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18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래는 다 말해 드리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촉이 좋은 사람은 어차피 살다 보면 다 알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말씀을 드릴게요. 혹시 귀신 믿어요?

요괴, 이매망량, 이스시, 버닙, 에너지 생명체,

뭐 그런 종류

과연 눈에 보이는 현실이 이 세상의 전부일까? 인간을 비롯한 유기체들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인 걸까? 논리나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우리는 제3의 존재, 즉 귀신, 유령, 정령, 외계인, 괴생물 등등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의심한다. 여러 매체에서 "미스터리" 한 사건들을 자주 다루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감이나 촉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와 생명체가 존재함을 이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 [기이현상청 사건 일지]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조사하고 추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공무원들의 고군분투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온하고 위험하고 수상쩍은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 이른바 기이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이현상청]이라는 정부 조직이 있다. 엄연히 정부 산하에 있는 공무 조직인 이곳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섞여서,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기이한 현상들을 추적하고 문제의 근원을 밝힌 후 해결한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는 것 같았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진 제복을 입은 요원들이 지구 정복을 꿈꾸는 외계인들을 소탕한다는 그 영화처럼, 이 책 속에는 더운 여름, 개량 한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이현상을 해결하는 인간들 혹은 초자연적 존재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 [행정 안내] 금일 오전 11시경에 조사 목적 방문 예정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기이현상청."

단편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에서는 굉장히 낯선 아이스바 하나를 발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비슷비슷한 단팥 아이스바 한 무더기를 들춘 뒤 찾아낸 [사탕 초코]라는 이름의 이상한 아이스바는 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허술했다. 길쭉한 보라색 포장지에 어색한 꿀벌 캐릭터까지.... 더위에 지친 주인공은 이 아이스바가 단종된 제품이고 수집가에게 비싸게 팔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젖어 집 냉장고의 냉동고에 보관해두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눈빛이 형형하고 위압감 넘치는 두 명의 아이스크림 점원이 다투는 꿈을 꾸게 되는 주인공, 깨어난 뒤 너무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기이현상청이라는 낯선 정부 부처에 속한 공무원으로부터 집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 [알라딘]에 나오는 요정 지니는 단지를 건드리는 이의 소원을 들어준다. 욕망을 들어주는 요정과 현대 인공지능 이론이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 아뇨, 전부 잠재되어 있죠. 유전자 속에 말이에요. 몇 세기 전 조상의 영혼이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 있다면, 더 먼 조상의 영혼들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생각해 봐요."

단편 <잃어버린 삼각 김밥을 찾아서>에서는 대한민국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일루미나티의 존재를 언뜻 보여 준다. 기이현상청에 속한 공무원인 주인공 우모린은 좋게 말하면 호기심 덩어리이고 나쁘게 말하면 바람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린은 초현실적인 존재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만나는 기이한 존재 모두에게 매번 마수를 뻗친다. 이번에도 일을 하다가 만난 비희라는 파충류 인간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녀는 제3광명신제품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고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 놓일 식품을 개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하게 모린을 찾아온 비희는 임상 시험 와중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어 전량 폐기하기로 했던 삼각 김밥이 시장에 풀려버렸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 단세포 생물부터 시작해서 점점 고등 동물로 진화해온 인간의 영혼 속에 그 모든 조상들의 영혼이 압축되어 있지 않을까? 와 같은 재미있는 상상으로 비롯된 것 같은 이야기

" 흙이,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 황토 덩어리가 떨어진 곳에서부터, 냄비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물처럼, 송영이 뒷걸음질을 치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퍼져 가면서. (... 중략) 저게 뭔지는 몰라도, 송영이 지닌 힘으론 죽었다가 깬들 상대할 수 없을 기이현상이란 것만큼은 확실했다."

단편 <마그눔 오푸스>에는 기이현상청 업무를 하청 받아 기이현상을 조사하는 3급 지정기이단체인 명주 영능이라는 중소기업이 등장한다. 이 회사는 전라남도 명주군에 위치해있고 직원이라고는 사장님을 포함해 딱 3명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술 문화 단체를 설립하는 공사 현장에서 토사가 무너지고 장비가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직원 시니와 송영이 조사차 장소로 파견된다. 어둠이 깔릴 때까지 공사 현장에서 잠복하고 있던 직원 송영의 눈에 믿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고 그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흙더미에게 쫓기게 되는데.....

▶ 한 사이비 종교에서 누군가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어둑시니라고 알려진 한국 전통 요괴가 강력한 힘으로 그것을 제압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한계 없는 상상력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대단히 기발한 이야기였던 [기이현상청 사건 일지]. 이 책은 귀신, 정령, 흡혈괴물, 괴현상 등등 영토, 문화,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영적 존재들인 "기이" 가 일으키는 여러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추적하고 해결하는 공무원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딱딱한 직함 뒤에서, 비밀스러운 힘을 가진 채 활약을 펼치는 요원들의 스펙터클한 하루가 펼쳐진다. 실제로 이런 조직이 있어서 뉴스에 내보내지 못할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매우 독특하고 기발한 세계관으로 무장한 소설 [기이현상청 사건 일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찹쌀떡이 목에 걸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

칼에 찔린 채 피 흘리는 아버지

누가 그들을 죽였나

디지털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각자 빛바랜 사진 앨범이 하나 이상은 있다. 어릴 적 사진이 가득 담긴 그 앨범들을 들여다볼 때면 미묘한 감상에 젖는다. 분명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가족이었지만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적도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속 가족의 경우처럼 나도 4남매 틈에서 전쟁 같은 유년기를 보냈는데,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두고 정말 지겹도록 싸웠었던 것 같다. 감정적으로 가깝기에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게 가족이지 않을까? 이 책에 나오는 가족의 서로에 대한 집착과 미움 그리고 오해와 후회 등등을 보고 있는 지금, 나에게 우리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게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든, 조금씩 생겨난 가족 간의 균열이 서서히 비극을 불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굉장히 드라마틱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현실 속 한국 가족의 모습을 반영하여 읽는 내내 내가 마치 책 속 가족 구성원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막말과 폭언으로 서로를 벼랑으로 몰고 가는 이 가족들을 보면서, 이 책이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막장 드라마인가?라고 생각도 했지만 막판에 가서는 정말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한없이 미우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가엾고 그리운 가족들에 대한 심정을 저자가 정말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이 가족의 4남매 중 셋째 딸인 은희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가 일찌감치 이혼을 하고 중학생 아들 정우와 함게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 정숙이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고 그녀를 돌볼 누군가가 필요했던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의 설득으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게 된 은희. 그러나 계산하지 않고 정이 많은 은희의 잘못된 선택이었던 걸까? 질병으로 시달리고 늙어가는 동안, 따뜻하고 관대했던 부모님은 사라지고 없었다. 열등감을 자극하는 부모의 잔소리와 폭언 그리고 본인에게 부모님을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는 다른 형제들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은희는 그만 폭발하고 만다.

한편 다른 형제들도 인생에 닥친 위기들로 몸살을 앓는다. 첫째 딸인 인경은 아들이 음주운전 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큰 보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퇴직금과 인경이 모아둔 돈을 선배 회사에 투자하였고 집엔 땡전 한 푼도 없다. 그런데 부모님은 몇십억 대의 부동산을 셋째 딸에게만 주려고 한다. 둘째 아들인 현창은 잘나가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늙고 병든 부모님을 외면하다시피하고 살았는데 막상 장모님이 아프다고 하니 본인이 모시고 살겠다는 아내의 말에 기가 막힌다. 막내 현기는 연속적으로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후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부모님께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찍힌 후 집을 나와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책의 시작은 찹쌀떡이 목이 걸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 이정숙과 칼에 찔려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버지 김영춘을 동시에 비추며 시작되었었다. 당연히 독자들은 누가 이 부모를 끔찍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시작부터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첫째와 둘째가 부모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공모한 일일까? 아니면 무능력하다고 무시당해온 막내아들이 분노를 누르지 못해 벌인 충동적인 범죄일까? 혹은 이혼을 하고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셋째 딸 은희가 부모의 독설과 폭언에 못 이겨 저지른 일일까? 하고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결국 누가 범죄자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 사랑과 애정이 있었던 자리에 빛바랜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자식이 과연 죽을 때까지도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아끼면서도 서로에게 독설을 하게 되는 가족,, 그 현실적인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낸 책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이었다.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어 마땅한 자
마이클 코리타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폭력과 죽음 앞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치열하고 끈질긴 투쟁 이야기일까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
김리원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넌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는 거야.”

세상에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사연이 존재하는 법. 이 책 [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는 어둡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들려준다. 탄생의 비밀을 품은 채 외롭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 정원 신부부터, 친아버지가 아파트에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장애를 입어 청소년기를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던 미호까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을 것 같은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를 겪어야만 했다. 처음 몇 장 읽었을 땐, 자살 귀의 원혼을 달래어 무사히 이승을 떠나보내는 정원 신부의 멋진 활약을 그린 심령 판타지물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 책은 "자살한 사람들에게선 비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정원은 영매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귀신을 볼 수 있고 그들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몸에 그들을 실을 수도 있다. 특히 자살자들은 정원 신부가 이리저리 피해 다님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그에게 말을 건다. 그들이 그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살아생전 가족이나 지인에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정원을 통해서 그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사실 귀신에게 몸을 빌려준다 하더라도 10초 밖에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별 소용은 없지만, 여러 이유로 안타깝게 세상을 저버린 그들을 외면할 수 없는 신부는 그때마다 몸을 빌려주게 된다.

정원이 귀신과 한 몸이 될 때마다 그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어쨌건 그를 통해 한을 푼 자살 귀들은 원래 갔어야 할 자리, 즉 저승이건 천국이건 그곳으로 가게 된다. 평생 죽은 이들의 끔찍함에 시달려야 한다니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라는 생각이 든 대목이었다. 이렇듯 죽은 이들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사실 정원 신부는 살아있지만 온전히 살아있길 거부하는 한 사람을 몇 년째 돌봐주고 있기도 하다. 8년 전 아버지에 의해서 아파트 5층에서 떨어져 장애를 갖게 된 소녀 미호, 마침 사고 현장에 있었던 정원 신부는 그녀를 외면하지 않고 양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을 써가면서까지 미호를 계속 돌봐준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세상일이라고 누가 이야기했었던가? 사고 당시 친아버지가 미호에게 잘못된 기억을 심어주는 바람에 그녀를 구하려던 정원 신부는 졸지에 성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미호는 자신을 정성껏 돌봐주는 신부의 마음을 하나도 모른 채 평생 그를 증오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 어떤 치료를 하고 그 어떤 수술을 해도 낫지 않았던 미호의 마비 증세. 그러나 마지막 치료라고 생각하고 보낸 미국에서 받은 새로운 기법의 수술로 인해서 미호는 기적적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미호의 치유에 한시름 놓았던 정원은 건강 검진차 찾아간 병원에서 자신이 무려 4가지 암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의 기구한 사연과 비극적인 삶의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범죄를 당하고 정원 신부를 낳은 어머니의 이야기도 그렇고 친아버지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한 미호의 이야기도 그랬다. 소설 전반적으로 짙고 어두운 안개가 깔려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정원 신부가 귀신이든, 산 사람이든, 평생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들을 껴안고 보살펴서 밝은 세상으로 내보내려는 그의 끈질긴 인내심이 느껴졌다. 그의 마음이 통한 걸까? 소설 말미에 이르러, 정원 신부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리면서 거칠고 날카로운 길고양이처럼 정원 신부를 할퀴어대던 미호는 그에 대한 다른 마음을 품게 된다.

사실 좀 힘들고 어려운 책이었다. 심령 판타지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로 흘러가나 했더니.. 결국엔 사랑 이야기로 끝이 났다.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기에 좀 허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의 아픔을 끌어안으려다 본인이 아픈 인생을 보내게 된 정원 신부와 그에 대한 오해로 평생을 보낼 뻔했던 길고양이 미호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연은 굉장히 드라마틱 하고 감동적이었다. 책을 다 읽고 덮고 나니 가슴속 뭔가 묵직한 것이 차오른다. 생판 남을 위해 시간 쓰고 돈 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세상 모든 바보들을 위해, 오늘 밤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려본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성론
김성모 지음 / 피비미디어콘텐츠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근성론]은 30년 넘게 만화라는 분야 한 군데에 그야말로 뼈를 갈아 넣은 장인의 이야기이다. 만화에 인생을 걸었고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우뚝 선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화가의 책이라, 물론 만화라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인생을 먼저 살았고 여러 큰 굴곡을 넘어보기도 한 인생의 선배가 후배들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서 건네는 충고 같기도 하다. 그러나 꼰대가 하는 "라떼는 말이야"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분은 아직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여전히 뜨거운 심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젊은 마음이기 때문!!

글에 전투력을 매긴다면 이 책은 당연히 100%의 지수를 가지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호랑이 기운이 솟는 듯하다.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영양실조에도 걸리는 등 젊은 시절 굉장히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김성모 작가. 그러나 근성 하나로 버텨서 이제는 만화계에서 성공의 산증인이 되었다. 혜안이 있어서 일찍 김성모 사단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팀을 운영하면서 여러 굵직한 만화를 히트시킨 작가.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웹툰에 만화를 올리는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매일 약을 한 주먹씩 먹는 한이 있어도 만화계를 이끌어야 한다는데, 내가 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김성모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본 만화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 슬램덩크, 드래곤 볼, 북두신권 등을 읽으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고 다음 책이 빨리 나오길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었다. 그런데 책 속에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들이 지금 내 눈에 대단히 흥미로워 보인다. 뭐랄까? 그의 작품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회를 깊이 있고 치밀하게 반영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든 사회 문제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반영하는 작품들이야말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런 만화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회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했다. 나는 직접 그 현장에 뛰어들어 취재하고 파헤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회 어두운 면의 아픔, 좌절, 절망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김성모 - 근성론

김성모 작가는 독자들에게 진짜 만화를 보여주기 위해 실질적 취재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소재를 얻기 위해 실제로 어둠의 세계로 잠입했던 일화는 놀라웠다. 사창가로 들어가 취재를 하다가 건달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나가기도 하고, 신세대 털이범의 사연을 얻기 위해 직접 청송 교도소로 달려가 자료를 얻기 위해 징역 수발까지 했다고 하니,,, 그 근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분야이던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비로소 성공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 혹 비난을 받았다고 해도 절대로 자기 그림, 더 나아가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내 그림, 내 작품이 최고라는 신념으로 뻔뻔해져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류'가 형성된다. 항상 '내가 최고다'라고 울부짖어라."

김성모 - 근성로

작가들에게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할 것을 당부하는 대목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요즘의 웹툰 세계는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만큼 실시간으로 평가가 되니, 독자들이나 다른 누군가의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비난이나 평가 때문에 비슷비슷하게 흘러가는 요즘 만화계는 옳지 않다고 말하는 저자. 그는 공격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독자에게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길게 가는 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일반인들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비슷하게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개성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답게 살아도 된다는 용기를 이 책을 쓴 저자에게서 얻은 느낌이다.

책의 제일 뒷면에는 김성모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던 명대사들이 나와 있다. "대략난감" 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와 같은 촌철살인의 표현들이 김성모 작가의 작품 [대털]에서 나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위에서도 얘기했던 신세대 털이범의 이야기, 옥바라지를 해가면서 얻은 귀한 자료를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 [대털]을 지금이라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성론]을 읽고 있자니 예전 그 만화방 시대로 회귀한 느낌이었다. 종이책에 파묻혀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인생을 만화라는 한 분야에 바친 한 남자의 파이팅 넘치는 인생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었다. 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허둥대고 있을 사회 초년생에게도, 혹은 나이가 들어 우울하다고 느끼는 중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순도 100% 전투적인 에세이 [근성론]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