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 18세기 인동 장씨 부인*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3
윤민경.한보람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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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정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정치인에 관심이 많다. 나무위키로 한국 정치인들을 검색해 보는 게 취미인데, 그때마다 흥미롭게 혹은 의아하게 본 게 있다. 남성 정치인의 어머니나 아내가 대부분 “어디 모씨”로만 나온다는 점이다. 비단 식민지기나 해방 전후 태어난 옛날 정치인뿐 아니라,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5~60대 정치인도 비슷하다. 여성이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저 가문의 사람으로만 여겨졌던 시절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고 놀라게 되지만, 한편으론 궁금해진다. 그들은 정말 “어디 모씨”로만 남아 있었을까? 아니, “어디 모씨”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을까?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에 실린 윤민경의 글 「여자, 기억되다」와 「여자, 의절하다」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은 “어디 모씨”로 존재했기에, “어디 모씨”의 방식으로 정치에 나섰다. 윤민경이 다루는 인물은 두 명, 함흥 기생 가련과 인동 장씨 부인이다. 가련과 장씨 모두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논리에 따라 정치를 이해하고 실천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남성 정치’의 성실한 학습자 혹은 체현자에 그치지 않는다. 가련은 10대 중반 함흥에 온 한양의 남인 도련님 목생을 통해 정치적으로 ‘각성한’ 뒤 평생 열렬한 남인의 옹호자로 살았다. 장씨 부인은 손자가 대대로 남인이었던 가문을 배신하고 노론으로 전향하자 그를 망설임 없이 파문했다. 


가련과 장씨 부인 모두 중앙의 유력 정치인과 연줄이 있지도, 상궁이나 나인으로 궁에서 일하지도 않았던 시골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가련은 평생 남인이라는 당색을 소중히 여긴 여협(女俠)이었다. 87세 할머니가 되어 함흥으로 유배 온 노론의 명사 권섭과 ‘찐한’ 연애를 할 때도 정치적 신념은 그에게 여전히 중요했다. 가련은 한문을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 글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남인과 소론 지식인의 글을 통해 계속해서 기억되었다.


기생 가련이 견해를 세우는 데 그쳤다면, 장씨 부인은 실제 행동에 나섰다. 손자 안택준이 서인-노론의 화신이었던 척화신 김상헌의 서원을 안동에 건립하려 하자, 손자에게 네가 우리 집을 노론으로 만들어버렸으니 남인인 류씨네로 시집간 딸네 머물겠다며 기어이 가버렸다. 장씨 부인이 안씨 집안의 전향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의 과감한 액션 덕에 이후 남인의 소굴 안동에서 누구도 감히 그 집안을 건드리지 못했다. 


누군가는 가련이 멋도 모르고 똑똑한 남성들에게 들은 내용을 그저 주워섬겼을 뿐이라고 빈정댈 수도 있다. 장씨 부인은 지역에서 집안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을 뿐인 할머니고 말이다. 윤민경이 조선의 ‘붕당의식’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며 들었던 이야기도 비슷했단다. 여성의 붕당의식이란 과장된 게 아니냐는, 그저 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윤민경의 대답이 재미있다. 15대 대선이 한창이던 1997년, 초등학생이던 자신의 일기장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회창이 어떻니,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중 어디가 더 낫니하는 얘기가 잔뜩 적혀 있더라는 것이다. 고려 안정궁주의 간통 사건을 쓴 황향주의 「여자, 바람피다」 머리말과 더불어 “여자, 하다” 시리즈에서 가장 웃겼던 대목이지만,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윤민경은 어린 자신이 뭘 알고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마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단순히 따라 적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정치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면 그저 세뇌되고 휘둘렸을 뿐인 것인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대부분은 잘 모르고, 어디서 주워 듣고 정치를 배우며 실천하게 되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게 정치의 본질은 아니던가?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정치가 굉장히 협소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윤민경이 조선의 ‘붕당의식’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이유가 있다. 때는 2013년, 안식년으로 학교에 없던 지도교수의 연구실에서 선배가 지나가듯 던진 이야기가 계기였다. 자기 증조할머니가 다니던 사찰의 스님이 옷매무새만 보고도 절에 온 여자가 노론인지 소론인지 척척 맞추더라는 것이다. 조선의 붕당정치가 남성 정치인의 정교하고 세련된 논쟁, 중앙조정에서의 권력 쟁탈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남성이 장악한 조정과 공론장을 벗어나, 구체적인 일상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붕당의식을 내면화하고 실천했는가를 주제로 『18~19세기 붕당의식의 사회문화적 재생산과 확산』(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023)이라는 박사논문을 썼다. 


기실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는 방식이 그렇다. 정치인의 명연설, 혹은 정책의 실행을 둘러싼 날 선 논쟁이 사실상 전부다. 하지만 정치란 게 말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고매한 언어를 뒷받침하는 조직, 진절머리나는 논쟁에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때론 맹목에 가까운) 신념, 나와 남을 명확히 가르는 정체성과 상징이 필요하다. 역사 속에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만 남았던, 수많은 “어디 모씨”들의 정치가 이뤄진 공간이 바로 여기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이들은 그저 남성 정치인을 보조하거나 따라 한 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구성하고 실현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꼭 인터뷰하고픈 인물이 있다. 지금은 마약 퇴치 전도사가 된, 경기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했고 한때 대권 주자로도 거론되던 남성 정치인 A의 어머니다. 언제나 그의 존재감은 비밀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전해졌다. A가 도지사로 출마하며 비게 된 지역구를 둘러싼 재보궐선거 당시, 도전장을 내민 야당의 유력 정치인 B는 과거 자신이 승리했던 신도시 지역구가 “경기도의 강남”이었다면 이곳은 “경기도의 영남”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지역과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결국 B는 꽤 큰 표 차로 패배했는데, 그 이유로 지역에 대한 A 모친의 여전한 영향력이 언급됐다. 반면 불과 2년 뒤 그 지역구가 야당에 넘어갈 때는 그가 조직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여당 후보를 돕지 않았던 것이 패배의 이유로 꼽혔다.


흥미롭지 않은가. 부자가 합쳐 6선을 하는 동안 지역을 조직하고, 관리하고, 단속해 온 그의 영향력이. 도지사까지 했던, 심지어 도청이 있던 바로 그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민 야당 유력 정치인을 떨어뜨렸으나 그렇게 자신이 당선시킨 여당 정치인 역시 2년 뒤 지역에서 쫓아낸 그의 존재감이. 지역에서 버스회사를 경영하던 남편이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 그런 남편이 갑작스레 사망해 미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을 불러와 정치에 입문시켰을 때, 여러 불운이 겹치며 아들이 정계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가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분명 남편이나 아들의 그것과는 같지 않았을 것이다. 


A의 어머니는 예외적이고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사모 권력’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으로 회자되고, 실제로도 썩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의 지역구를 아내나 어머니가 관리한다. ‘영남당’ 출신으로 호남 지역구에서 거듭 승리해 한때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었던 C는 정치인 경력의 시작이 국회의원 아내의 비서였다. 보수의 장자방이라 불린 책사 D는 당시 대권후보 아내와의 갈등으로 대선 국면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디 모씨”의 역할은 단지 비선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가 출신 정치인인 E의 아내는 군부독재 시절 감옥에 간 남편을 대신해 사람들을 잇고 모으며 투쟁에 나섰을 뿐 아니라, 남편이 사망하자 그의 지역구에 출마해 3선까지 했다. 


윤민경의 글을 읽으며 근현대 한국 정치사의 수많은 “어디 모씨”가 떠올랐다. 이들의 시각에서 정치사를 다시 쓴다는 건 단순히 여성 챕터를 추가하거나 여성의 비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디 모씨”의 정치사란 정치 자체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해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그간 유려한 연설, 의회에서의 표결, 정책의 집행, 정당의 이합집산에 가려진 조직과 신념과 상징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이러한 일들에서 여성이 맡아온 역할을 조명하는 것이다. 함흥 기생 가련과 인동 장씨 부인은 여성의 정치가 남성과는 다르게, 그러나 그만큼의 중요성과 존재감을 가지고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이들이다.


윤민경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경험이 한국인의 ‘남다른’ 정치의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여긴다. 실제로 요즘 학계 풍토에선 다소 대담하게도 그는 붕당이란 키워드로 전근대와 근대의 연결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당론서인 이건창의 『당의통략』이 근대 인쇄술과 미디어를 만나 어떻게 보급되고 유통되었는지 추적한 그의 논문을 나는 무척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난 그의 관심이 훨씬 크고 야심만만한 주제를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조직하고, 당파에 대한 신념을 기르고, 남과 나를 구분할 상징을 만들어온 조선 후기의 경험은 근현대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디 모씨”는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비단 여성사뿐 아니라 정치사 자체를 새롭게 쓰는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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