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 캠퍼스를 터벅거리며 내려오는 그 어깨가 무거웠다. 재잘거리는 주변의 시선을 부러움으로 둘러보며 그렇게 나는 지하철 역을 향해 걸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시인은 말했다. 어쩌면 그 말은 맞는 것도 같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태어나는 그 순간 나를 가능케 했던 어머니와 분리되는 경험부터 하니까. 나를 남이 아닌 나로 받아들이는 그 일은 어린 아이였던 내게 그다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기까지 필요했던 무던히도 많은 시간들 덕에 난 사람 사귀는 방법을 잊어야만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길 어느 한 자락에서 자신의 인연을 찾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난 나를 감당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야만 했다. 어쩌면 시인은 나와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서는 삶에 대한 달콤함도 씁쓸함으로 점철되어 나온다. 인생의 곳곳에서 분명 웃어야 했던 적도 있었을 법 한데, 그는 그 모든 것을 외로움으로 포장해 토해낸다. 설레이던 기다림이 혼자 남은 상실감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사랑했던 이가 의미없는 주민등록번호만으로 기록되어지고. 내가 사랑을 몰라서 외로웠다면 그는 사랑을 알아서 외로워야만 했다. 내가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애정에 굶주려야만 했다면 그는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에 실패해야만 했다. 비록 이유는 다르지만, 나도 그리고 그도, 우린 모두 세상에 혼자 남겨진 존재였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토록 애타게 부르고 팠던 이름이 입가에 맴돌아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는 부정확한 발음의 뇌성마비 송 씨의 입을 빌어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내뱉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지만 그 그리움은 아픔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아프다고…
이제 겨우 스물 넷. 성공하기 위해선 되도록 앞자리에 줄을 서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말씀하시는 부모님. 그 말씀 따라 난 항상 되도록이면 앞 좌석에 앉으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 앞자리를 가능케 만들었던 많은 이들은 내가 아니었고, 우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남이었고, 난 둘 혹은 그 이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지난 날의 언젠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결국 인생은 혼자여도 된다, 그저 줄만 잘 서면 된다는 식의 가르침에 익숙해져 내 안에 싹트고 있던 외로움의 나무를 보지 못했었다. 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사랑해선 안 된다고 굳게 믿어왔지만, 지금 이 순간은 사랑이 그립고, 또.. 사랑하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혼자일 수 밖에 없을지라도, 나만은 둘 혹은 그 이상이고 싶다고, 지독스럽게도 부정해보고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