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이런 冊, 재미있게 읽고 좋은 이야기들도 넘쳐나지만 나는 싫다. 지은이의 작업실 이야기에 120% 공감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실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리츄얼에도 공감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는 열등감, 커피를 나도 좋아하지만 지은이가 들려주는 열정에는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등등 이 책을 재미잇게 읽고 즐기면 즐길수록 다가오는 나는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으리라는 느낌. 어찌 이 책을 내가 좋아할 수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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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리추얼(ritual)이다. 절차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적 행위, 즉 문화행위라는 뜻이다. ~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재배치되는 ~ 커피 따위를 갖고 왠 호들갑이냐고 비웃는 친구야. 그럼 네게 중요한 일은 뭐니? 재테크니? 민족 통일과 세계평화니? 킁.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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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세상 사는 일이 어떻게 자로 잰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랴. 조금 여유가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아도 자신이 몰두하는 한가지에 지은이처럼 미쳐버린다면 그 경지만으로도 무언가 얻을 것은 있는 법이다. 지은이는 옛날음반(LP) 3만여장에 CD 4천여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음악광!!!이다. 아니, 음악광의 단계를 넘어서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레벨이다. 건물 지하 37평을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 음악과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줄라이홀'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여유라니....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보니 단순히 사람 이름을 붙였다는 그 쿨함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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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럴까? 오늘 줄라이가 왔네. 그럼 앞으로 줄라이홀이라고 부르지 뭐."(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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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하여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업실이 필요한 까닭이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위무해야할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지은이에게는 커피와 음반과 오디오에 대한 예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내용들이 어쩌면 너무 사치스럽거나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꺄진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 '회사원 생활'(19)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작업실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업실의 의미를 얼마만큼 준수할 수 있을까? 그 기준에 맞출 수는 있는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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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 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경탄을 위해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지, 그 일상을 말해야 한다. 실은 나 자신이 언제나 내 작업실의 방문객이다. 문을 열고 발을 디디는 순간 탄성과 탄식, 감동과 회한, 그런 감흥이 일지 않으면 그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업은 추억의 공간이다. 당장의 한순간이 추억의 시간이다. 작업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추억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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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 |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이 그날의 날씨다. ~ |
또 하나 결별해야 할 것이 소리다. ~ |
아울러 결별해야 할 것이 햇살이다. ~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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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러한 나만의 작업실을 마련할 것인가? 설사 마련한다 하여도 제대로 활용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저 지은이의 흉내만 낸다, 그리고 또 좌절한다. 물론 날마다 좌절하지만 날마다 다시 일어선다. 나에게, 작업실은 물론 없다. 4인 가족에 방 3 개, 어디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하여 겨우겨우 숨을 공간을 만든 것이 거실이다. 거실에 있던 TV를 치우고 거의 모든 벽면을 책꽂이로 도배하고 2000여권의 책으로 감싸안았다. 다 진열할 수 없는 책들은 별도 박스에 보관하여 베란다에 재어놓았다. 그리고 밤 깊은 새벽녘에야 거실에 나선다. 가족들도 모두 잠든 시간, 그때는 당연히 '캄캄'하고 '날씨'도'소리'도'햇살'도 피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작업실의 조건을 겨우 흉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만의 작업실을 가져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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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지은이의 글을 읽고 즐기면서도 그 생활을 싫어하는 까닭이다. 지은이의 생활 끝자락이라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처럼 태생이 한 곳에 몰두하여 미치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의 생활이, 다 이룬듯 보여 스스로 '불쌍'해질 수 없다는 그 생활이 부럽다못하여 싫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그래, 지은이의 말처럼 '마음만 젊으면, 마음만 젊으면 무엇이라도!'(50) 못하랴. 게다가 그처럼 '남의 글 떠올리며 생각의 단서가 풀려나가는 것도 병인 것 같다.'(39) 나도 그렇다. 그에게 '아내의 책이 내게는 음악'(195)인 것처럼 내게는 책이 그의 음악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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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하여 나처럼 질투하고 시새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새로운 경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분도 있으리라.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만난 속시원한 詩 한 편 옮겨본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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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
당신이 직접 |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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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는 우리 |
눈도 마주치지 말자 |
- 황인숙, <강> 전문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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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커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에서부터 심오한 원두커피의 더 깊은 곳까지, 음악, 특히 클래식의 기초부터 전반적인 흐름까지, 오디오의 어마어마한 세계까지 많은 상식과 지식이 등장한다. 그 지식만으로도 본전은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마냥 부러워만 할 것인지 흉내라도 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 결정은 여러분의 몫이리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부터 그저 차근차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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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26. 밤,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도 '내부가 그립'(133) 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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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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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7-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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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에서 옮겨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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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꾸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이 가능하다는 꿈을 말하고 싶다.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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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도시 탈출이었고 정착점은 작가 생활이었다.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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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의 점점에 머무르듯 살아가는 거다. 이 순간 이전과 이 순간 이후의 지루한 인과의 법칙과 응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거다. 이 순간 점점의 끄트머리에서 칼처럼 살아가는 거다. 저지르자! 암, 저지르고말고.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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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 '졸(拙)'이 있고 '박(薄)'이 있으니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그게 되지 않는다. 좋박이 되지 않는, 과잉으로 넘쳐나는 성정이 화근이다.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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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없고 상스러워진 사람의 피난처, 그곳이 지하실에 꾸미는 작업실 공간이다.(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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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위 아래 층 이웃들의 끝없는 항의로부터 탈출해서 집밖 어딘가에 음악 감상실을 만들고자 한다면 첫째 높은 천장, 둘째 완벽한 방슴, 셋째 가능하면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 지하실을 찾아야 한다.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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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고 절제하는 태도, 그것이 고매함이다. 할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충분한데 사양하는 것, 그래, 그것이 고매함이다. 고매, 그 빛나는 광채 곁으로 다가가고만 싶은데 내게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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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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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훨씬 열심히 공들여 청소한다는 것. 실내의 때깔이 달라지는 비법이 그거였다. (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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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이 그렇게 썼었다. "슬퍼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도 죄스러워지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저물녘 강변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는 청춘기를 보냈다"고. 나도 그랬었다.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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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염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사람 없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람처럼 사는.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원두를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 지금 줄라이홀은 혼자를 견디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 집에 들른 지 너무 오래됐다.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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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튀르크 카베시의 커피 예찬)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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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섬세함에서 온다. 그것은 괴로움에 짓눌려 끙끙거리며 자라나고 좁다란 밀실에서 아른아른 피어난다. 낭만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낭만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지 낭만가객 자신의 몫은 전혀 아니다.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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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근육과 정신이 근질거리는 혈기방장의 젊은 나이였다면 나는 아나키스트가 됐을 것이다.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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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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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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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다. 바빠 죽겠다면서 고독에 치를 떤다. 일감에 숨이 막힌다면서도 마치 나의 음악처럼 각자의 한가 속으로 도망치고 침몰한다. 그게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 아니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이다.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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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이다. 공간의 구성과 외양은 그 사람과 정확히 일치한다. (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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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싫은데 책을 읽고 듣기 싫은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건만 계속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이 인생에 있다. ~ 그것이 비가역이고 불가역이며 다른 말도 팔자고 숙명이다. (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