도 달랐다. 이곡은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조씨의 삶을 기리고자 글을 썼다. 반면 박지원은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울분을 못 이겨 자살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당대에는 파격이었던 풍부한 감정 표현과 구체적인 일화를 곁들여 일찍 사별한 큰누이를 거듭 추모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퍽 냉소적이고 매정한 평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화할 것인가. 장지연은 두 여성에 대해 별개의 전략을 취한다. 절부 조씨의 경우 그와 이곡이 말하지 않은것에 주목한다. 조씨는 분명 언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친족의 도움으로 삶을 꾸려왔고, 이들의 존재가 조씨로 하여금 가부장 없이 절부로 남을 수 있게끔 해주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곡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혹은 조씨가 말하지 않았거나.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홀로꿋꿋이 살아온 조씨의 이야기가 당시 고려와 원에서 더 먹혔기때문이다.

 

물론 이곡과 조씨의 목적이 오로지 절부 만들기혹은 절부 되기만은 아니었다. 시골 출신 이곡에게 조씨는 자신이 몰랐던 중심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강화에서 개경으로 수도가 바뀌고, 변발을 한 고려 임금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몽골 공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을 조씨의 이야기가 왜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근래 정치의 잘잘못과 명문가의 내력또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전해지진 않지만, 조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문자 역사를 이루는 기둥과 서까래로 전해 내려왔다.

절부 조씨와 달리, 과부 박씨는 그가 직접 말한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박지원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 장지연은 박씨 스스로 남긴 언문(한글) 유서에서 열녀로 죽기 위한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계획을 읽어낸다.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묻힐 묫자리가 좁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대상(大祥) 날에는 죽은 뒤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이고자 남편과 자신의 저고리를 엮어 매듭(동심결)을 만든 뒤 불살랐다. 주변에 자신이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자결하겠다고 미리 알린 뒤 남편이 운명한 시각에 맞춰 독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박씨의 죽음은 장지연의 말마따나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박지원의 빈정거림처럼 세간의 쑥덕임이 두려워, 혹은 일시적 감정에 치우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거창 선비 신돈항이 쓴 열부 박씨 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며 흠모하던 유교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자살을 선뜻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자살의 이유를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고결한 존재이고 싶은 명예욕이 존재했으며,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전 집안 출신의 박씨처럼 양반 아닌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순간 일상적인 희롱과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보쌈이라 불린 납치 강간의 위협도 마주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박씨의 자살은 옹호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 된다.

 

이렇듯 고려 말기와 조선 후기, ‘말하지 않은 것말한 것을 실마리 삼아 뻗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한쪽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빈 부분을 채워가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분명 존재함에도 당대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았던 기록을 꼼꼼히 다시 읽어가야 한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근대와 현대로 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숱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말 재밌고 의미 있는 조각들을 속속 골라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고려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필자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 인용하는 사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여자, 하다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그럼에도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아홉 편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을 통한 새로운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저주로 출세하고 저주로 몰락한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을 다룬 이민정의 이야기에선 유교 사회 조선의 여백을 읽는다. 조선의 17세기는 국가에나 가정에나 주자학적 질서가 깊게 뿌리내린 시대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 종래의 믿음이 흔들리며, 임금과 세자가 반목하는 당대의 비합리적불안과 긴장을 달랠 언어가 부재했다. 조 귀인이 파고든 게 바로 이러한 공백이었다. 조 귀인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자학적 합리주의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울한 신경증의 징후다.

 

일제 식민지기 어멈혹은 식모라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이야기 역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서울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떠오른 행랑살이는 양반의 후예들이 종래의 전근대적삶을 이어가기 위한 근대적인수단이었던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이기도 했다. 교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 혹은 공장에서의 근대적 노동이 아니었음에도 엄연한 임금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불황에도 유일하게 수요와 공급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인기 업종이 식모였다. 흔히 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와 전업 주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업계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소비자로 제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인 혹은 오타쿠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여자, 하다시리즈에 대한 내 반응은 후자, 그러니까 업계인과 오타쿠에 가깝다.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라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는 슬픔도 있지만, 업계인에게는 또 업계인의 즐거움이 있다. 최근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임 개발자나 콘텐츠 제작자와 얼추 비슷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야기에 푹 빠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최근 역사학이 다루는 대상은 여성 정도는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넓어졌다. 그래도 여성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제 역사학은 은행나무나 다람쥐 같은 동식물은 물론 라디오나 아파트 같은 인공물까지 기꺼이 주인공으로 불러세운다. 문제는 이처럼 서술 대상의 확장에 발맞추어 서술의 방식 역시 달라졌는지다. 가령 남성 지식인이 주인공일 때와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일 때, 물고기와 손목시계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는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대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참고할 수 있는 사료의 양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역사학은 다루는 대상(주인공)의 폭에 비해 이에 맞는 서술(이야기)의 폭은 넓어지지 않은 듯하다.

 

나는 여자, 하다시리즈가 넓어진 주인공의 폭에 맞춰, 이야기의 폭 역시 넓힐 수 있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무엇을써야 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써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하는 광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앞서 업계인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한 업계에 몸을 담는다는 건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가 속한 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문성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최소한 역사학계에 한정하자면 이런 업계인화혹은 전문화가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감각을 사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은 이야기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들일 텐데, 정작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든, 이미 말한 것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든, 기존의 이야기를 무식하리만치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켜켜이 공부를 쌓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다르게 쓸 여지도 생기는 것일 터다. 그 점에서 여자, 하다시리즈를 기획하고 함께 쓴 일곱 명의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같은 업계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할 여지를, 나아가 그런 이야기에 도전해 볼 여지를 주었으므로. “여자, 하다시리즈가 꾸준히 읽히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