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4
이아리.권혁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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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국에는 자본주의를 향한 이상한 믿음이 있다. “임금과 계약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같은.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기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좌우를 막론하고 꽤 뿌리 깊다. 노동과 소유를 전통적 사회관계로부터 뿌리 뽑아 투명한 숫자로 전환한다면 최소한 전근대적 악습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자본주의 만능론이라기보다는, 그만큼 한국의 봉건 질서가 지긋지긋하다는 환멸과 절규에 가깝다. 최근 다시금 화제가 된, 레즈비언 커플에게 한 분은 임대인, 한 분은 임차인으로 등록하면 대출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다며 영업했다는 편견 없는부동산 중개인의 모습은 우리가 자본주의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마냥 투명하지 않다. 우리의 낙관처럼(?) 온갖 낡은 전통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임금과 계약만으로 이뤄진 차가운 유토피아를 건설하지도 않는다. 전통적 사회질서에서 약자로 존재했던 이들이 자본주의를 만나 해방되었으리라는 믿음은, 따라서 오직 절반의 진실에 가깝다. 푸른역사 여자, 하다시리즈 마지막 권인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는 자본주의와 여성의 조우를 보다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제 식민지기 어멈혹은 식모로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글과 1980~90년대 엘리트 여성들의 회사 생활 투쟁기를 다룬 권혁은의 글은 얼핏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식민지기 식모든, 1980년대 회사원이든 젠더와 계급이라는 이중의 굴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아리가 머리말에 썼듯 우리 집은 엄마(또는 할머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회고는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여성의 먹여 살림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식민지기엔 가사 노동이 대표적이었다. 20세기 초엽, 신분제 폐지로 노비가 떠난 양반가의 행랑채를 농촌에서 올라온 행랑아범과 행랑어멈이 채우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는 농촌의 넘치는 인구를 흡수하는 개미지옥인 만큼, 행랑살이는 이내 식민지 수부 경성의 한 계급이 되었다. 다만 언제까지고 성인 남녀를 먹여 주고 재워줄 수는 없는 터, 별다른 일 없이 빈둥대던 행랑아범은 도시의 부랑자로 전락했다. 반면 행랑어멈은 홀몸으로 주인집에 들어와 집안일을 해주는 안잠자기, 나아가 완연한 가사노동자인 식모로 도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조선의 식모 산업을 뒷받침한 또 하나의 원동력은 급증하던 재조일본인이었다. 식민 지배가 10년을 넘어가며 아예 조선에 살 작정으로 건너오는 일본인이 늘었다. 주로 진고개(오늘날 충무로)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내지에서 번거롭게 식모를 데려오느니, 조선인 식모를 싸게 고용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조선인 식모 입장에서도 일본인은 나쁘지 않은 고용주였다. 비록 일본인 식모의 60%밖에 임금을 받지 못했어도 그만하면 조선에서 큰돈이었고, 조선인 가정에서 으레 하는 김장도 없었던 데다 빨래도 쉬웠다. 여럿이 한방에서 뒹굴어야 하는 조선인 집과 달리, 일본인 집은 여중 전용실이 있어 잠자리도 편했다. 물론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 아래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조선인 집에서 아씨서방님이니 존대를 바치며 굽신대는 것과 도긴개긴이라 생각하는 식모가 많았다.

 

그렇게 전통과 근대, 민족과 계급이 교차하는 가운데 식모는 어엿한 직군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직업소개소라는 근대적인기관을 거쳐 조선인과 일본인 가정에 식모로 고용되었다. 1930년대 내내 경성부 직업소개소 중개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식모 산업은 활황이었다. 1929년 이후 대공황 가운데서도, 아니 대공황이었기에 식모만큼은 건재했다. 농촌의 몰락으로 여성이 할 만한 일이 식모살이밖에 없었던 탓이다. 1930년 직업 통계에 따르면 가사 사용인으로 분류된 사람은 총 12877명이었다. 직업을 가지고 있던 9765,514명 중 농경 종사자가 75퍼센트를 넘는 가운데 농사가 아닌 단일 직군으로는 첫손에 꼽힐 규모였다. 한국 경제의 자본주의적 전환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식모였다.

 

이렇듯 근대 한반도의 여성들은 을 받는 일에 적극 참여한 경제활동의 주체였다. 다만 그 한계 역시 뚜렷했다. 여성이 식모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말해 그간 남성의 것이라 여겨진 일에 도전하는 순간 엄혹한 차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권혁은의 글은 바로 이런 금기를 넘어선 여성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대학원생, 회사원, 은행원 등 이른바 전문직, 엘리트 여성. 누군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배울 만큼 배운 특권층 아니냐며 빈정댈 수도 있지만, 권혁은이 굳이이들을 다룬 이유가 있다. 대학까지 마치고 여성 친화적직장에 들어갔음에도 차별의 높은 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수많은 회사가 응시 자격을 병역 필 또는 면제자로 한정함으로써 사실상 남성만 채용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드러냈다. 설사 회사에 들어갔더라도 여성은 직급이나 이름이 아닌, “미스 김으로 불렸다. “미세스 김이 없었던 건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나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은행과 사립학교에서조차 결혼과 함께 사표를 내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이는 암묵적 관행이 아닌, 각서와 교칙으로 문서화된 규정이었다. ‘공식영역에서조차 이럴진대 비공식영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성 은행원은 남성 은행원이 지폐를 종이비행기처럼 접어 날려 담배 심부름을 시켜도 투덜대며 따라야 했다. 은근한 추근거림, 노골적인 성추행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차별에 여성들은 단결과 파업으로 대응했다. 197511월 조흥은행 의무실 약사 강경자가 사표 아닌 휴가원을 내고 결혼했다. 여성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 그렇게 은행의 결혼 퇴직제가 폐지되고,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는 등 공식 영역에서의 차별은 점차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여전했던 비공식적 차별과 ()폭력에도 여성들은 목소리를 냈다. 권혁은이 글머리에 언급한 1993서울대 A 교수 사건은 그 바로미터였다. 여성 조교가 실험실의 A 교수와 서울대, 대한민국을 상대로 건, 성희롱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민사회는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연대했다. 지난한 재판 과정에서 성희롱에 대한 법적 개념이 구체화되었고, 마침내 19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이 명문화되었다.

 

이아리와 권혁은의 글이 보여주듯 여성과 자본주의가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다. 어떤 때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 덕분에임금노동의 선봉에 설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바로 그런 역할 탓에경제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대와 계급을 초월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최근 돌봄이란 말로 느슨히 묶이는 유지·관리·보수의 일로부터 여성이 단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 경제가 일본 경제에 강하게 예속되어 있던 식민지기엔 (일본인을 위해) 여성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하는 쪽이 나았던 반면, 본격적인 산업화 드라이브를 건 1960년대 이후엔 (남성 생계부양자를 위해) 가정에 강하게 종속시켜야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자본주의의 중요한 지표처럼 여겨지곤 하는, 임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이라 뭉뚱그려지는 전근대적 혹은 전통적 관계들을 말끔하게 뿌리 뽑지 않고, 도리어 그런 관계들에 기대어 번성한다. 그 점에서 나는 자본주의 발전엔 식민지가 필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영이 적자였다는 냉소는 얼마나 일면적인가!) 그중에서도 여성은 가장 대표적인 식민지였다. 임금을 받든 받지 않든 근현대 한국의 여성은 돌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식민지기 식모는 돌봄으로 돈을 받는 임금노동자였지만 정작 자기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돌봄은 받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의 워킹맘들은 (조주은이 기획된 가족에서 탁월하게 지적했듯) 일터에서도 압축적으로돌봄을 수행하거나,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하듯 여성 친족이나 가사노동자에게 돌봄을 외주 준다. 어느 쪽이든 돌봄의 마지막 종착역은 여성이었다.

 

이제는 많이 잊힌 표현이지만 윤해동의 말처럼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고 할 수 있다면, “모든 사회는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반봉건의 핵심에 여성이 있다. 그들의 역할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여성을 중심에 두고 근현대 한국 경제사를 다시 이해하는 작업이 몇몇 여성 기업가나 노동자에 대한 조명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여성을 어떻게 숙주 삼았는가, 시대와 계급에 따른 여성과 자본주의의 관계 맺음은 어떠했는가, 이 과정에서 임금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이 어떻게 활용되었는가. 식민지 없는 근대가 가능한지 회의했던 최인훈, ‘봉건적요소의 잔존 가운데서 이뤄지는 자본주의적발전을 규명하고자 했던 박현채와 맞닿아 있는, 그러나 이들이 끝내 가닿지 못한 질문들이 아니던가.

 

기실 최근의 여성(경제)사 연구들은 최인훈과 박현채의 고민으로부터 훌쩍 나아가있다. 조민지의 버스 안내원 연구, 김미선의 여사장연구, 김주희의 성매매 연구, 박해천과 송은영의 복부인 연구,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당기면 고전이 된 김원의 여공 연구 등 이미 여성을 통해 자본주의 자체를 다르게 보려는 작업이 적지 않다. 그런 만큼 관건은 이들 연구가 지금보다 많이 읽히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여자, 하다시리즈 서평을 쓰며 새삼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여성사를 여성사로만, 다시 말해 (주로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이들이 하는) 역사학의 한 분과로만 여기는 시각이 여전히 뿌리 깊다는 점이었다. “여자, 하다시리즈가 이런 뿌리 깊은 편견을 깨뜨려주길, 더 많은 여성사 연구로 나아가게 해주는 창이자 서로를 이어주는 실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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