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사랑 오늘의 젊은 문학 8
박유경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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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

'가장 낮은 자리''변신을 기다려''손의 안위' 이 세 편은 내 주변 상황들이 생각 나게 하던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가장 낮은 자리'의 주인공은 분양 사무소를 십년 넘게 따라 다니며 숙소 생활하는 지민이 주인공이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업종을 바꾸는게 쉽지 않아, 손님들의 컴플레인, 성희롱, 화풀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을 하는중이었다. 이 날도연식이 오래된 스타렉스를 타고 현장을 돌아다니던 중 갑자기 끼어든 벤츠와 시비가 붙게 되고, 사고가 날까 만류하는 지민의 말은 신경도 안쓰고 자신들만의 기싸움을 벌이는 남자 동료들과의 상황에서 지민이 항상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짐작이 가게 했다. 평소에는 공기중에 뿌려진 사람 취급하지만, 야한 농담을 주고 받을때는 타겟이 되고 은연중에도 지민을 훝는 시선에 거리낌 없는 그들의 태도에 숨이 막힐것 같은 상황이 잘 그려졌다. 문득 같은 자리에 있어도 자신만 한 단계 낮은 자리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은 지민은 자신만의 무기를 손에 쥐며 이야기가 끝난다.

'손의 안위'에 은수도 지민과 비슷한 처지였다. 대출 콜센터 영업왕이 꿈이지만 항상 실적에 압박받고 있었다. 사장이라는 사람은 전화 업무로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몸으로라도 뛰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지민은 통통한 몸을 보며 살만빼면 창구를 맡겨도 될것 같다는 외모 비하 발언을 눈하나 꿈쩍 안하고 면전에서 하는 사람이었다. 이 날도 실적 압박에 지하철에서 대출 명함을 돌리던 중 값 비싼 명품백을 찢긴 여자를 보게 된다. 여자가 알아보기 전 은수가 먼저 가방의 상태를 알게되었으나 좋은 마음을 표현하기도 전에 명품백 만큼이나 반짝 빛나는 외모를 지닌 여자는 은수를 임산부로 오해한것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은수의 몸을 훝어보는 짓을 한다. 마음이 상해버린 은수는 다른 칸으로 서둘려 자리를 옮겼고 결국 가방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한다. 그러다 지하철 앞에서 여자가 먼저 은수에게 다가와 자신의 가방을 훼손한 사람을 안다면 제보해달라고 끈덕지게 달라붙게 되고, 여자의 시선은 은수의 보풀 난 모직 코트안 빨갛고 여기저기 긁힌 자국 가득한 통통한 손을 보고 있다는걸 알아 차린다, 다시 한번 더 상처받은 은수는 여자에게 CCTV나 보라고 말하고 지하철을 벗어난다. 그 길로 편의점에 들어가 먹고 싶은것을 가득 사서 먹고 상처 투성이 자신의 손에 소스를 잔뜩 묻혀 누구의 손인지 모를 손으로 만들며 은수의 손이 완벽해 지며 끝난다.

변신을 기다려 역시 비정규직 시터 알바를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시터 알바를 하며 알게된 아이들을 순수하게 바라보던 주인공이 더이상 어느 아이도 구별할 수 없게 똑같은 아이로 바라보게된 트라우마 과정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비정규직의 현실이 고스라이 녹아져 있어서 요즘 느끼는 여러 감정들과 맞물려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부분이었다.

갑은 느끼지 못하고 을의 입장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게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인승 스타렉스지만 굉장히 갑갑하고 숨막히게 만드는 남자 직원들의 냉담한 태도와 자기들만 아는 코드라며 떠드는 농담, 도로위에서 남자다움을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모습들이 컴플레인하거나 위협하는 손님들의 태도와 다를것 없이 느껴지는 지민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될지 상상이 되어 꽤나 불편한 감정도 함께 느꼈던 부분이었다. 강자에 강하지 못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민이 선택한 작은 무기가 그녀에게 작은 대피소보다 더 큰 안전감을 준것 같아 결말이 명확히 보여지지 않았지만 왠지 사이다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들어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손의 안위에서도 은수는 철저히 을이였고, 반짝 반짝 빛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장한테도 항상 무시당하고 우스깡스러운 옷을 입고 영업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 느껴졌다. 그 외모만 보고 명품백의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범인으로 의심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은수의 손은 전단 명함을 만지고 전하다 생긴 상처인데, 외모 만으로 의심을 받는다는건 정말 억울하고 기가 찬 상황일 것이다. 선의의 마음으로 가방이 훼손되었다고 말하고 싶어도 이미 은수는 이 상황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누구의 손인지 모르게 손을 만들어버리는 은수의 마지막 행동 역시 타인에게 해 끼치지 못하는 주인공만의 통쾌한 결말이지 않았나 싶었다.

7편 소설 대부분이 굉장히 현실적인 소재의 이야기라 공감하고 주인공의 심정이 이입되어 읽을 수 있었다. 특징적이라면 주인공들의 감정 표현과 상황적 표현이 섬세해서 읽다보면 나역시 감정이 굉장히 바닥까지 내려가게 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려놓는 과정이 반복 되어졌는데 덕분에 더 소설적이라고 느끼게 했던것 같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같이 울어주고 싶었던 주인공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단편집이라 굉장히 오래 여운을 남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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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3-09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구 대비 일자리가 남아돌거라는 전망이 있던데, 그건 그것대로 고민이 있겠죠?!

러블리땡 2023-03-10 14:49   좋아요 1 | URL
일자리가 남아돌거란 전망이있군요 오ㅎㅎ 근데 질보다 양만 늘것 같아요 정말 그건 그것대로 고민이 될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