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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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먹는 일이, 조금 일찍 술 먹는 문화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 사회, 우리가 자란 문화는 그러했다. 오히려 술을 제대로, 어느 정도 먹지 못하면 부끄러워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촌에서 자라며 막걸리부터 시작한 녀석들도 있었고 나처럼 고교시절부터 벗들과 어울려 술질을 시작한 이들도 있고 적어도 스무살이 지나서는 대부분이 술과 함께였다. 
 
 특히 남자들, 사내들의 세계에서 술 없이 이루어진 역사가 있었던가? 스무 살 남짓 무렵부터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사내녀석 둘 이상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은 술 밖에 없지 않던가? 그런데 그 술이 이제는 담배만큼 문제가 되는 시절이 와 버렸다. 담배야 개인의 취미라지만 백해무익이라고 워낙 드러난 바라 심리적인 저항감 없이 포기하였다가 다시 피기도 하는 사이에 잊어버릴 수 있지만 술은 아니었다.
 
 술때문에 망가지는 삶들과 술때문에 버려지는 몸뚱아리들이 쏟아져나오는 요즈음에야 술을 다시 보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농담삼아 술 없는 세상은 뭐하러 사느냐고 호기롭게 지껄이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하는 시간들이다. 이 대목에 우리 곁에 문득 다가오는 술, 술이면서도 술 아닌 듯한, 와인이라는 술이 우리 곁에 어느새 쑤욱 들어와 있다. 
 
 와인, 우리말로는 포도술? 아니던가, 근데 이 술이, 포도술이 뭐가 어때서 이처럼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와인과 관련한 책들이 쏟아져나오는가?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여타 와인 관련 지식이나 정보를 저장하고 알려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와인이라는 술이 어떻게 세계의 술로 자리매김하고 그 와인의 이면에 얽히고 설킨 경제적인 밀고당김이 얼마나 많은지 짚어주는 이야기들이라니. 한마디로 술맛 떨어지는 얘기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는데...
 
 "(하지만) 원산지제도 자체는 너무나 정치적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지리적 특징과 포도 재배의 특징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만 전혀 그렇질 않아요. 정치적일 뿐입니다. ~" (139)
 
 와인의 등급 등이 원산지에 따라 판명되는 시스템의 허구성이 한 방에 드러나는 문장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와인 매니아가 아니기에 이런 사실에 그닥 씁쓸해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어느 잡지의 평에 따라 와인을 가려 먹을만한 경제적 여유도 되지 않거니와 내 입도 그렇게 정형화되지는 않았기에, 가끔 마트에 가서 와인을 구매할 지라도 평소의 입맛에 맞는 술들만 찾아 마시기에, 이 정도에 실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술과 세금, 그리고 정치와의 관계를 여기서 다시 만나는 일은 여전히 씁쓸하다. 최근에 정부에서 다시 논의 되는 담배와 술에 대한 추가 증세 논의 등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술 한 잔을 마셔도 빌어먹을 정치와 연결짓지 않을 수 없다니….쩝..이다.
 
 자유시장 원칙을 강조하는 국가라고 하기에 놀라운 사실은 미국 시민의 28퍼센트가 거주하는 8개 주가 주류의 유통이나 판매 수단을 스스로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160)
 
 그만큼 돈이 된다는 이야기리라. 결국 어느 사안이나 그 이면에는 한마디로 돈이 되는 쪽으로 흐름이 기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따라가지만 매번 한 발 늦다. 그나마 이런 책들이 있음으로 알음알음 다시 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러니 혹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지은이가 들려주는 아래의 이야기를 곰곰히 한 번 생각해보시라. 진정 지금 즐기는 와인이 내 입맛에 맞아서 즐기는 것인지? 자신이 있으시던 없으시던 '블라인드 테스트'로 좋아하는 맛을 다시 한 번 점검하여 늘 즐기시기를.... 
 
 와인 소비자들은 평론가들의 평가를 즐긴다. 일반적으로 영화 평론가들이 혹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블록버스터들이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대부분 영화 관람객들이 평론가들의 평가를 무시하곤 하지만, 수많은 와인 소비자들은 훌륭한 와인 평론가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207)
 
( 여러 종류의 소주로 몇 번을 테스트 하였지만 저는 아직 제 술맛을 완전히, 자신있게 찾지는 못하였답니다. ^^* )
 
 며칠 잘 참아왔습니다. 술이 나를 부르는 소리….
 
 
2009. 7.10. 다시 비 내려, 님 떠나시는 길 배웅하고 있습니다.
 
들풀처럼
*2009-15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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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전집 - 증보판 창비신서 10
신동엽 지음 / 창비 / 198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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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 文 詩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
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
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
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
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
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
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
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
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
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
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
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月刊文學 ·1968년 11월 창간호>

*신동엽
- [申東曄 全集] 수정증보 3판 (1985년 刊) 에서 (83)



오늘 49재를 마치고 이윽고 이승을 떠나신 노무현 대통령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 詩는 아마도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단의 큰 별이 되었음이 분명한 시인의 미래를 내다보는 작품입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신동엽 시인처럼 장대하고 원대한,

멀고 깊은 詩를 쓰는 시인은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의 詩조차도

신동엽 시인의 이 넓고 광활한 눈은 따르지 못합니다.



1968년에 등재된 이 詩는 나중에 미발표 유고들이 발견되면서 그 이전, 1959년에

산문의 형태로 씌어져 있음을 알게됩니다.

저는 다행히도 그 유고집이 출간될 때 그 책을 만났습니다.

아래는 이 詩의 원전에 해당하는 산문입니다.





9 (1959년)

스칸디나비아라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끈 대통
령이 백화점에 칫솔 사러 나오신다. 탄광에서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노자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에 뙤약볕 맞으며 줄지어 서 있으
려니 그걸 본 서울역장 더우시겠소라나 인사 한 마디.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구비치는 꽃밭
잉잉거리는 꿈나비.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던가 하는 그 중립국에선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별장에서 살지만 대통령의 이름
을 모른다고 하는데 애당초 어느쪽의 전쟁에도 총쏘는 장난에는 가담하
지 않기로 작정한 나라, 그래서 어린이들은 총쏘는 시늉을 안 배우고
도 아름다운 놀이들이 많은 그 나라. 자기나라 논밭 위엔 억만금을 준대
도 싫소.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아
름다운 흙밭 위엔 입마춤과 타작과 춤과 꽃다발 쏟아지는 강강수월래.

*신동엽
- [젊은 시인의 사랑] 申東曄 미발표 산문집 초판 (1988년 刊) 에서 (164)


참으로 신동엽 시인의 생각은 넓고 광활한 대륙의 그것입니다.
평생을 반도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그 넓이와 깊이에
오늘 다시 만난 글만으로도 저까지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떠올립니다. 다시 급..우울해집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에게도 다시 노무현 대통령같은,
이 詩의 주인공 같은 그런 대통령이 다가오겠지요.
그때는 다시는 놓치지 않을겁니다.

어느새 49일, 시간은 참 허무하게도 흘러갑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이 아픔조차도 잊혀지겠지요.
이제는 그 잊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남은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가신 님의 발자취를 따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따라가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또 이어져가는 것이겠지요.

오늘밤같은 날 모두 함께 부르라고 신동엽 시인은
절창 한 편을 우리에게 또 남겨두었습니다.
역시 시인의 눈은 앞날을 바라보나 봅니다.

바치는 노래
- Y에게

총소리 간간이 사모치는 밤
어데서 누가 우는가
횃불을 켜라 피를 밝혀야

죽엄보다 어김없는 믿음이 있기에
가셨는가 그대여 웃으며 가셨는가

꽃같이
그대 쓸어진 곳에 칼바람 어프러지고
그대 누우신 자리에 밤새는 찾아오고
그대 무덤 우에 찬란한 복수의 꽃은 피어
그대 가슴 우에

이룸의 열매가 맺는 날
푸른 하늘이 트이는 날
오 빛나는 나라 노래를 부르자

*신동엽
- [꽃같이 그대 쓰러진] 申東曄 미발표 유고시집 초판 (1988년 刊)에서 (39)


2009년 7월 10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님 49재를 마치고,
이제 그를 보냅니다. 우리 가슴 속으로, 영 원 히 …….

2009. 7. 10. 깊은 밤, 마지막 눈물 한방울.....

들풀처럼

*2009-15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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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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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게의 나이는 마흔, 그(마티스)는 세 살 어렸다. (23)
 
 누나 헤게는 마흔 살, 지적 장애우인 소설의 주인공 마티스는 서른 일곱이라는 이 문장,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만난 이 간략한 한 줄에서 저는 한동안 멈추어 있습니다. 비록 우리사회보다야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아빠 다 떠나간 그 세월을 아이의 지능밖에 되지 않는 동생을 데리고 함께 그러나 홀로 살아가는 마흔 살 누나라니…. 더 읽을 필요도 없이 책을 펼치면 눈물과 아픔이 넘쳐날 이야기 같았습니다.
 
 ……. 하지만 이런 제 판단은 섣부른 것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만으로는 충분히 불행해 보이는 두 사람의 생활은 뜻밖에 따스합니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호숫가의 풍경도 아름답게 그려진 표지의 그림처럼 읽어가는동안 흐뭇하고 따스합니다. 찬바람하나 새어 나오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이듭니다. 그렇습니다. 두 남매에게 중요한 건 그들의 삶이지, 주어진 환경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집이 아니잖아." 그가 말했다. 결코 아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도 중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티스 자신이었다. (38)
 
 그렇지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이지요. 자신이 없이는 세계도 세상도 저 하늘도 저 새소리도 없는 법이지요. 마티스의 속이야기를 따라가며 때로는 웃다가 때로는 쓸쓸해하다가도 문득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우리에게 장애란 무엇인지, 나는 겨우 몇 글자만으로 주인공 마티스를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이켜보는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 밤에도 비가 내립니다. 지난 해에 그렇게 기다려도 내리지 않던 비님이 엊그제부터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가문 땅, 가문 맘 적셔주듯 퍼붓는 빗줄기에 몸과 마음이 흠뻑 젖어들고 있습니다. 한번쯤은 젖어보아야 다시 빳빳하게 마른 모습으로 일어설 수 있겠지요. 마티스도 그러할 겁니다. 우연히 노 젓던 배의 파손으로 도착한 조그만 섬에서 마치 동화처럼 만난 두 여학생들과의 순간이 그에겐 마른 땅 단비보다 더 좋은 추억이겠지요. 스스로도 느끼는 모자라는 부분을 잊을 수 있는 당당함을 드디어 갖게 되는 그의 모습에서 정말 장애라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 속에 마티스의 행복한 시간들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제 그 순간이 다가옵니다. 마티스와 누나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순간들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는 악몽같은 순간 말입니다. 어느날 누나 헤게는 동생 마티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처럼 드러냅니다.
 
 "내 인생에 날 위한 건 아무 것도 없어. 가서 자, 마티스."  언제나 그렇듯, 뚫을 수 없는 장벽에  가려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헤게는 슬퍼하고 있었다. ~ 그녀는 언제나 동생을 돌보며 살았다. 마티스는 하루도 빼지 않고 헤게가 뜨개질로 번 돈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었다. (130)
 
 마흔 해,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감정, 사랑이 헤게에게 다가옵니다. 그것도 우연하게 동생 마티스가 엮어주는 사랑의 인연이라니, 아마도 이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이겠지요. 얽히고 설키고 꼬여가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어떤 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게 마련이겠지요. 이 대목에서 저는 제 나이듦을 다시 한 번 만납니다.
 
 지적 장애우인 동생을 곁에두고도 처음 찾아온 사랑과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당연히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누나 헤게와 헤게의 연인은 둘이서만 떠나려는 듯 마티스에게 독립을 종용합니다. 이제 마티스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 떠나려합니다. 그는 어디로 갈려는걸까요? 여기서 또 저같이 나이 든 사람의 예상은 빗나갑니다. 편안하고 따듯한 호숫가의 풍경 속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상황으로 마티스는 스스로를 몰고 갑니다.
 
 이제 제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접으렵니다. 마티스와 헤게의 이야기, 헤게와 그 연인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홀연히 나타나 마티스를 일깨우고 떠나가버린 맷도요새의 이야기까지…. 지은이는 잔잔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숨결과 슬픔과 따뜻함과 눈물을 모두 만나보시려 일부러 노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마티스의 마음 속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면 그가 보여주는 풍경들만 즐기셔도 좋구요. 자, 그럼 여러분들도 마티스가 살고 있는 그 호숫가 잔잔한 햇살 속으로 함께 가시렵니까? 
 
 폭풍우가 몰아쳐도 우리는 살아가야지요, 이 한 세상….
 
 
2009. 7.9. 비는 잠시 그치지만 마음은 여전히 출렁입니다.
 
들풀처럼
*2009-15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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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세계화 - 글로벌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
브루스 그린왈드 외 지음, 김원옥 옮김 / 세계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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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미래는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지은이가 책머리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처럼 들려준 부분이 이 책에서 지은이가 주장하는 핵심임을 깨닫게 된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상하게도 놀라운, 세계화에 관한 진실을 지은이는 조목조목 근거있는 자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있게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한나라의 경제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글로벌이 아닌 바로 현지의 상황'(9)임을…. 
 
 [버블 세계화]라는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바는 '버블'= '거품'이라는 말이 던져주는 느낌 그대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화의 장단점이 대부분 '거품'으로 부풀려진 과장된 이야기들이라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차분한 설명으로 우리를 세계화의 현장 속으로 이끌어간다.
 
 모든 것을 '세계화'와 관련한 탓으로 돌려버리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다양한 범위의 명확하고,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자료가 절실히 필요'(25)한데 바로 이 책이 그 훌륭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세계화가 아무리 진행되더라도 서비스, 교육 분야 등의 영역같이 현지의 역량이 중심이 되는 일상적인 업무들이 잔존하기에 세계화가 일방적인 종속의 관계를 가져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여 지은이는 명확히 아래와 같이 선언하는 것이다.
 
 현지 경제는 세계적 요인에 수동적으로 당하는 희생양이 아니다. 현지의 미래는 사실상 그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세계적인 흐름은 국지적인 진행을 한정적인 범위까지 돕거나 방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증거는 세계적인 요인이라도 훌륭하게 기능하는 현지 경제의 급속한 발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87)
 
 이러한 현지 기업들의 성공사례로 지은이는 한국에서의 월마트 철수를 예로 들고 있다. 그러고보니 맥도날드도, MS-WORD도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가 아니다. 참, 까르푸도 벌써 철수하였다. 뭐, 그렇다고 하여 다른 많은 부분이 그런 것도 아니므로 너무 들떠거나 기뻐할 상황은 역시 아니다. 지은이의 반복되는 지적처럼 너무 부정적이거나 너무 긍정적으로 세계화에 매몰되는 것은 진정한 세계화의 효용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오류에 빠질 수도 있기에 우리는 더 침착하고 더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세계화'와 만나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만나는 지은이의 설득력 있는 다른 논지하나는 현재의 경기불황의 원인과 그 대처방안에 대한 부분이다. 지은이는 세계경제의 흑자를 흡수할 완충역할을 하는 국가가 있어야만 경제가 계속 선순환을 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지금까지는 그 역할을 미국이라는 경제대국이 해왔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미국마저 이러한 지지대의 역할을 하는데 한계에 이르렀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경제위기라는 것이다. 결국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역할과 그 한계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라는 지적인데 이는 여러군데서 이미 지적되어온 바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상쾌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오래전 돕-스위지 논쟁에서 느꼈던 혼란? - 내재적 발전 과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발전 혹은 내재적 역량 미흡과 외부의 침탈로 인한 저개발 - 들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아서이다. 결국에는 어떠한 세계경제상황의 변동이 있더라도 그 속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가느냐 못하느냐는 각 나라에 내재된 역량의 총합이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지은이의 믿음처럼 흘러갈 것임을, 흘러가야함을 나 역시 믿는다는 사실이다. 
 
 외양의 확대로 세계화가 마치 세상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많은 이들이 착각하게되는 부분에 대한 지은이의 마지막 지적처럼 세계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외부 환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부적으로 더 가다듬고 탄탄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뭉쳐서 이 파고를 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힘들겠지만…. 
 
 이 책의 주제 '현지의 노력이 전 세계적 노력보다 더 중요하며 세계화의 긴 역사를 살펴봐도 현지의 노력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다.' 라는 명제는 경제적이든 비경제적이든 다른 세계적인 문젯거리뿐만 아니라 최근 떠오르는 환경 문제에도 걱용된다. (259)
 
 
2009. 7.9.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보다 가치있는 것은 없습니다.
 
들풀처럼
*2009-15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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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과학과 사회 3
프란시스 위스타슈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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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억이란 정보를 기호화하고(기록하고),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게 할 수 있는 기능이다. (16)
 
 우리는 '기억'이라는 말보다 '추억' 그리고 '기억력'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서 '추억'이란 '저장하고 다시 불러'온 기억에 해당될 것이고 '기억력'은 기억을 활성화하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라는 의문이 이 책에게 나를 다가서게 하였다.
 
 기억은 우리의 추억과 지식의 정신적 표상을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현상이다. 같은 사건을 경험한 두 사람이 그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흔적을 보유하고 있다. (45)
 
 최근에 아내랑 이야기를 하다 말문이 막히는 때가 늘었다. 몇 년 전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기억이 끊겨버리는 경우이다. 도대체 이러한 기억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기억은 사건을 지속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관심이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그 순간은 똑같이 보존되지 않는다 (111)
 
 그러고보니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이 이러한 기억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사람들의 불완전성과 우리들 행동의 엇갈림을 통하여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고 있는데 이 역시 '기억'의 불완전성 탓에 비롯된 얘기이리라. 여기 '기억'과 '기억상실증'과의 연관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실험결과) "처음으로 환자를 만나면 손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그런 다음 환자를 떠났다가 2~3분 뒤에 다시 가면 환자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환자에게 나를 이미 본 적 있느냐고 물으면 환자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질문에 대한 답에서 환자는 의사의 방문을 잊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이 대답은 3분 전에 의사와 만났던 일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서는 예견된 대답이다.
 반면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은 정상적인 태도다. 몇 분 전에 본 사람에게 또다시 손을 내밀지는 않으니까. (26)
 
 그러니까 몸은 본능적으로 앞서 인사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뇌는 기록을 하고 있는데 의식은 다시 만난 의사를 불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기록하고 저장하고'는 몸에 되어 있는데 '다시 불러'오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책에는 약간 어려운 표현들로 설명되고 있지만 간단히 말해 두뇌의 어떤 부분이 손상되어 특정한 기억을 불러오지 못하는 것이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억도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사건에 대한 표상은 시간이 흐르면 주체의 경험과 바람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74)
 
 나는 여기서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10분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 이야기, <메멘토>라는 영화는 '기억''기록'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조작하는지, 그리고 그 남겨진 기록이 다시 지금 나의 기억 - 좀 더 근접한 느낌으로 말하자면 회상, 또는 추억 - 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에 관한 모범답안 같은 내용으로 많은 이들을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작품이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든지 엉망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기억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시라. 
 
 오랜 시간에 걸쳐 주체의 관심과 욕망에 따라 기억이 구축된다는 점은 실제적인 사건과 이 사건에 대한 기억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부정확성은 우리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이긴 하지만, 인간관계와 사회적인 기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만한 정도여야 한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 한가운데 있다. 기억은 주변 환경의 요구와 우리의 내적 일관성 사이에서 바람직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73)
 
 사실 기억에 관한 연구는 뇌에 관한 연구와 거의 동일시되며 뇌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점점 더 넓고 깊은 세계로 진화중이다. 물론 나는 그만한 지식이 없으므로 그 연구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 책을 통하여 위안이 되는 것은 부족하고 모자라고 왜곡된 나의 기억이 나의 어떤 모자란 성향 탓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뇌의 일반적인 활동의 일부분임을 알게된 것이다. 이래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다. 
 
 기억상실증 환자는 지난주에 비행기를 탔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툴루즈가 분홍빛 도시고 로마가 이탈이라의 수도라는 것은 안다. ~ 왜냐하면 그 환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훨씬 전인 아주 오래전에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102)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하루하루를 좀 더 조신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설사 기억상실증이 오더라도 이미 각인된 기억은 그대로일 것이기에 곱씹고 되씹으며 좋은 기억들만 챙겨두어야겠다.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대비하여서라도…. ^^
 
 기억을 이해하고 기억 관련 질환을 않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116) 
 
 
2009. 7.5.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들풀처럼
*2009-15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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