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과 크레테 -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의 동화
발터 뫼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미묘하도다, 미묘하도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복잡하지만 동화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묘한 동화, 익히 알고 있던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가 이처럼 변주되어 나타나다니. 단순히 재밌는 동화라고 하기에도, 이런 식의 동화는 뭔가 이상하다고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요상한 동화. 게다가 속지에 속속들이 그려져 있는 적절하지만 음침한 동화그림들이 풍겨주는 분위기라니….심지어 겉표지의 안쪽까지 각인되어 있는 동화 속 배경의 풍경이라니….
 
 "숲 속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우리를 못 보는 곳으로 말이야. 거기서 나무 위로 올라갈래. 딱 한 번만!"
 "그건 금기사항이야."
 "그래, 그러니까 바로 그게 '재미'지!"  (29)
 
 발단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딱 한 번만'!이라는 유혹과 '재미'라는 사탕발림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여기서 잠깐, 지은이의 표현법을 빌어 '미텐메츠식 여담'으로 말하자면 - 그러니까 이 말은 글쓴이가 이야기 속으로 직접! 개입하여 중간중간에 작가로서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 나, 역시 지은이의 글에 그처럼 쏘아주고 싶다. 왜 이렇게 이야기를 힘들게 하느냐고, 그냥 옛동화를 비트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사사건건 책 속에 등장하는 지은이의 수다가 나는 크게 맘에 드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지금 문제는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야지. 작가가 서술의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혹시 아시는지? 알 리가 없지. 단순 소비자가 그걸 어찌 알겠는가? 여러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서점에 다녀오는 것으로 끝났다. (39)
 
  세상에나, 어떤 작가가 함부로 독자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으랴. 지은이의 여담은 단순한 여담을 넘어 도전으로까지 다가온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우리는 다시 이야기 속으로 돌아간다.
 
 '큰숲'에서 길을 잃은 오누이 난장이 '엔젤과 그레텔'의 발길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보아오던 동화의 틀을 뛰어넘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알록곰,땅꼬마도깨비, 이파리늑대, 냉혈왕자, 개암나무 마녀, 옥수수 여편네, 우주에서 온 웅덩이, 검은 난초, 별 감탄이…. 헥헥 너무 많아 다 옮겨 적지도 못하겠다. 여기서 또 '미텐메츠식 여담'을 하자면…뭐, 이런 온갖 요정 아류들을 그러모아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소설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지은이는 믿는 것이겠지...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이 책을 들고는 뭐라고 할까.에그,무서워라...정도? 하하하.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하지 말자!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는 동안, 엔젤과 크레테는 서늘한 그늘에 덮인 숲의 와로움에 에워싸였다. 걷느니 신음이요, 나오느니 한숨이었다. 숲은 비밀스런 방식으로 모든 소리를 더 의미있게 만드는 듯했다. (35)
 
 여담처럼 심하게 말하곤 하였지만 보시다시피 지은이의 글솜씨 또는 글맛은 아주 좋다. 아마도 원어로 이 글을 읽는다면 지금 느끼는 재미의 두 배는 더 얻을 수 있을게다. 번역자가 세심하게 옮겨놓았겠지만 그래도 원작의 글맛은 다 반영될 수 없는 법이니까. 하여 우리는 이 소설을 단순한 동화를 넘어 판타지 혹은 소설 속 소설 그 너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눈에 띄는 구절들은 동화 속 이야기 못지 않게 지은이가 '미텐메츠식 여담'으로 들려주는 속마음들이다.
 
 특히 '여담'중에 지은이가 정확하게 짚어주는 작가가 갖추어야 할 '7가지 덕목'은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일곱 가지 기본 덕목
 1. 두려움 : ~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자극이 없어 나태해진다.
 2. 용기 :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문학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위험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필요하다.
 3. 상상력 
 4. 오름 : 오름은 무아지경이자 불꽃이다. 
 5. 의심 : 문학의 토양이며 이탄이자 비료다.
 6. 거짓 : 진실을 말로 표현하려는 의도 자체가 허위다. 
 7. 무법성 : 작가는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40~42)
 
 책을 읽으며 만나는 갖가지 양념같은 맛들에 대하여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으련다. 읽어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그런 글맛이니까. 하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런 문장들은 함께 즐기고싶다. 우주를 건너온 물 웅덩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니…. 지은이의 상상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난 호수야. 하지만 언제나 호수였던 건 아니야. 옛날에는 유성,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거대한 얼음 조각이었지. 난 너에게 내 추억을 보여줬어. 우주 비행, 그리고 이 행성에 추락한 내 경험도. 고맙다고 하는게 어때? 유성의 추억에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외롭긴 했어. 모든 일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니까. 그 대신 경치는 아주 좋았지. 우주와 주변 경치….. 지금은 그저 외롭기만 해.  (149)
 
 세상사 어떤 이가 외롭지 않으랴만 우주를 건너온 물 웅덩이가 느낄 고독에 비견할 만한 스케일이 또 있으랴. 그러나 외로워도 길은 건너야하고 이야기는 끝나야 하는 법. 마침내 마녀의 집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오누이, 엔젤과 크레테의 발길은 가벼웁다. 그래 이제부터 '작은 동물로 가죽 모자를 만들거나 수프를 끊이는 일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금지'(269)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놀라운 이야기의 변주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 '딱 한 번만!'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 다시 한 번 '미텐메츠식 여담'으로 말해볼까나. 뭐, 처음만난 지은이의 글이 이 정도이면 앞으로도 또 만나볼만하군. 그렇지, 이야기와 이야기 속에서 들려오던 당신의 목소리가 벌써 그리워지겠군, 하지만 이 사람아, 아니, 이 작가님아…그래도 난 너무 어지러워…. 앞으로는 조금씩만 비틀어줘요…. '큰숲'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도록 말이야.....
 
 "난 우리 관계가 자랄 수 있다는 걸 알아. 그래, 더 깊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어." (숲에서 만난 트롤이 오누이에게) (158) 
 
 
2009. 7.25. 밤, 참, 웃기도 많이 웃었답니다.^^*
 
들풀처럼
*2009-166-07-18
 
*冊에서 옮겨두다
 
 두 장의 책 표지 사이에 완벽하게 묶여 있는 모국어를 보면 작가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42)
 
 "마녀는 언제나 자작나무들 사이에 있다." (45)
 
 작가란 사물의 본질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외양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표면을 조심스레 더듬어봐야 가능하다. (50)
 
 우리는 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배우게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가? ~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멍청해지거나 문학평론가가 될 테고.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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