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사 -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지구사 연구소 총서 1
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 김서형.김용우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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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인류의 간결한 역사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세계사의 모형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  '간결함'은 이 책의 결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한 번에 읽는 것이 가능하다. ( "영어판 저자 서문"에서 ) (15)
 
 과연 그러하다. 지은이의 말처럼 '거대한 세계사'를 한 눈에 조감한다는 원대한 욕망에 이 책은 불을 지른다. 그러나 그 불은 흐릿하다. 나는 이 책이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장대한 파노라마를 보여줄 것으로 너무 큰 기대를 하였나보다. 개별적으로 만나보던 역사와 지구과학의 내용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곡조가 낯설다. 아마도 처음이라 그러하리라.
 
 지은이는 지구史를 '전편-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33-18=15쪽) 과 '인류의 시작-수렵·채집 시대'(69-34=35쪽), '가속화 단계-농경 시대'(129-70=59쪽), '우리의 세계-근대'(183-130=53쪽) 로 구분한다. 뒤에 계산해 놓은 것은 그 시대가 지은이에 의해 다루어진 쪽수이다. 우리는 오래전 고대의 수많은 시간들에 비하여 전해지는 적은 유물로 인하여 기술되는 내용이 훨씬 적음을 알 수 있다.
 
 수렵·채집 시대가 20만 년 이상, 농경 시대가 1만 년 정도 지속되었던 반면, 근대는 약 25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짧은 시기 동안에 일어난 변화는 이전보다 훨씬 급속하고, 중요하다. (131)
 
 책은 간결하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거의 다 담겨있다. 수 십년 전 초중고 시절에 배우고 익히고 잊어먹었던 내용들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하여 내용들이 낯설거나 어렵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새로운 맛이 없어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 얇은 책 속에 全 지구의 역사가 담겨있다. 게다가 '더 깊이 생각하기', '토론해 보기' 등으로 더해지는 공부할 거리도 넘쳐난다. 만만히 볼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개별 나라의 역사를 넘어서 동시대에 전 자구적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리는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인류가 다른 종들과 구분이 되는 특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인류는 상징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는  유일한 존재이다.'(44) 물론 다른 종들도 언어 비슷한 것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인류가 쓰는 언어만이 무한대의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새롭게 다가온다.
 
  인류는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 전 대륙으로 이주, 확산을 거쳐 농경시대에 다다른다. 그동안 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만나는데 그것은 수많은 종들이 멸종한다는 사실이다. 왜, 언제,… '고고학자들이 이들의 멸종 시점을 더욱 정확히 추정하게 됨에 따라, 인류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한 때와 멸종 연대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멸종의 주된 원인이 인류였을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63) 결국 인류가 많은 종들의 멸종 원인이라는 이야기이다. 인류는 그렇게 성장하여 왔을 것이다. 
 
 그리고 알려진 바대로 '메소포타미아에 걸친 고대 회랑지대에서'(103) 최초의 도시국가가 출현했다. 농경시대의 산물이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다. 참, 이 부분의 책 아래 부분에 조그마하게 '더 공부할 주제'라고 별도의 항목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책만으로도 해야될 공부는 차고 넘치는 샘이다.
 
 책을 읽어나가다가 만나는 '더 깊이 생각하기'중 한 곳에서 눈길을 멈춘다. '1981년과 2001년 사이에만 에이즈로 죽은 사람의 수가 인류사의 그 어떤 질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를 능가한다.' (125)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가 과연 '수렵·채집 시대' 혹은 '농경 시대'를 능가하는 좋은,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가? 과연 우리들의'생애에서 에이즈가 정복될' 수는 있을까? 생각이 깊어진다.
 
 근대에 들어와 전 지구적 격변을 겪으며 인류의 성장은 커녕 오히려 퇴보에 이르는 듯 보인다. 물론 경제적 혹은 과학적으로 놀라운 업적들은 쏟아지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과 참혹한 죽음들 속에 세계는 존재한다. 지은이는 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둔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를 기다린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어줄 것임을 믿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실현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보자. ~ ~ 여러분의 대답이 옳든 틀리든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미래 세계를 상상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러한 미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 '더 깊이 생각하기'에서 ) (182)
 
 
2009. 8. 3. 저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대이기'를 바랍니다.^^*
 
들풀처럼
*2009-17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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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시선 211
이면우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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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기사에서 '일년 단위 계약직 보일러공'(75)이라는 시인의 약력을 눈여겨 보고 시집의 제목이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라고 할 때 이 시집에 거는 기대치는 [노동의 새벽]에서 느끼던 그 불같은 뜨거움과 헛헛한 가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 시집은 읽어나갈수록 삶의 진정성을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만나게 해주었다. 평범하다 못해 어쩌면 초라한 시인의 일상에 때론 밋밋한 느낌마저 드는 이 시들이 왜 나에게 절절히 다가오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시라는 것은 읽고 되새기고 읊조리는 동안 노래가 되는 법, 이 시집에도 시인의 노래들이 넘쳐난다.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 "거미"에서 (11)
 
 목련꽃 피면 겨울 하나 또 갔다, 가 아니라
 남자가 일할 수 없다면 목련꽃 펴도 봄은 온 게 아니라는 거다
 세상은 꽃과 일이 함께 있어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법 - "목련 유감"에서 (36)
 
 겨우 두 편의 시에서 뽑아본 구절들이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구절들, 그 '필사'의 낱말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가장'인 내가, 남자가 '일할 수 없다면'  어찌 봄을 봄이라 부르랴. 일자리를 잃어 본 사람들은 안다. 그 막막한 어둠을…. 시인은 그 막막함과 답답함을 그저 불평하지 않는다. 이처럼 몇 줄, 몇 마디의 말로 우리에게 그 심정을 절절히 보여준다.
 
 "생의 북쪽"이라는 시에는 좀 더 구체적인 지은이의 일상이 드러난다. 나는 그가 '이력서'를 쓰고 잠든 아내, '여편네보다 먼저 눈뜨는 깊은 밤'을 안다. '그렇다 이스탄불, 베이징, 신의주, 상 파울로에도 잠 못 이루는 사내들이 있어 꺼진 불씨를 되살려내려 애쓰는 중일 거다 어둠 속에서 잠든 가족의 얼굴을 오래오래 응시할 거다 그렇다'  그는 '지금 세상의 북쪽이 아니라 생의 북쪽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52) 하여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61)는 것이다.
 
  나 역시 십 여년 전 잠시 일자리를 잃고 헤매이던 날들이 있었다. 그 밤마다 쏟아지던 후회와 좌절감, 앞날에 대한 두려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울먹이던 시간들, 어떠한 일이든 일을 하는 것만이 그 절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노력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시간, 그 일은 다가 오는 것이다.
 
 마른 나무 톱질은 상쾌하기도 한 것이다
 이건 나무야 단순히 나무일 뿐이라구, 다짐해도
 먼저 넘어뜨려야 할 건 두려움 - "나무 베기"에서 (22)
 
 그렇다 삶과 일과 그리고 유희가 한몸뚱이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나는 머리칼이 잔뜩 센 나이 마흔일곱에야 겨우 짐작했던 것이다  - "손공구"에서 (57)
 
 그렇다, 먼저 '두려움'을 던져버려야 일을 할 수 있는 법, 일이 곧 삶임을 지은이를 따라 나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일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시집을 뒤적거리니 뜻밖에 밑줄그은 구절들과 동그라미로 좋다고 표시한 시들이 넘쳐난다. 아마도 일상에서 건져올린 시어들과 구절들이 내게 선뜻 다가온 탓이리라. 많은 시편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거나 옮길 수는 없으니 꼭 한 번 만나 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당연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난 시 한 편, 옮겨드린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갈 것'이니까.
 
 슈퍼엔 통조림이 많다 정어리 통조림은 싸다
 배움이 짧아 고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정어리 통조림을 꾸준히 선택한다 누구도 이의를
 달진 않지만 때로는 저녁 식탁의 젓갈질이 늘어지는 걸 본다
 그렇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나는 엄숙히 선언한다
 통조림을 믿지 말라, 그 속엔 아직 정체가 안 밝혀진
 맹독이 숨어 있어 언제 뛰쳐나와 우리를 꺼꾸러뜨릴지 몰라
 그래 마늘과 고춧가루를 뿌려 펄펄 끓여먹는 거다 일순
 섬광이 번쩍 지나가고 짧은 탄식처럼 따듯한 저녁식사는 끝났다
 모두 평온하고 통조림처럼 무사한 저녁이 슈퍼에 많다
 삶에 지치지 않은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전문 (74)
 
 
2009. 7.29. '아무도 웃지 않는 밤'도 없으면 좋겠습니다.
 
들풀처럼
*2009-172-07-24
 
 
*책에서 옮겨두다
 술 끊고 한 열달 지나 꿈속에서 술 마시고
 아이고 십년계획 도로아미타불이라고 엉엉 울다 깼다
 깨어 꿈인 걸 알고 기뻐서 방바닥을 쳤다 - "꿈에 크게 취함"에서 (21)
 
 나무 되고 싶은 날은
 저녁 숲처럼 술렁이는 노천시장 간다
 거기 나무 되어 성성대는 이들 많다 - "노천시장"에서 (26)
 
 사람들이 울지 않으니까
 분하고 억울해도 문 닫고 에어켠 켜놓고 TV보며
 울어도 소리없이 우니까
 
 요렇게 우는 거라도
 목숨이 울 때는 한데 모여
 숨 끊어질락 말락 질펀히 울어젓히는 거라고 - "매미들"에서 (34)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죄다 미인이다. 이 한구절을 쓰는 데 나는 꼬박 사십년이 더 걸렸다. - "미인"에서 (39)
 
 섬뜩 무언가 베고 지나가는 아픔 - "십년 뒤에도 호수에 가을비"에서 (59)
 
 깊은 밤 남자 우는 소리를 들었다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에서 (61)
 
 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도는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 "오늘 쉰이 되었다"에서 (68)
 
 툭 터진 쪽에서 바람이 서늘히 불어왔다 산을 내려가기 전
 한 사내, 잊었던 시 한구절 소리내어 외워본다
 바람이 분다 다시 살아야겠다 - "이천년 숲"에서 (73)
 
 세상의 처음, 혹은 마지막처럼 누군가
 하늘을 헐어내서라도 악착같이 가야 하는 쪽
 샛노란 성냥불빛 서넛 크게 떨며 번지다 - "천수만, 석양"에서 (82)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 "화염 경배"에서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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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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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자. 이런 冊, 재미있게 읽고 좋은 이야기들도 넘쳐나지만 나는 싫다. 지은이의 작업실 이야기에 120% 공감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실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리츄얼에도 공감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는 열등감, 커피를 나도 좋아하지만 지은이가 들려주는 열정에는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등등 이 책을 재미잇게 읽고 즐기면 즐길수록 다가오는 나는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으리라는 느낌. 어찌 이 책을 내가 좋아할 수 있으랴. 
 
 그것은 리추얼(ritual)이다. 절차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적 행위, 즉 문화행위라는 뜻이다. ~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재배치되는 ~ 커피 따위를 갖고 왠 호들갑이냐고 비웃는 친구야. 그럼 네게 중요한 일은 뭐니? 재테크니? 민족 통일과 세계평화니? 킁. (74)
 
 그래, 세상 사는 일이 어떻게 자로 잰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랴. 조금 여유가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아도 자신이 몰두하는 한가지에 지은이처럼 미쳐버린다면 그 경지만으로도 무언가 얻을 것은 있는 법이다. 지은이는 옛날음반(LP) 3만여장에 CD 4천여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음악광!!!이다. 아니, 음악광의 단계를 넘어서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레벨이다. 건물 지하 37평을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 음악과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줄라이홀'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여유라니....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보니 단순히 사람 이름을 붙였다는 그 쿨함이라니.....
 
 "어, 그럴까? 오늘 줄라이가 왔네. 그럼 앞으로 줄라이홀이라고 부르지 뭐."(44)
 
 책을 통하여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업실이 필요한 까닭이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위무해야할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지은이에게는 커피와 음반과 오디오에 대한 예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내용들이 어쩌면 너무 사치스럽거나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꺄진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 '회사원 생활'(19)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작업실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업실의 의미를 얼마만큼 준수할 수 있을까? 그 기준에 맞출 수는 있는걸까?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 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경탄을 위해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지, 그 일상을 말해야 한다.  실은 나 자신이 언제나 내 작업실의 방문객이다. 문을 열고 발을 디디는 순간 탄성과 탄식, 감동과 회한, 그런 감흥이 일지 않으면 그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업은 추억의 공간이다. 당장의 한순간이 추억의 시간이다. 작업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추억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28)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이 그날의 날씨다. ~
 또 하나 결별해야 할 것이 소리다. ~
 아울러 결별해야 할 것이 햇살이다. ~ (32)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러한 나만의 작업실을 마련할 것인가? 설사 마련한다 하여도 제대로 활용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저 지은이의 흉내만 낸다, 그리고 또 좌절한다. 물론 날마다 좌절하지만 날마다 다시 일어선다. 나에게, 작업실은 물론 없다. 4인 가족에 방 3 개, 어디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하여 겨우겨우 숨을 공간을 만든 것이 거실이다. 거실에 있던 TV를 치우고 거의 모든 벽면을 책꽂이로 도배하고 2000여권의 책으로 감싸안았다. 다 진열할 수 없는 책들은 별도 박스에 보관하여 베란다에 재어놓았다. 그리고 밤 깊은 새벽녘에야 거실에 나선다. 가족들도 모두 잠든 시간, 그때는 당연히 '캄캄'하고 '날씨'도'소리'도'햇살'도 피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작업실의 조건을 겨우 흉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만의 작업실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은이의 글을 읽고 즐기면서도 그 생활을 싫어하는 까닭이다. 지은이의 생활 끝자락이라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처럼 태생이 한 곳에 몰두하여 미치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의 생활이, 다 이룬듯 보여 스스로 '불쌍'해질 수 없다는 그 생활이 부럽다못하여 싫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그래, 지은이의 말처럼 '마음만 젊으면, 마음만 젊으면 무엇이라도!'(50) 못하랴. 게다가 그처럼 '남의 글 떠올리며 생각의 단서가 풀려나가는 것도 병인 것 같다.'(39) 나도 그렇다. 그에게 '아내의 책이 내게는 음악'(195)인 것처럼 내게는 책이 그의 음악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하여 나처럼 질투하고 시새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새로운 경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분도 있으리라.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만난 속시원한 詩 한 편 옮겨본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리니…..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전문  (117)
 
 책 속에는 커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에서부터 심오한 원두커피의 더 깊은 곳까지, 음악, 특히 클래식의 기초부터 전반적인 흐름까지, 오디오의 어마어마한 세계까지 많은 상식과 지식이 등장한다. 그 지식만으로도 본전은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마냥 부러워만 할 것인지 흉내라도 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 결정은 여러분의 몫이리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부터 그저 차근차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2009. 7.26. 밤,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 '내부가 그립'(133) 습니다.
 
들풀처럼
*2009-167-07-19
 
 
*冊에서 옮겨두다
 
 땀꾸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이 가능하다는 꿈을 말하고 싶다. (7)
 
 꿈은 도시 탈출이었고 정착점은 작가 생활이었다. (13)
 
 이 순간의 점점에 머무르듯 살아가는 거다.  이 순간 이전과 이 순간 이후의 지루한 인과의 법칙과 응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거다.  이 순간 점점의 끄트머리에서 칼처럼 살아가는 거다. 저지르자! 암, 저지르고말고. (13)
 
 한자에 '졸(拙)'이 있고 '박(薄)'이 있으니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그게 되지 않는다. 좋박이 되지 않는, 과잉으로 넘쳐나는 성정이 화근이다. (36)
 
 매력없고 상스러워진 사람의 피난처, 그곳이 지하실에 꾸미는 작업실 공간이다.(39)
 
 아파트 위 아래 층 이웃들의 끝없는 항의로부터 탈출해서 집밖 어딘가에 음악 감상실을 만들고자 한다면 첫째 높은 천장, 둘째 완벽한 방슴, 셋째 가능하면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 지하실을 찾아야 한다. (41)
 
 욕심 없고 절제하는 태도, 그것이 고매함이다. 할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충분한데 사양하는 것, 그래, 그것이 고매함이다. 고매, 그 빛나는 광채 곁으로 다가가고만 싶은데 내게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45)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 (78)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훨씬 열심히 공들여 청소한다는 것. 실내의 때깔이 달라지는 비법이 그거였다. (91)
 
 공지영이 그렇게 썼었다. "슬퍼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도 죄스러워지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저물녘 강변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는 청춘기를 보냈다"고. 나도 그랬었다. (97)
 
 혼자서 하염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사람 없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람처럼 사는.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원두를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 지금 줄라이홀은 혼자를 견디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 집에 들른 지 너무 오래됐다. (98)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튀르크 카베시의 커피 예찬) (110)
 
 만일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섬세함에서 온다. 그것은 괴로움에 짓눌려 끙끙거리며 자라나고 좁다란 밀실에서 아른아른 피어난다. 낭만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낭만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지 낭만가객 자신의 몫은 전혀 아니다. (116)
 
 아직도 근육과 정신이 근질거리는 혈기방장의 젊은 나이였다면 나는 아나키스트가 됐을 것이다. (127)
 
 그 안에는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129)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133)
 
 다들 그렇다. 바빠 죽겠다면서 고독에 치를 떤다. 일감에 숨이 막힌다면서도 마치 나의 음악처럼 각자의 한가 속으로 도망치고 침몰한다. 그게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 아니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이다. (143)
 
 공간이 사람이다. 공간의 구성과 외양은 그 사람과 정확히 일치한다. (162)
 
 읽기 싫은데 책을 읽고 듣기 싫은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건만 계속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이 인생에 있다. ~ 그것이 비가역이고 불가역이며 다른 말도 팔자고 숙명이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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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과 크레테 -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의 동화
발터 뫼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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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묘하도다, 미묘하도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복잡하지만 동화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묘한 동화, 익히 알고 있던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가 이처럼 변주되어 나타나다니. 단순히 재밌는 동화라고 하기에도, 이런 식의 동화는 뭔가 이상하다고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요상한 동화. 게다가 속지에 속속들이 그려져 있는 적절하지만 음침한 동화그림들이 풍겨주는 분위기라니….심지어 겉표지의 안쪽까지 각인되어 있는 동화 속 배경의 풍경이라니….
 
 "숲 속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우리를 못 보는 곳으로 말이야. 거기서 나무 위로 올라갈래. 딱 한 번만!"
 "그건 금기사항이야."
 "그래, 그러니까 바로 그게 '재미'지!"  (29)
 
 발단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딱 한 번만'!이라는 유혹과 '재미'라는 사탕발림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여기서 잠깐, 지은이의 표현법을 빌어 '미텐메츠식 여담'으로 말하자면 - 그러니까 이 말은 글쓴이가 이야기 속으로 직접! 개입하여 중간중간에 작가로서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 나, 역시 지은이의 글에 그처럼 쏘아주고 싶다. 왜 이렇게 이야기를 힘들게 하느냐고, 그냥 옛동화를 비트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사사건건 책 속에 등장하는 지은이의 수다가 나는 크게 맘에 드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지금 문제는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야지. 작가가 서술의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혹시 아시는지? 알 리가 없지. 단순 소비자가 그걸 어찌 알겠는가? 여러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서점에 다녀오는 것으로 끝났다. (39)
 
  세상에나, 어떤 작가가 함부로 독자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으랴. 지은이의 여담은 단순한 여담을 넘어 도전으로까지 다가온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우리는 다시 이야기 속으로 돌아간다.
 
 '큰숲'에서 길을 잃은 오누이 난장이 '엔젤과 그레텔'의 발길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보아오던 동화의 틀을 뛰어넘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알록곰,땅꼬마도깨비, 이파리늑대, 냉혈왕자, 개암나무 마녀, 옥수수 여편네, 우주에서 온 웅덩이, 검은 난초, 별 감탄이…. 헥헥 너무 많아 다 옮겨 적지도 못하겠다. 여기서 또 '미텐메츠식 여담'을 하자면…뭐, 이런 온갖 요정 아류들을 그러모아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소설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지은이는 믿는 것이겠지...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이 책을 들고는 뭐라고 할까.에그,무서워라...정도? 하하하.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하지 말자!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는 동안, 엔젤과 크레테는 서늘한 그늘에 덮인 숲의 와로움에 에워싸였다. 걷느니 신음이요, 나오느니 한숨이었다. 숲은 비밀스런 방식으로 모든 소리를 더 의미있게 만드는 듯했다. (35)
 
 여담처럼 심하게 말하곤 하였지만 보시다시피 지은이의 글솜씨 또는 글맛은 아주 좋다. 아마도 원어로 이 글을 읽는다면 지금 느끼는 재미의 두 배는 더 얻을 수 있을게다. 번역자가 세심하게 옮겨놓았겠지만 그래도 원작의 글맛은 다 반영될 수 없는 법이니까. 하여 우리는 이 소설을 단순한 동화를 넘어 판타지 혹은 소설 속 소설 그 너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눈에 띄는 구절들은 동화 속 이야기 못지 않게 지은이가 '미텐메츠식 여담'으로 들려주는 속마음들이다.
 
 특히 '여담'중에 지은이가 정확하게 짚어주는 작가가 갖추어야 할 '7가지 덕목'은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일곱 가지 기본 덕목
 1. 두려움 : ~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자극이 없어 나태해진다.
 2. 용기 :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문학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위험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필요하다.
 3. 상상력 
 4. 오름 : 오름은 무아지경이자 불꽃이다. 
 5. 의심 : 문학의 토양이며 이탄이자 비료다.
 6. 거짓 : 진실을 말로 표현하려는 의도 자체가 허위다. 
 7. 무법성 : 작가는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40~42)
 
 책을 읽으며 만나는 갖가지 양념같은 맛들에 대하여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으련다. 읽어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그런 글맛이니까. 하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런 문장들은 함께 즐기고싶다. 우주를 건너온 물 웅덩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니…. 지은이의 상상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난 호수야. 하지만 언제나 호수였던 건 아니야. 옛날에는 유성,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거대한 얼음 조각이었지. 난 너에게 내 추억을 보여줬어. 우주 비행, 그리고 이 행성에 추락한 내 경험도. 고맙다고 하는게 어때? 유성의 추억에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외롭긴 했어. 모든 일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니까. 그 대신 경치는 아주 좋았지. 우주와 주변 경치….. 지금은 그저 외롭기만 해.  (149)
 
 세상사 어떤 이가 외롭지 않으랴만 우주를 건너온 물 웅덩이가 느낄 고독에 비견할 만한 스케일이 또 있으랴. 그러나 외로워도 길은 건너야하고 이야기는 끝나야 하는 법. 마침내 마녀의 집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오누이, 엔젤과 크레테의 발길은 가벼웁다. 그래 이제부터 '작은 동물로 가죽 모자를 만들거나 수프를 끊이는 일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금지'(269)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놀라운 이야기의 변주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 '딱 한 번만!'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 다시 한 번 '미텐메츠식 여담'으로 말해볼까나. 뭐, 처음만난 지은이의 글이 이 정도이면 앞으로도 또 만나볼만하군. 그렇지, 이야기와 이야기 속에서 들려오던 당신의 목소리가 벌써 그리워지겠군, 하지만 이 사람아, 아니, 이 작가님아…그래도 난 너무 어지러워…. 앞으로는 조금씩만 비틀어줘요…. '큰숲'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도록 말이야.....
 
 "난 우리 관계가 자랄 수 있다는 걸 알아. 그래, 더 깊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어." (숲에서 만난 트롤이 오누이에게) (158) 
 
 
2009. 7.25. 밤, 참, 웃기도 많이 웃었답니다.^^*
 
들풀처럼
*2009-166-07-18
 
*冊에서 옮겨두다
 
 두 장의 책 표지 사이에 완벽하게 묶여 있는 모국어를 보면 작가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42)
 
 "마녀는 언제나 자작나무들 사이에 있다." (45)
 
 작가란 사물의 본질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외양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표면을 조심스레 더듬어봐야 가능하다. (50)
 
 우리는 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배우게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가? ~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멍청해지거나 문학평론가가 될 테고.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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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와 싸우지 않고 지내는 법 - 화내고 대들고 숨기는게 많아진
리사 보에스키 지음, 박미경 옮김 / 웅진리빙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화내고 대들고 숨기는 게 많아진" [사춘기 아이와 싸우지 않고 지내는 법]이라는 긴 제목에 끌려 만난 책이었다. 랑딸의 나이, 오늘로써 드디어 열 세살, 만 12살의 끝을 보내고 생일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전부터 부쩍 커지는 키와 함께 그만큼 늘어가는 화냄에 놀라 이 아이를 어찌 잘 키울까 고민하다 덥석 이 책에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이것 참...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임상심라학자이자 미국 최고의 10대 심리 전문가'이다 보니 책은 꼼꼼하게 씌어져 있슴에도 단 하나의 우리나라 사례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책에는 꽤 많은 사례들이 등장하고 그 사례들을 추스려 이야기가 전개되고 부모들이 해야할 지침들이 도출되는데 아무래도 미국의 사춘기이다보니 내가 생각한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 생활에 이르는 우리네 어린 사춘기랑은 차이가 많아보인다. 오히려 우리나라라면 고교생활에서 대학교 1,2학년까지 이어질 그런 어른스러운 고민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참 괜찮은 책이다. 구체적인 사례(CASE)들과 특성, 행동지침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세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지은이의 글에서는 사춘기 아이들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를 어떻게 도우고 이끌어서, 밀어닥친 현재의 문제를 넘어설 것인지에 글의 모든 포인트가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명확하게 짚어주고 들어간다.
 
 나쁜 행동을 저지르는 아이를 어떻게 도울까?
 · 아이에게 자기 행동의 책임을 지워라
 · 태도를 명확히 하고, 공동전선으르 펼쳐라
 · 부정적인 태도나 부정적인 행동을 사사로이 받아들이지 마라
 · 전략적으로 지휘, 감독하라
 · 친사회적 행동을 권장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단념시켜라
 ·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라
 · 커뮤니티를 활용하라
   ("1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내 아이"에서) (79~82. 첫 문장만 인용)
 
 책은 아이들의 반항과 불안,강박증 등의 정신적인 부분을 주로 다룬 1부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이해력 졀핍 등의 신체적 질병이 의심되는 아이들에 대한 2부로 먼저 나뉘어진다. 그리고 자해, 자살, 약물,술 중독 등의 나쁜 길로 빠져드는 아이들에 대한 대처방안을 3부에서 이야기하고 4부에서 "사춘기 부모가 꼭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 번에 다 읽고 던져두는 책이 아니라 마치 사전처럼 곁에 두고 그 때 그 대 찾아 보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가이드 북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앞서도 얘기한 바처럼 전적으로 미국의 사례와 실상이기에 편집판을 추가하거나 별책부록으로 국내의 상황에 맞는 사례들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들의 연락처가 더해진다면 사춘기 아이들을 둔 가정용 바이블로 활용가치가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질 수록 어버이로서의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 우리 아이들이 주변환경으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지 않으며 스스로 튼튼하게 잘 커나가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이리라. 하지만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어 걱정은 쉬 줄어들지 않는다. 어제 밤 뉴스에도 초등학생끼리 다투다 한 아이가 숨졌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가 등장하였다.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사춘기의 아이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돌봄에 이 책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가 힘들면 그 가족도 함께 고통 받는다. 다행히 정신 건강 장애는 치료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치료를 서두를수록 더 빨리, 더 잘 회복된다. 안타깝께도 아픈 10대 중 80%가 증상에 대한 치료를 전혀 받지 못한다.   ~ ADHD, 우울증, 양극성 기분장애, 섭식 장애, 불안 장애, 물질 남용 등 이 책에서 살펴본 여러 증상으로 고통받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식단만 바꾼다고 심장병을 치료할 수 없는 것처럼, 정신 건강 장애에 대해 약물만 투여한다고 완치할 수는 없다. 약물 치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화를 조절하며 부모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등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대화 치료법을 병행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4부 사춘기 부모가 꼭 알아야 할 몇 가지"에서) (328)
 
 꽤 긴 인용이지만 아이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은 그만큼 중요하고 빨라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실히 깨닫는다. 결국 모든 치료는 '가족 중심의 치료'가 되어야 하며 이러한 '가족 관계가 정신 건강에 중요한 요소'(336)임은 당연한 일이다. 하여 우리는 아이의 어버이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줘라
 ·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
 ·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라
 · 성공의 정의를 확대하라
 · 자녀의 재능을 살려줘라
 · 그들에게 중요하다면, 당신에게도 중요하다
 · 실수도 삶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하라
 · 다른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라
 · 좋은 일에 열렬히 축하해줘라
 ·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줘라
 · 힘들 때일수록 더욱 사랑해줘라
 · 괴롭히고 놀리는 것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
   ("4부 사춘기 부모가 꼭 알아야 할 몇 가지"에서) (376~380. 첫 문장만 인용)
 
 그리고 지은이가 들려주는 '아이와 효과적'인 '소통'방법은 역시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주는 것과 아이에게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하'는 것이다. 더 줄이면 한마디로 잘 '듣기'이다. 최근에 나도 겪고 있지만 아이가 말을 꺼내어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중간중간에 짜르고 들어가면 아이가 화를 낸 적이 여러 번 있다. 지은이는 '10대가 말문을 열면,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마라'라고 얘기한다. 어떤 일을 미루더라도 아이가 입을 연 그 순간은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중요한 기회이므로 절대, 놓치지 말고,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듣고' 행동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누차 강조'하는 지은이는 이 책이 '험난한 여정'을 '헤쳐 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400)  마땅히 우리는 그렇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사춘기 아이의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이자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이므로 우리도, 내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에게도 조금씩이나마 더 관심을 기울이며 생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와 어버이 사이에 존재해야할 최선의 교육방법에 대하여는 이미 슈바이처 박사님께서 친절히 일러두셨으니 우리는 그대로 따라만 하면, 좀 더 쉽게 아이랑, 사춘기라는 이 험난한 시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배운다
  본보기를 통해
  본보기를 통해
  본보기를 통해

  - 앨버트 슈바이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

(생일 카드 봉투 뒷면에 이렇게 인쇄 되어 있답니다.)


 

 
 
2009. 7.18. 랑딸, 생일 축하한다! 아빠는 언제든 너를 믿는단다.^^*
 
들풀처럼
*2009-16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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