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의 무덤 위픽
이하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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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이었다.
카푸치노를 마시고 카페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창밖으로 아주 잠깐 돌렸던 시선이 다시 카페 안으로 향했을 때였다.

" 세상에 당신, 저를 관측한 건가요?"

중장년으로 보이며 어딘가 낯익은 얼굴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다며 시간이 된다면 계속 봐달라는 여자의 말에 누군지 주변에 아는 얼굴과 일치시켜 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손을 덥석 잡히고 흥분된 언어가 진정될 때쯤 자신의 상태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자신의 상태는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관측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양자역학에 파동함수를 이해시키며 최종적으로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하는 복잡한 과학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나를 위한 설명이었다.

5년 전 서울의 모 대학교수가 시간 도양에 대한 이론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비아냥대는 소리가 많았으나 20개월에 걸친 실험 운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며 세계의 눈길이 집중된 가운데 그저께 17차 실험이 운행되었고, 하현서는 자신을 실험에 참여시키고 28시간 만에 주인공에게 관찰되며 존재하게 된 것이었다.

양자역학은 어렵지만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꿈의 실험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확률로 존재하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은 주인공의 실험에 대한 의지와 목적을 생각해 보게 했다.
실패와 성공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는 어디였을까? 수많은 무덤을 만들면서 어떤 마음으로 17차의 실험을 준비했을지 짐작이 가서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었다.
마지막까지 가고자 했던 장소의 의미를 이해하며 과학자에 대한 윤리의식을 보여준 현수의 행동이 기억에 남았고, 실험에 대한 책임을 모두 과학자에게 전가할 수 없는 과학의 현실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관찰자 없이도 확률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존재하고 있다. 성공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선택권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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