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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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자. 이런 冊, 재미있게 읽고 좋은 이야기들도 넘쳐나지만 나는 싫다. 지은이의 작업실 이야기에 120% 공감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실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리츄얼에도 공감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는 열등감, 커피를 나도 좋아하지만 지은이가 들려주는 열정에는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등등 이 책을 재미잇게 읽고 즐기면 즐길수록 다가오는 나는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으리라는 느낌. 어찌 이 책을 내가 좋아할 수 있으랴. 
 
 그것은 리추얼(ritual)이다. 절차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적 행위, 즉 문화행위라는 뜻이다. ~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재배치되는 ~ 커피 따위를 갖고 왠 호들갑이냐고 비웃는 친구야. 그럼 네게 중요한 일은 뭐니? 재테크니? 민족 통일과 세계평화니? 킁. (74)
 
 그래, 세상 사는 일이 어떻게 자로 잰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랴. 조금 여유가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아도 자신이 몰두하는 한가지에 지은이처럼 미쳐버린다면 그 경지만으로도 무언가 얻을 것은 있는 법이다. 지은이는 옛날음반(LP) 3만여장에 CD 4천여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음악광!!!이다. 아니, 음악광의 단계를 넘어서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레벨이다. 건물 지하 37평을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 음악과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줄라이홀'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여유라니....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보니 단순히 사람 이름을 붙였다는 그 쿨함이라니.....
 
 "어, 그럴까? 오늘 줄라이가 왔네. 그럼 앞으로 줄라이홀이라고 부르지 뭐."(44)
 
 책을 통하여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업실이 필요한 까닭이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위무해야할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지은이에게는 커피와 음반과 오디오에 대한 예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내용들이 어쩌면 너무 사치스럽거나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꺄진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 '회사원 생활'(19)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작업실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업실의 의미를 얼마만큼 준수할 수 있을까? 그 기준에 맞출 수는 있는걸까?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 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경탄을 위해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지, 그 일상을 말해야 한다.  실은 나 자신이 언제나 내 작업실의 방문객이다. 문을 열고 발을 디디는 순간 탄성과 탄식, 감동과 회한, 그런 감흥이 일지 않으면 그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업은 추억의 공간이다. 당장의 한순간이 추억의 시간이다. 작업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추억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28)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이 그날의 날씨다. ~
 또 하나 결별해야 할 것이 소리다. ~
 아울러 결별해야 할 것이 햇살이다. ~ (32)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러한 나만의 작업실을 마련할 것인가? 설사 마련한다 하여도 제대로 활용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저 지은이의 흉내만 낸다, 그리고 또 좌절한다. 물론 날마다 좌절하지만 날마다 다시 일어선다. 나에게, 작업실은 물론 없다. 4인 가족에 방 3 개, 어디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하여 겨우겨우 숨을 공간을 만든 것이 거실이다. 거실에 있던 TV를 치우고 거의 모든 벽면을 책꽂이로 도배하고 2000여권의 책으로 감싸안았다. 다 진열할 수 없는 책들은 별도 박스에 보관하여 베란다에 재어놓았다. 그리고 밤 깊은 새벽녘에야 거실에 나선다. 가족들도 모두 잠든 시간, 그때는 당연히 '캄캄'하고 '날씨'도'소리'도'햇살'도 피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작업실의 조건을 겨우 흉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만의 작업실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은이의 글을 읽고 즐기면서도 그 생활을 싫어하는 까닭이다. 지은이의 생활 끝자락이라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처럼 태생이 한 곳에 몰두하여 미치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의 생활이, 다 이룬듯 보여 스스로 '불쌍'해질 수 없다는 그 생활이 부럽다못하여 싫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그래, 지은이의 말처럼 '마음만 젊으면, 마음만 젊으면 무엇이라도!'(50) 못하랴. 게다가 그처럼 '남의 글 떠올리며 생각의 단서가 풀려나가는 것도 병인 것 같다.'(39) 나도 그렇다. 그에게 '아내의 책이 내게는 음악'(195)인 것처럼 내게는 책이 그의 음악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하여 나처럼 질투하고 시새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새로운 경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분도 있으리라.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만난 속시원한 詩 한 편 옮겨본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리니…..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전문  (117)
 
 책 속에는 커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에서부터 심오한 원두커피의 더 깊은 곳까지, 음악, 특히 클래식의 기초부터 전반적인 흐름까지, 오디오의 어마어마한 세계까지 많은 상식과 지식이 등장한다. 그 지식만으로도 본전은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마냥 부러워만 할 것인지 흉내라도 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 결정은 여러분의 몫이리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부터 그저 차근차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2009. 7.26. 밤,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 '내부가 그립'(133) 습니다.
 
들풀처럼
*2009-167-07-19
 
 
*冊에서 옮겨두다
 
 땀꾸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이 가능하다는 꿈을 말하고 싶다. (7)
 
 꿈은 도시 탈출이었고 정착점은 작가 생활이었다. (13)
 
 이 순간의 점점에 머무르듯 살아가는 거다.  이 순간 이전과 이 순간 이후의 지루한 인과의 법칙과 응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거다.  이 순간 점점의 끄트머리에서 칼처럼 살아가는 거다. 저지르자! 암, 저지르고말고. (13)
 
 한자에 '졸(拙)'이 있고 '박(薄)'이 있으니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그게 되지 않는다. 좋박이 되지 않는, 과잉으로 넘쳐나는 성정이 화근이다. (36)
 
 매력없고 상스러워진 사람의 피난처, 그곳이 지하실에 꾸미는 작업실 공간이다.(39)
 
 아파트 위 아래 층 이웃들의 끝없는 항의로부터 탈출해서 집밖 어딘가에 음악 감상실을 만들고자 한다면 첫째 높은 천장, 둘째 완벽한 방슴, 셋째 가능하면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 지하실을 찾아야 한다. (41)
 
 욕심 없고 절제하는 태도, 그것이 고매함이다. 할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충분한데 사양하는 것, 그래, 그것이 고매함이다. 고매, 그 빛나는 광채 곁으로 다가가고만 싶은데 내게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45)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 (78)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훨씬 열심히 공들여 청소한다는 것. 실내의 때깔이 달라지는 비법이 그거였다. (91)
 
 공지영이 그렇게 썼었다. "슬퍼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도 죄스러워지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저물녘 강변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는 청춘기를 보냈다"고. 나도 그랬었다. (97)
 
 혼자서 하염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사람 없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람처럼 사는.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원두를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 지금 줄라이홀은 혼자를 견디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 집에 들른 지 너무 오래됐다. (98)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튀르크 카베시의 커피 예찬) (110)
 
 만일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섬세함에서 온다. 그것은 괴로움에 짓눌려 끙끙거리며 자라나고 좁다란 밀실에서 아른아른 피어난다. 낭만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낭만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지 낭만가객 자신의 몫은 전혀 아니다. (116)
 
 아직도 근육과 정신이 근질거리는 혈기방장의 젊은 나이였다면 나는 아나키스트가 됐을 것이다. (127)
 
 그 안에는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129)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133)
 
 다들 그렇다. 바빠 죽겠다면서 고독에 치를 떤다. 일감에 숨이 막힌다면서도 마치 나의 음악처럼 각자의 한가 속으로 도망치고 침몰한다. 그게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 아니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이다. (143)
 
 공간이 사람이다. 공간의 구성과 외양은 그 사람과 정확히 일치한다. (162)
 
 읽기 싫은데 책을 읽고 듣기 싫은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건만 계속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이 인생에 있다. ~ 그것이 비가역이고 불가역이며 다른 말도 팔자고 숙명이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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