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헤게의 나이는 마흔, 그(마티스)는 세 살 어렸다. (23)
 
 누나 헤게는 마흔 살, 지적 장애우인 소설의 주인공 마티스는 서른 일곱이라는 이 문장,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만난 이 간략한 한 줄에서 저는 한동안 멈추어 있습니다. 비록 우리사회보다야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아빠 다 떠나간 그 세월을 아이의 지능밖에 되지 않는 동생을 데리고 함께 그러나 홀로 살아가는 마흔 살 누나라니…. 더 읽을 필요도 없이 책을 펼치면 눈물과 아픔이 넘쳐날 이야기 같았습니다.
 
 ……. 하지만 이런 제 판단은 섣부른 것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만으로는 충분히 불행해 보이는 두 사람의 생활은 뜻밖에 따스합니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호숫가의 풍경도 아름답게 그려진 표지의 그림처럼 읽어가는동안 흐뭇하고 따스합니다. 찬바람하나 새어 나오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이듭니다. 그렇습니다. 두 남매에게 중요한 건 그들의 삶이지, 주어진 환경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집이 아니잖아." 그가 말했다. 결코 아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도 중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티스 자신이었다. (38)
 
 그렇지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이지요. 자신이 없이는 세계도 세상도 저 하늘도 저 새소리도 없는 법이지요. 마티스의 속이야기를 따라가며 때로는 웃다가 때로는 쓸쓸해하다가도 문득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우리에게 장애란 무엇인지, 나는 겨우 몇 글자만으로 주인공 마티스를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이켜보는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 밤에도 비가 내립니다. 지난 해에 그렇게 기다려도 내리지 않던 비님이 엊그제부터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가문 땅, 가문 맘 적셔주듯 퍼붓는 빗줄기에 몸과 마음이 흠뻑 젖어들고 있습니다. 한번쯤은 젖어보아야 다시 빳빳하게 마른 모습으로 일어설 수 있겠지요. 마티스도 그러할 겁니다. 우연히 노 젓던 배의 파손으로 도착한 조그만 섬에서 마치 동화처럼 만난 두 여학생들과의 순간이 그에겐 마른 땅 단비보다 더 좋은 추억이겠지요. 스스로도 느끼는 모자라는 부분을 잊을 수 있는 당당함을 드디어 갖게 되는 그의 모습에서 정말 장애라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 속에 마티스의 행복한 시간들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제 그 순간이 다가옵니다. 마티스와 누나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순간들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는 악몽같은 순간 말입니다. 어느날 누나 헤게는 동생 마티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처럼 드러냅니다.
 
 "내 인생에 날 위한 건 아무 것도 없어. 가서 자, 마티스."  언제나 그렇듯, 뚫을 수 없는 장벽에  가려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헤게는 슬퍼하고 있었다. ~ 그녀는 언제나 동생을 돌보며 살았다. 마티스는 하루도 빼지 않고 헤게가 뜨개질로 번 돈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었다. (130)
 
 마흔 해,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감정, 사랑이 헤게에게 다가옵니다. 그것도 우연하게 동생 마티스가 엮어주는 사랑의 인연이라니, 아마도 이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이겠지요. 얽히고 설키고 꼬여가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어떤 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게 마련이겠지요. 이 대목에서 저는 제 나이듦을 다시 한 번 만납니다.
 
 지적 장애우인 동생을 곁에두고도 처음 찾아온 사랑과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당연히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누나 헤게와 헤게의 연인은 둘이서만 떠나려는 듯 마티스에게 독립을 종용합니다. 이제 마티스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 떠나려합니다. 그는 어디로 갈려는걸까요? 여기서 또 저같이 나이 든 사람의 예상은 빗나갑니다. 편안하고 따듯한 호숫가의 풍경 속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상황으로 마티스는 스스로를 몰고 갑니다.
 
 이제 제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접으렵니다. 마티스와 헤게의 이야기, 헤게와 그 연인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홀연히 나타나 마티스를 일깨우고 떠나가버린 맷도요새의 이야기까지…. 지은이는 잔잔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숨결과 슬픔과 따뜻함과 눈물을 모두 만나보시려 일부러 노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마티스의 마음 속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면 그가 보여주는 풍경들만 즐기셔도 좋구요. 자, 그럼 여러분들도 마티스가 살고 있는 그 호숫가 잔잔한 햇살 속으로 함께 가시렵니까? 
 
 폭풍우가 몰아쳐도 우리는 살아가야지요, 이 한 세상….
 
 
2009. 7.9. 비는 잠시 그치지만 마음은 여전히 출렁입니다.
 
들풀처럼
*2009-15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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