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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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를 유명하게 만든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 전 필자의 두번째 책인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읽고 프랑스의 '사회정의 우선'과 '똘레랑스'에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되었고, 바로 홍세화 씨의 세번째 책인 이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읽게 되었다.

<쎄느강...>이 필자가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쓴 책이라면, <악역...>은 고국인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안'에서 쓴 책이다. 그 점에서 <악역...>이 <쎄느강...>보다 좀 더 구체성과 현실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쎄느강..>에서 일관적이고 뚜렷하게 프랑스 사회의 '사회정의'와 '똘레랑스'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비판한다. 책장을 넘기는 도중 나도 모르게 울컥 우리사회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치솟기도 했다. <악역..>또한 그와 같은 시각의 연장선상으로 한국사회를 해부하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조중동이라는 언론 수구세력들이 보여주는 '앙똘레랑스'의 모습들, 사회귀족층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명사'와 '사회지도층'들의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행동들, 사회정의보다 사회질서를 더 중시하고 있는 정부,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 등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프랑스라는 사회와 비교하며 착실하게 또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끈적끈적한 서글픔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완전한 공화주의가 실현되고 있고, 좌.우익이 적절히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사회정의가 온전히 수호되고 있는,그리고 공교육 또한 부러울 정도로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가 필자가 말하는 프랑스다. 자칫 오해하면 홍세화 씨는 그야말로 골수 프랑스 예찬론자고 악역을 제대로 소화해낸 '악인'으로 비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말그대로 '오해'다. 왜 그런 프랑스라고 해서 문제점이 없겠는가. 필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살았던 프랑스 사회가 완벽하다고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통해 배울건 배우고 깨달을 건 깨닫자는 것이다. 곧 우리 개개인의 의식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똘레랑스를 배우고 우리의 중용과 외유내강의 모습을 되찾는데서 그 해결점의 실마리를 찾아 보고자 한다.

언제나 변화는 '의식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의식전환'을 통해 정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필자의 숨은 뜻이 아닐까 하고 감히 짐작해 본다.그러기 위해 필자는 똘레랑스를 침범하는 것에 대해 단호한 앵똘레랑스를 전제한다. 하지만 앵똘레랑스를 앵똘레랑스라고 단호하게 까발리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악역'이 우리사회에 과연 얼마나 될까. 말미에 갑자기 회의가 드는 건 왜일까. 여기서 나는 지금 악역을 맡고 있는 분들의 깊은 슬픔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필자의 마지막 말을 남기며 다시금 용기를 얻어본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덧붙임) 혹시 이 글을 보시다가 '똘레랑스'가 뭔지 조금이라도 궁금하신 분은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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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 -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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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일주일 전의 나는 전형적인 '야행성 인간'이었다.학교라는 틀 속에 얽매여 있지 않는 요즘 새벽 2~3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책이나 영화를 보며,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밤이 주는 '감성'속에 푹 빠져 아침 늦게나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그런 날은 어김없이 텔레비젼 앞에 앉아 아침겸 점심을 먹어야 했고,오후에나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거나 하루 일과를 시작했었다.그런 하루는 너무 짧게만 느껴졌고,그보다 나태해져 가는 내 모습에 짜증부터 났다.그러면서도 밤일(?)을 멈출 수 없었고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가끔 오른쪽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고 속도 안좋아 망설인 끝에 병원을 찾게 되었고 초음파 검사와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었다.혹시 큰병에 걸린게 아닐까 하고 한동안 걱정했었는데 결과는 역류성식도염과 만성위염이었다.불규칙한 일상에 술까지 마구 퍼마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약국에서 한보따리의 약을 받아오며 내 자신이 참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이게 무슨 꼴이냐는 자조가 앞섰고 '정말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실은 괴롭고 구역질 나는 내시경검사를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몫했다.^^)

그리고 당장 다음 날부터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겨울이라 찬바람에 조깅은 지금 내겐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우선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했고 걷기운동부터 시작했다.잠이 안와도 밤12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고 꼭 새벽 6시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그렇게 맞은 첫 새벽은 어둡고 추워 다소 괴로웠지만 운동후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맞는 아침은 새삼 그지없이 싱그럽고 상쾌한 새로운 세계였다.갑자기 하루가 날 위해 더 길어진 것 같았고,아침 늦게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일어날 때보다 몇 곱절은 활기차고 알찬 하루를 보낼수 있었다.물론 이제 일주일 째인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새벽의 첫 느낌이 너무 좋아 앞으로도 계속 잘 해낼 것을 믿는다.

그러다 어제, 요즘 매스컴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잘 팔리고 있다는 이 <아침형 인간>을 친구를 통해 보게 되었다.공무원시험 교재 외엔 책이란 것에 거의 관심도 없고 읽지도 않는 그 친구가 이 <아침형 인간>을 소장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었고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그리고 이 책을 읽어 본 후 '나의 변화'가 멋진 결정이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고 앞으로 내 나약한 의지를 꽉 붙들어 줄 좋은 책 중에 하나가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이 책에는 '특별함'이 없다.특별한 비법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부터할 거란 생각이 든다.필자도 인정하듯이 이 책에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다.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연다는게 몸과 마음에 더 나아가 '성공'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누가 모르겠냔 말이다.문제는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이다.필자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여러'효과적인 방법'을 반복해서 길게 제시한다.하지만 난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을 전부 고스란히 받아들여 실천에 옮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자칫 반드시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또다른 스트레스가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의 현실과 생활패턴에 맞고 사정에 부합하는 몇 가지만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 책은 충분한 소장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나의 경우, 이 책을 읽고 시끄러운 알람을 없애고 휴대폰 알람을 '새소리'로 바꾼 것과, 자기 전 어떤 일이 있어도 내일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내 자신을 세뇌시키는 건 필자의 조언을 받아들인 셈이다.물론 앞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시간을 가지고 두고 볼 일이다.허나 단언컨데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분명 평범함 속의 '진리'를 읽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知行合一'의 문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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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2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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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깊은 밤, 이불을 덮고 자리에 가만히 누워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 지금 이순간 난 무엇 때문에 숨쉬고 있는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란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나는 대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아...'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과 함께 끝없는 상념 속으로 빠져들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시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난 내 자신을 질책하며 '난 남자고 어엿한 성인이다.'라며 애써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을 부정하기에 바빴다.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 날이 밝으면 바쁜 일상속으로 들어가며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일에 정신을 쏟으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을 보게되었고 현각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매스컴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곤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근데 얼마 전,그 책 첫 장을 넘기고 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벅찬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적막한 밤, 순수하게 나 홀로 나와 대면할 때 흘러내렸던 눈물이 어쩌면 나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성찰'과정 속에서 어김없이 부딪쳐야 했던 '절대자'와 '진리'라는 명제들과 그 과정 속에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던 '종교'라는 문제. 내겐 수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얼키고 설킨 실타래와 같은 것이었다. 집안 큰집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왔지만, 성경을 읽고 몇 년 간 꾸준히 교회를 나가기도 한 기독교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풀지 못했고, 나또한 지금 현각스님인 '폴'이 가졌었던 의문을 끝없이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친구에게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랑 조상님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는데,그럼 그 분들은 다 지옥에 가 있겠네?'라고 했던 물음부터 지금 공부하며 공감하는 '내 것이 소중한 만큼 남 것도 소중하다'는 다원주의적 종교화해의 모습까지. 난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고민하며 가지게 된-체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생각들을 현각스님의 글 속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쁘고 설랬는지 모른다.

우리가 최고의 명문이라고 부르는 예일과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석학이 보장된 부와 명예를 버리고, 또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이별까지 감행하며 가야했던 진리(VERITAS)의 길. 그 진리의 길을 그 외국 스님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선불교에서 찾았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때론 더 한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네 종교생활 모습. 하루하루 서구보다 더 서구화 되기를 갈망하는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하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숭산 스님이 폴에게 던진 첫 질문인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물음은 날 늘 깨어있고 내 자신을 비울 수 있게끔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와 대면하며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통해 신 앞에 겸허해 지고 싶었고, 내가 찾는 하나님은 교회라는 '틀'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수없이 날 괴롭혔던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한가닥의 실을 잡은 느낌이다. 현각 스님처럼 살 순 없지만,또 세상사에 바빠 고요히 내 자신을 만나기 힘들겠지만,2004년 새해에는 겸손하고 편견없이 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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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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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험상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작가의 작품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는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았다고나 할까.(물론 내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인정!) 그 '기대'라는 것은 내게 미처 몰랐던 큰 깨달음이나 진한 감동을 주리라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물론 모든 문학 작품이 그 '기대'에 부응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겐 아직 문학에 대한 그런 '기대'가 남아 있다. 하지만 때론 그런 기대없이 읽어야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책도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이 <'나의 나무'아래서>가 내겐 그랬다.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며 다소 대담하게 첫장을 연다. 요즘 내가 주로 관심을 갖고 보는 책들이 '올바른 교육과 선생'에 관련된 것이었기에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 일본 작가는 어떻게 이 물음에 답할까. 오에 겐자부로 그 스스로 좋은 대답을 찾았다고 자부하고 있어 더욱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 이 문제에 대해 강의시간에 수없이 고민하고 토론해 본 적이 있다.- 있던 모범답(?)과는 많이 거리가 있는 답을 듣곤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명색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작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에 허탈한 심정이었다. '죽은 아이들의 말을 이어받기 위해, 그와 똑같은 말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시켜나가기 위한 언어를 배우기 위해...어느 세상에서나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라고?... 납득하기 힘들다. 난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보다는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실망감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난 좀 더 거창하고 현실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자신이 살아온 추억담,유년 시절의 기억... 약간 삐딱하고 지루한 시선으로 책장을 넘기는 내게 필자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정중한 필치로 이야기를 풀어 나갈 뿐이다. 마치 내 지금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작가에 대해서 윤곽이 조금씩 잡혀가고 있을즈음 내 삐딱한 시선도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싱가포르의 고무공'이야기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을 담담하게 풀어내고,마치 다정다감한 할아버지 한 분이 어렵지만 손자,손녀에게 이야기하듯 교육에 대해, 또 공부에 대해 말한다. '탱크 탱크로'라는 만화 얘기 속에서 어렸을 때의 자신을 반성하며 올바른 윤리적 가치관을 지닌 작가의 모습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오에 그 자신이 도저히 읽어나갈 수 없는 책을 읽을 때 '책을 읽는 나무 위의 집'에서 읽었다고 했는데, 난 속으로 '내겐 지금 읽고 있는 당신 책이 그렇소.나도 나무 위로 올라 갈까요?'라고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책이 끝으로 갈수록 이 작가가 하고자 한 이야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오에 겐자부로라는 한 사람의 성숙된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번민하게 된다면, 그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보는 힘'을 내어보세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부단히 힘을 길러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그 힘은 여러분한테 있습니다.(192쪽)-지금도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하다.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차분하고 정화되는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작가가 처음으로 던졌던 질문인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의 답(?)을 난 공교롭게도 책의 맨 마지막 구절에서 발견하고, 성급하게 판단한 내자신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처음부터 큰 기대없이 담담하게 읽은 책이었기에 내겐 새로운 '희망'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독자분들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말고 <'나의 나무'아래서>를 담담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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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 2005년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문경보 지음, 윤루시아 그림 / 샨티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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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책을 만났다. 흔들리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따스하고 애정어린 시선에 난 새로운 희망을 읽는다.

열등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아이들에게 연극공연을 통해 '너희들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가정 폭력으로 정서불안을 겪고 있는 주영이의 모습,진짜 우정이 무엇인지 보여 준 현수네 반 친구들과 래준이네 반 친구들,뇌성마비 장애를 겪고 있는 준용이의 아름다운 모습,선생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들,공고에 다니고 싶어 가출한 아이들......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한 편,한 편의 진솔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잔잔한 파문으로 내 가슴을 적셔왔다.

특히,실성한 어머니에게서 도망가려는 재호와 함께 선생님이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모습은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목욕탕 안에서 선생님의 등을 밀던 재호가 갑자기 소리내어 펑펑 울기 시작한 후,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의 그 짠~한 느낌은 아마 오랫동안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덥힐 것이다. 제자 앞에서 발가벗고 함께 목욕할 수 있고,또 제자들 앞에서 당당히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선생님. 어쩌면 내가 여태껏 바라고 원해왔던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인 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본 후,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제목이 이 책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이보다 더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표현한 말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제자들이지만 선생님 눈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닌 소중한 한송이의 '꽃'인 것이다. 지금은 많이 아프고 힘겨워 수없이 방황하고 흔들리지만,언젠가는 꼭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어날 제자들인 것이다. 그 아이들 옆에 문경보 선생님과 같은 분이 함께할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희망이 퐁퐁 샘솟는다.

마음 같아선 별 다섯개 만점을 주고 싶지만,지금도 계속해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나가고 있을, 선생님의 또다른 이야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별 하나를 살짝 숨긴다. 그 별 하나의 부족함이 선생님에겐 예쁜 희망이 되길 바라면서. 끝으로,이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나보다 몇 년 먼저 교단에 서게 될 대학동기들에게 곱게 포장해 선물하고 싶다. '모탕'선생님의 희망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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