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책을 만났을때  아, 이건 내 인생의 책이야 하고 격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책이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이 책은 올해 읽은 책들 중 최고야. 하는 거랑은 좀 다르고(물론 기본적인 재미와 감동은 당연하지만 단지 그것과는 좀 다르게) 이 글을 쓴 사람이 혹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또 다른 나' 로 느껴지는 경우이다.

지금까지 이런 경로로 '내 인생의 책' 이 된 것은 두 권.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  그리고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 이다.

 



 

<드링킹> 에 대해서는 몇번 언급한적이 있는것 같은데, 술과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의 뭐랄까. 삶을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몸부림?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세상에 나만 이런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_-; 그리고 그녀가 겪었던 (술로 인한) 많은 일들에 대한 강한 공감, 그리고 결국 술과 이별하고야 마는 과정의 아픔 같은 것들로, 즐겁지만은 않은 글읽기였었다.


저자인 캐롤라인 냅은 거식증과 알코올중독을 이겨냈으나 2003년 44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러브스토리다.
열정에 대한 이야기고, 감각적 쾌락과 깊은 흡인력, 욕망과 두려움, 타오르는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 강렬함으로 온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도저히 이별을 상상할 수 없는 상대와 작별을 나누는 이야기다. 
(드링킹 p18)

 

 

 


죽기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대단한 책>
내가 요네하라 마리를  알았을때는 이미 그녀가 사망한 후였다. 무슨 이벤트였나 <프라하의소녀시대>를 받고 서평을 썼었는데 그때는 굉장히 좋다거나 하는 느낌을받지 않았던것 같다. 이후 몇권의 책을 지나 이 책에 이르렀다. 나는, 내가 죽음에 이르면 그녀와 비슷하지 않을까,  또는, 그 모습을 닮고 싶다는 희망. 을 가졌던 것같다. 

책은 독서일기와 서평으로 나뉘어있는데 서평도 물론 흥미롭지만 독서일기를 읽으며 그녀가 이제 죽고 없다는 사실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없이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그녀의 성품은  난소암이 재발하여 사실상 아무것도 할수 있는 일이 없다는 진단을 의료진에게 받았음에도 스스로 관련서적들을 탐독하여 그야말로 책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 다소 황당한 일도 저지르지만, 삶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충분히 엿볼 수있다. 미심쩍은 대체의학클리닉에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다가  "저희 치료에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려는 환자는 처음입니다. 치료비 전액을 돌려드릴 테니 이제 오지 마세요."  라는 면박까지 당하는 장면에서는 죄송스럽게도 낄낄 웃기까지했다. 이 에피소드를 썼던 것이 2006년 5월 18일. 그녀가 사망하기 겨우 일주일 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그저 눈물만 흘렀다. 

그렇다. 나는 희망한다. 나 역시 죽기 직전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삶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이길. 그러나, 집착하지는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책들 중 한 권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이 책이 어떻게 내 보관함에 들어있게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흥미로운 책들 한두권을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하는 김에 함께 할 것이있을지 보관함을 열어보았는데 이 책이 거기 있었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 이다. 제목만으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폭풍공감할텐데, 이런부제까지 붙어있다.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 할 때'.

책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책만은 항상 내 곁에 있다. 라고 느껴본 분들이라면 같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 했을때 오직 책만이 위로가 된 경험.

저자는 아내이자, 네 아이를 육아하는 엄마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언니를 암으로 잃고 그 슬픔을 잊고자 이 일 저 일에 자신을 내몰며 삶을 질주한다. 그러길 3년. 쉰살 생일을 맞은 그녀의 남편을 위해 마련한 여행에서 독서의 기쁨을 다시 찾는다. 그 책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였고 시간이 흐르는 것도, 어렵사리 예약한 레스토랑도 잊어버린 채 몰두하여 하루만에 완독해낸다. 다음날, 전날 예약을 놓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선언한다. 앞으로 일년은 독서의 한 해라고. 매일 한권의 책을 읽고 한편의 서평을 쓰겠다고. 

그 무엇으로 삶을 빽빽하게 채워도, 아무리 빨리 달리고 돌아다녀도,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는 없었다.
달리는 걸 멈춰야한다. 모든 일을 멈출 시간이다. 이제는 읽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혼자 책 읽는 시간 p 11)

아무리 남편의 협조가 있었다 해도, 전업주부인 그녀가 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며 매일 한권씩 책을 읽고 서평까지 쓰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다만, 매일 매일, 이것은 내 일이야. 일하고 있는 중이니 방해하지 마세요. 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 나가는 여정. 그 속에서 박탈감과 슬픔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함으로써 더욱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됨을 느끼는 것. 더불어 삶을 더욱 긍정하게 되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나쁜 일이 오더라도 그것이 부담은 될 수 있겠지만 올가미는 아닐 것이다. 책은 삶을, 내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제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인간의 회복 능력의 대가이자 증거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혼자 책 읽는 시간 p 178)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2-05-3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마시고 쓴 페이퍼인데, 술 깨고 다시 읽어보니 급 챙피해져서 비밀글로 돌렸다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열어놓아요. 여전히 부끄럽긴 합니다만. 에라 모르겠다. -_ㅠ

수이 2021-04-30 09:09   좋아요 0 | URL
좋은데요 왜 비밀글로! 그럼 읽지 못할 뻔한!!! :)

moonnight 2021-04-30 13:16   좋아요 0 | URL
어머낫 수연님♡ 9년 전에 썼네요ㅎㅎ; 다정한 댓글 감사드립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