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전집 - 증보판 창비신서 10
신동엽 지음 / 창비 / 198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散 文 詩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
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
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
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
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
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
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
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
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
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
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
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月刊文學 ·1968년 11월 창간호>

*신동엽
- [申東曄 全集] 수정증보 3판 (1985년 刊) 에서 (83)



오늘 49재를 마치고 이윽고 이승을 떠나신 노무현 대통령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 詩는 아마도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단의 큰 별이 되었음이 분명한 시인의 미래를 내다보는 작품입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신동엽 시인처럼 장대하고 원대한,

멀고 깊은 詩를 쓰는 시인은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의 詩조차도

신동엽 시인의 이 넓고 광활한 눈은 따르지 못합니다.



1968년에 등재된 이 詩는 나중에 미발표 유고들이 발견되면서 그 이전, 1959년에

산문의 형태로 씌어져 있음을 알게됩니다.

저는 다행히도 그 유고집이 출간될 때 그 책을 만났습니다.

아래는 이 詩의 원전에 해당하는 산문입니다.





9 (1959년)

스칸디나비아라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끈 대통
령이 백화점에 칫솔 사러 나오신다. 탄광에서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노자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에 뙤약볕 맞으며 줄지어 서 있으
려니 그걸 본 서울역장 더우시겠소라나 인사 한 마디.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구비치는 꽃밭
잉잉거리는 꿈나비.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던가 하는 그 중립국에선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별장에서 살지만 대통령의 이름
을 모른다고 하는데 애당초 어느쪽의 전쟁에도 총쏘는 장난에는 가담하
지 않기로 작정한 나라, 그래서 어린이들은 총쏘는 시늉을 안 배우고
도 아름다운 놀이들이 많은 그 나라. 자기나라 논밭 위엔 억만금을 준대
도 싫소.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아
름다운 흙밭 위엔 입마춤과 타작과 춤과 꽃다발 쏟아지는 강강수월래.

*신동엽
- [젊은 시인의 사랑] 申東曄 미발표 산문집 초판 (1988년 刊) 에서 (164)


참으로 신동엽 시인의 생각은 넓고 광활한 대륙의 그것입니다.
평생을 반도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그 넓이와 깊이에
오늘 다시 만난 글만으로도 저까지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떠올립니다. 다시 급..우울해집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에게도 다시 노무현 대통령같은,
이 詩의 주인공 같은 그런 대통령이 다가오겠지요.
그때는 다시는 놓치지 않을겁니다.

어느새 49일, 시간은 참 허무하게도 흘러갑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이 아픔조차도 잊혀지겠지요.
이제는 그 잊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남은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가신 님의 발자취를 따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따라가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또 이어져가는 것이겠지요.

오늘밤같은 날 모두 함께 부르라고 신동엽 시인은
절창 한 편을 우리에게 또 남겨두었습니다.
역시 시인의 눈은 앞날을 바라보나 봅니다.

바치는 노래
- Y에게

총소리 간간이 사모치는 밤
어데서 누가 우는가
횃불을 켜라 피를 밝혀야

죽엄보다 어김없는 믿음이 있기에
가셨는가 그대여 웃으며 가셨는가

꽃같이
그대 쓸어진 곳에 칼바람 어프러지고
그대 누우신 자리에 밤새는 찾아오고
그대 무덤 우에 찬란한 복수의 꽃은 피어
그대 가슴 우에

이룸의 열매가 맺는 날
푸른 하늘이 트이는 날
오 빛나는 나라 노래를 부르자

*신동엽
- [꽃같이 그대 쓰러진] 申東曄 미발표 유고시집 초판 (1988년 刊)에서 (39)


2009년 7월 10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님 49재를 마치고,
이제 그를 보냅니다. 우리 가슴 속으로, 영 원 히 …….

2009. 7. 10. 깊은 밤, 마지막 눈물 한방울.....

들풀처럼

*2009-157-07-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