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18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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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다 말해 드리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촉이 좋은 사람은 어차피 살다 보면 다 알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말씀을 드릴게요. 혹시 귀신 믿어요?

요괴, 이매망량, 이스시, 버닙, 에너지 생명체,

뭐 그런 종류

과연 눈에 보이는 현실이 이 세상의 전부일까? 인간을 비롯한 유기체들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인 걸까? 논리나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우리는 제3의 존재, 즉 귀신, 유령, 정령, 외계인, 괴생물 등등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의심한다. 여러 매체에서 "미스터리" 한 사건들을 자주 다루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감이나 촉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와 생명체가 존재함을 이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 [기이현상청 사건 일지]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조사하고 추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공무원들의 고군분투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온하고 위험하고 수상쩍은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 이른바 기이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이현상청]이라는 정부 조직이 있다. 엄연히 정부 산하에 있는 공무 조직인 이곳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섞여서,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기이한 현상들을 추적하고 문제의 근원을 밝힌 후 해결한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는 것 같았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진 제복을 입은 요원들이 지구 정복을 꿈꾸는 외계인들을 소탕한다는 그 영화처럼, 이 책 속에는 더운 여름, 개량 한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이현상을 해결하는 인간들 혹은 초자연적 존재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 [행정 안내] 금일 오전 11시경에 조사 목적 방문 예정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기이현상청."

단편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에서는 굉장히 낯선 아이스바 하나를 발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비슷비슷한 단팥 아이스바 한 무더기를 들춘 뒤 찾아낸 [사탕 초코]라는 이름의 이상한 아이스바는 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허술했다. 길쭉한 보라색 포장지에 어색한 꿀벌 캐릭터까지.... 더위에 지친 주인공은 이 아이스바가 단종된 제품이고 수집가에게 비싸게 팔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젖어 집 냉장고의 냉동고에 보관해두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눈빛이 형형하고 위압감 넘치는 두 명의 아이스크림 점원이 다투는 꿈을 꾸게 되는 주인공, 깨어난 뒤 너무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기이현상청이라는 낯선 정부 부처에 속한 공무원으로부터 집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 [알라딘]에 나오는 요정 지니는 단지를 건드리는 이의 소원을 들어준다. 욕망을 들어주는 요정과 현대 인공지능 이론이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 아뇨, 전부 잠재되어 있죠. 유전자 속에 말이에요. 몇 세기 전 조상의 영혼이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 있다면, 더 먼 조상의 영혼들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생각해 봐요."

단편 <잃어버린 삼각 김밥을 찾아서>에서는 대한민국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일루미나티의 존재를 언뜻 보여 준다. 기이현상청에 속한 공무원인 주인공 우모린은 좋게 말하면 호기심 덩어리이고 나쁘게 말하면 바람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린은 초현실적인 존재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만나는 기이한 존재 모두에게 매번 마수를 뻗친다. 이번에도 일을 하다가 만난 비희라는 파충류 인간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녀는 제3광명신제품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고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 놓일 식품을 개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하게 모린을 찾아온 비희는 임상 시험 와중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어 전량 폐기하기로 했던 삼각 김밥이 시장에 풀려버렸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 단세포 생물부터 시작해서 점점 고등 동물로 진화해온 인간의 영혼 속에 그 모든 조상들의 영혼이 압축되어 있지 않을까? 와 같은 재미있는 상상으로 비롯된 것 같은 이야기

" 흙이,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 황토 덩어리가 떨어진 곳에서부터, 냄비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물처럼, 송영이 뒷걸음질을 치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퍼져 가면서. (... 중략) 저게 뭔지는 몰라도, 송영이 지닌 힘으론 죽었다가 깬들 상대할 수 없을 기이현상이란 것만큼은 확실했다."

단편 <마그눔 오푸스>에는 기이현상청 업무를 하청 받아 기이현상을 조사하는 3급 지정기이단체인 명주 영능이라는 중소기업이 등장한다. 이 회사는 전라남도 명주군에 위치해있고 직원이라고는 사장님을 포함해 딱 3명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술 문화 단체를 설립하는 공사 현장에서 토사가 무너지고 장비가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직원 시니와 송영이 조사차 장소로 파견된다. 어둠이 깔릴 때까지 공사 현장에서 잠복하고 있던 직원 송영의 눈에 믿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고 그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흙더미에게 쫓기게 되는데.....

▶ 한 사이비 종교에서 누군가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어둑시니라고 알려진 한국 전통 요괴가 강력한 힘으로 그것을 제압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한계 없는 상상력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대단히 기발한 이야기였던 [기이현상청 사건 일지]. 이 책은 귀신, 정령, 흡혈괴물, 괴현상 등등 영토, 문화,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영적 존재들인 "기이" 가 일으키는 여러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추적하고 해결하는 공무원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딱딱한 직함 뒤에서, 비밀스러운 힘을 가진 채 활약을 펼치는 요원들의 스펙터클한 하루가 펼쳐진다. 실제로 이런 조직이 있어서 뉴스에 내보내지 못할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매우 독특하고 기발한 세계관으로 무장한 소설 [기이현상청 사건 일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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