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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2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고요하고 깊은 밤, 이불을 덮고 자리에 가만히 누워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 지금 이순간 난 무엇 때문에 숨쉬고 있는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란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나는 대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아...'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과 함께 끝없는 상념 속으로 빠져들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시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난 내 자신을 질책하며 '난 남자고 어엿한 성인이다.'라며 애써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을 부정하기에 바빴다.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 날이 밝으면 바쁜 일상속으로 들어가며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일에 정신을 쏟으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을 보게되었고 현각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매스컴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곤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근데 얼마 전,그 책 첫 장을 넘기고 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벅찬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적막한 밤, 순수하게 나 홀로 나와 대면할 때 흘러내렸던 눈물이 어쩌면 나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성찰'과정 속에서 어김없이 부딪쳐야 했던 '절대자'와 '진리'라는 명제들과 그 과정 속에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던 '종교'라는 문제. 내겐 수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얼키고 설킨 실타래와 같은 것이었다. 집안 큰집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왔지만, 성경을 읽고 몇 년 간 꾸준히 교회를 나가기도 한 기독교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풀지 못했고, 나또한 지금 현각스님인 '폴'이 가졌었던 의문을 끝없이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친구에게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랑 조상님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는데,그럼 그 분들은 다 지옥에 가 있겠네?'라고 했던 물음부터 지금 공부하며 공감하는 '내 것이 소중한 만큼 남 것도 소중하다'는 다원주의적 종교화해의 모습까지. 난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고민하며 가지게 된-체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생각들을 현각스님의 글 속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쁘고 설랬는지 모른다.
우리가 최고의 명문이라고 부르는 예일과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석학이 보장된 부와 명예를 버리고, 또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이별까지 감행하며 가야했던 진리(VERITAS)의 길. 그 진리의 길을 그 외국 스님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선불교에서 찾았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때론 더 한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네 종교생활 모습. 하루하루 서구보다 더 서구화 되기를 갈망하는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하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숭산 스님이 폴에게 던진 첫 질문인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물음은 날 늘 깨어있고 내 자신을 비울 수 있게끔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와 대면하며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통해 신 앞에 겸허해 지고 싶었고, 내가 찾는 하나님은 교회라는 '틀'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수없이 날 괴롭혔던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한가닥의 실을 잡은 느낌이다. 현각 스님처럼 살 순 없지만,또 세상사에 바빠 고요히 내 자신을 만나기 힘들겠지만,2004년 새해에는 겸손하고 편견없이 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