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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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의 취재, 100명이 넘는 취재원, 220권의 취재 노트...

재난이라는 글자 뒤에 가려진 작업자들의

면면을 살려낸 끈기와 집념의 르포르타주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2011년 3월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그 여파로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 쓰나미가 한 마을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것을 보며 엄청난 자연재해에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어난 원전 사고였다. 지진 이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 3, 4 호기가 차례로 폭발했고 수만 톤의 냉각수로도 식힐 수 없는 핵연료가 원자료의 밑바닥을 녹이는, 이른바 '노심 용융'이 발생하고 만다. 사고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km 이내 지역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지역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피난처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원전 사고 수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몰래 버렸다는 등의 짤막한 보도만 있을 뿐 전체적인 사고 수습과 관련된 부분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마도 일본 정부가 원전 사고와 이후 수습에 대해서 철저히 은폐하는 쪽으로 정책을 꾸려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쓴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인 저자 가타야마 나쓰코씨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2019년까지 9년간 원전 현장에 잠입해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까지 인터뷰한 취재원만 1000여명, 취재 노트만 약 220권, 관련 기획 기사만 140회에 달한다고 하니, 진실을 위한 그 노력이 대단하다.

이 책 [최전선의 사람들]에는 방사선에 피폭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고 복구를 위해 피 땀 흘리는 노동자들의 하루를 볼 수 있다. 방호복은 피폭을 100% 막아주지 못하고 푹푹 찌는 더운 여름에 전신 마스크를 쓰고 호흡이 어려운 상태로 일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업자들이 훨씬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가족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최선을 다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반면, 책임자인 정부와 도쿄전력은 진상을 여실히 밝히기보다는 사건 축소에 전전긍긍한다. 심각한 상태를 의미하는 '노심 용융'이라는 단어를 '노심 손상'이라는 단어로 바꿔버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한다. 노다 총리는 "중장기적으로 원전 의존도를 계속 낮춰가겠다고" 주장했지만 대형 건설 회사의 원전 사업 철수를 방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원전 수출을 강행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정부 관리들은 아직까지도 원전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쓴 일지에 따르면, 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즉 작업자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고 본인들은 일회용에 불과하다고 토로한다. 처음에 도쿄전력에서 제공했던 급식과 편의시설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고 7~8차에 이르는 다중 하청 구조 때문에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중간에서 임금을 가로채는 중개업소도 허다하다. 또한 방호복을 입어도 피폭이 되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피폭을 각오하고 수습에 뛰어드는데, 정부가 정한 피폭 기준치를 넘어버리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사망하는 사례가 허다하지만 도쿄전력에서는 그때마다 '피폭과는 무관한' 죽음이라고 말하며 더 이상의 논의를 피하려고 하지만,... 과연 피폭과 상관없는 죽음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혼을 한 가정이 늘어났고 고향을 떠나 피난처를 향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은 일을 두고 부러워하면서도 후쿠시마에서 왔다고 하면 무조건 차별을 하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9년간의 기록 동안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달라진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작업자들의 피폭량은 높고 일본은 아직도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탈원전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부 관리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상황은 어떤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서 조사하고 미리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애써 이룬 공동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비극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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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저승 최후의 날 1~3 - 전3권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아란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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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의 날, 저승은 과연 무사일까?

SF 적 상상력과 민속 신앙에 대한 연구가 만나 본격 저승 판타지가 탄생했다. 누구도 미리 가보지 못해서 당연히 미스터리인 저승 세계가 마치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게 책 속에서 묘사된다. 칼날이 잎처럼 매달린 나무가 자라는 사출산이라는 저승 입구와 삼도천 위를 오가는 열차 그리고 구름 차를 타고 다니는 염라대왕의 비서실장까지, 책 속에서 묘사되는 저승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 모습과 사뭇 달라 보였다. 그러나 망자들이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심판을 받은 후 새로운 삶, 즉 환생을 위해 나아가는 곳이라는 면에서 전통 사료에서 흔히 묘사되던 사후 세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 책은 지난 2019년 <대멸종>이라는 제목으로 줄간된 안전가옥 앤솔로지에 수록된 단편 [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을 장편화한 책이다. 그것도 3권씩이나. 그때와 주제는 비슷하다. 저승을 믿는 신앙을 가진 이승 사람들의 기억 덕분에 존재하는 저승 세계. 만약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사망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책이다. 대단히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제라고 여겨져서 그때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번에 읽은 장편은 훨씬 스펙터클한 장면과 복합적인 인물들 그리고 다양한 저승들이라는 배경이 더해져서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천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호연은 민속학 전문가인 친구 예슬과 함께 알두스라는 별을 관측하러 천문대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알두스 별이 폭발하고 주위가 환해지던 그때, 그들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바로 저승길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칼이 번쩍이는 사출산에 떨어지지만 구조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저승 내부로 도달한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고 바로 수많은 사망자가 갑작스레 발생하면서 저승에 비상이 걸린다. 큰 전쟁이나 돌림병일 때도 그런 경우도 없었기에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비서실장 기영과 저승의 관리들은 대규모 사망자 사태에 대한 진상 파악에 들어간다.

한편, 별이 폭발하는 장면을 본 후 사망했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호연은 알두스 초신성이 붕괴하며 내뿜은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 때문에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망했을 거라는 가설을 세운다. 비서실장 시영은 천문학 전문가들을 모으고 그들의 의견을 수집해 본 결과, 호연의 가설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의견을 교환하던 중,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따라 각각에 맞는 저승행을 가게 된다는 이야기, 즉 저승도 결국 이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호연은 신앙이 소멸되면 저승세계도 함께 없어지지 않겠냐는 또 다른 가설을 떠올린다. 그러한 그녀의 가설은 모두의 두려움과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소수가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저승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위기의식은 팽배해지는데....

3권이라서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지만 페이지 터너라고 할까? 흥미로운 설정과 스릴 넘치는 전개로 책장은 정말 술술 잘 넘어갔다. 특히 현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저승의 모습과 대멸종의 시대가 되는 바람에 더 이상 망자들을 사람으로 환생시킬 수 없어서 갈등을 하는 장면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사실 저승 하면 큰 죄를 저지른 망자를 엄벌에 처하는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모습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현대화된 저승에서는 망자가 스스로 반성하는 시스템을 구현한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마저 방사선으로 죽어버린 탓에 망자들을 방사선이 미치지 않는 물속의 생물, 물고기나 미생물로 환생시키자는 아이디어에서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정말 한계가 없이 뻗어나간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근거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으면서 대책 마련에 힘쓰는 저승 세계의 관리들. 각 분야별 전문가과 함께 논의를 한끝에 저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사망하지 않게 만들거나 생존자들이 저승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된다. 그들은 미래의 생존자들이 저승을 알 수 있도록 경전을 쓰기로 함과 동시에 과거에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신앙의 경우가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신앙이 되살아났을 때 과연 저승 세계로 되살아났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발굴된 북유럽 신앙에 나오는 저승 세계 중 하나인 발할라를 찾아 지도도 없고 GPS에도 없는 저승 간 여행길을 떠나게 되는 비서실장 시영과 호연... 그들은 과연 소멸의 위기에 처한 저승을 구할 수 있을까?

아포칼립스 장르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비장함과 평범한 영웅들이 절망을 이겨내고 세상을 구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즐기고 싶은 독자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동시에 사후 세계를 믿지만 과학 지식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별이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저승 위기 탈출극인 저승 최후의 날, 다양한 독자층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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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 싸인 :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선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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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병원에서

반드시 빠져나가야 한다!

무수히 많은 별똥별이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진다고 가정해 보자.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황홀해할 사람들의 모습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나 만약에 그 별똥별에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보유한 외계 생명체가 섞여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 정복을 노리는 사악한 외계 괴물들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런 SF 적 상상력과 스릴러가 만나 한국형 좀비 스릴러 [ 싸인 :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 탄생했다.

정체도 모르고 막을 방법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공격자가 빠른 속도로 인류를 공격한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K 드라마인 스위트 홈과 킹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썼다는 작가 이선희 씨는 비밀스럽게 지구로 침투하여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평화를 깨뜨려버린 괴물 카리온과 괴물을 이용하여 비밀스러운 생체 실험을 자행하는 단체 그리고 그들에 맞서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던 소녀 박하는 누군가의 각막 기증을 받아 수술에 성공하고 이제 퇴원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병원 내에서는 탄 냄새가 나고 그녀는 미스터리한 검은 존재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박하. 한편, 보안 요원 홍철은 친구 재경을 비롯한 나머지 보안 요원들이 자기만 따돌리고 비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내부자 고발로 병원이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고 소식이 병원 전체에 채 퍼지기도 전에 병원은 폐쇄가 되어버린다.


마치 밀실과 같은 공간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그런데 또다시 타는 냄새를 맡고 검은 존재를 목격하게 되는 박하. 탈출을 시도하던 사람들 중 한 여성이 발작을 시작하고 그녀를 공격하는 괴물이 각막 수술을 한 박하에게만 유일하게 목격이 된다. 별똥별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색채를 구분할 수 없던 사람들은 흑백의 세상, 즉 괴물이 속한 세상에 동화가 되었고 괴물들은 동화인들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카리온이라는 이 괴물들은 검은 촉수를 뻗어 인간들의 몸에 침투하고 괴물들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액체처럼 녹아 웅덩이가 되어버린다.

홍철을 비롯한 보안요원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환자들은 서로 힘을 합쳐 괴물들에 맞선 끝에 그들을 불과 물로 공격하면 잠재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을 비활성 상태로 만들고 탈출구를 찾으면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사람들. 하지만 카리온은 죽지 않았고 오히려 진화하기 시작한다. 동화인들만 공격하던 카리온은 이제 다른 사람들도 공격하기 시작하고, 두려움으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의 탈출을 도와야 할 보안요원들은 오히려 괴물들에게 사람들을 넘겨주는 것 같은데,,, 박하를 비롯한 사람들은 괴물들을 물리치고 탈출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있자니 스티븐 킹 작가의 소설 [미스트] 와 영화 [베놈] 이 떠올랐다. [미스트]에서 미스터리한 공격자에 맞선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와 갈등이 잘 그려져 있는 것처럼 이 책 [싸인: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속에서도 병원에 갇힌 사람들의 밀실 공포와 갈등 그리고 배신이 잘 묘사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더 강력하게 조여오는 괴물들의 공격이 스릴감 있게 표현된다. 영화 [베놈]에서는 인간의 몸에 침투하여 그들을 숙주로 삼아 지구 정복을 노리는 외계 악당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 책에서도 인간을 자양분 삼아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고 진화하는 괴물 카리온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고 SF와 좀비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 일반인의 세계가 빛이라면 그것들의 세계는 어둠에 속합니다. 

동화인은 어떻게 보면 어둠에 떨어진 사람이 되죠.

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카리온도 공격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걸 가능하게 하는 편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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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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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형식이지만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소설 [수상한 중고 상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미치오 슈스케 작가의 작품이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관심이 풍부한, 일종의 치유 소설이었다.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를 찾아다니는 사장 가사사기와 그런 가사사기 뒤를 따라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부점장 히구라시를 보고 있자니, 마치 일본판 셜록 홈스와 왓슨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천재 탐정은 가사사기이지만 사실은 히구라시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독자들만 알고 있는 비밀!

미대를 졸업하고 변변한 직업이 없던 히구라시는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 가사사기의 꾀임에 넘어가 조그만 중고 상점의 부점장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상점에서 일할 생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장사 수완이 없는 히구라시는 매번 험상궂게 생긴 스님이 처분하는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들을 비싼 값에 구매한다. 어떻게 매번 당하는지.... 당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스님을 배려한 처사였던가? 어쨌건 그런 히구라시를 바보 취급 하는 가사사기는 머피의 법칙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며 히구라시에게 인생에 실패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느라 바쁘다.

책 [수상한 중고 상점] 은 비싼값에 물건을 구매해서 싼 값에 파는 조금 이상한 상점이다. 그래서일까? 마치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듯 기묘한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독자들이 보기엔 2% 모자라지만 책 속에서는 자칭 타칭 천재 탐정인 가사사기가 마치 자기의 일인 양 사건에 뛰어든다. 하지만 왕성한 호기심에 비해 가사사기의 추리력은 다소 단순하고 뻔하다. 그러나 이런 가사사기를 추종하다시피 하는 여중생 미나미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진정한 천재 히구라시가 뒤에서 몰래 일을 꾸민다.

" 천재 가사사기가 있기에 나미는 괴로운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갈 수 있다. 나미를 낙담시킬 수는 없다."

책은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계절을 배경으로 하여 4개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봄, 까치로 만든 다리에서는 청동상 방화 미수 사건,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에서는 목공소의 신목 훼손 사건, 가을, 남쪽 인연은 수수께끼의 여중생 미나미와 관계된 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 귤나무가 자라는 절은 히구라시에게 물건을 떠맡기던 험상궂은 스님과 관련된 사건이다. 중고상품만 거래하고 끝내면 될 일을, 이 천방지축 3인조는 굳이 남 일에 개입하고 사건에 휘말리는데....

[봄, 까치로 만든 다리] 물건을 사러 왔다가 손수건을 잃어버렸다며 중고 상점을 뒤지는 한 소년. 그러나 손수건은 결국 찾지 못하고 의혹만 가득하다. 그러자 가사사기는 밤새 발생한 청동상 방화 사건의 범인이 그 소년이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손수건을 찾으러 왔을 거라는 엄청난 (?) 가설을 세우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 한 목공소에서 직원을 위해 한 방에 들어갈 가재도구를 몽땅 사겠다고 연락이 온다. 신이 나서 달려간 가사사기와 히구라시. 그런데 한 신사에서 그 목공소에 맡긴 거대한 신목을 누군가가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언제나 그렇듯 이 명탐정 콤비가 사건 해결에 나선다.

[가을, 남쪽 인연] 중고 상점에 왜 있는지 모를 수수께끼의 여중생 미나미와의 인연이 밝혀지는 이야기. 남편과 이혼을 한 후 가사사기의 중고 상점에 연락하여 남편의 물건을 전부 처분하려던 미나미 엄마 리호. 미나미는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여 자꾸만 일을 벌이던 중 집에 도둑이 침입하여 고양이를 훔쳐 가는 일이 발생하는데.... 돈이 아니라 고양이를 훔쳐 간 이유는?

[겨울, 귤나무가 자라는 절] 히구라시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강매하던 험상궂은 스님이 갑자기 중고 상점에 전화를 한다. 절에서 키우는 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열렸으니 와서 마음껏 따먹으라는 것. 의심 없이 절로 향했던 가사사기, 히구라시 그리고 미나미는 절에서 스님의 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는데... 스님의 꿍꿍이속은 무엇일까?

쓸데없는 호기심이라고 누군가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들 두 청년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잊지 않는다. 남 일이니까 그냥 넘어갔어도 되었을 수상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누군가의 속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까지 한다. 그뿐 아니라 어설픈 탐정 놀이를 하는 가사사기의 탐정 세계를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히구라시의 마음도 너무 따뜻하고 예쁘다. 어쩌면 작가 미치오 슈스케가 이 두 청년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잊지 말자고 독자들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추리 소설이 줄 수 있는 긴장감과 드라마가 선사하는 감동과 눈물 그리고 웃음이 돋보이는 그런 소설 [수상한 중고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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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 오사카 게이키치 미스터리 소설선
오사카 게이키치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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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일본 최고의 단편 추리소설가

얼굴 없는 시신, 사라진 발자국

뒤바뀐 가해자와 피해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추리력

[침입자]는 오사카 게이키치라는 작가가 쓴 8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1930년대에 쓰였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플롯이 탄탄하다. 일본 미스터리가 풍기는 기묘함과 그로테스크함도 잘 담아내고 있다. 귀신이나 유령의 장난과 같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면도 마음에 든다. 제대로 된 단서가 부족하고 시간대가 뒤틀리는 등 사건의 앞뒤가 맞지 않아서 요망한 귀신의 소행으로 남을 뻔한 찝찝한 사건들을, 명석한 프로파일러들이 과학적 추리를 동원하여 명쾌하게 해결한다.

이 단편들 가운데서 특히 좋았던 작품은 역시 첫 번째 단편 [탄굴귀] 였다. 1937년 작가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이루어낸 역작이라고 하니 역시 피와 땀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탄굴귀]는 최근 내가 읽은 단편 중 거의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읽는 내내 의혹 + 놀라움 + 분노 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다만 작가가 1943년 태평양 전쟁 때 징집되어 1945년 33년의 나이로 사망하였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가 쓴 다른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니 아쉬울 뿐이다.

어쨌건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둘러보자면,

[탄굴귀] 150미터 깊이에 있는 탄광 속에서 일하는 광부들 이야기. 누군가의 실수로 탄광 내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하여 큰불이 나고, 모두가 대피하지만 한 명의 광부가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그를 구해내지 않고 통로를 폐쇄해버린 주동자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과연 원혼의 소행일까?

하지만 '그럴듯함'은 '논리'가 아니며, 일차원적인 분석일 뿐입니다.

당신의 추리가 아무리 그럴듯한 암시가 풍부해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탄굴을 빠져나왔다'라는

엄청난 모순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탄굴귀 중 59쪽



[추운 밤이 걷히고] 동료 선생님인 산시로씨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된 상태인데, 어느 날 그의 부인과 사촌 동생이 누군가의 손에 끔찍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아이가 납치된 정황이 보인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남아 있기는 하나 길의 중간에 갑자기 끊겨있다. 도망가던 범인이 하늘로 솟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나는 신들린 듯이 눈의 벌판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직 멈추지 않은 음침한 종소리가 악마의 비웃음처럼

맑은 공기를 떨게 했다.

추운 밤이 걷히고 90쪽

[침입자] 그림을 그리러 조용한 별장으로 간 화가 가와구치와 아내 그리고 친구인 곤고.

그러나 가와구치가 후지산을 그린 그림을 채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2층 동쪽으로 나 있는 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남쪽으로만 보이는 후지산을 그가 어떻게 그렸을까? 남쪽 방에 가 있던 아내 후지가 용의자로 지목이 된다. 과연 그녀가 범인이 맞을까?

그러니까 이 그림은 이 방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니고

확실히 저 남쪽 방 창문으로만 보이는 풍경입니다.

뭐, 내일 한번 시험해 보시든지요.

침입자 115쪽

위에 언급한 단편들 외에도 [백요], [꼭두각시 재판], [세 명의 미치광이], [긴자 유령]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고래 떼] 역시 잔인한 살인 사건에 얽힌 사연들과 충격적인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주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 프로파일러들의 뛰어난 사고능력에 매번 감탄했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안타까운 살인 사건들과 작은 단서를 가지고도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해결사들의 모습에서 에드거 엘런 포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들의 영향이 엿보였다. 지금 출간되는 추리소설에 견주어봤을 때 완성도가 결코 뒤지지 않는 [침입자]를 읽을 만한 미스터리 소설로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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